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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 / 2009년 5월
평점 :
이 책은 순전히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뽑아 읽게 된 책이니까 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지만 이 책을 번역한 안인희씨의 책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은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안인희씨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것을 보면 자신의 책,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부제처럼 독재와 그에 맞선 양심이 왜 중요한지 이 책 번역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역사란 밀물과 썰물처럼 한번씩 독재의 계절을 만나기도 하지만 다시 그 '어떤 카스텔리오'의 저항으로 그 계절을 견디어 낸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직물 공장을 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가 합병된 이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영국, 미국을 거쳐 브라질로 갔다가 1942년, 거기서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친 작가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를 여러 권 썼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 책 맨 마지막 편집인의 글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어쩌면 이 책이 나온 1936년의 암울하고 숨박히는 시대 상황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독일어로 <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 칼빈에 대항한 카스텔리오 또는 폭력에 대항한 어떤 양식 쯤 되겠다. 이 책의 영어 원판 제목은 The Right to Heresy라고 하는데 이 책의 우리말 번역판 제목과 같다.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이 책은 스위스의 한 도시 제네바를 성시화(聖市化)했던 신학자 칼뱅과 그 희생자였던 화형 당한 세르베투스, 그리고 세르베투스의 죽음 이후, 칼뱅의 진리 독점주의에 <이단자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칼뱅에게 과감하게 맞섰던 인문학자, 카스텔리오에 관한 책이다. 에라스무스의 뒤를 잇는 이 위대한 자유주의자 카스텔리오에 대해선 이 책을 읽고서야 그런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이 카스텔리오라는 학자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9세기도 아니고 이제 막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던 유럽에서, 구교와 신교가 서로 투쟁하던 그 시대에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지 않고 세르베투스의 부당한 죽음을 가져온 칼뱅에게 용감하게 맞섰다는 것, 그건 번역자도 말했지만, 볼테르나 에밀 졸라, 그 이후 여러 "카스텔리오"와는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이 책에서 받은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점은 마지막 장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철학을 전공한 작가라서 이런 통찰력 있는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칼뱅의 그 지독할 정도의 엄격한 사상에서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칼뱅주의가 나온 걸 보면 역시 역사는 변증법적이라는 말이다.
개신교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으면 이 책 첫 부분에서 악의가 느껴질 정도로 칼뱅(칼빈)에 대해 기술하고 있어서 그 저항감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꾹 참고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니면 마지막 편집인의 글과 마지막 장을 읽은 다음 처음부터 읽으면 좀 나은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칼뱅의 그 잔혹함은 그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이성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할 수 도 있다는 것,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당시 개신교가 카톨릭에 당당히 맞설 정도로 그 세를 키울 수 있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기독교 강요>(개인적으로는 겨우 앞 몇십페이지만 읽어 보았지만)에서도 그 당시 구교와의 투쟁하는 칼뱅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질 정도니까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칼뱅의 모습이 원래 칼뱅의 모습에서 그리 멀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저작을 남겼더라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든 세르베투스를 화형까지 몰고 간 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초점을 맞춰야 할 사람은 정작 칼뱅보다는 그에게 담대히 맞섰던 카스텔리오다. 아이러니하지만 구교에 맞섰던 칼뱅은 다시 권위주의자가 되고 카스텔리오는 오히려 그 칼뱅에 맞서서는 선지자같다는 것. 하긴 이런 일들,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일이니까.
이 책에서 카스텔리오가 한 말,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인 것일 뿐이다". 이 말은 진하게 밑줄 그어놓을 말이다. 내 책이 아니라 그리는 못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말을 그 암울했던 16세기 중반, 인간의 이해가 현저히 떨어졌던 그 암흑기에 했다는 것 자체로 숙연해진다.
아무튼 오랜 만에 재미 있게 읽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