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스 오브 디셉션 롤스 오브 Rules of 시리즈 1
크리스토퍼 라이히 지음, 이정윤 옮김 / 프리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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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에 나오는 거창한 추천글과는 달리 상투적인 책. 대개 이런 류의 스파이물이나 스릴러물에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의 반전이 아니라 군데 군데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한 장치로서 반전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시몬느라는 여자의 정체다.  

그리고 주인공의 전투력. 주인공은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외과의사이지만 전문 산악가 뺨 칠 정도로 등산을 잘한다. 한 마디로 체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것. 하지만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거침 없이 악당에게 총질을 해대는 모습은 의사라는 직업과는 너무 상반 된다. 킬링타임용 책이라고 해도 좀 심하게 느껴질 정도임. 중간 중간에 나오는 격투씬은 젊어서 좀 놀아본 주인공이니까 이해한다지만. 

디비전. 이 말은 니키타에서도 한번쯤 나오는 단체인데, 여기서도 영락 없이 등장한다. 원래 음모론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데 한몫하는 주제이니까 넘어가자. 하지만 그 디비전 소속의 다른 스파이들은 다 목표지향적인데, 주인공의 마누라는 휴머니스트다.   

이런 저런 거 따지면 이 책이 재미 없어지니까 그냥 기차 안이나 비행기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책을 찾는다면 그리 못쓴 책은 아니다. 내용도 복잡한 게 없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 대본으로 쓰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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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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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이라는 작가는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작가다. 위키백과 검색을 해보니까 이 김애란 작가에 대한 설명이 이렇다. 문학계의 샛별이라고도 불린다고 할 만큼 어려서부터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보인 작가. 최연소 한국문학상 수상. 그외에도 수상 경력이 화려한 작가다. 그만큼 글을 잘쓰는 작가라는 말일 것이다.   

이 <두근두근 내 인생>은 작가가 처음 도전한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단편소설과는 달리 장편 소설은 서사구조라던가, 인물설정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지만, 그런 건 그 소설이 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얼마나 격조있는가를 따지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일 거고 일단은 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잘 읽히는 소설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을까. 

이 <두근두근 내 인생>은 문학계의 쟁쟁한 원로들로부터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소설이다. 특히 평론계의 대부 김윤식 선생으로부터는 악평을 받은 책이란다. 하지만 문학에서 평이라는 게 일정 부분 관점의 차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독자 입장에서는 그 평들에 너무 의존할 필요는 없다.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중 문학평론가 심진경씨가 "젊은 여성들이 밑줄 치면서 읽기에 좋은 아포리즘으로 가득 차 있지만 고등학생 부모, 조로증환자가 겪는 삶의 고통을 그렇게 '시크'하고 '쿨'하게 표현해도 되는 걸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며 "단편의 연장이며 문학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읽혀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라고 했다는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비극을 비극 자체로 그렸다면 오히려 이 책은 진부한 최루제로서의 삼류소설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고 문학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읽혀야 한다는 강박은 역으로 읽히기 위한, 작가로서 치열함이 느껴진다. 서머셋 모옴이 했다고 하는 말처럼 일단 소설은 재미 있는 게 재미 없는 것보단 낫다. 때론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드는 예술의 원래 목적에 충실한 소설도 필요하지만 잘 읽히면서 부분적으로 그 역할을 하는 책이라면 독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날 먹먹하게 했던 부분은 '이서하'라는, 골수종을 앓는 여자아이와 주인공 한아름 사이에 주고 받는 이메일이었다. 십칠년 동안 한번도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던 조로증 환자 주인공에게 찾아온 사랑, 통속적으로야 그런 사랑은 애잔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이 '이서하'라는 아이가 실은 여자 아이가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거나 또는 작가를 꿈꾸는 삼십칠세 남자였다는 사실. 작가는 뭘 말하고 싶었을까. 솔벨로우 말을 빌리자면 세상은 20세기 초반부터 하드보일드화 되어가고 소셜 네트워크화된 세상은 한편 천박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실이 이 땅에 만연하다는 것. 한 아이의 비극 또한 자신의 출세의 기회로 삼는 세상이라는 것. 작가의 생각이 보일듯 말듯 하지만 아무튼 가슴이 먹먹해진 부분이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참 오랜 만이다. 소설 읽는 걸 즐기진 않지만 한번씩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시 읽기나, 또는 철학책이나 사회과학책들이 주지 못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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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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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전히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뽑아 읽게 된 책이니까 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지만 이 책을 번역한 안인희씨의 책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은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안인희씨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것을 보면 자신의 책,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부제처럼 독재와 그에 맞선 양심이 왜 중요한지 이 책 번역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역사란 밀물과 썰물처럼 한번씩 독재의 계절을 만나기도 하지만 다시 그 '어떤 카스텔리오'의 저항으로 그 계절을 견디어 낸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직물 공장을 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가 합병된 이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영국, 미국을 거쳐 브라질로 갔다가 1942년, 거기서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친 작가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를 여러 권 썼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 책 맨 마지막 편집인의 글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어쩌면 이 책이 나온 1936년의 암울하고 숨박히는 시대 상황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독일어로 <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 칼빈에 대항한 카스텔리오 또는 폭력에 대항한 어떤 양식 쯤 되겠다. 이 책의 영어 원판 제목은 The Right to Heresy라고 하는데 이 책의 우리말 번역판 제목과 같다.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이 책은 스위스의 한 도시 제네바를 성시화(聖市化)했던 신학자 칼뱅과 그 희생자였던 화형 당한 세르베투스, 그리고 세르베투스의 죽음 이후, 칼뱅의 진리 독점주의에 <이단자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칼뱅에게 과감하게 맞섰던 인문학자, 카스텔리오에 관한 책이다. 에라스무스의 뒤를 잇는 이 위대한 자유주의자 카스텔리오에 대해선 이 책을 읽고서야 그런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이 카스텔리오라는 학자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9세기도 아니고 이제 막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던 유럽에서, 구교와 신교가 서로 투쟁하던 그 시대에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지 않고 세르베투스의 부당한 죽음을 가져온 칼뱅에게 용감하게 맞섰다는 것, 그건 번역자도 말했지만, 볼테르나 에밀 졸라, 그 이후 여러 "카스텔리오"와는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이 책에서 받은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점은 마지막 장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철학을 전공한 작가라서 이런 통찰력 있는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칼뱅의 그 지독할 정도의 엄격한 사상에서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칼뱅주의가 나온 걸 보면 역시 역사는 변증법적이라는 말이다.  

개신교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으면 이 책 첫 부분에서 악의가 느껴질 정도로 칼뱅(칼빈)에 대해 기술하고 있어서 그 저항감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꾹 참고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니면 마지막 편집인의 글과 마지막 장을 읽은 다음 처음부터 읽으면 좀 나은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칼뱅의 그 잔혹함은 그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이성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할 수 도 있다는 것,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당시 개신교가 카톨릭에 당당히 맞설 정도로 그 세를 키울 수 있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기독교 강요>(개인적으로는 겨우 앞 몇십페이지만 읽어 보았지만)에서도 그 당시 구교와의 투쟁하는 칼뱅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질 정도니까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칼뱅의 모습이 원래 칼뱅의 모습에서 그리 멀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저작을 남겼더라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든 세르베투스를 화형까지 몰고 간 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초점을 맞춰야 할 사람은 정작 칼뱅보다는 그에게 담대히 맞섰던 카스텔리오다. 아이러니하지만 구교에 맞섰던 칼뱅은 다시 권위주의자가 되고 카스텔리오는 오히려 그 칼뱅에 맞서서는 선지자같다는 것. 하긴 이런 일들,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일이니까. 

이 책에서 카스텔리오가 한 말,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인 것일 뿐이다". 이 말은 진하게 밑줄 그어놓을 말이다. 내 책이 아니라 그리는 못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말을 그 암울했던 16세기 중반, 인간의 이해가 현저히 떨어졌던 그 암흑기에 했다는 것 자체로 숙연해진다.

아무튼 오랜 만에 재미 있게 읽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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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민 2014-07-03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뱅과 세르베투스에 대한 위키피디어의 내용입니다. 참고삼아 댓글을 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E%A5_%EC%B9%BC%EB%B1%85#.EC.B9.BC.EB.B1.85.EA.B3.BC_.EC.84.B8.EB.A5.B4.EB.B2.A0.ED.88.AC.EC.8A.A4

태양의그림자 2014-09-2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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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재기발랄하게 쓴 고전음악에 관한 책이다. 바흐부터 우리나라 작곡가 윤이상에 이르기까지 대표작(실내악이 좀 더 강조되었지만)에 관한 톡톡 튀는 설명과 작곡가들의 감춰진 모습까지 설명한 좋은 책이다.   

고전음악에 막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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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음악적 인상학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이정하 옮김 / 책세상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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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가 말러의 교향곡을 듣겠다고 생각하고 말러 교향곡 시디를 사면서 아도르노가 쓴 말러에 관한 책을 한권 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심에 서 있다는 아도르노의 책은 이미 여러 권 가지고 있기도 하고 호르크하이머와 같이 쓴 <계몽의 변증법>을 수차례 읽다 말다 반복, 그리곤 독일어 원본까지 사서 읽겠다고 매달렸던 경험이 있는지라 이 책도 그리 쉬울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도르노 책 중에는 베냐민 풍으로 그래도 좀 쉽게 썼다는 <미니마 모랄리아>던가 하는 책도 그리 쉽지 않았던 걸 보면 별 배경 설명 없이 여러 사람들의 작품을 논하는 아도르노의 글쓰기를 내공 없이 따라가기란 물리학자 입장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도르노의 책을 번역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번역한 책을 남들이 읽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고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차라리 사전을 들고 독일어 원본을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번역이 난삽하다. 특히 번역 과정에서 자신이 정의한 단어(파현이라고 했던가)까지 쓰는 걸 보면, 미안한 말이지만 박사과정의 설익은 모습까지 느껴진다. 결국 수십 페이지를 고통을 감내하면서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워낙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철학자가 쓴 책이라 어느 정도는 감안해 줄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다.  독일어가 만연체라고 번역한 우리말까지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그렇게 한다고 아도르노의 문체가 우리말에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차피 전문가들은 원전을 볼 테고 아도르노를 알고 싶은 비전문가들이 읽을 책이라면 번역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하자, 제대로 된 철학자들의 글은 그 문체가 쉽든 어렵든 그 글 자체로 이해되지 않는 글을 쓰진 않는다는 사실. 그 내면에 숨어 있는 의미라던가, 메타포라던가, 또는 그 의미의 올바른 해석이라던가, 그런 걸 이해하는 건 어려운 문제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철학자가 쓴 글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칸트의 글도 마찬가지고 다른 철학자들의 글도 마찬가지이다. 이 번역한 글을 출판해준 출판사와 편집자도 적어도 번역된 글을 읽고 출판 여부를 판단했어야 하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이 책을 살 거라면 독자에게 차라리 독일어를 배우면서 원본으로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별 세개가 아깝긴 하지만 원 저자가 아도르노인 걸 무시할 순 없으니까.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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