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사용 설명서 좌충우돌 중학생을 위한 2
정지우 지음, 빡세 (Paxe)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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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에서 펴낸 좌충우돌 중학생을 위한시리즈 4권 중 2번째 권으로 2017년 출간되었다. 책의 판권을 보면 저작권이 저자 정지우와 기획자 설완식에게 같이 있는 걸로 보아 기획에 비중이 큰 책으로 보인다. 정말로 중학생에게 책을 권하는 일은 특별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목도 비교적 중학생에게 솔깃하게 잘 뽑은 것 같다. 중학생은 일단 자신의 세계가 급격히 강격해지는 시기라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이 귓등으로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귓등으로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이야기를 한다는 게 중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심각한 개입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일단 크게 반응하고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정리해보니 점잖게 표현이 되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와 부모의 대화라는 것도 사실 문제가 많다. 나도 아이와 말하는 걸 대화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의견을 주고받는 진정한 대화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부모와 자신의 생각을 평등하게 나누는 걸 경험하기가 어려운 문화인 것 같다. 이래저래 중학생과 대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중학생이 이 책을 순순히 읽고 자신과 부모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볼 수만 있다면 참 고마울 것 같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내용이고 구성이 눈에 확 들어온다.

1 부모 사용 전 유의사항 - 나 알아보기

2 제품 구성 - 엄마와 아빠 알아보기

3 부모 사용법 기본 – 대화의 비법

4 부모 사용법 심화 – 협상의 비법

전체 분량이 100쪽밖에 되지 않아 의도한 구성에 따라 가벼운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부모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라는 내용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처음이라, 나도 시행착오가 많은데 아이와의 관계에서 이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동안은 아이가 어려서 일방적인 공급과 돌봄이 필요했었고 이제 그보다는 인정과 대화가 필요한데 그것에 맞게 자연스럽게 변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중학생이 되어도 아직 너무 부족해 보이고 또 우리 사회는 사람을 너무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 책에도 부모가 느끼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부모도 불안하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부분이 좋았다. 하지만 불안의 문제를 좀 더 사회 구조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이 약간 아쉽긴 했다. 우리 사회는 불안의 강도가 비교적 많이 높다. 사회와 교육의 일그러진 모습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사회의 불안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감한다. 그래서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라는 비극적 배경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지할 수 있다면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학업스트레스를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와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책에서 아이에게 부모와의 관계를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과연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았다. 나는 정말 관계의 질을 개선하고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었는가. 내 말을 잘 따르도록 하는 데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아니지 않았는가. 그동안 관계에서 내가 주고받았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아끼고 사랑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대상이긴 한데 장기적으로도 이게 맞는가.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직 좌충우돌 중학생과 함께 살고 있어 도움이 되면서도 재미있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중간 중간 들어 있는 만화가 몇 편 안되지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엄마는 주로 롱스커트를 입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아빠는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화이트칼라 복장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 부분은 구성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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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 그리스와 로마 - 지중해의 라이벌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126
김덕수 지음 / 살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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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살림지식총서는 잘 넘겨져서 보기에 편하고 종이도 가볍고 무엇보다 글자가 커서 좋다. 덕분에 이름만 많이 들어 본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지중해의 라이벌이었다는 것도.

 

어느 선배가 이제 플라톤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나도 언젠가 플라톤이 떠오를 때면 그때 그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날 것 같았다. 이 책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주석달기(by 화이트헤드 )라고 하니 말이다.

 

플라톤뿐 아니라 알파벳의 기원, 민주정치와 공화정치의 기원 등 서양 문화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기원전이니 지금으로부터 2~3천년 전인데 어떻게 이렇게 선진적인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는지 신기했다. 알파벳이라는 간단한 문자체계가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천년에 가까운 제국을 누린 로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야기와 연구가 많이 되고 있다. 로마 제국은 없어졌지만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에 관한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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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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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혼자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당연히 찾기 어려워 팟캐스트에서 에피소드 몇 개를 찾아 들었다. 다행히 인터넷에도 이 소설을 다룬 리뷰가 상당히 많았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1932년 함흥에서 태어났는데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목포로 이주했고 1950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전쟁이 터져서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역사학, 정치학, 문학, 창작 등을 공부했고 마지막으로 창작 석사학위 청구를 위해 제출한 작품이 이 소설의 모태가 되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소설을 집필했으며 2009년 미국에서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1964년 영문으로 출간되었는데 출간되자마자 언론과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작가는 이 작품으로 한국계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책의 뒤표지에는 무려 펄 벅, 필립 로스 등이 쓴 추천사가 있다. 나는 이렇게 책의 분리되는 표지는 보관하지 않는데 이 책의 분리되는 표지는 뒷면에 펄 벅과 필립 로스의 추천사가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했다.

 

소설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한국 전쟁 즈음 평양에서 목사 14명이 공산군에 체포되었다가 12명이 죽고 2명이 살아남은 사건이 일어났다. 공산군이 퇴각한 후 평양에 국군이 들어갔고 이 순교자들에 관한 사건을 조사하는 (이 대위)’의 시점으로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사람들과 진실에 다가가는 입장의 차이를 통해서 인간의 고통과 신, 종교의 본질을 묻는 질문들이 그려진다. 소설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질문을 만들어낸다. 마치 퍼즐을 다 맞추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되는 것 같다.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 신, 그리고 철저히 침묵하는 신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목사는 왜 신을 변호하는가. 종교의 외양을 하고 있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간의 고통과 신의 문제는 나에게도 살아있는 한 떨칠 수 없는 고민의 주제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과 구약 성경 밖의 하나님이 마치 다른 분처럼 보인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때로 그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분이다. 그렇지만 예수님 사건부터는 심각하게 분위기가 달라진다. 예수님이 너무나 무력하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었고 심지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다. 무소불위의 하나님은 이제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악과 고통의 문제. 일상에서 만나는 자잘한 고난 그리고 세월호 사건과 같은, ...... 전쟁의 문제,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과 억압 등 나열할 수 없이 많은 고통에 대해 신은 무얼 하시는가. 그러다가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을 때 이 부분에 작은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팟캐스트 뼈가 있는 인문학코스모폴리터니즘과 종교(강남순) 2을 들으며 진행자의 이 말에서 또 다른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았다.

 

<거짓의 사람들> 중에서

요지는 하나님은 벌하지 않으신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창조사길 때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를 꼭두각시나 속이 텅 빈 마네킹으로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력을 사용하시지 않기도 결심하셔야만 했다. 만약 누가 우리 등 뒤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면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분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아프고도 힘들게, 그 힘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그분은 고통을 참으시면서 그대로 서 계시며 우리를 지켜보셔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간섭하시는 것은 오직 돕기 위해서이지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기 절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힘을 행하시지 않기로 결심하셨기에 만약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거절한다면 그분께는 별 수 없이 우리가 스스로 벌을 부르는 모습을 눈물 흘리면서 지켜보실 수밖에 없으시다. 이 점이 구약에는 그렇게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벌하는 분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이 점은 그리스도한테서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친히 인간의 악한 손에 무능히 죽임을 당하신다. 그분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 뒷부분에서는 신약에서도 벌하시는 구약의 하나님의 목소리가 계속 메아리치는 것을 듣게 된다. 조금씩 표현은 달라도 그 메아리의 메시지는 이렇게 악인은 그 당할 것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메아리일 뿐이다. 벌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다시는 장면에 개입하지 않으신다. 크리스쳔이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하늘에 있는 힘 꽤나 쓰는 경찰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경찰의 권세를 영원히 포기하셨다.

 

무시무시한 대학살은 물론 아주 사소한 악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어리석고 무지한 질문이다. 기독교의 대답은 우리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그리 모호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포기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서로에게 행하는 악행을 막는 데 있어서도 무능하시다. 그분은 다만 끊임없이 우리와 더불어 슬퍼하실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지혜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내주시지만,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실 수 없다.

 

...... 그러나 기독교 교리에는 대단원이 있다. 즉 이런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사실 승패는 이미 판가름이 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 그 당시에만 악을 이기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라는 사실에 대한 하난의 상징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무기였다. 그것을 통하여 악의 패배는 이미 완전히 확증이 된 것이다. ...... 사탄과 그의 일들이 겉으로 어떻게 보이든 실상은 이렇게 뒤로 도망가고 있다는 이 개념에서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 사탄에게는 인간의 악함이 존재하는 곳곳마다 빠짐없이 헤집고 다닐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발등의 불을 끄러 다니는 데만 광적으로 푹 빠져 있는 것이다.

 

 

팟캐스트 뼈가 있는 인문학_코스모폴리터니즘과 종교(강남순) 2중에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했다, 그러나 초월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이 그런 식으로 도와주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 기도를 할 때 내가 신에게 무엇을 바라지, 신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신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신의 뜻에 다가가는 방향으로 나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의 질서와 거역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때로는 제도적으로 정착된 교회를 거역해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 세월호 사건을 일으킨 것은 신을 믿지 않는 부패한 자들이 일으킨 사태이다. 진정으로 신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해경에 있고 청와대, 운송업체에 있었다면, 그들이 신을 대리해서 신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따라서 신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다.

 

 

구약에서 그렇게 노래하던 하나님의 능력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 것이 아닐까. 신의 초월적 개입을 바라는 일은 신약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왜냐면 이제는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볼 수 없는 문제도 많다. 최근에도 쓰나미가 덮쳐 인도네시아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천재지변으로 가족과 삶의 기반을 잃은 고통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들. 거기다가 너무나 많기까지...... (이야기가 수습이 안된다)

 

이 소설은 주제가 의미심장할 뿐 아니라 이야기로서도 무척 재미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구성과 전개가 잘 짜여 있어 흡입력 있게 잘 읽히고 쉽고 분량도 길지도 않다. 베스트셀러에 장기간 올랐을 만 하다. 그러나 실존적인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라 내가 짚은 이 문제가 작가의 의도가 맞는지 약간 혼란스럽긴 했다. 뒷부분에 번역가 도정일 선생님의 해설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이 소설을 다룬 기사나 다른 리뷰들도 도움이 되었다.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보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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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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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양털로 만든 해머가 강철로 만든 현을 때려 소리가 나게 된다.

그렇게 음악이 된다.

제목이 무척 매력적이다.

양과 강철 그리고 이라니.

 

주인공 도무라가 고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피아노 조율사를 처음 만난 이후 피아노 조율이라는 세계에 매료되어 조율사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열일곱 살에 무언가에 매료되어 그 길로 들어서는 것부터 비현실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신비의 세계로 한걸음 들어서면 소설이 시작된다. 어려서 선택한 직업에 잘 안착하는 건 쉽지 않다. 피아노 음이 조율을 통해 자리를 찾아가듯 주인공 도무라도 자신의 자리를 천천히 찾아간다. 일본 소설만이 그릴 수 있는 단조로우면서도 매력적인 독특함이 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이 있는 일본 영화나 소설이 떠오르는 그런 분위기다. 소설도 한 편의 그림이나 음악같은 느낌이다.

 

피아노 소리를 묘사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피아노 소리를 두고 이렇게 다채롭게 표현한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감각과 감성이 풍부하지 않아 음악이면 그냥 음악, 악기는 그냥 악기이다.

p33 온도가 달랐다. 습도가 달랐다. 음이 발랄했다. 동생의 피아노에는 색채가 가득했다.

pOO 단숨에 윤택해졌다. 선명하게 뻗는다. 다랑, 다랑, 단발적이었던 소리가 달리고 엉켜 음색이 된다. ... 잎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산으로, 이제 막 음색이 되고 음악이 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피아노는 다른 악기보다 이야깃거리가 많다. 본 영화 중에 피아노를 소재로 것들이 떠오른다. <피아노>, <피아니스트> <말할 수 없는 비밀> . 집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랜드피아노가 가까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나는 그랜드피아노를 쳐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학원에 다니면서 친 게 전부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악보가 없으면 칠 수 없으니 집에 있는 피아노 말고는 쳐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초등학생 때 몇 년 피아노를 배우고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 엄마는 그 때 더 보내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하셔서 나의 아이가 다섯 살 때 우리 집에 피아노를 사 주셨다. 그래서 수십 년 만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보았다. 간단한 악보는 보고 칠 수 있는데, 어렸을 때 이삼년 배운 것 치고는 몸이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내가 칠 수 있는 악보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이다. 다른 데서 –라디오 등- 이 곡을 들으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걸 느낀다. 앞으로 살면서 그랜드피아노를 쳐 볼 기회가 올까. 그랜드피아노의 자태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보고만 있어도 특별한 감정이 드는 것 같다. 혹시 만약에라도 그랜드피아노를 갖게 된다면 그 때는 성심성의껏 조율을 하면서 잘 관리하리라. 조율을 할 때면 양과 강철의 숲이 생각날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집에 들여놓은 그 피아노를 조율한 적이 있었다. 조율사가 왔을 때 내가 집에 없었는데, 그 때 계셨던 시어머니 말로는 조율사는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다 마쳤다고 하면서 멋있는 곡을 한 곡 연주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엄청 잘 치셔서 깜짝 놀랐다고. 그 분은 어떻게 조율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걸까. 가끔 중고 피아노 삽니다/팝니다’, ‘피아노 조율 전문등을 붙이고 다니는 트럭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가끔이다. 그럴 때면 이분들은 어떻게 악기상 또는 조율사를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직업이 악기를 다루는 것이라면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세계에 몸담고 사는 것일까. 주인공 도무라처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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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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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가만한 당신'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 책의 독자라면 이 역설적인 제목에 대해 책을 덮을 때까지 그 의미를 더듬을 것 같다. 이렇게 생을 아낌없이 세상에 내어 준 사람들보고 가만한 당신이라니. 독서의 끝까지 제목을 염두에 두고 읽으며 어떤 관점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부제는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이다. 한국일보 기자인 저자가 2014년과 2016년 사이에 신문에 썼던 부고 기사를 모은 것 같은데 기사보다는 좀 더 긴 분량이다. 서른다섯 명은 모두 외국인이고 여자는 열 명이 조금 넘는다.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은 별로 없고 대부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다.

 

서른다섯 명이 투신했던 지점은 차별, 억압, 전쟁, 폭력 등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들이었다. 전쟁과 폭력은 늘 곳곳에 어찌나 끊이지 않는지, 사람은 차별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처럼 왜 늘 어떤 차별과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지. 여성이라면 왜 세계 어느 대륙에서나 억압 또는 폭력 또는 긴장이나 불안의 어딘가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 책의 인물들을 통해 들여다 본 인간의 모습은 너무 비참하고 무섭고 심하다. 이런 면들만 보면 세상은 지옥같은 곳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온전히 인간대접을 받으며 살고 그럭저럭 평온히 생을 마무리한다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두어 장 정도씩 되었는데 한 줄 한 줄이 어찌나 밀도 있는 생의 기록인지 읽어나갈수록 숨이 가쁘고 무게감이 상당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김대중 대통령 같이 평생 한 뜻으로 엄청나게 굴곡진 삶을 사신 분이나 한 생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운동가들의 짧고 파란만장한 삶을 몇 장으로 요약한 글들인 셈이다. 그러니 이런 분들을 글로 연달아 만난다는 건 숨가쁜 게 당연했다.

 

서른다섯 명 중에 억압된 여성의 삶에 헌신했던 분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만큼 많기도 하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삶은 평범하기에 왜 이렇게 어려운가.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의 여파가 올해 초에도 새로운 양상으로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 어느 곳이라도 한 꺼풀 들춰보면 억압된 여성들이 발견된다. 이제 그들이 뭐라고 말하며 나오기 시작하는데 파고 파도 끝이 없다. 나만 해도 그럭저럭 평범한 인생이라 생각했던 그런 것들이 평범이 아니었다. 얼마나 뒤틀려진 세상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가부장제 역사가 5천년이라 하니 얼마나 오래 싸우고 바꾸고 거슬러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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