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은 '가만한 당신'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 책의 독자라면 이 역설적인 제목에 대해 책을 덮을 때까지 그 의미를 더듬을 것 같다. 이렇게 생을 아낌없이 세상에 내어 준 사람들보고 가만한 당신이라니. 독서의 끝까지 제목을 염두에 두고 읽으며 어떤 관점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부제는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이다. 한국일보 기자인 저자가 2014년과 2016년 사이에 신문에 썼던 부고 기사를 모은 것 같은데 기사보다는 좀 더 긴 분량이다. 서른다섯 명은 모두 외국인이고 여자는 열 명이 조금 넘는다.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은 별로 없고 대부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다.

 

서른다섯 명이 투신했던 지점은 차별, 억압, 전쟁, 폭력 등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들이었다. 전쟁과 폭력은 늘 곳곳에 어찌나 끊이지 않는지, 사람은 차별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처럼 왜 늘 어떤 차별과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지. 여성이라면 왜 세계 어느 대륙에서나 억압 또는 폭력 또는 긴장이나 불안의 어딘가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 책의 인물들을 통해 들여다 본 인간의 모습은 너무 비참하고 무섭고 심하다. 이런 면들만 보면 세상은 지옥같은 곳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온전히 인간대접을 받으며 살고 그럭저럭 평온히 생을 마무리한다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두어 장 정도씩 되었는데 한 줄 한 줄이 어찌나 밀도 있는 생의 기록인지 읽어나갈수록 숨이 가쁘고 무게감이 상당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김대중 대통령 같이 평생 한 뜻으로 엄청나게 굴곡진 삶을 사신 분이나 한 생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운동가들의 짧고 파란만장한 삶을 몇 장으로 요약한 글들인 셈이다. 그러니 이런 분들을 글로 연달아 만난다는 건 숨가쁜 게 당연했다.

 

서른다섯 명 중에 억압된 여성의 삶에 헌신했던 분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만큼 많기도 하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삶은 평범하기에 왜 이렇게 어려운가.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의 여파가 올해 초에도 새로운 양상으로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 어느 곳이라도 한 꺼풀 들춰보면 억압된 여성들이 발견된다. 이제 그들이 뭐라고 말하며 나오기 시작하는데 파고 파도 끝이 없다. 나만 해도 그럭저럭 평범한 인생이라 생각했던 그런 것들이 평범이 아니었다. 얼마나 뒤틀려진 세상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가부장제 역사가 5천년이라 하니 얼마나 오래 싸우고 바꾸고 거슬러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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