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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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혼자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당연히 찾기 어려워 팟캐스트에서 에피소드 몇 개를 찾아 들었다. 다행히 인터넷에도 이 소설을 다룬 리뷰가 상당히 많았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1932년 함흥에서 태어났는데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목포로 이주했고 1950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전쟁이 터져서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역사학, 정치학, 문학, 창작 등을 공부했고 마지막으로 창작 석사학위 청구를 위해 제출한 작품이 이 소설의 모태가 되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소설을 집필했으며 2009년 미국에서 7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1964년 영문으로 출간되었는데 출간되자마자 언론과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작가는 이 작품으로 한국계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책의 뒤표지에는 무려 펄 벅, 필립 로스 등이 쓴 추천사가 있다. 나는 이렇게 책의 분리되는 표지는 보관하지 않는데 이 책의 분리되는 표지는 뒷면에 펄 벅과 필립 로스의 추천사가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했다.

 

소설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한국 전쟁 즈음 평양에서 목사 14명이 공산군에 체포되었다가 12명이 죽고 2명이 살아남은 사건이 일어났다. 공산군이 퇴각한 후 평양에 국군이 들어갔고 이 순교자들에 관한 사건을 조사하는 (이 대위)’의 시점으로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사람들과 진실에 다가가는 입장의 차이를 통해서 인간의 고통과 신, 종교의 본질을 묻는 질문들이 그려진다. 소설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질문을 만들어낸다. 마치 퍼즐을 다 맞추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되는 것 같다.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 신, 그리고 철저히 침묵하는 신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목사는 왜 신을 변호하는가. 종교의 외양을 하고 있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간의 고통과 신의 문제는 나에게도 살아있는 한 떨칠 수 없는 고민의 주제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과 구약 성경 밖의 하나님이 마치 다른 분처럼 보인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때로 그것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분이다. 그렇지만 예수님 사건부터는 심각하게 분위기가 달라진다. 예수님이 너무나 무력하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었고 심지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다. 무소불위의 하나님은 이제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악과 고통의 문제. 일상에서 만나는 자잘한 고난 그리고 세월호 사건과 같은, ...... 전쟁의 문제,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과 억압 등 나열할 수 없이 많은 고통에 대해 신은 무얼 하시는가. 그러다가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을 때 이 부분에 작은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팟캐스트 뼈가 있는 인문학코스모폴리터니즘과 종교(강남순) 2을 들으며 진행자의 이 말에서 또 다른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았다.

 

<거짓의 사람들> 중에서

요지는 하나님은 벌하지 않으신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창조사길 때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를 꼭두각시나 속이 텅 빈 마네킹으로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력을 사용하시지 않기도 결심하셔야만 했다. 만약 누가 우리 등 뒤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면 우리에게 자유 의지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분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아프고도 힘들게, 그 힘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그분은 고통을 참으시면서 그대로 서 계시며 우리를 지켜보셔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간섭하시는 것은 오직 돕기 위해서이지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기 절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힘을 행하시지 않기로 결심하셨기에 만약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거절한다면 그분께는 별 수 없이 우리가 스스로 벌을 부르는 모습을 눈물 흘리면서 지켜보실 수밖에 없으시다. 이 점이 구약에는 그렇게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벌하는 분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이 점은 그리스도한테서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친히 인간의 악한 손에 무능히 죽임을 당하신다. 그분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 뒷부분에서는 신약에서도 벌하시는 구약의 하나님의 목소리가 계속 메아리치는 것을 듣게 된다. 조금씩 표현은 달라도 그 메아리의 메시지는 이렇게 악인은 그 당할 것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메아리일 뿐이다. 벌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다시는 장면에 개입하지 않으신다. 크리스쳔이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하늘에 있는 힘 꽤나 쓰는 경찰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경찰의 권세를 영원히 포기하셨다.

 

무시무시한 대학살은 물론 아주 사소한 악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어리석고 무지한 질문이다. 기독교의 대답은 우리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그리 모호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포기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서로에게 행하는 악행을 막는 데 있어서도 무능하시다. 그분은 다만 끊임없이 우리와 더불어 슬퍼하실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지혜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내주시지만,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실 수 없다.

 

...... 그러나 기독교 교리에는 대단원이 있다. 즉 이런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사실 승패는 이미 판가름이 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 그 당시에만 악을 이기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라는 사실에 대한 하난의 상징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무기였다. 그것을 통하여 악의 패배는 이미 완전히 확증이 된 것이다. ...... 사탄과 그의 일들이 겉으로 어떻게 보이든 실상은 이렇게 뒤로 도망가고 있다는 이 개념에서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 사탄에게는 인간의 악함이 존재하는 곳곳마다 빠짐없이 헤집고 다닐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발등의 불을 끄러 다니는 데만 광적으로 푹 빠져 있는 것이다.

 

 

팟캐스트 뼈가 있는 인문학_코스모폴리터니즘과 종교(강남순) 2중에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했다, 그러나 초월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이 그런 식으로 도와주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 기도를 할 때 내가 신에게 무엇을 바라지, 신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신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신의 뜻에 다가가는 방향으로 나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의 질서와 거역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때로는 제도적으로 정착된 교회를 거역해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 세월호 사건을 일으킨 것은 신을 믿지 않는 부패한 자들이 일으킨 사태이다. 진정으로 신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해경에 있고 청와대, 운송업체에 있었다면, 그들이 신을 대리해서 신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따라서 신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다.

 

 

구약에서 그렇게 노래하던 하나님의 능력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 것이 아닐까. 신의 초월적 개입을 바라는 일은 신약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왜냐면 이제는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볼 수 없는 문제도 많다. 최근에도 쓰나미가 덮쳐 인도네시아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천재지변으로 가족과 삶의 기반을 잃은 고통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들. 거기다가 너무나 많기까지...... (이야기가 수습이 안된다)

 

이 소설은 주제가 의미심장할 뿐 아니라 이야기로서도 무척 재미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구성과 전개가 잘 짜여 있어 흡입력 있게 잘 읽히고 쉽고 분량도 길지도 않다. 베스트셀러에 장기간 올랐을 만 하다. 그러나 실존적인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라 내가 짚은 이 문제가 작가의 의도가 맞는지 약간 혼란스럽긴 했다. 뒷부분에 번역가 도정일 선생님의 해설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이 소설을 다룬 기사나 다른 리뷰들도 도움이 되었다.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보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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