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황신혜밴드’라고 해서 동명의 탤런트 이름을 차용하여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이름을 지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황신혜밴드란 ‘황당’하고 ‘신기’하고 ‘혜성’같은 밴드라는 뜻이었다. 아니 그렇게 심오한 뜻이?

그나저나 이 분 참 매력적인 분이다. 이 분은 도대체 안 건드리는 분야가 없는 분인 것 같다. 개인전에 쓸 돈을 모으고자 하루에 한 번 라면만 먹으며 분투하여 서른 전에 벌써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단다. 대단한 열정이다. 뿐인가, 보통사람은 일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퍼포먼스, 연극, 공연, 노래, 글 등 두루두루 너끈하게 모두 섭렵했다. 그 열정 나 좀 떼어 주시면 안 되는지.(웃음)

하여간, 이 분은 자신을 일러 ‘무규칙이종격투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를 다방면에 사통팔달한 종합예술가라 부르고 싶다. 종합예술가 만으로도 충분 할 텐데 이분은 거기다 이력 한 자락을 더 얹었다. 카운슬러로.

<너 외롭구나>(예담)는 황신혜밴드를 만들어 ‘다섯 장의 독집 앨범’과 ‘다섯 장의 옴니버스 앨범’을 발표한 가수 김형태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조언으로 엮어진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누리 집에 올린 청춘들의 고민에 정신이 번쩍 드는 답 글들을 달아주었는데 혼자보기 아까운 명쾌한 조언들이라 책으로까지 묶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조언은 청춘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40대 아줌마인 내가 읽어도 ‘맞아 맞아’ 공감이 갔다. 갔다 뿐인가. 용기까지 덤으로 얻었다. 

 재미없고 후지면 당신 스스로 바꾸세요...

우리는 흔히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잘 안되면 나 자신의 됨됨이 보다 환경 탓을 하게 된다. 부모를 못 만나서, 후진 대학이라서, 혹은 못 생겨서 등등의 핑계를 댄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나는, 감히 확언하건대, 젊은이에게 ‘나쁜 환경’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나쁜 환경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생각해야 하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력과 생각과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입니다. - 본문112쪽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삼박한 처세술 한 수를 부탁하는 청년에게 그는 말하기를.

처세술이 뛰어난 인간이기보다 교양 있는 인간이 되고자 애쓰고, 남들이 앞서가거나 말거나 싸움을 걸어오거나 말거나 적수들과 싸워 이기기보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일에 열중하세요.....싸워서 이기기보다 수준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세요. - 본문 114쪽

외로움은 청춘의 쓰디쓴 자양분...

돌이켜보면 나의 청춘은 외로움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늘 ‘한숨’이 나오도록 외로웠던 것 같다. 외로워서 책이니, 음악이니, 자연이니 하는 것들에 빠졌었는데 이 책 저자의 글을 읽으니 제대로 된 처방(?)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안 외롭냐고? 물론 외롭다. 외롭기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는 연속적으로 ‘영화’를 처방하고 있다.(웃음)

외로움은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외로움은 청춘의 쓰디쓴 자양분입니다. 알 껍질 속에서 날개가 혼자 자라듯이. 이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내 작은 방 안에서의 가슴 끓는 청춘의 외로움은 비상하는 날개가 돋으려는 아픔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젊은이라면 기꺼이 외로워야 합니다... 

...외로움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창조적이며,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사람입니다. 외로움이란 ‘나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혼자 깊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나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며 세상을 알고자 하는 갈증이며, 나와 타인과 세상을 조화롭게 연계시키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 본문 303쪽

저자의 지적처럼 어쩌면 청춘들에게 주어진 외로움은 청춘들을 보다 더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자양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외롭다고 쉬이 타협하지 말고 외로움에 과감히 맞서서 더욱 깊어지기를 저자는 권한다. 그 깊어짐의 매개가 예술이면 더욱 좋고. 

저자는 ‘예술을 향수하고, 음미하고, 동경하고, 존중하고, 갈구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적인 문화 환경’이 되기를 소망했는데 아무렴... 나이가 들수록 예술이야 말로 우리를 구원할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이 책은 학교의 선생님, 교수님들이 해주지 않는 지당한 말씀을 에누리 없이 섭렵해준다. 때문에 다 읽고 나면 저자에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번 시험해 보시라, 진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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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책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이책의 외모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이 노란색 표지의 책이 다 팔린다면  책 표지 디자인을 한번 바꿔보길 정중히 권해 봅니다.

뭔가 시원하지가 않고 갑갑합니다. 디자인 디자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습니다. 그리고 뒤에 인용된 문구도 그래요. 다른것으로 좀 갈아 주었으면... 우좌간 저는 이책이 너무 좋아요. 젊은이들에게 더없이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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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잘 읽고 갑니다.

폭설 2007-09-13 09: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가을이네요. 뭔가 조금씩 쓸쓸해지는 그런 날들이네요.
혜경님 즐거울 가을을~~~
 

<화려한 휴가> 예고편을 보았을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뭐랄까 속에서 '울컥' 하는 기분을 느꼈다. 예고편이 저 정도인데 본론으로 들어가면 아예 눈물바다를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서 개봉하기를 기다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영화 한 편을 기다려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예전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을 기다릴 때도 이렇게 애타는 기분은 아니었다. 단지 임상수 감독의 세련된 표현 방식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시사회를 경험한 기자들의 대다수가 '오랜만에 울었다'는 표현들을 많이 썼던데 정말 그들 기자들의 가슴을 울렸다면 기대해도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하여 어서 개봉되어 5000만을 울려서 '씻김굿'을 크게 한 번 하고 뭔가 우리 모두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손수건도 준비했는데, 눈물이 안 나오네

그렇게 20여일 기다려 그제 남편과 함께 오전 9시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극장 안은 앞줄 세네 줄 빼고 꽉 채워졌다. 누군가의 충고대로 손수건 두 개를 준비해간 나는 울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준비가 완벽했나. 도무지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중간 중간 눈물이 되기 전 단계까진 갔어도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자책을 하였다. 역사의식이 부족해서 눈물이 안 나는 걸까. 택시기사 '인봉'과 날건달 '용대'가 너무 웃겨서 그런 걸까.

진정한 감동은 웃겨도 눈물이 나야 되는 게 아닐까. 눈물 흘리는 데 둘째라면 서러울 나인데 어찌 이리 냉정해지는지…. 피 흘리며 맞아 죽어가는 영화 속 시민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랬지만 극장안 분위기(?)는 훌쩍훌쩍 대체로 좋았다. 영화 끝나고 물어보니 남편도 괜찮았다고 하였다.


 
 
 
ⓒ 기획시대
 
지리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라도 쪽에서도 경상도 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지리산 등반 지도를 보면 굵직한 코스만 해도 12코스가 넘는다. 칠선계곡코스·중산리코스·대원사코스·뱀사골코스·노고단코스·화엄사코스·백무동코스·피아골코스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 뿐인가, 앞에 열거한 것이 '대로'라면 꾼들과 지역민들이 오르는 오솔길들도 무지 많다. 이처럼 길은 여러 갈래지만 그 어느 길을 오르더라고 오르고 오르면 천왕봉에 다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광주'를 해석하는 데도 여러 길이 있을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영화라는 형식으로 이제 겨우 '80년 광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개척했을 뿐이다. 하나의 길로는 '5·18'을 다 알 수 없다. 12가지 길을 개척해도 오월광주를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그 원한을 풀려면 지리산 오르기보다 훨씬 더 많은 방법으로 재조명·재해석되어야 된다고 본다.

즉, 이번처럼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본 광주뿐만이 아니라, 운동권이 느꼈던 광주, 신부님(성직자)·대학교수·시인·소설가·농부·진압군 병사·진압군 장교, 하다못해 전두환이 생각했을 광주 등등 다각도로 '80년 광주'가 해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2·제3의 <화려한 휴가>가 나오기를...

뿐만 아니라 5·18을 겪었던 사람들의 '그날 이후'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본다.

우려먹고 우려먹고 더 이상 우려먹을 건더기가 없을 때 눈만 감으면 지리산 등산로가 훤하게 그려지듯 80년 광주의 한이 모두의 뇌리에 선명이 기억되고, 5·18로 누릴 것 다 누린 인간들이 얼굴 부끄러워 세상에 못나오고 익명으로 재산 기부하고 사라질 때까지 우려먹었으면….

그리고 제2·제3의 <화려한 휴가>는 등장인물들을 MBC 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처럼 실명으로 하여 사실감을 더했으면 좋겠다. 전 재산 29만원으로도 굴릴 것 다 굴리고 당당하게 사는 그와 또, 그의 부하들의 얘기는 빼놓지 않고 시나리오에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안주가 건방지네'의 인봉이 아저씨! 안주만 건방진 게 아니라 <화려한 휴가> 하나로 5·18을 끝낸다면 고거야 말로 참말로 건방진 게라, 다음 번엔 택시 기사 말고 다른 역할로 5·18 영화에 출연해 주시씨요, 잉?"

마지막으로, <화려한 휴가>는 전 국민이 봐야 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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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3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눈물이 나지 않는 게 더 정상이지 싶어요.
저도 오늘밤 옆지기랑 보려고 예매해두었어요. 전 눈물이, 어찌 되려나
모르겠네요. 전 사실 이런 영화는 코믹한 부분을 넣지 않으면 좋겠던데
이 영화도 초반은 코믹한 부분이 제법 있나 봐요.. 제2,제3의 '화려한휴가'에
대한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폭설 2007-08-0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물 흘렸는지 우쨌는지 알려주세용?^^

프레이야 2007-08-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 올렸어요, 폭설님.^^
 

남들은 아이가 초등들어가면 책상과 공부방은 기본으로 만들어 주던데






저는 집이 좁다는 이유로, 또 1학년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아무데서나 좀 쓰고 말지 하면서
가방만 사주고 책상은 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것이 2학년이 되어도 , 새삼스럽게 무슨 책상은 그냥 대충 식탁에서 ....

처음 결혼할때는 24평이 넓었는데 한자리에서 얼추 10년을 사니 요샌 집에만 들어오면
갑갑한게 마음같아서는 당장 큰집으로 이사 가고 싶습니다만
둘다 추진력이 없어서 말로만 갈까? 하다가 늘 주저 앉습니다.

괜히 어설푸게 이사갔다가 무서운 아래층 만나서 혼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새 아파트는 주부에게나 좋지 아이들에게는 잘지은 감옥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고, 또,
마침 쩐도 부족하고 해서 한번씩 이사가는 꿈을 꾸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차례 이물건 저쪽으로 저물건 이쪽으로 정도의 자리배치만 좀 바꾸면서
살았는데 어제 저녁엔 아주 즉흥적으로 문간방을 공부방으로 만들어봐? 하다가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문간방은 피아노와 컴퓨터, 책장들이 들어있어 갑갑했는데,

피아노와 컴퓨터를 꺼내기로 했습니다.
피아노는 무거워서 아무나 못 드는줄 알았는데 바퀴가 있어서인지 요령으로 밀어부치니
둘이서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거실로 내니 거실에 있는 책장을 둘대가 없어 고민고민 하다가
현관 신발장과 일직선으로 5단 책장 두개를 놓으니 집들어오는 길이 미로처럼 좁아진 느낌입니다.

뭐 하여간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 될것 같습니다.

날이 밝으면 시장에 가서 벽지 조금사서 분위기 좀 바꿔보고 방바닥에 비닐 장판이나 깔아 줄까 합니다.
모노륨 스타일은 전문가가 시공해야 되기에
그냥 성질급한 제가 하기엔 무늬는 모노륨, 제질은 비닐장판을 까는게 제일 흡족합니다.
그냥 들고와서 펴기만 하면 되니까요. ㅋㅋㅋ..

아무튼 먼지를 너무 마셔 목이 칼칼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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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2007-07-18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는 음악 못 올리나요? 아니면 제 기술 부족인가요? 누구 아는 사람 댓글 좀....
 
열정시대 - 출판인 한기호의 열정 인생
한기호 지음 / 교양인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남의 일을 해도 목숨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내 올케언니만 해도 일을 할 때 몸을 사리지 않는다.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도 아닐진대 100m 달리기하듯 일을 한다. 때문에 올케가 잠시 놀고 있으면 어느새 들었는지 연락들이 온다. '아지매, 요새 논다면서? 우리 집 일 좀 해 주이소. 내 다른 집보다 좀 많이 줄게.'

그러면 난 얼마 더 준다는 말에 혹하지 말고 얼마 덜 주어도 좋으니 쉬엄쉬엄 일할 수 있는데 가서 적당히 분위기 봐 가면서 남들 하는 양만큼만 하라며 귀띔하곤 하였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이 되는 기라."

난 그런 올케언니를 보면서 시대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좋은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성공한 직장여성이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진 일에 몰입해서 남이 알아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성실성을 늘 부러워하였다.


출판인 한기호씨의 <열정시대>(교양인)를 읽고 보니 이분 또한 올케 언니처럼 몸바쳐 일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분은 올케언니와도 차원이 다른 분이었다. 올케언니는 해지면 집에 들어오는데 이분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아니라 24시간 회사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군부독재의 어려운 시절 '창작과 비평사'를 물밑에서 이름없이 이끌어 온 사람이 다름 아닌 그였다. '1983년부터 1998까지 만 15년'을 '창비'의 영업담당자로 일했다니 돌이켜보면 그는 우리 출판계의 황금기였던 시기를 현장에 쭉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홍보에 실패하면 많은 독자를 만나기 어려울진대 그는 영업 담당자답게 글이 아닌 '온몸'으로 전국 구석구석의 서점을 돌면서 판매망을 구축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신실한 행동으로 지방 서점 사장님들의 마음에서 감동을 끌어냈다.

한 예로, 영업차 속초의 어느 서점(동아)에 들렀을 때, 밥 먹으러 간 직원들 대신 사장님이 혼자 계산대를 지키느라 분주한 것이 보였다.

때마침 어느 중년 여성이 20여권의 제목이 적힌 쪽지를 사장님께 보여주었는데 그는 사장님의 손이 달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18권을 후딱 찾아주었다. 이놈 봐라. 감동한 서점사장님은 횟집으로 가 한턱냄은 물론 형님 아우로 평생 동지가 되었다고. 그는 이런 신뢰 관계를 대도시, 중소도시 전국의 모든 서점들을 돌며 발품을 팔아 형성했다.

찍고 또 찍어도 동나던 베스트셀러들...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서른, 잔치는 끝났다.> 열거한 제목들은 다 한때 이름을 떨쳤는데 그러고 보니 모두 출판사가 '창비'였다. <소설 동의보감>은 400만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1권만 해도 100만부, <나는 빠리의…>와 <서른, 잔치는…>은 발행 당해에 각각 30만과 39만부를 팔았다고.

요즘은 책을 내서 1~2만권만 팔아도 성공했다 소리 듣는 것 같은데, 그 당시 사람들은 웬 책을 그렇게 읽어댔는지 문득 부끄러워진다. 밤을 새워 찍고 또 찍던 시절도 있었다니, 지금 출판계 현황을 보자면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다.

평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된 그의 글들을 보면서 참 옳은 말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에는 그렇게 옳은 말밖에 할 수 없는 그의 지난 삶이 들어있었다.

또, 제목 그대로 책을 향한 열정으로 책에다 청춘을 바친 한 사나이의 인생이 애잔하게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지지리도 가난했던 고학시절과 군부에 맞서 데모하다 고문당한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영업사원으로 시작해서 15년 동안 브레이크 없이 몸 바친 '창비사랑'이 고스란이 녹아있다.

그의 마눌님은 그런 그를 일러 가장으로서는 모든 면에서 다 0점인데 딱하나 가족들 모두 에게 책을 알게 해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여담이지만 창비의 간부 한 분이 그의 사주를 물어서 용한(?) 분에게 의뢰했던바. 그 용한 분 왈.

"이분 교수이신가요?"
"아니오."
"그러면 글을 쓰는 문인인가요?"
"아니오."

"그러면?"
"출판사 영업부장입니다."
"거참… 글을 많이 쓰고 글로 성공할 사람인데, 그리고 이런 사람 부하로 데리고 있으면 회사가 번창하니 절대 내보내지 마씨요. 단 자기 사업하면 잘 안 되는 사람이여."

사주 본 사람 말대로 그는 창비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자기사업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차리자 궁해졌다. 그래서 원고료 줄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자기가 글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글을 많이 쓰고 글로 성공'한다는 말에 부합되기에 아마 자기 사업으로도 머잖아 성공할 것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뭐 하는 곳?

그는 1998년에 자신의 광주 민주화 운동 보상금이 나왔을 때 그 돈으로 ‘한국 출판 마케팅 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의 변을 들어보자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좋은 책 한 권이 학교 하나를 세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 뜻으로 나 혼자 학교를 세우는 것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1만 명이 책 한 권씩을 내면 1만개의 학교가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연구소는 지금껏 부족하나마 모든 출판인들이 좋은 책(학교)을 세우는 데 유용한 정보를 어떻게든 생산해 내려고 애쓰고 있다. -본분 162쪽

그의 출판연구소는 문을 연 지 햇수로 벌써 10년째이고 그동안 단행본만도 40여권 이상을 펴냈다고 한다. 또, 격주간지로 나온다는 소식지 <기획회의>에서는 한국 출판계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 그리고 출판 활성화를 위한 그의 고민들이 녹아있는 것 같은데.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주장들이니 만큼 당국의 도서 문화정책에 그의 해법이 많이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

아무튼, '1만 명'이 책 한 권씩 내서 '1만개의 학교'를 세우는 그날까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잘 꾸려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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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 [할인행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야기라 유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한동안 부모 노릇에 대해 회의 없이 그냥 적당히 자만하며 나 몰라라 살았는데 요즘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또랑또랑하다고 생각했던 큰애는 엄마가 던진 자율과 무관심의 늪에서 너무 놀아서인지 학습할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늘 노는 게 남는 장사라 생각했는데, 같이 놀아줄 친구들이 제 시간에 없으니 노는 것 또한 생각만큼 남는 장사가 못 되었다. 오히려 무소속감이 주는 외로움에 그동안 아이는 나름대로 고독을 견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때야 말로 독서나 좀 하지 하는 게 내 바람이었는데 낮에는 분위기(?)가 안 잡혀 독서 따윈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고독 그 자체를 씹든가. 그러나 아홉 살이 뭘 알겠는가.

나는 때론 아이의 어린 날을 내 어린 날에 비교하면서 내 아이는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느끼는 ‘체감도’는 그렇지 않은가 보았다. 아무렴 시대가 다르니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일터.

정신적 물질적으로 완전히 풍요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핍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아이는 아이대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도 없이 힘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사랑이 ‘간절한’ 4남매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2004) 도대체 뭘 모른다는 것일까. 아이들 네 명이 햇살을 받으며 쪼르륵 앉아서 행복해 하고 있는데 무엇을 모른다는 말인지. 2004 칸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카피만 읽고 숙제하듯 빌려본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상을 타고도 남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큰아들 아키라(야기라 유야 분)가 처연하니 어른스러운 것과는 달리 그의 엄마는 뭔가 늘 부산스럽고 바빴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오던 날 아이들이 많으면 쫓겨날까봐 큰아들만 선을 보이고 셋째 ‘시게루’와 넷째 ‘유키’는 여행용 트렁크에 넣어서 데려왔다. 그런가 하면 트렁크에도 못 들어가는 둘째 ‘교코’는 역 대합실인가에서 기다리게 한 후 주변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집으로 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새 아파트 생활. 아이들은 그 전의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린 아이들답지 않게 이웃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주었다. 늘 바쁘고 부산한 엄마는 아키라를 학교에 보내주기는커녕 일상생활의 이런 저런 모든 것을 ‘너만 믿는다’ 이 한 마디로 때우며 맡겼다.

그쯤 되면 참다못해 속이 부글부글 끓을 법도 한데 주인공 아키라는 이미 그 단계를 초월했는지 믿음직하기 그지없는 장남이었다. 아니 화 내고 떼 쓸 조금의 ‘여지’도 없었기에 어린이다운 행동은 애초부터 차단되었다. 다만 대책 없는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보며 엄마의 연애 사업이 잘 되어 집안이 안정되길 빌며 하루하루 연명할 뿐이었다.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들을 읽으면 없어 못 먹고 살던 시절의 얘기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김원일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음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뿐이지 홀어머니와 자녀들 간의 믿음과 정은 차고 넘쳤다.

<아무도 모른다.>의 경우도 아이들 사이의 우애는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엄마였다. 도대체 친엄마 맞아? 대책이 없으면 아이들을 줄줄이 낳지나 말든가. 각기 씨 다른 아이들을 줄줄이 낳아놓고 제대로 양육도 못하면서 여전히 연애사업만은 충실하였다.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 잘 되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나름대로 ‘봉’ 잡을 자신이 있는 듯 말했으나 아무리 천하의 호인이라도 아이 넷 딸린 여인을 영혼에 스미도록 사랑하지는 못 할 터. 그렇게 불가능한 꿈을 꾸며 밖으로 나도는 엄마를 기다리다 아이들은 점점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갔다.

배고픔은 도벽의 충동을 느끼게도 하였고 바야흐로 사춘기 소년은 또래친구에 대한 목마름으로 한없이 더 고독해졌다. 이 영화의 상황으로 보자면 그저 매일매일 집에만 들어와도, 그 하나만으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것 같은데 영화 속 엄마는 ‘그 하나’를 못하였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면 사회복지 시스템에 도움을 청해도 될 터인데 왜 그런 생각은 못하고 방치만 했는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니 더더욱 딱했다. 아무튼 이 영화는 나에게 ‘너는 부모노릇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물음을 던져 주었다.

대답은, 아키라의 엄마와는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돌이켜 보니 나 역시 무지막지한 엄마였다. 이해심이라고는 도무지 없고 칭찬을 쉽게 잘해준다는 빌미로 그 못지않게 언제든 비난도 서슴지 않는 폭군이었다. 또, 아이 곁을 지키고 삼시 세 끼 더운밥 해주는 것 외에는 다 함량미달 임에랴.

영화 마지막 노래로 전해지던 아키라의 고백...

영화의 마지막은 (편의점 누나로 나온 다테 다카코가 애절히 부른) ‘보석’이라는 노래가 흐르면서 끝이 났는데 그 노래는 영화 내내 무표정과 처연한 침묵으로 삭이던 아키라의 슬픈 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보석(아키라)은 보석인데 악취가 나는 보석이라니.

한밤중에 하늘에 물어보아도/ 별들만 반짝일 뿐/ 마음에서 흘러나온 물이/ 검은 호수로 흘러갈 뿐/ 다시 한 번 천사는 나를 돌아볼까/ 내 마음속에서 물놀이를 할까/ 겨울바람에 눈물이 흔들리고/ 어둠속으로 날 인도하네./ 얼음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나는 점차 커가고/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보석

눈물을 쏙 빼주던 이 노래는 며칠이 지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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