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22일)에서 세관에 적발된 수백 개의 짝퉁 루이뷔통 가방을 보자니 짝퉁과 관련한 일화가 떠올랐다.
지난해 어느 날 서울 사는 한 친구가 소포를 보내왔다. 뭐지? 하며 제법 있어 보이는 미끈하게 각진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속 물건은 또 한 겹의 얇은 천에 싸여있었다. 꺼내 보니 직사각형의 보라색 손지갑이었다. 이름을 보니 루이뷔통. 에이 설마? 그래도 혹시나 싶어 친구에게 확인전화를 했다.
"지갑 잘 받았는데 루이뷔통이라니, 너무 과분하잖아."
"걱정마라, '짜가'고 2만 원 줬단다. 남편이 중국출장 갔다가 여러 개 사왔길래...ㅋㅋ."
"휴~, 안심이다. 난 또 진짜면 부담스러워서 어떡하나 싶어서... 포장이 좀 요란해야지~.
짝퉁이라서 너무 다행이고 고마워."
"그게 가짜라도 한국에서 사려면 6~7만 원 줘야 한다더라. 웃기지?"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며칠 후 똑같이 생긴 것이 아파트 노점시장에 있기에 가격을 물어보니 7만 원이라고 하였다. 가게주인은 '실용적이고 어디가도 이런 지갑은 이정도 가격을 줘야 해요'하면서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또 하나 떠오른 얘기. 언젠가 조카가 집에 놀러 와서 담소를 즐기고 있는데 조카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의 사연인즉, 지금 어디어디에서 짝퉁은 짝퉁인데 보다 고급 짝퉁이 출시되었는데 가보지 않으련 하는 것이었다.
"짝퉁이면 짝퉁이지 그 속에도 급이 있나?"
"그럼, 2,30만 원대도 있고 4,50만 원대도 있고..."
"짝퉁이래두 어마어마하게 비싸네. 짝퉁을 왜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산다니."
"진품을 살려면 2,3백 혹은 4,5백 줘야하는데 동그라미 하나 떼고 살 수 있으니 혹하지. 비싼 짝퉁은 진품과 구분 못하게 철저한(?) 품질관리가 되었다나 뭐라나."
"하긴 이태리 장인이나, 중국장인이나, 남대문 장인이나 기술력은 비슷하겠지. 디자인의 주인이 이태리 장인이라는 게 다를 뿐."
소중히 오래 쓰면 그것이 바로 명품
아무튼 기껏해야 출퇴근길에 화장품이며 잡동사니 넣어 다니는 가방이 평범한 가장 한 달 월급을 맞먹거나 넘는 다는 것이 씁쓸하다. 또, 비싼 가방에다 '명품'이란 말을 붙여주는 것도 마뜩찮다. 가방은 그냥 가방일 뿐이다. 비싼 가방이나 그냥 가방이나 내재적 가치는 별 차이 없다. 가방 안에 있는 내용물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화장품, 지갑, 책, 손 전화, 그 외 기타 등등.
그런 의미에서 내 오랜 가방을 소개한다. 나는 얼추 20년이 다 되어가는 가방을 애용하고 있다. 92~3년의 겨울, 대전의 '대전백화점'에서 당시 2만 5천 원을 주고 샀었다. 안정감 있고 소박한 게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JIRO'라는 이름이 가방 정면에 쓰여 있는데 '지로'는 만든 회사 이름인가 하면서 샀었다.
막상 가방을 써보니 첫인상 못잖게 실용적이고 착용감이 좋아서 늘 애용했다. 결혼을 하고나서도 결혼 때 산, 보다 비싼 백 놔두고 자주 애용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세월과 더불어 낡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내가 '지로' 가방을 멜 때 마다 면박을 주었다.
"어지간하면 새로 하나 사라, 내가 하나 사주랴?"
"낡긴 했는데 정이 들어서..."
정말 물건도 오래 쓰니 정이 들어서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안 버려 본 것도 아니었다. 지청구를 주는 이웃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만 버리자. 다른 백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면서 헌옷 수거함(에 넣지 않고) 위에 올려놓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한 나절 만에 도로 가져오고 말았다. '분리불안'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남들이 지청구를 주든 말든 그냥 애용해야지~흠.'
그러다 지난 추석에 드디어 나의 가방을 좋게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동네 사진관에 들러서 사진관 아주머니와 차 한 잔 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왈.
"아까부터 백을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요. 부러워요. 저리 낡은 것은 돈 주고도 살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겠죠, 후후~. 요즘 청바지는 돌 넣어 빨아 낡게 만든다지만 가방은 그럴 수 없겠죠."
구박이 아닌 상찬이라 놀라웠는데 사진관 아주머니는 또 다른 가방 얘기를 해 주었다. 즉, 며칠 전 어느 곳에서 한 외국인 여자가 맨, 제법 물건이 들어갈 보통 크기의 가방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가방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낡아서 바들바들 해졌는데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방 한 번 쳐다보고 가방주인 한 번 쳐다보고 하면서 넋을 잃었었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
"명품이 별건가요, 소중히 오래 쓰면 그게 바로 명품이죠."
"정말 그렇네요. 전 편리해서 이 가방을 자주 사용하면서도 조금 주눅 들기도 하고, 또, 지청구 주는 사람을 만날 때는 다른 가방을 들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휑하니 시장가고 슈퍼가고 금융볼일 보러 갈 때는 저도 모르게 이 가방을 선택해요. 가방이 낡아서 안전(?)하고 착용감도 좋고.."
"당당하게 쓰세요. 이 가방 보니 나도 정말 예쁜가방 하나 사서 오래 쓰고 싶어지네요."
누군가 불러주니 꽃이 되었듯. 사진관 아주머니가 의미부여를 해주니 편해서 쓰던 내 백이 진짜 명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쓸 때까지 한번 써보자 다짐했다. 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전에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아무데나 마구 던져놓곤 했는데 이제는 좀 곱게 써야지. 그렇게 해야 될 것이 자꾸 빛바래고 낡으니.
요즘 유명 재벌 3세 여성들은 경쟁 하듯 너도나도 명품 매장을 열면서 마치 유행을 선도하는 듯하면서 매상고에 열을 올리던데 서민들이 거기에 춤 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대생들이 몇 달 알바해서 산다거나, 한두 달 만 월급이 끊겨도 대번 적금을 깨야하는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들이 명품에 연연하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명품에 연연할수록 그 가방 값도 올라가고 짝퉁업 또한 번창할 것이다. 진품을 비싸게 들어도 짝퉁을 진품인양 들어도 결국 내주머니만 빌 뿐, 그 기분 오래가지 않는다. 철철이 새로운 신상품들은 또 왜 그렇게 쏟아지는지. 백 만 원 짜리 하나 드느니 그냥 10만 원짜리 열 개 드는 게 낫지 않나. 10만 원 짜리 열 개 들것도 없이 그냥 용도에 맞게 큰 것 작은 것 중간 것 두 세 개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