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식목일을 맞아 소나무 묘목이나 하나 심어 볼까하고 꽃집에 갔었다. 텔레비전에서 어린 소나무 묘목을 심는 것을 보았기에 저렇게 어린 소나무 묘목도 심는구나 하며 신기해 했었다. 그런데 인근 꽃집에는 소나무 묘목이 없었다. 하여 오랜만에 간 김에 이 꽃, 저 나무 눈요기나 하자며 넓은 화원을 천천히 돌며 감상했다.

그런데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고 내가 마신 미량의 방사성 세슘인가 요오드인가가 내 마음에 변화(?)를 준건지 뜬금없이 다육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들어 온 것도 아니고 ‘확’ 들어왔다. 아니, 이 아름다운 것이 왜 이제야 보이는 거지?

그전에는 다육식물을 보긴 해도 전혀 땡기지 않았다. ‘아니 이것들은 꽃도 아니고 잎도 아니고,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죄다 희뿌여스름하니 니 멋도 내 멋도 없건마는 종류는 참 많구나.’하며 지나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파리 울울하고 풋풋한, 광합성을 많이 하는 키 큰 화초들에 빠져있던 나로서는 그런 바닥을 기는 기럭지와 무색무취한 듯 보이는 다육이 눈에 들 리 없었다. 작아도 여린 야생화들은 예쁘기나 하지. 그리고 꽃이라면 볕만 좋다면 겨울 내내 피는 제라늄처럼 강인한 것이 좋았다.

그런데 그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다육식물이 이봄에 꽂힌 것이다. 자그맣게 생긴 것들이 이름은 다들 얼마나 거창하고 기똥찬지 솔직히 처음엔 다육자체보다 이름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 조그만 군상들이 이름은 다들 어마어마하네 그랴. 청성미인은 뭐고, 까라솔은 뭐고 홍옥은 또 뭐람? 프리티, 춘망, 녹비단, 클라라, 라즈베리아이스, 롱구 아폴리아, 미니벨, 꽃땟목, 금황성, 청솔, 흑괴리, 부영, 정야...... 다육의 이름은 끝도 없었다.

생긴 것은 비슷비슷한데 다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어서 그 이름 다 기억하고 불러주자면 다육식물에 관한 책을 하나 사야 해결되지 싶었다. 아무튼 저마다 작고 앙증맞음에 신통하다 싶었는데 출신지도 이역만리라니 매력 한 자락 더 얹어졌다. 나는 꽃집 사장님께 이들의 원산지를 물었다.

“중국, 시베리아, 러시아 등 주로 추운지방이나 건조한 사막에서 자라는 것들입니다.”

그렇구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집은 자그마하게 잎은 두껍게 하였구나. 그 추운 북쪽지방에서 곰도, 호랑이도, 원시림도 아닌 식물로 살아내자면 정말이지 얼마나 많은 살을 에는 아픔을 견뎠을까. 혹은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물 없이도 오래 견딜 수 있게 자기 수양을 했을까.^^  



얼마 전 영화 <웨이 백>을 보니 시베리아 추위 말도 마소. 눈은 무릎까지 푹푹 쌓이는데 눈바람은 또 어찌 그리 불던지. 죄인 아닌 죄인들을 시베리아에 부려놓고 교도관은 일성을 내질렀다.

“여기는 따로 지키는 사람이 없다. 시베리아가 너희를 감시할거다. 시베리아 자체가 감옥이다. 탈출 생각 있거든 어디 함 해 봐라.”

내가 산 다육들은 다행히 이름에 한자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중국이 원산지인 것 같아 덜 안쓰러웠다. 하도 종류가 많아서 어느 것을 선택할까 수 십 번 왔다 갔다 하다 이러다간 하루 종일 걸리겠다 싶어 눈감고 딱 고른 게 사진 속 인물들이다.

집에 와서 줄 맞춰 화분에 심고 보니, 꽃집에서 플라스틱 화분에 있을 때도 예뻤지만 도자화분으로 갈아입으니 더 예뻐 보였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급기야 자랑을 아니 할 수 없어 야생화 잘 기르는 친구에게 사진 찍어 보내니 그녀도 다육의 아름다움에 동조해 주었다.

“니가 드디어 화초의 진경을 알았구나. 고수들이 다육식물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도 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너나 나나 전화번호 10개도 못 외우는 세상인데 다육식물 이름 한 100개 외우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까나. 후후~. 수많은 다육식물들을 다 사지는 못해도 그들만의 책이 있다면 사서 이름을 외우고 싶다. 하여 그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불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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