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세 계약한 그 사람이 아니네?

세상 어떤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쉽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학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전세 사건도 그랬다. 이사를 오면서 전세를 놓고 나왔는데 세입자가 원해서 전세권 설정까지 해주고 난 다음 하필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오고 가다가 우리가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그들은 우리가 계약한 서류상(법적) 당사자가 아니었다. 속칭 '전전세'라고 한다던가. 즉, 계약자 따로, 실거주자 따로인 것이다. 세입자는 부동산 아저씨께 "본인 명의가 아니"라고 말했다는데 우리 부부는 들은 바가 없었다. 

들은 바가 없었어도 "본인이십니까?", 이 한마디만 물어 보았더라면, "주민증 서로 확인합시다" 이 한마디를 추가로 물었다면 계약이 성립할 수 없었을 텐데 그걸 묻지 못했다. 나이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너무도 본인 같았기에 '본인'이냐고 묻지를 않았는데 사단이 난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아무런 양해 없이 듣도 보도 못한 사람과 계약이 됐다는 것에 불쾌했고 남편은 법적인 문제를 수소문해 봤다. 결론은 전세금을 돌려줄 때 '실거주자'가 아닌 얼굴 모르는 '법적 계약자'에게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이십니까?" 계약할 때 잊지 마세요

우리가 뒤늦게나마 알았으니 망정이지 계약자 따로 실거주자 따로'인 것을 모르고, 계약 해지 시 실거주자에게 돈을 돌려 주었을 경우 문제가 발생한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서류상 계약자가 뒤늦게 나타나 "나는 받은 적 없다, 내 돈 돌리도"하면 꼼짝없이 다시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서 세입자에게 계약 만료 시에는 반드시 법적(서류상) 계약자가 함께 해야 됨을 미리 알리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됐다. 

우리 경우는 돈을 받는 입장이어서 다행이었지만 반대로 세를 드는 입장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람을 믿어야 되겠지만 세상에 못 믿을 사람 천지이니... 더구나 서울의 경우 주인은 지방에 있고 임대는 대리인이 나서서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나 같은 초보자들은 그런 집엔 아예 세를 들지 말지어다.  

반드시,

"본인이십니까? 확실한 게 좋으니 서로 주민증 확인합시다"

를 꼭 말하자.

뭐시라? 니만 정신 차리면 된다고요? 물론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실제로는 꼭 나 같은 초보자가 있게 마련이다. 앞서 얘기했듯 누구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기이나 혹자에게는 경험을 해야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일 수도 있다.

한 번 더 강조. 

전세 계약 시 "본인이십니까? 주민증 확인합시다"라고 반드시 물어 보자. 그래서 아닐 경우는? 인상이 좋고 사람이 어때 보여도 절대 계약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지만 문제 생길 확률도 많다. 더욱이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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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으로 스며든 햇살에 눈이 부시다. 아마 이런 빛을 일주일쯤 쏟아 부어주면 우리 동네에서도 꽃이 피지 싶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봄은 저 혼자만 오는 것이 아니라 꽃과 초록을 몰고 오기에 그 어떤 손님보다 반갑다. 

이런 봄 햇살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커피 점 창가? 대학캠퍼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들녘? 아니면 남녘의 어느 청 보리 밭 언덕? 다 좋다! 봄 햇살은 그 어떤 꾸밈보다 화려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에서 한층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 꽃들 봄이 대단한 것은 이분들이 날 잡아봐라~~~하기 때문..^^


 

며칠 전, 우리 도시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엘 갔다가 재래시장이야 말로 봄 햇살과 찰떡궁합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햇살은 하늘 가운데서 조명을 비추듯 길게 일자로 늘어선 시장 통을 비추었고 시장사람들은 분주하게 팔 물건들의 맵시를 다듬고 있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장사꾼도 손님도 가득한 것은 아마 봄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나도 아이를 보내고 나서 바로 달려왔듯이 다른 분들도 일단은 시장부터 하면서 그러했으리라.

재래시장의 장점

대형마트가 처음 생겼을 때는 왠지 주말마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뭔가 소외된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을 끄는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영화에서나 봤지 우리가 언제 그런 대형 상점 구경이나 했간? 수레한번 밀어보는 재미, 차 트렁크에 수북이 산 물건 실어보는 재미, 장보기 후 마트 옆에 딸린 음식점에서 한 끼 먹어보는 재미.... 마트는 나름대로 매력 있었다.

그러나 그 것도 한두 번이지 아니 이제 한 10년 했으니, 좀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처럼 물가가 출렁이는 시절에는 대형 상점에 가봐야 득 될 거 하나 없다. 채소류는 나름대로 신선하다지만 비싸기만 하고, 하나 값에 두 개 준다는 말에 속아 덥석 쥔 과자류도 계산할 때 보면 결코 싸지가 않다. 

공기는 또 어떻고. 나는 호흡기가 약해서 그런 곳에 가면 코와 눈이 먼저 분위기 파악을 한다. 각종 플라스틱 상품이나 비닐포장지, 혹은 물건 박스가 뿜어내는 그 독한 냄새는 이내 눈을 따갑게 하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해서 어쩌다 한번 구경삼아 갔다가도 이내 나와 버리게 된다.   






그에 비해 재래시장은,

 

♥무척 여유롭다.

♥일단은 공기가 신선하다.

♥무엇보다 먹거리들이 싱싱하고 싸다.

♥사람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물건을 싸고 팔 때 정겨운 말마디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마트에서는 기계적 계산과 서비스가 있지만 시장에서는 천원, 이천 원 물건 하나 사고도 그 것을 파는 아주머니와 작은 마음이 교환된다. 이 집에서는 돈 나물 한 봉지 이천 원, 저 집에서는 콩나물 천원어치를 사고팔아도 서로가 고마운 마음이다. 그리고 기분 나는 대로 충동구매해도 몇 만원을 넘지 않는다. 

얼마 전, 놀러온 언니네 둘째딸과의 대화.

“니가 결혼하고 나서 엄청 여물어졌는데 그동안 돈 좀 모았나? 별도의 비자금은 또 얼마나?”

“이모 그런 소리 하지마라, 돈 하나도 없다. 만날 카드 값 갚고 나면 가불인생이다(웃음).”

"그게 무슨 소리고?”

“마트를 안가야 되는데 집 옆에 있으니 아이 데리고 나갔다가 갈 데 없으면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다보니 그 소비 무시 못 하겠더라. 애는 애 대로 아토피고.”

“가면 꼭 살게 생기고? 놓치면 후회 할 것 같고~ 잉?”

“그렇지! 그래서 올해는 좀 자제해볼 생각이야. 내 인생에 득 될게 하나 없어요. ㅋㅋ”








▲ 꽃파는 아주머니 '우리꽃 예쁘게 찍어주이소~~'라고 말씀하셨는데 꽃파는 아주머니는 꽃들 만큼이나 화사하게 한 미모 하셨다. ^^

마무리

언젠가 보니 프랑스 파리에서는 대형 상점 보다 재래시장 인기가 높다고 하였다. 아니, 재래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대형마트 인허가를 내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중소도시 구석까지 너무 많은 대기업 마트가 들어와 있다.

차 몰고 가서 트렁크에 가뿐하게 싣고 오니 일견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뜯어보면 우리가 모르게 지불하는 대가들이 분명 있다. 

결론은, 가까운 재래시장을 이용하자. 양이 많아 무거울 땐 택시를 타자. 재래시장 앞엔 항상 택시가 대기 중이다. 물건을 싸게 샀기에 택시 요금쯤이야 충분히 뽑는다. 그렇게 서민들끼리 서로 돕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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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의 끝자락 이사를 하였다. 만 10년에 두 달 빠지는 날을 살았던 정든 아파트를 떠나 이사를 하였다. 아, ‘정 든’ 이 아니구나. 막판 몇 년은 정말 지긋지긋했다.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서 가구 배치 한번 씩 바꾸고 물건하나씩 들이며 기분전환하며 살았다. 

또, 주어진 그 자체를 감사하지 못하고 방자하다 하늘이 노할까, 아니 그전에 내 양심이 항복하여 마음을 붙잡고 살았다. 좁다지만 이런 집 없는 사람도 많고, 이사 잘 못 가서 무서운 아래층사람 만나면 그 낭패는 또 어이하고, 둘째가 어리니 살던 데서 쭉 사는 게.... 아프리카에서는 어쩌면 내 집이 장관 집 쯤 되는지도 몰라 등등 이사못갈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저런 핑계도 ‘10년’을 이길 수는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물며 내 마음 쯤이야. 내 마음만이 아니라 가족모두 이사가 숙원(?) 사업이었다.

 

 

“엄마, 우리도 이사 가자.”

“어디로?”

“어디는 상관이 없다. 이집을 떠나서라면 그 어디든 좋다. 무조건 가자.”

애나 어른이나 모두 한계상황이 온 것이었다. 때마침 봄이 되니 이웃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입주부터 내리 13년 산 누구는 어디로 가고, 역시 13년 산 누구는 또 어디로, 10년 산 누구는 마침 전보 발령이라 또 어디로 가고 등등 10년 씩 함께 살던 이웃이 떠나니 내 마음도 들썩였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또 한해를 접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끔직했다. 

그래가자. 일단 부동산부터 가보자. 마음먹기 어려운 사람들은 시작이 곧 반인 즉 부동산에 집을 내 놓고 나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살던 아파트 너머로 모 임대아파트가 1차, 2차, 3차, 5차 수십 동이 지어져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눈에 확 들어왔다. 

해서, 결혼 하고 부터 살았던 79제곱미터 집을 세놓고 5백 미터쯤 떨어진 인근의 임대아파트 102제곱미터로 이사를 하였다. 마음먹고 옮기니 이렇게 쉬운 것을 그동안 인내하며 산 세월이 야속하고 야속했다. 4년 전에 왔더라면 아니 2년 전에 왔더라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10년 동안 무탈하게 살게 해 주었던 전 집에 대한 의리도 없이 우리가족은 새집에 홀딱 넘어갔다.

좁으나마 ‘자가’를 살았기에 ‘임대’라는 말이 생소해서 처다 보지도 않았는데 막상 살리라 마음먹고, 또, 들어와 살아보니 세상에 임대아파트야말로 우리나라 주택 안정 정책의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걸 이제 알았냐구요? 아무튼 나는 이제 알았기에...긁적긁적) 

 


대한민국 아파트값 현주소? 내 아파트 값 현주소?

지난 <시사인>제 21,22 설 합병호에서는 우리나라 최고가 아파트 값의 현주소를 1등부터 99등 까지 등수까지 매겨가며 가격을 적시하였는데 세놓고 온 아파트값과 현재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 가격을 비교하려니 아예 비교자체가 무색하였다. 

나는 이 <시사인>기사를 보기 전에는 서울 아파트 값이 비싸다 해도 이렇게 비싼 줄 꿈에도 몰랐다. ‘타워팰리스’라 하면 글쎄 한 10억쯤? 정도였다. 왜냐하면 한 친구가 105제곱미터의 아파트를 3억에 샀다고 했으니 그 두 배면 6억, 강남이니 더하기 3~4억? 정도로 생각했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 부동산값 어쩌고 해도 관심도 없고 이해도 안 되었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 집이 10년 동안 집값 변동이 전혀 없었기에 집값이 비싸도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서울 집값이 하도 비싸서 내 집값 밝히기 쑥스러우나 79제곱미터 우리집값은지난 10년간 줄곧 6000만원이었다. 그리고 이사 온 임대 아파트는 102제곱미터 6700만원이다.  

내사정은 이러한데 <시사인>에서 밝힌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타워팰리스 1차 245제곱미터는 53억 6000만원이었다. 헉! 말로만 듣던 타워팰리스가 그렇게 비싼 줄이야. 몰랐다. 꿈에도 몰랐다. 

비싸야 10억 인가 했는데....53억 6000만원은 도대체 우리 아파트값의 몇 배인가. 계산이 안 된다. 아, 계산 할 것도 없이 얼추 ‘90배’인가. 면적은 3배인데 가격은 90배라? 도대체 6000만원으로 타워팰리스 화장실 타일 몇 개나 붙일 수 있는지...

<시사인>에 의하면 강남권 고가 아파트 1등은 245제곱미터에 53억6000만원이고 제일 낮은 99등은 145제곱미터에 20억5000만원이었다. 100제곱미터 차이에 가격은 33억이나 차이가 나다니. 3.3제곱미터(1평)에 1억씩 추가되는 꼴이다. 

또, <시사인>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파트의 하위 20%권 아파트 실거래가는 70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한민국 평균은 약 1억 5천, 서울시 평균은 약 3억 3천이었다. 상위 5%에 들려면? 5억 원짜리에 살면 되었다. 상위 2%에 들려면? 15억 원이면 들 수 있다고 하였다.

워매, 워매, 그러면 내 좌표는 어떻게 되는 것이여? 아파트 가격으로 볼 때 나는 대한민국 하위 20%에 속한다. 대한민국 평균의 절반도 못 되는 가격이다. 아파트 아닌 예금으로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불쌍한가? 

 


천만에. 하나도 안 불쌍하다. 오히려 기껏해야 145~245제곱미터에 살면서 방바닥에 20~50억씩 깔고 앉은 사람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그런 집에 살면 잠이 더 잘 오나? 수명이 한 200년으로 길어지나? 사업이 더 잘되나? 어째 살다보니 그런 집에 살게 되었다면 부디 그 집 팔고 떠나면서 남는 돈 세는 기쁨을 누리시라.

(머시라? 예금은 그 보다 더 많아서, 즉, 돈에 구애 안 받는 삶이라 떠날 필요 없다고요? 그렇담 ‘도덕적’으로 떠나야지요? 그렇게 금싸라기에 앉아서 자꾸 집값 올리면 서민들이 불쌍하잖아요.) 

내재적 가치로 보자면 별 차이 없는데 가격으로는 이렇게 차이가 나니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면적이 적은 48등한 ‘압구정 구 현대 4차 아파트’ 118제곱미터는 25억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와 비교하자면 기껏 16제곱미터(약 5평) 더 넓을 뿐인데 가격차가 ‘37배’나 난다는 것은 개인의 손실이자 국가의 손실이란 생각이 든다.

주택공사 토지공사는 그동안 뭐 했수?

아무튼 이번 이사를 하며, 집값의 격차를 어마어마한 숫자로 느끼며,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은 주택공사 토지공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나 하는 것이었다. 대한 주택공사는, 토지개발공사는 서민들의 안정된 주거 환경을 위하여 그동안 얼마나 어떻게 노력했는지 심히 궁금하였다. 

진즉에 땅값 오르기 전에 땅을 사고 영구임대주택을 홍보하고 지었더라면 아파트 투기 공화국은 애초에 싹이 자랄 수 없지 않았느냐 말이다. 어제 우리지역에서 공개된 한 견본 주택을 가보니 3.3제곱미터 당 800만원이었다. 불과 1년 전만해도 3.3제곱미터 당 500만원이었는데 1년 새 그렇게 올랐다. 

내가 살게 된 임대아파트의 경우 물가를 감안해 1년에 350 만 원 정도 오를 수 있다고 했는데 일반 민간 건설사는 일 년 사이 3.3제곱미터 당 300만원이 올랐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웃 일본 꼴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쩌면 그 정점을 향해 ‘최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가 아니고 달리고 있다고요? 결승점 다 와 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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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월 6일(설 전날) 경산시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22살의 베트남 신부가 투신했다는 뉴스는 충격이었다. 다른 도시도 아니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기에 더더욱 충격이었다. 서둘러 시신을 화장해 유골을 베트남에 보냈다는 대목에서는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타인인 나도 분노를 멈출 수가 없는데 그 부모는 오죽할까. 

어린 딸을 한국에 시집보낸 베트남 가족들은 딸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뼛가루가 된 모습을 봐야하다니.... 베트남 가족과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난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말이 통하는 중국동포, 핏줄이 통하는 사할린 동포, 그리고 영어 잘하는 필리핀신부에 눈독을 들이다가 여러 문제가 생기자 돌고 돌아 ‘남편에 순종하고 냄새 안 나는’ 베트남 신부에 열을 올리던 우리네 천박한 이기심이 기어이 일을 낸 것이다. 

이젠 정말, 말이 좋아 국제결혼이지 불평등한 국제노예결혼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본다. 결혼 중계업체의 설명대로 순종 잘하고 부모 잘 섬기는 그녀들이 오죽하면 자살을 했겠는가. 문제는 그녀들이 아니라 우리 쪽이 문제이다. 아무리 돈으로 신부를 산다지만 나이차이가 10년 20년 나는 것은 애초에 파국의 불씨를 안고 결혼하는 것이다.

남녀 관계는 그 어떤 화학식 보다 어려운데 돈으로 모든 것을 뛰어 넘겠다는 것은 생각부터가 틀려먹었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한국 총각이 1000만원을 들이면 베트남신부 가족에게는 많아야 40만원이 떨어진다던데 베트남까지 왕복하는 경비를 뺀다하더라도 중개업자들의 이익이 너무 크다. 

이런 악덕 중개업자 말고, 결혼 후의 삶을 지원해주는 시민단체도 필요하지만 결혼자체를 합리적으로 연결해주는 지원 단체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결혼 후보다 결혼 전의 마음가짐을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일정교육(남성과 그 부모)을 받게 하고 상담하여 외국여성과 결혼해도 손색없을 가치관, 세계관이 보이면 만남을 주선하는 등 말이다. 

외국인 신부에게 전통문화 강요하지 말아야...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할 한국 남성이라면 일단 그 마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잊기를 권하고 싶다. 결혼할 남성은 물론 그 가족들도 상대 신부에게 한국의 관습, 인습을 강요할 생각을 아예 말아야 한다.

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 시댁식구들과의 관계 맺기와 차례, 제사 등 유교문화를 따르려면 회의가 들고 피하고 싶어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신부들은 오죽할까. 게다가 말이 안 통해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가 없는데 어떡하라는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얘긴데 진정 외국인신부와 결혼할 생각이라면 다른 아무것 생각하지 말고 결혼 후, 한 2년 정도는 둘만 살면서 서로의 말을 배우고 가르쳐주기에만 몰입하면 어떨까싶다. 

부모 모시고 인사드리고 자식노릇하고 이런 것 다 치우고 오로지 두 사람 만 깨를 볶으면서 서로의 말을 배우란 말이다, 한국말만 배우라 하지 말고. 그렇게 서로의 말을 배우면서 두 사람의 유대를 확고히 한 다음 시댁과의 관계 맺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울타리도 되어주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로 적응해서 살면 되지 하면서 시작했다가는 부부도 힘들고 시부모도 힘들다. 두 나라의 문화차이, 나이 차이, 음식 차이 등 가장 못 바꾸는 것들을 장착한 채 만났는데 어찌 조화가 쉽겠냐 말이다.

서로가 노력해도 어려울 판에 1000만원 투자(?)했다는 본전생각에 일방적으로 약자인 신부보고 맞추라고 한다면 상대는 고함소리 한마디에도 심장이 떨리는 공포를 느낄 것이다. 공포를 느껴서야 어찌 살겠는가, 그것도 부부사이에 말이다.

아무튼, 외국인 신부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 해서 얏 보지 말자. 어제 신문을 보니 술에 취해 베트남 신부를 때려 죽게 한 사람의 판결문을 쓴 판사가 판결문에 긴 사과문을 곁들여 낭독했다고 하던데, 그 판사만이 아니라 우리국민 모두가 머리 숙여 사죄를 해야 된다고 본다. 그게 또 다른 베트남 신부도 살고, 한국 남성도 살고, 그들의 2세들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

삼가 타국에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베트남 여성 란(22세)씨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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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 3학년이 된 큰애가 엊그제 내일은 일기 검사를 하는 날이라며 일기장을 가져가긴 가야 되는데 고민이라고 하였다.

 “왜?”

“선생님은 일기를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루에 한번 쓰라고 했는데 나는 하루에 다섯 번 쓴 적도 있어 혼날까봐 고민이야. 그리고 기쁜 일 만이 아닌 다른 짜증나는 일도 썼기에 분명 혼날 거야.”

“걱정을 말아. 이 엄마가 보장한다. 절대 혼 안 난다. 외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아이다.”

“그럼 일기장 하나 더 사와서 집에서 쓰는 일기장, 검사 받는 일기장해서 두 개를 사용 할래?”

“응”

“그런데 지금 엄마가 문구점 갈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은 일단 선생님이 일기 많이 썼다고 혼내면 '몸'으로 때워라. 대신 엄마가 특별 위로금 500원 줄게. 혼 안 나면 없고...”

“뭐, 500원? 알았어. 호호. 선생님 안 아프게 때릴 거야. 호호”

하여간 이런 사연을 가지고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일기를 거두기만 하고 검사를 하지 않아서 일기장을 못 가져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엄마 일기장 사왔나?”

“아참, 못 샀다. 니가 사올래?”

“싫다.”

“그럼 내가 갔다 올 게 조금 있다가. 지금은 바쁘다.”

 
“그라믄 A4용지에 줄그어 도고.”

“그냥 오늘은 쓰지 말고 건너뛰어라.”

“그럴 수는 없어. 줄 그어 줘. 혹시 더 많이 써야 될지 모르니 줄 넉넉하게 그어 도고”

이 부분 까지 보자면 내 아이가 상당히 일기쓰기에 재미를 느끼는, 이즈음 보기 드문 아이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일기는 게임을 위한 수단 일 뿐

 녀석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저 말대로 그대로 읊으면, ‘일기는 목표가 아니라 게임을 위한 수단’이란다. 참 그놈의 게임이 뭔지.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메이폴 스토리에 푹 빠졌다. 지난 2학년 때부터 슬슬 게임의 맛을 알아가는 것 같더니 2학년 겨울 방학 때는 얼씨구나 날이면 날마다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준을 정했다. 한 시간은 공짜고 더 하고 싶으면 일기를 한쪽 쓰라고 했다. 그 참에 일기를 좀 쓰게 해 보려고, 일기 한 쪽에 30분 내용 훌륭하면 40분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녀석은 일기를 쓰라하면 쓸게 없다고 징징거리거나, 한쪽을 채우기는커녕 글자를 최대한 늘여 써서 많아 보이게 하는 꼼수를 부리곤 하였다. 그랬기에 혹시나 해서 무심코 던져본 말인데 너무도 쉽게 응하는 것이었다.

 
“엄마, 한 장 쓰면 몇 분이야?”

“뭐, 한 장?”

“그래 한 장 도 쓸 수 있다. 게임을 위해서라면.”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썼다. 

 
“처음 한쪽은 30분, 내용이 좋으면 40분인데 그다음 한쪽은 10분 추가이고 그다음다음부터는 한쪽 쓸 때마다 계속 5분씩 추가다. 싫음 말고. 게임이 마냥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기에 ‘역할증’ 들어 간 거다.”

“알았다. 쓰지 뭐.”

 
그렇게 지난 2학년 겨울 방학을 시작했다. 일기를 자발적으로 쓰자고 마음먹으니 그토록 싫던 일기도 순간에 되는지 아니, 게임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그런지 한쪽은 기본이고, 한쪽 다음부터는 ‘역할증’이래도 불만 없이 어떻게든 한 시간을 채워 공짜 한 시간에다 일기로 벌어 한 시간을 채워 두 시간 동안 원 없이 게임을 하곤 했다.

 
“야, 두 시간 한꺼번에 하는 것은 안 된다. 한 시간 하고 좀 놀다가 다시 한 시간 하던가 아니면 30분씩 쪼개서 하셔.”

“알았어.”

그렇게 게임과 일기와 더불어 겨울 방학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월 중순 우리가족은 살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게임의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뭔가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사’는 좋은 핑계였다.

 


“이사 가면 좀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니? 게임 같은 것은 좀 줄이고... ”

“뭐든지 엄마 맘대로가? 흥? 그럴 수는 없어.”

“엄마가 게임을 반대하는 이유는 (신문을 가리키며) 이 의사 선생님이 쓰신 이유와 똑같아.”

형광색으로 칠한 부분을 크게 읽게 하고는 새로운 계약(?)조건을 내걸었다.

 “앞으로 이사 가기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게임 무제한으로 해라. 일기는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된다. 정말 해도 되나 묻지도 말고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밤이 새도록 해라. 대신 이사 가면 당분간 게임 없이 살아보자.”

 “정말? 무제한? 까악!” 

녀석은 이게 어인 횡재인가 하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나 무제한이라는 말의 한정
없음과는 달리 그렇게 무제한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기에 이사를 와서 처음 며칠은 그런대로 보내더니 시간이 지나자 녀석의 마음속에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나 보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마냥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불쌍한 생각도 들었는데...

 “엄마, 일기 쓰면 시간 줄거가?”

“일기? 한 번 생각해 볼까? 그런데 이번엔 조건이 저번과는 다른데?”

“말해봐라.”

“기본으로 주는 시간은 없고 니가 일기를 쓴 시간만큼만 하던지.”

“진짜?”

녀석은 일기장을 집어 들더니 ‘도도도도도.....’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게임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일기의 소재가 많이 떠올라야 하는바, 나의 목표는 녀석의 일기인지라 ‘쓸게 없다’는 말이 나오면 슬쩍 쓸거리를 제공해 주곤 하였다. 그리고 표현하는 방식을 조금씩 가르쳐주곤 하였다. 

그렇게 일기를 자꾸 쓰다 보니 아이의 글쓰기 양과 질이 조금씩 좋아져서 다시 규칙을 바꾸었다. 이젠 예전의 17줄 공책은 싱거워 21줄 공책을 사주었고 어쩌다 보니 계산하기 좋게 처음에는 40줄에 40분 그다음부터는 40줄에 20분을 주기로 하였고 녀석도 좋다고 하였다. 즉, 일기 두 장을 쓰면 한 시간 게임할 수 있다는 셈이 나온다. 나로선 남는(?) 장사였다. 

마무리...

내 어릴 적, 일기쓰기를 추억하자면 일기쓰기가 재미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쓸거리도 별로 떠오르지 않고... 만날 ‘고무 줄 놀이, 땅따먹기, 공기놀이하다 날이 저물었다.’였다. 그에 비하면 내 아이의 일기는 내 어릴 적 보다는 소재가 풍부하다 싶은데  일기가 목적이 아니고 게임이 목적인 게 문제다. 

내 마음이야 일기를 수단으로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띠~잉! 그 가치가 전도되어 일기가 목적이 되고 게임은 시시해지길 바라지만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만약 그런 날이 안 오면 난 또 잔머리를 굴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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