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즐거운 인생>(2007)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2007) 그리고 <고고70>(2008)을 거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오빠밴드'를 보면 요즘은 락 밴드가 대세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십 대 남자들이 먼저 밴드에 불을 당긴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중년들이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밴드이기에 영화가 나온 것일까.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영화들이 중년 남성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음악으로나마 보상해주었고 다수의 남성들이 공감했음에는 이론이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론 특히 이중 '오빠밴드'를 한번 보고는 첫눈에 팬이 되고 말았다. 유영석의 물결 치는 피아노 솜씨, 탁재훈의 깐죽거림, 신동엽의 너무도 버거워 보이는 기타, 그리고 무엇보다 '김정모'라는 처음 보는 젊은 친구의 이 악기 저 악기를 넘나드는 풍경은 단 몇 초만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모르긴 해도 이 프로 대박일세. 하여 일요일 저녁이면 '본방사수'하려고 몇 번이고 주문을 하곤 한다. '오빠밴드 나오면 날 불러 줘.' <베토벤 바이러스> 후 배우 박철민은 그 드라마로 인해 음악이 자신에게 들어왔다고 하던데 나는 '오빠밴드'로 인해 밴드를 새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 마흔 줄, 잊었던 드럼에 다시 손을 대다

 

우리 집 남자는 사실 이미 밴드에 감염되어 있었다. 평소 흘려들었던, '왕년에 밴드 활동 좀 한' 사연은 위에 언급한 영화들로 인해 다시 추억되었다가, 급기야 지난해 가을에는 밴드 동아리에 회원가입을 하였고 지금까지 열심히 다니고 있다. 젊은 날 접은 꿈이 뒤늦게 현재진행형이 된 것이었다.

 

남편은 밴드 중에서도 '드럼'인데, 드럼을 무슨 재미로 치나 했는데 오빠밴드의 김정모의 솜씨를 보고나니 '드럼은 밴드의 척추'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김정모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흉내 내고 싶은 게 고소원이나 그게 안 되니 중년의 드러머는 한숨이 절로 나오나 보았다.

 

한숨이 나올 법도 한 게 드럼도 알고 보니 그냥 무작정 두드리면 되는 게 아니었다. 책 한권 가득한 리듬들에는 쉬운 것들도 있었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까다로운 리듬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그러하기에 드럼도 잘하려면 10대나 20대 초반부터 해야 제대로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피아노의 경우 지 아무리 복잡해도 왼손 오른손의 주고받음일 뿐이지만 드럼의 경우 두 손 두 발 즉, 때론 네 개가 따로 놀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배우는 입장에서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게 당연하였고, 왼손의 힘을 기른다며 오른손잡이인 남편은 밴드 동아리 가입 후 지금까지 줄곧 왼손으로 수저질을 하고 있다.

 

직장인으로서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을 텐데…. 무엇보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하나의 곡을 향하여 서로의 개성을 죽이고 화합한다는 것이 신기하여 음악보다 그게 더 놀랍다고 하였더니.

 

"곡목 선정을 함에 있어 드럼 치는 사람은 이왕이면 드럼이 튀는 곡을 하고 싶고,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가 튀는 곡을, 기타 치는 사람은 기타가 튀는 곡을 하고 싶어 하지."

 

"그럼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해?"

 

"서로 타협을 하는 거지. 그리고 서로의 이해를 두루두루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곡을 선정하기도 하고… 아무튼, 노래 한곡 무대에 올리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야."

 

아닌 게 아니라 남편의 경우 곡하나 무대에 올리는데 얼추 일 년이 걸린다 하겠다. 다음 달에야 첫 무대에 선다고 하니. 남편이 속한 밴드가 연습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나는 새삼스레 송골매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그 노래가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송골매뿐만 아니라 밴드 음악 하는 사람들 전부 다 대단하게 보였다. 어렵다해도 대중음악이니 만큼 클래식 음악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들 나름 경지에 올라야 그렇게 칠 수 있는 것이었구나.

 

아무튼, 오빠밴드도 남편밴드도 잘 되길 빈다. 때론 프로보다 아마추어들이 자기만족을 더 느낄 수도 있으니 늦었다 생각말고 이참에 밴드에 관심이 있는 중년들은 저마다 한번 시도해 보심은 어떨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울트라 컨디션'이라는 그룹(?)듀엣(?)의 'we believe' 란 곡인데 알라딘에는 

음악이 안 되어서 가사만 올린다. 가사는 한편의 시로도 손색이 없는듯~~ 아름다운 사람이  

가니 모든 영역의 예술이 동시에 저마다 수준이 높아진다고나....

 

5월 어느 토요일 잠결의 뉴스
믿을수없는 이야기
아름답던 그사람 볼 수 없다는
저만치 떠나갔다는

바람만 슬피 울고
아무 대답도 없어
밝은해가 뜨는 그날이 오면
우리 다시 만나요.

we believe forever
we believe in you
we believe forever
we believe in you

미쳐버린 세상에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죠
하지만 난 당신을 가슴에 담고
그렇게 버텨 갈께요.

we believe forever
we believe in you
we believe forever
we believe in you

멀리서겠지만 가끔 그렇게
우릴 지켜봐줘요
밝은해가 뜨는 그날이 오면
우리 다시 만나요.

이젠 모두 잊고 편히 쉬세요
우린 당신을 믿어요
우린 당신을 믿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49재. 친구와 진영역에서 만났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혹시나 해서 전날 대구사는 39살(너무 많나?) 조카에게 갈거냐고 물으니 선뜻 간다고 하여 아침기차에서 만났다. 그렇게 셋이서 안장식을 하기전 세시간 동안 '찌라씨들'이 골프장이라 명명했던 못 둑(알고보니) 아래 잔디 밭에서 입술이 부르트도록 이바구를 하였다.

하얀나비도 한마리 오래도록 잔디밭 곳곳을 날아다녔다.

조카가 말했다.

"이모, 나는 시가 좋은지 몰랐는데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시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어. 그 몇 줄이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찡하게 만드는줄 이번에 알았어. 해서, 서점에 가서 특히 나에게 감동을 준 추모시를 쓴 시인의 시집을 찾아보기도 했어."

왜 아니랴. 나도 평소 시 보다는 산문이 좋았는데 이번에 시가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들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어디 시 뿐이랴. 그림도, 노래도, 만화도, 하다 못해 현수막 글귀도 .... 다 저마다 아름다웠다.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이렇게 여기서 만나자."

"그래..^^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가 그를 잊지 않는 한 그는 돌아가도 돌아간게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핸가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뉴스를 보고, 기시감을 느꼈다. 믿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나는 상상했었다. 몇 년 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서전(두레출판사간행)을 읽으며 이 보다 더한 시나리오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내 마음대로 만델라 대통령 역엔 망설임 없이 모건 프리먼을 찍었었다. 두고 보자 하면서...ㅎㅎ.

그의 어린 시절에서 보여 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부족 전통, 흑백 분리정책에 저항하다 감옥에 잡혀간 그와 수많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사람들, 그곳에서 고문과 강제 노역을 당하며 27년 6개월의 감옥살이, 그 후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것 등에서 보자면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뿐인가, 사소하게는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 좋으나 영화소재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어려울 때 감옥 밖에서 함께 투쟁해준 재혼한 아내와 헤어지고 또다시 역시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나라 여자 대통령과 ‘삼혼’ 하는 등 노익장도 그런 노익장이 없으렸다. 현재 93세. 그가 돌아가고 난 다음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지만 그의 살아생전 영화를 만들어 그에게 느낌을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터, 암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제나 저제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 개봉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년 여름쯤? 아니면 가을? 생각만 해도 설레어 진다.

이희호, 김대중의 삶도 만델라 못잖아

7월 2일자 (한겨레)신문 ‘왜냐면’에서 박영환 민족문제 연구소 고문은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김구 선생께 매료되어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는 ‘졸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 대목에 손뼉을 치며 공감한 것은 나또한 <백범일지>를 읽고 선생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사람은 단 한권의 진솔한 기록만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을 통째로 빼앗는구나.’

잠시 옆길로 새는 감이 있으나, 단 한권의 책으로 타자를 사로잡는 사람을 한사람 더 소개하자면 그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시절일 때 나는 <여보 나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를 읽고 이 사람은 진짜 믿어도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내가 쉽게 경도 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말을 며칠 전에 들었다. 임 떠나고 뒤늦게 부랴부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책장을 넘긴 이웃 지인이 독서 소감을 말하였던바.

‘이분은 너무 진실해서 나도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때부터 그를 좋아했을 거야. 나만이 아니라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이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좀 더 일찍부터 좋아하지 못한 게 한이야. 이분 친구도 너무 멋있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희호 김대중. 솔직히 이 두 분. 별 ‘찌릿한’ 감정은 없이 그저 ‘현대사의 파고와 더불어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하나, 6.15 선언이 채택 되던 해의 그 순안공항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믿음직스럽고, 눈부시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가 너무도 큰일을 해내었기에 TV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 후론 다시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뿐 김구선생에게서 느낀 노무현에게서 느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짠’해지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광주의 원흉을 풀어주고,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자는 유화적인 자세는 못 마땅하다 못해 속에서 천불이 났다.(그러나,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런 제의를 하셨을까. 그가 ‘전’을 풀어주고 ‘박’을 기념하자 말하도록 무식 충만했던 우리의 죄가 더 컸다, 알고 보니.)

그랬는데.... 뒤늦게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을 읽고 나는, 이 부부에게 완전 홀딱 반하였다. 이희호 여사는 좋은 가문, 좋은 학벌에다 영부인 까지 하였으니 그 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으랴 싶었는데 세상에나 영광은 잠깐이요 고난은 백조다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일본의 한 언론인이 김대중은 이희호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데 정말이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을 위하여 그토록 헌신한줄 나는 몰랐다.

희호여사의 표정이 무덤덤하잖은가. 그리고 강인해 보이기도 하고. 때문에 고통이 크다 해도 그리 큰 줄 몰랐다. 그 많은 옥바라지와 연금생활, 망명생활 그리고 한 발만 늦었어도 바다에 수장될 뻔 했던 중앙정보부에 의한 납치사건 등 두 분은 그 험난한 길을 어찌 다 겪고 이겨냈는지....

김대중 대통령이 동물과 식물을 무척 아끼고 잘 돌봤다는 얘기와 정치인이기에 앞서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며 사색하고 토론하는 ‘학자적 품성’이 몸에 밴 남자였음을 알게 된 것은 과외의 소득이었다.(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남자로만...) 
 

결론은,

이들의 얘기는 영화 한편으로는 부족하고 해마다 한편씩 찍어내도 소재는 무궁무진 할 것이다. 나찌 영화만 해마다 우려먹으란 법이 있나. 만델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얘기도 우리현대사와 김대중의 얘기도 몇 번을 우려먹어도 국물은 여전히 진할 것이다.

나는 벌써 김대중 대통령 부부 역으로 누가 어울릴까 배우를 고르고 있다. 내 꿈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기왕 이뤄 질 거면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처럼 김대중 대통령 살아생전에 만들어져서 당사자에게 소감을 물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텐데...

‘우생순’의 신화를 만들었던 핸드볼 임 감독도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한 말씀 하던데, 이희호 김대중도 그들의 영화 끝 그 장면에서 한 말씀 덧붙인다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아마, 세계인들이 더 환영하지 않을까. 우린 만델라에게는 사심 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우리안의 보석엔 너무 무심한 것 같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 두 번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아마 두 분은 만나서 ‘당신 팔자나 내 팔자나, 우린 어찌 그리 징한 팔자를 타고 났을까. 그러나 후회는 없어.’ 하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지는 않았는지.

마무리...

언젠가 들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인가 4시간씩 신장 투석을 받으신다고 하였는데..... 요즘처럼 사회적 문제 들이 연일 터질 때면 김 전 대통령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곤 한다. 세상이 거꾸로 굴러가도 당신 몸만 챙기시고 그저 오래사시기를 빌어보는데, 워매, 낼 모래 아흔을 목전에 둔 이 늙은 오빠는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그 누구보다 선명한 혜안으로 조언해 주시는데 그 형형한 청년 정신이라니,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해. 
 

그의 조언들이 현실정치에 부디 반영되어 헝클어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나라 살림살이 또한 제 궤도에 오르길 빌어 본다.

그러니, 결론이 뭐냐고요? 결론은 두 가지. 하나. 헐리웃이 만델라 전기 영화 찍고 있으면 우리나라 감독들은 최소한 김대중 전기 영화 시나리오만이라도 쓰고 있으라. 둘. 역사에 길이 남을 멋있는 사람들은 단 한권의 책으로도 읽는 이를 ‘확’ 잡아끈다, 머 이런.(웃음)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이희호 자서전 동행-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이희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9년 07월 06일에 저장
품절

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09년 07월 06일에 저장
구판절판
쉽게 읽는 백범일지
김구 지음, 도진순 엮음 / 돌베개 / 2005년 11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07월 06일에 저장

만델라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 두레 / 2006년 3월
29,800원 → 26,820원(10%할인) / 마일리지 1,490원(5% 적립)
2009년 07월 06일에 저장
구판절판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몽하몽 - [할인행사]
비가스 루나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전에도 한번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야하다는 느낌외에 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랬는데... 일전에 씨네 21에서 페넬로페가 이 영화를 고교때인 17세에 찍었단 소리를 듣고  

다시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과연 영화가 달리 보였다.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보였다. 

즉, 예전엔 '이것들이 다 미쳤고나.'였다면, 이번엔, 

'인간의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되었다. 인간들이 저렇게 애욕에서 못헤어나는 구나  

늙으나 젊으나 ㅋㅋ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일전에 <내 남자의 여자....>를 보면서 하비에르가 스페인어를 너무 잘한다 생각했는데 스페인 사람이었고나. 그러면 영어를 또 너무 잘하게 되는건가.  

하비에르도 하비에르지만 페넬로페도 대단했다.  

여고생에게 그런역을 맡긴 감독도 대단하고... 

그 영화를 찍도록 허락한 그녀의 부모들도 대단혀.... 

당시엔 좀 과했다해도 그렇게 찍어 놓으니 젊은 페넬로페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스크린 속에 남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껍질을 깨고 나온 아기새
 
아기 새



새들이 떠나갔다. '누리꾼 수사대'에 의하면 떠나간 새들의 이름은 '황조롱이'였다. 얼추 한 달이 조금 지나자 먹이를 많이 뺏어 먹어 덩치가 제일 오동통한 녀석부터 일주일 사이에 순차적으로 떠나갔다. 지난 월요일(22일) 첫째가 날기 시작하더니 지난 토요일(27일) 최종적으로 막내가 떠나갔다. 

첫째와 둘째는 갔다가 이틀 만에 또는 하루 만에 다시 들르기에 완전히 둥지를 떠나기 전에 좀 들락날락하는가 싶었는데 셋째가 떠나자 모두들 다시 오지 않았다.

첫째, 둘째가 바깥세계로 날기 시작하면서도 일주일 동안 드문드문 들락날락 한 것은 가만 보니 막내를 독려하기 위함에다 먹이를 던져주기 위해서였나 보았다. 그래도 실수로라도 셋이 다 한 번 날아오지 않을까 며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영 떠난 느낌이다. 무정한 인사들….

뭐 그래도 무사히 잘 자라서 떠났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원래 부화되기는 4마리였는데 부화 되고 며칠 사이 바로 하나는 건강하지 못했는지 어미에 의해 종적을 감추었다. 

 
베란다에서 태어난 황조롱이, 그 후 이야기

내가 발견한 5월 21일에는 분명 4마리였다. 22일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망연자실하던 그날, 보러가던 영화를 접고 먼 길을 걸어돌아와 습관적으로 아기 새들을 살폈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위 사진에서 제일 안쪽에서 고개 숙이고 있던 녀석이 기운을 못 차렸는지…. 어미 황조롱이는 그 새아기를 어디다 묻어주었는지 우쨌는지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노 대통령이 그렇게 가신 것이 황망했던 것처럼 아기새 또한 태어나자마자 생각지도 못하게 떠나갔기에 우리 가족은 바짝 긴장했다. 

 '까딱 잘못하다 나머지 새들도 제대로 못 날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 도움을 주려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그들의 둥지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되도록 '모르쇠'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던 차, 때마침 그 다음주 KBS1 TV의 <환경스페셜- 숲의 제왕> 편은 우리 가족이 어린 새들을 돌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숲의 제왕> 편에서는 말 그대로 숲의 제왕인 '올빼미'와 '수리부엉이'를 조명했다. 그걸 보면서 올빼미와 수리부엉이가 숲의 1인자라면 글쎄 황조롱이는 2인자 내지는 3인자쯤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ㅎㅎ)

수리부엉이와 올빼미의 경우 30일 정도 알을 품고 나면 알들이 부화를 하고 또 30일쯤 지나면 어미와 비슷한 모습이 되고 보름쯤 더 지나는 부화 후 총 45일쯤이면 완전 둥지를 떠난다고 했다. <환경스페셜>을 보기 전에는 도대체 저 '솜털들'이 얼마나 지나야 '새 구실'을 할까 막막하였는데 한 달만 지나면 어미만큼 커진다니, 가슴이 확 트이고 안심이 되었다.

 뚝딱, 한 달 만에 어미새 만큼 커지다

과연, <환경스페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의 아기도 막상 태어났을 때는 저 어린것이 언제 크노 싶지만 한 달 두 달 지나면 헤헤거리고 웃으며 무럭무럭 자라듯, 새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뻥튀기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일 주일만 지나도 쑥쑥 처음 태어났을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아기 새들은 1주일 2주일이 지나자 마치 개가 털갈이 하듯 하얀 솜털들이 벗겨지면서 속에서 갈색의 새로운 털들이 자라나왔다. 하여, 어느 날 보면 꽁지가 쑥 나와 있고 또 어느 날 보면 날개가, 또 어느 날 보면 솜털보다 새로 나온 진한 털이 더 많아졌다(새 육아일기를 써볼까도 생각했으나 육아일기도 못쓴 내가 새 일기를 쓴다는 것은 주책이란 생각이 들어 접었다. 그래도 굵직한 것은 기억하기에… ^^).

그러다 4주째는 솜털이 군데군데 몇 가닥씩만 붙어있고 거의 어미 새와 동일한 크기가 되었다. 

'솜털이 한 올도 안 남고 완전히 떨어지면 날아가려나. 그런데 저렇게 하루 종일 제 자리 걸음인데 언제 다리 힘을 길러 날아가지?'

막 부화했을 때는 '언제 어미새처럼 크나' 걱정이었는데 다 자란 것을 보니 덩치는 산만해도 마냥 걱정되는 자식을 보는 것처럼 큰 덩치가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졌다. 게다가 의욕만 넘쳐서 사고치는 자식들처럼 저 녀석들도 섣불리 다리에 힘도 기르지 않고 날다가 낙상을 하면 어쩌나 심히 고민되었다. 그렇다고 태권도 학원에 보내줄 수도 없고…. 

그런데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어미새는 걱정도 안 되는지 통 소식이 없었다. 새들의 어미는 부화되고 난 초기 몇 주는 품어주기도 하고 참새와 쥐를 잡아와서 입으로 쪼아서 아기새들에게 한 입씩 넣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기 새들이 다 자라가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날이 여러 날 되어 보였다. 내가 못 봤나. 내가 못 본 사이에 쥐 한 마리 던져주고 떠났는데 아기새들이 게 눈 감추듯 먹어 버린 걸까. 아무튼 처음 솜털이 많은 시절엔 자주 품어주더니 솜털이 사라져가자 품어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듯보였다.

하여, 이래저래 자식이 어려도 걱정, 커도 걱정이듯이 아기새가 어려도 걱정, 커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새들은 자식에 비하면 속 썩이는 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속수무책으로 걱정을 해야 하나 하는 순간, 시원섭섭하게 떠나 주었다. 그래서 멋있었다. 떠날 때는 저렇게 가뿐하게 떠나는구나. 

첫째 아기새가 처음 날갯짓을 하던 날

언제 날갯짓을 하나, 나는 연습을 해야 날아갈 것이 아닌가 답답했는데 '이 아그들'은 떠나기 바로 전 몇 번의 날갯짓으로 바로 완전 습득이 된 듯했다. 아기새가 부화되고 한 달을 막 넘기던 지난 월요일(22일) 저녁 무렵 첫째가 에어컨 실외기 위를 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둘째도 뛰어올라 앉았다. 늘 단조롭게 제자리 걸음하던 친구들이라 그렇게 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신기해 예의주시했다. 

그랬더니, 실외기 위에 있는 화분 위로 또 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숲이 아니다 보니 실외기와 화분을 이용하여 나는 연습을 하는구나'  

그런데 얼라리, 실외기와 화분 위로 올라 간 것도 대단한데 첫째는 더 높은 난간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발밑이 17층 낭떠러지인데, 떨어지면 어쩌나 내 가슴이 졸아들었다. 빨리 내려오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녀석은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지럽지도 않은지 아래를 유심히 보더니 모처럼 좁은 공간을 벗어나 기분이 좋았는지 날개를 최대한 펴고 날갯짓을 하였다. 더운 날 부채를 부치듯 탁탁탁 몇 번을 퍼덕이다가 쉬고 또 몇 번을 퍼덕이다가 쉬고 그러기를 예닐곱 번쯤 했나. 

이제 고만 하고 내려오지 싶은 그 찰나 첫째는 아래로 '훠얼~' 날아갔다. 큰방에서 그 모양을 렌즈를 당겨서 동영상을 찍던 나는 황급히 베란다로 나와 문을 열고 새가 날아간 곳을 찾았으나 이미 흔적도 없었다. 

혹, 17층 아래로 낙상한 것은 아닌가 간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러나 다행히 땅에 떨어진 흔적은 없었다. 알아서 저 요량 했겠지. 그러나 내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날 저녁 큰애의 일기장을 살짝 보니 '엄마가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난간 위를 걷다가 날아갔다고 하자 왠지 슬펐다'라고 적혀있었다.

슬픈 것은 우리만이 아닌 남은 새들도 슬펐나 보았다. 둘째 새는 밤늦도록 실외기 위에 올라 앉아 큰 방 쪽을 보며 풀이 죽은 듯 앉아있었다. 

'아무렴 너희들도 서로 통하는 말이 있겠지. 우쩌겠니?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따라야지….'

 
그리고 이틀 후... 날개 달린 짐승과 이별하다

떠났던 첫째는 생의 첫 작품인지 아니면 먼저 한 마리 잡아먹고 동생들 생각나서 가져왔는지 쥐 한 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좋으련만, 둘째와 막내는 서로 먹으려고 싸웠다. 닭들이 싸우듯 나름 괴성을 지르며 싸웠는데 가만 보니 이미 쥐는 둘째의 두발 사이에 꽉 쥐어져 있었다.  막내는 헛물만 켜다가 이내 포기를 하였다.

'그래서 덩치가 제일 작구나' 안쓰러웠는데 그 역시 자연의 섭리상 어쩔 수 없는지…. 그래도 설마 저 혼자 다 먹을까 좀 떼어주지 싶었는데 기어이 둘째는 반쯤 먹다가 아예 쥐의 하반신을 통째로 삼켰다. 

그렇게 먹은 것이 효험을 보았는지 둘째 또한 그 다음날 떠났고 또 그 다음날은 생전 보이지 않던 어미새까지 셋이 한꺼번에 날아와 셋째에게 참새 한 마리를 던져 주었다. 글쎄, 어미는 그동안 무심한 게 아니라 나름 새끼들의 용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걸까. 새들의 말을 통역 할 수는 없으나 분위기상 보면...

어미새: "너도 빨리 날아야지 형들을 봐, 끼룩끼룩~~"

막내: "나도 날고 싶은데 형들이 내 먹이 다 뺏어 먹어서 아직 다리에 힘이 없어, 흥! 끼룩끼룩~~"

형님들: "그래도 우리가 먼저 난 다음 먹이를 잡아 줬잖아. 끼룩끼룩~~"

막내: "그래도 기분 나빠, 지들 끼리만 먼저 날고…. 끼룩끼룩~~~"

어미새: "얘들아, 싸움은 그만하고…. 막내도 수일 내 날 수 있을 거야. 날게 되거든 저기 숲으로 와서 이 엄마를 불러. 니 소리 들으면 마중 나갈게. 끼룩끼룩~~~"

그렇게 부산스럽게 왔다가 어미새와 형님들은 또 훌쩍 가버렸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지난 토요일(27일) 다른 식구들은 모두 외출 중이고 큰애만 있는 날이 왔다. 새소리가 요란해서 큰애가 베란다로 가보니 막내가 막 날갯짓을 하더니 날아가더라는 것이었다. 큰애라도 보아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러고서 일, 월, 화, 수. 그래도 한 번은 들이닥치지 않을까 했는데 통 소식이 없다. 정말 완전히 떠났나 보다. 새도 한 번 가니 다시는 안 오네. 내년에 다시 올까? 잘 되어 떠났으니 미련 갖지 말아야지. 

그리고 마지막 1주일은 먹이 뺏기 싸움, 날갯짓, 끼룩끼룩 메탈그룹이 소리치듯 시끄럽게 떠든 것, 지 에미완 달리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빤히 쳐다봐준 것 등 아기들이 돌전에 80%의 효도를 하듯 떠나기 전 1주일 동안 녀석들은 지네들이 할 수 있는 재주를 우리에게 다 보여주어서 고마웠다.

하여간, 우리가족은 날개 달린 짐승과 생각지도 못한 만남을 가졌고 또 이별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