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깨고 나온 아기새
 
아기 새



새들이 떠나갔다. '누리꾼 수사대'에 의하면 떠나간 새들의 이름은 '황조롱이'였다. 얼추 한 달이 조금 지나자 먹이를 많이 뺏어 먹어 덩치가 제일 오동통한 녀석부터 일주일 사이에 순차적으로 떠나갔다. 지난 월요일(22일) 첫째가 날기 시작하더니 지난 토요일(27일) 최종적으로 막내가 떠나갔다. 

첫째와 둘째는 갔다가 이틀 만에 또는 하루 만에 다시 들르기에 완전히 둥지를 떠나기 전에 좀 들락날락하는가 싶었는데 셋째가 떠나자 모두들 다시 오지 않았다.

첫째, 둘째가 바깥세계로 날기 시작하면서도 일주일 동안 드문드문 들락날락 한 것은 가만 보니 막내를 독려하기 위함에다 먹이를 던져주기 위해서였나 보았다. 그래도 실수로라도 셋이 다 한 번 날아오지 않을까 며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영 떠난 느낌이다. 무정한 인사들….

뭐 그래도 무사히 잘 자라서 떠났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원래 부화되기는 4마리였는데 부화 되고 며칠 사이 바로 하나는 건강하지 못했는지 어미에 의해 종적을 감추었다. 

 
베란다에서 태어난 황조롱이, 그 후 이야기

내가 발견한 5월 21일에는 분명 4마리였다. 22일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망연자실하던 그날, 보러가던 영화를 접고 먼 길을 걸어돌아와 습관적으로 아기 새들을 살폈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위 사진에서 제일 안쪽에서 고개 숙이고 있던 녀석이 기운을 못 차렸는지…. 어미 황조롱이는 그 새아기를 어디다 묻어주었는지 우쨌는지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노 대통령이 그렇게 가신 것이 황망했던 것처럼 아기새 또한 태어나자마자 생각지도 못하게 떠나갔기에 우리 가족은 바짝 긴장했다. 

 '까딱 잘못하다 나머지 새들도 제대로 못 날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 도움을 주려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그들의 둥지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되도록 '모르쇠'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던 차, 때마침 그 다음주 KBS1 TV의 <환경스페셜- 숲의 제왕> 편은 우리 가족이 어린 새들을 돌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숲의 제왕> 편에서는 말 그대로 숲의 제왕인 '올빼미'와 '수리부엉이'를 조명했다. 그걸 보면서 올빼미와 수리부엉이가 숲의 1인자라면 글쎄 황조롱이는 2인자 내지는 3인자쯤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ㅎㅎ)

수리부엉이와 올빼미의 경우 30일 정도 알을 품고 나면 알들이 부화를 하고 또 30일쯤 지나면 어미와 비슷한 모습이 되고 보름쯤 더 지나는 부화 후 총 45일쯤이면 완전 둥지를 떠난다고 했다. <환경스페셜>을 보기 전에는 도대체 저 '솜털들'이 얼마나 지나야 '새 구실'을 할까 막막하였는데 한 달만 지나면 어미만큼 커진다니, 가슴이 확 트이고 안심이 되었다.

 뚝딱, 한 달 만에 어미새 만큼 커지다

과연, <환경스페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의 아기도 막상 태어났을 때는 저 어린것이 언제 크노 싶지만 한 달 두 달 지나면 헤헤거리고 웃으며 무럭무럭 자라듯, 새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뻥튀기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일 주일만 지나도 쑥쑥 처음 태어났을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아기 새들은 1주일 2주일이 지나자 마치 개가 털갈이 하듯 하얀 솜털들이 벗겨지면서 속에서 갈색의 새로운 털들이 자라나왔다. 하여, 어느 날 보면 꽁지가 쑥 나와 있고 또 어느 날 보면 날개가, 또 어느 날 보면 솜털보다 새로 나온 진한 털이 더 많아졌다(새 육아일기를 써볼까도 생각했으나 육아일기도 못쓴 내가 새 일기를 쓴다는 것은 주책이란 생각이 들어 접었다. 그래도 굵직한 것은 기억하기에… ^^).

그러다 4주째는 솜털이 군데군데 몇 가닥씩만 붙어있고 거의 어미 새와 동일한 크기가 되었다. 

'솜털이 한 올도 안 남고 완전히 떨어지면 날아가려나. 그런데 저렇게 하루 종일 제 자리 걸음인데 언제 다리 힘을 길러 날아가지?'

막 부화했을 때는 '언제 어미새처럼 크나' 걱정이었는데 다 자란 것을 보니 덩치는 산만해도 마냥 걱정되는 자식을 보는 것처럼 큰 덩치가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졌다. 게다가 의욕만 넘쳐서 사고치는 자식들처럼 저 녀석들도 섣불리 다리에 힘도 기르지 않고 날다가 낙상을 하면 어쩌나 심히 고민되었다. 그렇다고 태권도 학원에 보내줄 수도 없고…. 

그런데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어미새는 걱정도 안 되는지 통 소식이 없었다. 새들의 어미는 부화되고 난 초기 몇 주는 품어주기도 하고 참새와 쥐를 잡아와서 입으로 쪼아서 아기새들에게 한 입씩 넣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기 새들이 다 자라가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날이 여러 날 되어 보였다. 내가 못 봤나. 내가 못 본 사이에 쥐 한 마리 던져주고 떠났는데 아기새들이 게 눈 감추듯 먹어 버린 걸까. 아무튼 처음 솜털이 많은 시절엔 자주 품어주더니 솜털이 사라져가자 품어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듯보였다.

하여, 이래저래 자식이 어려도 걱정, 커도 걱정이듯이 아기새가 어려도 걱정, 커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새들은 자식에 비하면 속 썩이는 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속수무책으로 걱정을 해야 하나 하는 순간, 시원섭섭하게 떠나 주었다. 그래서 멋있었다. 떠날 때는 저렇게 가뿐하게 떠나는구나. 

첫째 아기새가 처음 날갯짓을 하던 날

언제 날갯짓을 하나, 나는 연습을 해야 날아갈 것이 아닌가 답답했는데 '이 아그들'은 떠나기 바로 전 몇 번의 날갯짓으로 바로 완전 습득이 된 듯했다. 아기새가 부화되고 한 달을 막 넘기던 지난 월요일(22일) 저녁 무렵 첫째가 에어컨 실외기 위를 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둘째도 뛰어올라 앉았다. 늘 단조롭게 제자리 걸음하던 친구들이라 그렇게 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신기해 예의주시했다. 

그랬더니, 실외기 위에 있는 화분 위로 또 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숲이 아니다 보니 실외기와 화분을 이용하여 나는 연습을 하는구나'  

그런데 얼라리, 실외기와 화분 위로 올라 간 것도 대단한데 첫째는 더 높은 난간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발밑이 17층 낭떠러지인데, 떨어지면 어쩌나 내 가슴이 졸아들었다. 빨리 내려오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녀석은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지럽지도 않은지 아래를 유심히 보더니 모처럼 좁은 공간을 벗어나 기분이 좋았는지 날개를 최대한 펴고 날갯짓을 하였다. 더운 날 부채를 부치듯 탁탁탁 몇 번을 퍼덕이다가 쉬고 또 몇 번을 퍼덕이다가 쉬고 그러기를 예닐곱 번쯤 했나. 

이제 고만 하고 내려오지 싶은 그 찰나 첫째는 아래로 '훠얼~' 날아갔다. 큰방에서 그 모양을 렌즈를 당겨서 동영상을 찍던 나는 황급히 베란다로 나와 문을 열고 새가 날아간 곳을 찾았으나 이미 흔적도 없었다. 

혹, 17층 아래로 낙상한 것은 아닌가 간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러나 다행히 땅에 떨어진 흔적은 없었다. 알아서 저 요량 했겠지. 그러나 내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날 저녁 큰애의 일기장을 살짝 보니 '엄마가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난간 위를 걷다가 날아갔다고 하자 왠지 슬펐다'라고 적혀있었다.

슬픈 것은 우리만이 아닌 남은 새들도 슬펐나 보았다. 둘째 새는 밤늦도록 실외기 위에 올라 앉아 큰 방 쪽을 보며 풀이 죽은 듯 앉아있었다. 

'아무렴 너희들도 서로 통하는 말이 있겠지. 우쩌겠니?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따라야지….'

 
그리고 이틀 후... 날개 달린 짐승과 이별하다

떠났던 첫째는 생의 첫 작품인지 아니면 먼저 한 마리 잡아먹고 동생들 생각나서 가져왔는지 쥐 한 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좋으련만, 둘째와 막내는 서로 먹으려고 싸웠다. 닭들이 싸우듯 나름 괴성을 지르며 싸웠는데 가만 보니 이미 쥐는 둘째의 두발 사이에 꽉 쥐어져 있었다.  막내는 헛물만 켜다가 이내 포기를 하였다.

'그래서 덩치가 제일 작구나' 안쓰러웠는데 그 역시 자연의 섭리상 어쩔 수 없는지…. 그래도 설마 저 혼자 다 먹을까 좀 떼어주지 싶었는데 기어이 둘째는 반쯤 먹다가 아예 쥐의 하반신을 통째로 삼켰다. 

그렇게 먹은 것이 효험을 보았는지 둘째 또한 그 다음날 떠났고 또 그 다음날은 생전 보이지 않던 어미새까지 셋이 한꺼번에 날아와 셋째에게 참새 한 마리를 던져 주었다. 글쎄, 어미는 그동안 무심한 게 아니라 나름 새끼들의 용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걸까. 새들의 말을 통역 할 수는 없으나 분위기상 보면...

어미새: "너도 빨리 날아야지 형들을 봐, 끼룩끼룩~~"

막내: "나도 날고 싶은데 형들이 내 먹이 다 뺏어 먹어서 아직 다리에 힘이 없어, 흥! 끼룩끼룩~~"

형님들: "그래도 우리가 먼저 난 다음 먹이를 잡아 줬잖아. 끼룩끼룩~~"

막내: "그래도 기분 나빠, 지들 끼리만 먼저 날고…. 끼룩끼룩~~~"

어미새: "얘들아, 싸움은 그만하고…. 막내도 수일 내 날 수 있을 거야. 날게 되거든 저기 숲으로 와서 이 엄마를 불러. 니 소리 들으면 마중 나갈게. 끼룩끼룩~~~"

그렇게 부산스럽게 왔다가 어미새와 형님들은 또 훌쩍 가버렸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지난 토요일(27일) 다른 식구들은 모두 외출 중이고 큰애만 있는 날이 왔다. 새소리가 요란해서 큰애가 베란다로 가보니 막내가 막 날갯짓을 하더니 날아가더라는 것이었다. 큰애라도 보아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러고서 일, 월, 화, 수. 그래도 한 번은 들이닥치지 않을까 했는데 통 소식이 없다. 정말 완전히 떠났나 보다. 새도 한 번 가니 다시는 안 오네. 내년에 다시 올까? 잘 되어 떠났으니 미련 갖지 말아야지. 

그리고 마지막 1주일은 먹이 뺏기 싸움, 날갯짓, 끼룩끼룩 메탈그룹이 소리치듯 시끄럽게 떠든 것, 지 에미완 달리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빤히 쳐다봐준 것 등 아기들이 돌전에 80%의 효도를 하듯 떠나기 전 1주일 동안 녀석들은 지네들이 할 수 있는 재주를 우리에게 다 보여주어서 고마웠다.

하여간, 우리가족은 날개 달린 짐승과 생각지도 못한 만남을 가졌고 또 이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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