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축복기도
그런데 내 나이 60세 전에 용기가 생겼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집 뒤 작은 산의 등산로에서 맨발 걷기 하는 분을 만났다. 나도 맨발 걷기를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진짜 맨발걷기 효험을 보았는지 물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녀가 가톨릭 신자인 것을 알았다.
냉담 30년 글라라, 가톨릭 신자만 보면 반가워서 세례명을 묻고는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아네스 언니는 성당에 나오라 하면서 글라라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였다. 나는 부담스러워서 마음은 감사히 받고 대신 그 시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톨릭은 좋아해도 매주 성당에 다니는 일은 생각 만해도 갑갑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한번 씩 가면 그날의 미사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고 말씀이 가슴에 새겨졌다. 그런데 한곳을 정해두고 가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글라라 기도는 끝이 없어요. 하다보면 기도할일이 점점 많아져요. 그리고 기도할일이 왜 없어요? 기도 할 일이 있을 텐데요?”
아네스 언니는 아무 생각 없이 던졌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 ‘기도 할 일이 있을 텐데요.’ 라는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한 달여 후, 엄마는 일생일대의 삶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나는 다시 언니를 만나 기도에 대한 의미를 오해했다며 정말 기도하는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언니는 자기네 성당에 한번 가자고 하였다. 나는 언니의 마음이 고맙다며 올해 안에 한번은 꼭 가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이왕 갈 거 미리 가서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또 엄마가 돌아가신 이 시점에서 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성당엘 가니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청소년기에는 찬송가와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 교회를 다니곤 했었는데 성당의 성가대도 너무 훌륭했다. 신부님 또한 성악가 못지않게 성가를 잘 부르셨다. 미사 후 언니는 신부님에게 축복기도를 받자하며 나를 데리고 갔다. 이미 몇 명의 신자들이 기도를 받고 있었다. 언니는 신부님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신부님, 글라라 30년 냉담인데 기도좀해주세요.”
신부님은 내 정수리에 손을 얹고 뭔가 침묵의 기도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부님은 내 머리에 올려놓은 손을 쉬이 내려놓지 않았다. 나도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자신의 손을 들어 정수리에 올려보시라. 금방 손의 열기와 정수리의 열기가 만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부님은 내 머리에서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온기가 느껴질 때까지 손을 얹고 계시는 것일까. 그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는데 물리적 시간은 한 1분정도 되지 않았을까. 한참 후 손을 떼신 신부님은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흠, 30년 냉담하더니 냉동인간 다 되어뿟네!”
뭣이라고요? 냉동인간요? 라고 되묻지는 않았지만 ‘냉동인간’이라는 그 어휘는 무언지 모르게 무척 강렬했다. 빵! 하고 웃음이 터지려다 말며 한편으로는 신부님의 부정화법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듣기도 좋고 말하기도 좋은 달콤한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말로 해도 성당 나올까 말까인데 냉소적인 뉘앙스로 일침을 놓는 문장이라니. 그러나 그 강렬한 문장은 이따금씩 자꾸 생각이 났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잖아? 그리고 곱씹을수록 ‘냉동인간’이라는 말은 내 가톨릭에 대한 고집불통에 닿아있는 말이기도 했다. 나를 세례의 길로 이끌어주신 수녀님은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말하였다.
“글라라 아직도 성당 안 나가나? 이제 갈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매번 똑같은 말을 하였다.
“지금은 아니고 이다음에 언젠가는 갈수도 있겠죠. 수녀님 성당 못나가서 죄송해요. 대신 늘 보다 선한 마음으로 살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다 ‘블랙야크 100대명산’ 도전의 일환으로 경남 화왕산에 갔을 때였다. 하산 길에 광주에서 오신 두 수녀님을 만났다. 둘째언니와 내가 쉬고 있는 벤치 앞을 두 수녀님이 지나치려했다. 나는 성당은 다니지 않으면서도 길에서든 어디에서든 수녀님들을 보면 반가웠다.
“수녀님 의자에 잠시 쉬었다 가세요.~”
“그럴까요?”
그 수녀님들은 너무도 쉽게 나의 제안을 받았고 옆의 다른 의자에 않았다.
나는 수녀님들을 뵈니 갑자기 신부님과의 일화가 생각난다면서 예의 그 냉동인간 얘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중 한분 수녀님이 말씀하였다.
“그럼 제가 다시 기도 해드릴게요.”
그래서 얼떨결에 화왕산 하산 길 어느 벤치에서 이름도 모르는 전라도 광주에서 오셨다는 수녀님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았다. 글쎄 한 10분쯤 수녀님은 ‘주님 글라라를 위하여....하시고...하시고... 하시옵소서 아멘’ 하면서 기도를 해주셨다.
광주 수녀님의 기도도 냉동인간 때처럼 내 마음에 믿음의 느낌으로 확 와 닿지는 않았다. 않았지만, 처음 본 수녀님이 산행지에서 나의 일화를 듣고 선뜻 기도를 해 주시겠다는 마음 자체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런데 그 두 번의 기도는 나의 산티아고 행을 앞당겼다. 심리적으로 왠지 지금 산티아고를 가도 될 것 같았다. 가도 아무 일 없이 모든 일이 잘 돌아갈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