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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 초회 한정 패키지
이안 감독, 히스 레저 외 출연 / 기타 (DVD)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혹시나 해서 ‘티켓링크’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찾으니 그새 새로운 영화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브로크백 마운틴>은 ‘끝물’이었다. 여차하다간 못 볼 수도 있겠다싶어 부랴부랴 한 시간여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시내의 모 극장으로 갔다.
상영시간 20분 전쯤에 도착하였기에 혹시나 매진이 되었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매진은 아니었다. 매진은커녕 영화상영 10분전 좌석을 찾아 앉고 보니 다른 좌석들은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내가 너무 늦게 보러왔나, 아님 우리나라 관객들이 아카데미를 물먹이고 있나….’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 영화를 먼저 본 기자나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부정적인 견해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들 찬사일변이었다. 그러한 평들을 읽으면서,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난 겨울 비디오에 빠지면서 <결혼피로연>과 <와호장룡>을 보았고, 예전에 <센스 엔 센서빌리티>를 아주 좋게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들이 모두 이안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잔뜩 기대를 하고 영화에 집중했다. 엥? 그런데 ‘집중’을 해야 될 만큼 영화장면들이 빠르게 전개 되지 않았다. 배경음악 또한 처음에는 좋게 말하면 절제였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밋밋했다.
뿐만 아니라,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에서 쭉쭉 빵빵 원시림의 고고함과 설산의 고요를 이미 경험했기에 <브로크백 마운틴>의 음울한 풍경은 그저 그랬다. 물론 양떼의 행렬은 장엄했다. 수백 마리의 양들이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 잔잔하다기보다 좀 지루하고 무심한 듯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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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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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mou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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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 분)’와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 분)’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부였다. 그 산에서 수백의 양떼와 수만의 나무들 속에서 사람이란 오직 그들 둘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숙취의 어느 밤, 추위 때문에 한 텐트 속에서 잠이 들면서 보편적이라면 남녀사이에 일어나야 할 일이 그들 사이에 일어나고 말았다.
이튿날,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그리하여 한철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돈을 번 다음 결혼을 계획했던 에니스는 단 한 번의 실수쯤으로 여기려 하였다. 그러나 그를 보는 잭의 눈빛은 달랐다. 그리고 에니스가 부정한다고 해도 그 적막한 산속에서는 결국 그렇게 역일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고 드넓은 산속 평원에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애정을 쌓아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것은 만고의 진리. 이 청년들이 일은 잘하고 있나 한 차례 시찰을 나온 주인이 이를 목격하고 만다.
주인은 곧 태풍이 온다는 핑계와 양들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타박하며 예정보다 일찍 양떼를 하산시켰고, 그렇게 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때문에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적으로건 인습적으로건 산에서 있었던 그들 사이를 산 아래서도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무심히 헤어지는 듯했으나 에니스는 잭의 차가 보이지 않자 통곡한다.
남들처럼 살려 노력하다고향으로 돌아온 에니스는 예정대로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다른 목장의 목부가 되었고, 잭은 잭대로 예전에 그랬듯 별 끗발 없는 로데오 선수로 돌아갔다.
그리고, 에니스는 아내 ‘알마’와 함께 딸 둘을 낳아 기르며 맞벌이 부부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편 잭은 로데오 선수로 살지만 늘 지지부진한 기록으로 가망 없는 세월을 보내다가 부잣집 딸 로린을 만나 결혼한다. 그후 아들도 얻어 로데오로부터도, 가난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4년이 흘렀고 부잣집에 장가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사위 대접을 못받고 살던 잭은 에니스에게 엽서 한 장을 보냈다. 만나고 싶다고. 힘겨운 일상과 그리움에 목마르던 에니스에게 잭의 방문은 구원이었고 둘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격렬한 포옹과 입맞춤을 하였다.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에니스의 아내 알마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시대인지라 에니스는 속으로 끙끙 앓았고 그들 부부 사이는 삐걱거렸다. 잭은 잭대로 돈독에 오른 아내와 장인의 멸시를 받으며 힘겹게 살았다. 그 팍팍한 세월, 마누라 덕에 부자인 잭은 ‘텍사스’에서 가난한 에니스를 배려해 늘 ‘아이오밍’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들의 밀월이 거듭될수록 알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이혼을 요구하였다. 에니스는 알마가 아이를 맡았기에 매월 양육비를 지급하여야 했다. 이혼은 부부관계의 끝이었을 뿐 자식에 대한 의무는 더 가중 되었다.
한편, 에니스가 이혼을 하자 잭은 이제 둘이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노릇을 해야하는 에니스 때문에 이전 보다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잭은 에니스에게 ‘장인이 이혼하면 위자료 듬뿍 준다고 했는데 이혼하고 그 돈으로 우리 둘이 목장하며 살면 안 될까’라고 제의했으나 에니스는 거절한다.
에니스는 어린시절 보았던 카우보이들의 비극적 결말을 이야기하면서 ‘가끔씩, 몰래, 오래’ 만나는 것이 차선임을 말하였다. 함께 조그만 목장을 하며 살 꿈을 꾸었던 잭으로서는 서글프기 이를 데 없는 대답이었다.
“너에게는 내가 가끔 만나는 친구일 뿐이지만, 난 너를 20년이나 그리워했어.”
그러나 에니스는 생활고 때문에 그리고 딸들이 커감에 따라 아버지로서도 당당하고 싶었기에 잭만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닌 날벼락, 어느 날 잭에게 보낸 엽서가 반송되어왔다. 이유는 수취인 사망.
잭의 집에 전화를 하니 잭의 아내 ‘로린’은 에니스란 이름을 들은 적 있다면서 남편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오랜 친한 친구였고 브로크백 마운틴이 술집 이름 따위가 아닌 산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로린은 남편의 평소 희망을 에니스에게 부탁하였다.
“화장을 했는데 남편이 평소에 죽으면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다고 하였기에 가능하면 당신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잭의 고향집을 방문한 에니스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몰던 시절, 서로 갈등하며 싸우다 피 묻힌 셔츠가 고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가져온다.
두 곡의 노래, 두 사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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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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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mount |
그후 어느새 장성한 딸아이가 결혼 소식을 알리러 오고, 그 딸을 다시 돌려보낸 뒤에야 그는 드디어 ‘의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잭만을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 걸까? 옷장 안쪽 문에 브로크백 마운틴 사진과 함께 걸어둔 피 묻은 잭의 옷에 대고 에니스는 맹세하였다. 잊지 않겠노라고. 그러면서 옷장 문이 닫히며 화면이 어두워졌다.
‘뭐야, 이게 끝인가.’
그 순간 자막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젠장, 시종 배경음악이라곤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잔잔했는데 때늦게 웬 울림? 성질 급한 관객 몇몇은 자막이 올라가자 상투적인 엔딩곡이려니 생각했는지 미련 없이 나가버렸다.
오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자막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동안 미진하다 싶었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두 고백의 노래를 들으며 영화를 거슬러 올라가자니 비로소 잭과 에니스, 그리움을 ‘절제’ 하며 산 20년의 세월이 아프게 다가왔다.
에니스의 입장에서 한 곡(He Was a Friend of Mine)
그는 내 친구였네/ 그는 내 친구였지/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르네… 그는 떠돌다가 죽었지… 그의 영혼은 떠돌아 머물 곳이 없었네… 난 그에게서 도망쳤지 그리고 울었네 /난 가난했고 불안했기 때문에 /그는 내 친구였네…
잭의 입장에서 한 곡(The Maker Makes)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사슬을 하나 더 끊지만
신은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게 사슬을 하나 더 엮네.
나는 너를 잊지 않도록 사랑의 상처를 하나 더 긋지만
신은 내 얼굴에 그늘이 지도록 상처를 하나 더 긋네…
나는 한 번 더 가장 기쁜 것처럼 거짓 미소를 지어보지만
신은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미소 짓게 만드네…노래가사를 눈으로 한줄 한 줄 읽을 때마다 그리고 귀로 짠한 멜로디와 노래 소리를 들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선곡도 어찌 그리 잘하였는지 위 곡들을 이 영화에 갖다 대니 딱 들어맞았다.
아아, 인생이란, 삶이란 저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데. 좋은 친구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고 의무만 다하며 살아가는 에니스의 고달픈 인생과 그리움에 찌들다 속이 새까맣게 탄 채 비명에 간 잭의 삶은 결국은 우리네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목 언저리가 아파왔다.
또, 사랑이 아닌 ‘친구’라는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 좋은 친구였지… 친구였지….’
한번도 깔끔한 적이 없었던 에니스의 꾀죄죄한 의상이 그의 피지 못한 삶과 연결되면서, 그러니 저 혼자 남은 사나이를 어째, 어이할꼬, 어이할거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슬프게 끝이 났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자 지리멸렬이라 생각했던 내 삶의 일상이 문득 소중해지면서 더욱 의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비포 선셋> 이후 내 생애 두 번째의 OST를 사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막과 더불어 두 곡의 노래는 너무 멋졌다. 자막과 더불어 그 발상 또한 넘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