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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 SE - 무삭제 완전판
버나드 로즈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대형 할인점을 가는 일이 좀처럼 없는 요즘인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무튼 가게 되었다. 가면 늘 그렇듯 서적코너와 음반, DVD 코너를 한바퀴 빙 도는데 그날도 예외 없이 그렇게 흐느적거리다가, 갑자기 '심봤다'를 외칠 뻔 했다.
왜냐하면 베토벤의 전기 영화인 <불멸의 연인> DVD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몇몇 DVD 속에 유일하게 하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가격이 너무도 싸서 한번 놀랬고, 또, 그것이 다른 것과는 달리 '하나'밖에 없다는 절박성에 더 가슴이 뛰었다. 인터넷서점에서는 그 DVD가 분명 '품절'로 표기되었었다. 때문에 DVD는 체념하고 비디오를 확보해 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DVD라니, 내게 그것은 심마니의 산삼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아생전'을 아무데나 갖다대면 주책일지 모르나 이 <불멸의 연인> DVD를 손에 넣자 저절로 '살아생전에'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아마데우스> DVD가 재발매 된 것에 비추자면 이미 품절이 된 베토벤의 DVD를 갖자면 그의 250주년 생일까지 기다려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요란한 심장박동을 애써 잠재우며 <불멸의 연인> DVD를 샀고 이미 내 손에 들었으니 뭐가 급하랴 하며 개봉도 하지 않고 모셔두었었다. 이미 비디오로 여러 번 보았기에 급하게 뜯을 이유가 없었다.
그랬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비닐커버를 뜯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듣기공부 차원에서 <비포선셋>을 반복해서 보곤 했는데 문득 그 대화들이 지겨워진 탓도 한몫 했던 것 같다. 막상 개봉을 했으나 왠지 영화로 바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빈둥거리는 기분으로 '스페셜 피처'부분부터 보게 되었다.
어머, 그런데 그 부분들이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다른 dvd들에 비해 이 dvd는 배우들과 감독의 영화작업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인상적이었던 점 그리고 캐스팅 배경 등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간단한 약력까지 보너스가 푸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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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콘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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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배우들과 제작 과정들....버나드 로즈 감독: <안나 카레니나,1997>의 감독이기도 한 버나드 로즈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고전음악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었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그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쏟은 정열은 일시적 몰입이 아니라, 그의 삶과 함께 축적된 베토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그리고, 베토벤의 삶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와 탐구를 통한 결과물이었다.
게리올드만 : 베토벤 역을 맡은 그는 이 영화에서 베토벤이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들통 나는 장면, 즉,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의 첫 도입부 독주부분을 연주하는 장면을 얼굴, 손 혹은 뒷모습을 부분적으로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전체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비디오로 보았을 당시 나는 '저 양반 진짜 치는 건가.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만, 너무 진짜 같네. 아무리 배우라지만 손가락을 저렇게 비슷하게 운용 할 수도 있는 것일까'하며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 스페셜 피처에 의하면 그 장면은 진짜로 게리 올드만이 연주했다는 것이었다. 버나드 로즈 감독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평소 영화 속 엉터리 연주 흉내를 참을 수 없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게리 올드만에게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부분 만은 직접 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자고 하였고 피아노 전공자라도 그렇게 치는 일은 쉽지가 않은데 그는 해내었다. 물론 우리가 실지로 듣게 된 소리는 보다 정제된 '머레이 페라이어'의 연주였지만 어쨌든 그와 똑같이 게리 올드만이 틀리지 않고 그대로 황제 협주곡을 연주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였다.
나는 게리 올드만이 그토록 피아노에 조예가 깊다는 것에 놀랐다. 아무리 그 부분만 특별히 연습했다지만 그 부분만 특별히 연습한데도 어느 정도의 고급 연주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으리라. 그는 처음엔 캐스팅을 거절했는데 자신의 매니저까지 동원한 두 번째 부탁에서는 어쩐 일인지 승낙하였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이 영화에서 베토벤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 아, 그녀가 그 유명한 장미 한 송이와 45도 위쪽 어딘가를 응시하던 랑콤 화장품의 정녕 그녀였다는 말인가.
랑콤 화장품의 그녀가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이라는 것 밖에 몰랐던 나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과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이 참에 알 게 되었다. 그녀는 유명 감독과 배우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광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였으며 인디영화와 비주류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나름의 고집을 가진 배우였다고.
요안나 테르 스티게 : 조안나 역을 맡은 그녀는 영화에서는 시종 어둡고 무거운 역이었지만 인터뷰속의 그녀는 밝고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조근 조근 얘기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생각이 깊고 자신이 맡은 역에 대한 탐구에 결코 소홀하지 않는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론 크라베 : 베토벤의 비서인 쉰들러 역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인 그가 처음 제의 받은 역은 베토벤 역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촬영 일주일을 앞두고 당신의 배역은 쉰들러라는 말을 들었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 안 해, 갖고 노는 거야가 아니라.
'뭐라고요? 그렇다면 대본을 다시 봐야 겠는데요'라고 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 전 까지는 자신이 맡게 될 베토벤 역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뭐, 신들러?' 그런 사람도 있었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그러나 다시 대본을 정독하니 과연 쉰들러는 있었고 자신은 베토벤보다 쉰들러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쉰들러는 굉장히 선하고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평생 베토벤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베토벤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의 '한 인격'해 보이는 넉넉한 인상은 충분히 쉰들러 역의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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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콘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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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 DVD 재발매를 기대하며...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화질이 바랜 상태의 비디오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DVD로 다시 보니 정말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깨끗하고 화려했으며 명장면이랄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영화 전체와 인용음악 전체가 명장면 명연주였다.
감독은 영화의 전반부는 화려한 시대를 대변하듯 의상이 화려하기 그지없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실용적이고 근대적인 시대 풍을 따라 가발도 없어지고 옷 색깔도 검은색 톤이 주를 이루었다고. 그것은 베토벤의 암울했던 말년과도 자연스레 연결되었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과연 그랬다.
그리고 베토벤의 청력에 빨간 불이 켜졌음이 들통 나는 장면을 보면 곳곳에 촛불이 켜져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당시 음악회의 분위기를 내고자 실지로 그 많은 촛대에 일일이 다 불을 밝혔는데 촛불의 수를 헤아리자면 약 600~700개가량 된다고 하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한 시절 유행하게 만들었는데 내게 있어 이 <불멸의 연인>이 바로 그랬다. 소소한 정황을 알기 전에도 좋았지만 DVD로 이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의 어려웠던 점과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감독과 배우들의 철학 등을 알고 보니 영화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소품 하나하나 그들이 얼마나 고증을 거치고 완벽을 기하려 노력했는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의 육성을 듣고 난 다음 다시 한번 영화를 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더 사랑하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때문에 주장하는바, 이름 없는 '아짐'의 작은 외침이 무슨 울림이 되랴만 그래도 외쳐본다.
"<불멸의 연인>dvd를 제발, 재발매 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