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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선생, 지한구 - 그리고 오래도록 이웃으로 살아가는 학생들 ㅣ 셜록 3
지한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25년 10월
평점 :
시간은 빨리 흘러 나의 아이들은 둘 다 이십대 중반을 넘고 서른을 향해가고 있다. 한때 <오마이뉴스>에 자주 글을 올리곤 하던 시절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때론 방목과 방임 사이에서 나 몰라라 하는 나의 교육관을 두고 당시 현직 교육 관계자인 분의 댓글은 복선 같은 느낌이 들어 흠칫했는데 결론은 그분의 말씀을 사실로 확인하는 결말을 맞았다.
정확한 말씀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습에 있어서 초기에 적절히 개입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공부에 손을 놓는다고 하였다. 즉 공부는 초기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댓글을 읽으며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 반, 그래도 뭔가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는데 결론은 두 아이 모두 공부와는 담 쌓는 삶을 선택했다.
보통 한 집에 형제가 있으면 하나가 공부에 손을 놓으면 다른 하나는 공부를 곱빼기로 하기도 하던데, 우리 집은 형은 공부를 안 하였고 동생은 더 안 하였다. 그렇게 큰아이가 중3이 되었을 때 우리아이가 인문계고교에 갈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그래서 그러면 공고를 가야하나? 생각하자니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떨렸다. 나도 모르게 사회가 씌워준 공고에 대한 이미지를 내재화한 결과였다.
공고도 불안했지만 인문계고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공부 시간을 내 아이가 겪는다는 게 싫었다.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순리대로 아이가 원하고 성적이 지목하는 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태평모드로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에겐 제 3의 길이 있었다. 큰애는 공부는 하지 않는 대신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그래서 예고 시험을 보았고 예고에 붙는 바람에 두 종류의 학교를 다 피하게 되었다.
둘째의 경우도 피아노를 그만 두었었는데 중2 겨울방학 때 뜬금없이 예고를 가겠다고 선언해 번갯불에 콩을 볶듯 연습을 하였고 예고로 낙점이 되었다. 그렇게 두 형제는 '어머, 나 이러다 예술가 되는 것 아니야' 꿈을 꾸다 지금은 돈벌이에 쓸 만한 자격증 하나 없는 취업준비생이 되어 현실의 벽이 높고도 높음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몰랐던 공고의 모습
<공고선생, 지한구>(도서출판 후마니타스)를 착잡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공고에 대한 두려움은 학생들이 시시껄렁하게 담배도 피고 막말도 하며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없는 자유도 다소 누리며 부모들 애간장 타게 하는 정도의 것이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공고에 간 경우가 많다고 여겼지, 형편이 어려워 공고에 간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부모의 이혼이나 사업 부도, 조손가정, 한부모 가정 등이 그렇게 많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책에 등장하는 예로, 부모님이 부부싸움 후 두 분 다 가출한 아이는 중학생 동생을 굶기지 않으려고 새벽 5시까지 일하고 학교에 와서 늘 눈을 비비며 졸음을 쫒으려 애썼다.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참다가도 화를 낼 수밖에 없는데 녀석의 대답은 선생님마저 눈을 비비게 하였다.
"공부요? 제가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학교에서 안 자면, 저는 언제 어디서 잠을 잡니까? 꿈이요? 학교에서 깨어있으면 일하다 죽거나 굶어죽을 거 같은데, 제가 어떻게 꿈을 꿉니까?"(본문 18쪽)
그뿐인가. 등교시간을 한참 넘겨 학교에 온 학생의 사정 또한 딱하였다.
"부모님이 집에 안 들어오신지 며칠 됐는데, 저한테 남은 돈은 1000원이 전부였습니다. 그거 중학교 다니는 동생 차비로 주고 저는 걸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본문 19쪽)
한편으론 취업률과 학교재정에 대한 정부지원이 맞물리면서 내 자식이라면 이런 곳에 맡길 수 있을까 싶은 곳에 학생들을 맡기고 오기도 하고,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것이 뉴스화면이 아닌 자신의 제자의 일이기도 한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공고 교사의 일이었다.
10년의 우회로를 거쳐 서른둘의 나이에 국어교사가 된 저자는 '공고의 현실' 앞에서 절망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된 교사인가. 저자는 교사의 꿈을 품고 10년을 노력했던 저력을 동력으로 현재 10여 년 째 교사생활에 헌신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시대에 교사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만큼 놀라웠다. 내 자식도 그렇게 못 키운 나로서는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진로를 모색하고 고민하는 저자의 정성에 울컥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런 정성과 끝없는 모색은, 교육청이 '자기성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체험 중심 과목'에서덥석 맡게 된 헬스부에서 빛을 발하였다. 저자는 제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몸에 뱃살대신 근육을 입혔다. 보디 빌딩대회에도 출전을 하였고 제자 동연군과 함께 입상도 하였다. 헬스부의 선전은 학생들에게도 저자 자신에게도 신선한 체험이었다. 보이지 않던 희망의 무지개는 그렇게 공고의 아이들을 비추었고 장안의 화제가 되어 세상 밖에도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 인생에 반전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나. 인생에는 분명 반전이 있다. 젊은이들이 지나는 길섶에는 그러한 반전과 보물이 더 많이 있다고 본다. 그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 보물들을 발견 하고 캘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저자와 같은 어른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와 기반도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는 진정 어려울까
연로하신 시어머님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데 그렇게 재미있고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들 며느리가 할 일을 주간 보호센터가 다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못해주나 싶었다. 입시에 바쁜 인문계 학교가 그렇게 못한다면 실업계 고교만이라도 먼저 그렇게 할 수는 없는가. 취업률로만 재정 지원 점수를 매기지 말고 학생들의 행복도도 그 기준의 한 부분으로 할 수 없을까.
그런 의미에서 '꼴찌를 위한 장학금'은 기발했다. 공부는 꼴찌이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어 격려하는 것은 무척 필요한 일이었다. 저자의 공고에 장학금으로 희망의 문을 연 '키다리 할머니'는 학교와 꼴찌학생의 동의를 받아 그 학생에게 매주 5만 원씩 학생이 고3이 되어 취업할 때까지 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1등 혹은 명문 학교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공고에 '꼴찌를 위한 장학금'이 탄생하다니. 나와 여러 교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학교에는 공부 자체를 힘들어하거나 공부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도 꼴찌를 위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는 반성도 나왔다."(본문 163쪽)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키다리 할머니와 같은 사람 들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고의 민낯과 그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와 학생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렸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삶이었고 그의 진심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자들의 삶속에 서서히 녹아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