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둘째를 가졌다!

빨라도 올해 말 쯤이나 했는데,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고 아내의 논문도 끝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놀아보려고 했는데 말이다.

작년 9월부터 이제 곧 있으면 첫째가 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최소한 20개월을 넘겨 의사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한 때 어린이집에 보내자는 아내의 생각 때문이었고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가 100일이 지난 뒤부터 아내는 일을 시작했고 일주일에 이틀을 내가 얘를 봐야했다. 당연히 몇 년 전부터 동결되어버린 월급을 좀 올려달라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는데 앞으로 한 2년은 또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슬쩍 “오빠가 100만원만 더 벌어서 내가 일 년 동안 애만 키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문제는 100만원 더 벌 길이 영 안 보인다는 거다. 100만원 더 줄게 오라는 곳도 없다(있어도 옮기기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요즘은 대리운전도 월 100이 쉽지 않다고들 한다. 토일 편의점 알바를 알아봤더니 꼴랑 50만원 될까 한다(그 덕분에 올해 최저임금이 시급 4110원이란 것도 알았다. 너무 저렴하다). 그나마 토일 일하는 것 중에는 찜질방 같은 곳에서의 일자리가 있는데 이것도 70만원 수준. 사실 주5일 하던 일하고 토일을 다른 일을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눈이 돌아가는 게 사교육 시장 쪽인데 그건 나에게 있어서 막장인 셈이다.

내 아버지는 학원강사로 사회에 나와 30년 넘게 학원에 있다가 학원강사로 은퇴를 했고 나는 재수에 삼수까지 했고 학교를 졸업하고 잠깐 사교육 시장에 몸담았으니 그쪽은 어쩌면 내 친정 같은 곳일 테다. 그래서 사교육이 공교육에 병폐에 기생하는 병균이라는 시각,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학벌주의, 연고주의, 부동산 문제와 양극화 등등에 얽혀있는 절대악이라는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공교육과 사회공공성, 공동체가 무너진 이 사회에서 사교육 시장에 맡고 있는 숨통 같은 약간의 긍정성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예전에 아버지가 해주신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파는 일이다. 그런데 지식은 팔아도 없어지지 않는다(오히려 더 늘어난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그러니 떳떳한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씀이 기억난다. 가르치는 지식은 늘 새롭지 않지만 그래도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늘 새로우니 기쁨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기질이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게으른 놈들이 대부분 그렇듯 눈치가 빤하고 잔머리가 빨라 연봉 몇 천이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그저 주구장창 축나지 않는 지식을 팔며 굴러먹게 되리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거나, 혹은 그럴까봐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쪽으로는 제발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 아니 눈길도 주고 싶지 않다. 아니다. 어쩌면 그 쪽에서도 이미 시장가치가 떨어져 월 100은커녕 6, 70짜리 일자리도 쉽지 않을 텐데 나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다. 예정일이 9월 중순이라고 하니 한 6개월뒤부터 머리 싸매고 어떻게 이 시대가 보통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시민권(?), 투잡족,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고민하면 되지 하면서 발로 저만치 밀어놔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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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0-01-2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처럼님! 둘째 축하드립니다! ^^ 아무리 세상이 팍팍해도 새 생명의 탄생은 경이롭고, 희망차고, 축하할만한 일이에요!

나무처럼 2010-01-27 23: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애국한다느니, 출산장려정책 운운할 때면 욱, 하지만 생명은 정말 그렇죠. 히히

순오기 2010-01-28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운 일이죠.
축하합니다~~~~ 뜸 들였다가 셋째도 가지시고요.^^

나무처럼 2010-01-28 01:36   좋아요 0 | URL
헉. 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란 세뇌교육을 받아서^^

순오기 2010-01-30 01:49   좋아요 0 | URL
셋은 기본입니다.^^

머큐리 2010-01-2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그래도 둘은 있어야 티격태격 하면서 잘 놀지요...ㅎㅎ

나무처럼 2010-01-28 11: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들 하더군요^^ 고마워요.

Seong 2010-01-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저도 애가 생겨야 할텐데. 애가 없으니 이렇게 철부지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나무처럼 2010-01-28 14:34   좋아요 0 | URL
자유는 그 소중함을 잃어봐야 안다고 흐흐 만끽하시길^^

Arch 2010-01-2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처럼님, 축하해요! 건강하고 멋진 아이가 태어났음 좋겠어요^^

나무처럼 2010-02-01 23: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지난 목요일 첫애가 신종플루에 걸려 닷새간 입원했답니다. 병실에서 문득 아이의 건강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더 절실한 거 아닌가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더라구요. 다행히 건강히 퇴원했구요. 축하 감사해요

마냐 2010-02-0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림다.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은 둘째를 낳은 것임다. 첫쨰를 위해서도, 둘째를 위해서도 근사한 일이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어떻게든 일은 풀릴테니...넘 고민마시구요. 홧팅~

나무처럼 2010-02-01 23:16   좋아요 0 | URL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 않았음 아마 첫째도 없었을 겁니다 흐흐
 

조지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을 읽다가 브레히트의 <임시 야간 숙소>란 시가 떠올랐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더 나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맺기, 착취가 없는 세상은 그저 인간의 선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브레히트의 시가 아이티를 떠올리게 한다.   

아래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간하는 <인권오름>에서 가져왔다.

  

 

[인권문헌읽기]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요청한다

(A Call for Human Rights-Based Approach to Humanitarian Assistance for Haiti, IJDH 등, 2010년 1월 15일)

류은숙 
 

몇 년 전 어느 뒤풀이 자리였다. 사학과 대학원생이 자리를 같이했다. 마침 논문을 쓰던 때라 석사 논문 주제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아이티 혁명에 대해 쓰려고요.” 순간 모두들 멈칫 했다. “사학과에서 왜 아이티 혁명에 대해 써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모두들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이티(IT) 혁명, 즉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혁명이었던 것이다. 순간 눈치 빠른 한 명이 “아, 아이티!, 프랑스 혁명 때 노예혁명을 일으켜서 독립한 나라, 그거 말하는 거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아아, 그래서 사학과 논문 주제였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이티(Haiti)는 모르는 존재였고, 아이티(IT)는 핸드폰으로 모두의 손안에 있었다.

그런 아이티가 새해 초, 모두의 눈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처참한 비극과 고통을 안고 날아들었다. 누가 얼마를 냈다더라 식의 재난보도의 전형적인 기사유형에 짜증이 나면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믿을만한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읽던 것들을 제쳐놓고 아이티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당신들에 대해 알고 싶어요”, “당신들이 이렇게 오랜 세월 어떤 식으로 고통 받는 줄 지금껏 몰랐어요”라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잊지 않고 죽 관심을 가질게요.”라고 약속해야 할 것 같았다.



위 사진:국내난민에 관한 유엔지도원칙이 소개된 홈페이지 (www.idpguidingprinciples.org) 
 

출간 직후 사놓고 책장에 모셔두었던, 아이티 혁명에 대한 기록(『블랙자코뱅, 투생 루베르튀르와 아이티 혁명』시엘 아르 제임스 지음/우태정 옮김/필맥/2007)을 빼어들었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인권의 원칙이 서구 백인의 성공 뒤에 나머지 세계와 인종에게 낙숫물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대에 흑인 노예 혁명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는 기록이다.

19세기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한 나라가 아이티이다. 2004년은 아이티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식민주의자들은 가장 풍요하고 이득이 되는 식민지 아이티에 대한 탐욕을 놓지 않았고, 독립 후에도 주인행세를 하는 자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그 야욕은 계속됐다. 그 결과는 정치적 불안과 지독한 가난이었다. 허리케인과 지진 등 연이은 재난은 이런 인재와 겹쳐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한 후배는 아이티의 전직 대통령 아리스티드(네 번이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으나 쿠데타와 미국의 개입으로 번번이 물러나야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주 엇갈린다.)가 지은 책을 권했다. 제목부터가 가슴에 와 닿았다. 『가난한 휴머니즘,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2007)였다.

“글조차 쓸 수 없는 아이티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이 기록들을 쓰게”되었다는 편지글에는 아이티 사람들의 가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오랜 식민지 착취와 노예제의 상처 위에서 국제금융기구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자생력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정치혼란을 야기하여 이익을 챙긴 세력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조용하지만 굵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제 3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아이티 사람들의 연대의 힘과 희망을 강조한다. 특히나 필자가 지켜본 아이티 아이들, 가사노예로 시달리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교육과 친교활동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인간역량을 보여주는지를 통해 그 희망을 얘기한다.

“우리들이 분노와 좌절, 자포자기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평화를 위해 결집하도록 해 주십시오. 체념하면서 죽는 방법과 폭력적 폭발을 통해 죽는 방법, 이 두 가지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단적 결집이 바로 제 3의 길입니다. 이것은 인간 에너지의 어쩔 수 없는 집중입니다. 우리에게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만은 충분합니다.”(‘나는 주스가 더 좋아요’ 중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 아이티 같은 나라의 경우,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만 주고 그들을 말하지 못하게 놓아둔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단지 말만 들려준다면, 그것은 선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참여가 없는 정치적 참여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뱃속 평화와 머릿속 평화’ 중에서)

“아이티 정부가 국제기구의 지시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프로그램에 따라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맴돌 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린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 이끌 것이라 봅니다.”(‘우리는 존엄한 가난을 원한다’ 중에서)

“당신께 우리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아이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 덕에 도전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신념, 이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 세계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신념을 나눠 가지도록 당신께도 초대장을 보냅니다. 저와 당신은 함께, 같은 손의 손가락처럼 이 새로운 세기에 더 인간다운 세계를 만들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당신에게 보내는 아이티의 특별한 초대장’ 중에서)

책장을 덮고 나니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는 외침이 생생히 들려온다. “우리도 여기 있어요”라는 화답이 절실한 때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아이티 참사 직후 ‘아이티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연구소’(Institute for Justice and Democracy in Haiti) 등 6개 인권단체가 내놓은 긴급성명이다.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초한 접근이 필수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급한 지원금과 구호대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관심과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지도 당장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쓰나미처럼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관심으론 아이티의 고통이 오래 계속될 터이다. 앞서 인용한 아리스티드의 편지글에서는 “결국 이 작은 행성에 사는 우리 모두는 똑같은 물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다”고 했다.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요청한다

아이티의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인권단체들로서 우리는 기부국 정부, 국제조직, 민간단체들에게 재난에 처한 아이티의 필요에 부응함에 있어 국제인권의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

지진에 대한 빠른 대응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대응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아이티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대가로 해서는 안 된다. 기부자들(국제조직, 민간단체)이 모든 아이티인의 권리증진을 위해서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금을 사용하지 못한 일이 너무 흔했다. 역사적으로 아이티에서는 분배의 모든 단계에서 당사자들의 의사결정 참여, 기부자들과 집행 기구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없었다. 아이티의 회복과정은 여러 해가 걸릴 것이고 그러하기에 이 과정을 이끄는 분명한 인권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과거의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 속에서 아이티가 경험한 것은 조정되지 않고 예측가능성 없는 원조와 깨진 약속이었고, 이것들은 더 큰 고통을 야기했다.

기부자들은 과거의 교훈에서 배워야 하고, 이번 일을 아이티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기 위해 권리에 기반한 방식으로 원조를 집행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기부자들(국제기구, 민간단체 등)에게 촉구한다.

○ 인도주의적 원조의 계획, 집행, 평가의 모든 단계에서 인권을 존중하고 ‘국내난민에 관한 유엔지도원칙’(www.idpguidingprinciples.org)을 따르라.
○ 투명성, 책임성, 역량 발전, 참여, 비차별의 목적을 보장하는 권리에 기반한 접근법을 채택하라.
○ 장기 계획을 세우고, 모든 아이티 인민에게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부를 가진 더 강한 아이티 건설에 초점을 둬서 모든 지원을 아이티 정부와 조정할 것을 보장하라.

비상사태의 대처에서 인권을 존중하라
우리는 기부국 정부(국제기구, 민간단체들)에 촉구하는 바는 원조 노력을 조정할 것과 인권의 원칙에 따라 모든 원조를 계획하고 집행하고 모니터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욕구 평가는 또한 위기가 인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대응을 조정하는데 있어서, 국제사회는 원조가 지진 이전에 있었던 소외나 인권침해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됐다는 보고를 보건대, 임시 위생시설은 여성에게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 배분 프로그램은 음식과 물의 부족이 여성과 아동에게 불균등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또한 고려해야만 한다. 아이티의 빈민 대다수에게는 자기 땅에 대한 공식적인 권리가 대개 없기 때문에 단기간의 전략에서도 땅에 대한 권리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이번 비상사태 동안에, 모든 국제 행위자들은 집을 떠나 피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국내 난민에 관한 유엔 지도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 이 지도원칙은 모든 국면에서 국내 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관련 행위자들을 이끄는 국제원칙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국제 인도주의법과 인권법, 그리고 유사한 난민법에 기반한 이 지도원칙은 비차별, 보호에 대한 권리, 인도주의적 원조, 아동․장애인 및 기타 약소자에 대한 특별보호, 실종된 가족이 어찌됐고 어디쯤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구할 권리 등을 포함하여 국내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국제 기부자들은 자신들의 협력자인 비영리 조직들이 마찬가지로 인권원칙을 구제 프로젝트에 도입하고 원조 노력을 조정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채택하라
우리는 기부국 정부(국제 기구, 민간단체)에게 원조의 모든 형태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이 접근법은 투명성, 책임성, 참여, 비차별, 역량발전을 요구한다. 권리 소유자로서 아이티 인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아이티 인민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아이티 인민이 자신들의 나라를 재건설하고 발전시키는데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부자들은 또한 ‘원조 효과성에 관한 파리 선언’(The Paris Declaration on Aid Effectiveness, 2005년 3월 2일 제2차 고위급 회담에서 승인됐다. 100명 이상의 장관들과 기관장들이 자국과 조직들이 원조 목적의 조화, 조정 및 모니터 가능한 지표들로 결과를 운영할 것을 약속했다) 의 원칙들을 따라야만 한다.

투명성은 정부의 활동에서나 기부자의 활동에서나 필수적이다. 투명성은 사회 모든 부문의 아이티인들이 접근가능한 방식으로 구조, 회복 및 재건 전략의 개발 및 집행의 모든 국면에 관한 정보의 시기적절한 발행을 요구한다. 기부국 정부와 기부를 받는 조직들은 정부의 기부와 사적인 기부의 양, 그 기부금이 사용된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인 보고를 조정해야만 한다. 투명성의 부족은 정치적 안정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 10월, 네 번의 폭풍이 아이티를 황폐화시킨 후에 상원은 아이티에 대한 원조에서 1억9천7백만 불의 사용에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아이티의 수상을 탄핵할 것을 투표했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에서 기부국 정부, 국제기구, 집행하는 민간단체들은 아이티 인민에게 설명 책임을 져야 한다. 기부자와 국제기구는 아이티 정부와 더불어 자신들이 계획한 지원에 대해 공동의 인권 평가를 취해야 한다. 이는 권리에 대한 접근을 증진하고 일단 재정적 이전이 발생한 것에 대해 진전된 평가를 수행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보장하기 위함이다. 책임성은 또한 원조를 받는 지역사회가 문제점을 알리고 구제에 접근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요구한다. 국제사회는 원조 배분에서의 부패나 남용을 보고하기 위한 국내 콜센터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은 지역사회, 시민사회, 약소자, 역시 지진의 영향을 받은 농촌 인구 및 여성을 포함하여 아이티 사회의 전 범위에서 높은 수준의 참여를 요구한다. 이러한 참여는 프로그램 수혜자와 마지못해 접촉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으며 능동적이며 자유롭고 의미 있는 것이어야 한다. 참여는 구조, 회복, 재건 전략의 개발 과정, 초기 욕구 평가에서부터 계획, 집행, 평가까지 각 단계에서 있어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에서 기본적인 비차별은 아이티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원조와 역량강화에서 우선성을 둘 것을 요구한다. 의식적인 접근과 포함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국제 행위자들은 모든 아이티인의 인권을 실현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발전시키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 과거에 기부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흔히 이와 대조적인 발전구조와 인도주의 구조를 만들었다. 따라서 기본권을 증진시키고 이번 지진과 같은 비극에 대응할 수 있는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켰다. 미국 정부는 국내 기관을 통해 아이티에 대한 비상 구제를 조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부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아이티 정부로 하여금 구조, 회복, 재건의 전 단계에서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큰 규모에서 이런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원조 노력의 모든 단계에서 기부자들은 아이티 정부와 손잡고 일해야만 한다. 모든 노력은 아이티 정부에 의해 조정되고 아이티 정부와 더불어 해야 한다.

비상사태와 발전 원조를 위한 충분한 기금을 보장하라
비상 지원이 당장 오늘 필요한 동시에 기부자들은 아이티에 대한 원조에서 강력하고 자급적인 국가 건설, 모든 이에게 인권을 보장할 역량 건설을 목적으로 장기 전망을 채택해야 한다.

비상 원조가 기부자들이 이미 전달하기로 약속했던 발전 원조를 대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금은 구조와 재건 노력을 위해 긴급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아이티의 장기 발전을 위한 기부 사회의 헌신 없이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기부자들은 발전 기금을 제공하기로 한 자신들의 과거의 약속을 수행해야만 한다. 지난 해 기부자들은 발전 원조에 7억6천만 불 이상을 약속했으나 그 대부분을 아이티는 아직도 받지 못했다. 아이티 정부는 예산의 제약 속에서 아이티 인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런 기부자들의 약속에 의존하고 있다. 기부국들은 약속을 이행해야 하고 그 기금의 지불이 아이티 정부가 우선순위로 정한 것과 일치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티인의 일상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이티 인민은 자국을 재건하기 위해 작년 4월에 약속됐던 장기간 원조와 이번 주에 약속된 비상 원조 둘 다를 필요로 한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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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10-01-23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 소설 중에 저런게 있는건 지금 알았네요ㅋ 꼭 읽어봐야지 ;;

나무처럼 2010-01-23 17:32   좋아요 0 | URL
소설이라기보다는 논픽션 쯤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오웰의 본격적은 르포가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왔더라구요. 올해가 죽은지 60년 되는 해라 알려지지 않2은 작품들이 좀 나오는 듯 해요.
 

 

듣건대, 뉴욕
26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 한 귀퉁이에
겨울철이면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무숙자(無宿者)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동냥을 받아 임시 야간 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브레히트「임시 야간 숙소」전문,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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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가 그젠가 누가 물었다.  

- 아이티가 어디 있는 나라야? 
- 중남미 어딘가 있을껄. 왜? 

그때까지도 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  

어제 한 시사프로에서 아이티 현장중계 하는 것을 봤다. 그 리포터는 "신은 참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최빈국 아이티가 겪고 있는 계속되는 허리케인의 피해, 그리고 이번 지진 피해에 대한 아주 인간적인 아픔과 절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절반의 진실이다.

미국에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이 세운 최초의 독립국가 아이티는 풍요로운 땅으로 못 사는 나라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끊임없는 외세의 개입과 내부 군부쿠테타로 이미 국가는 인민의 삶을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 한 예로 지난 몇 년간의 허리케인으로 아이티에서는 1천 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지만 인근 나라 쿠바에서는 불과 다섯 명만이 죽었다.  이번 지진 피해의 경우에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못하는 주거환경이 한 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재난은 국제정치의 문제,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문제가 빚어낸 인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오늘이 지나면 내일 해가 뜰 것을 철석같이 믿고 생활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으리란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상에 대한 믿음은 어쩌면 삶의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부서져버리는 것을 목격한 사람,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파괴되기 쉬운 것인지를 깨달은 사람에게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며 무슨 의미일까. 인류가 재난과 폭력에 대한 이해를 시작한 지, 트라우마란 말이 만들어진 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어떤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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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불매운동에 대해

불매운동에 대해서가 아니라 불매운동이 불러온 알라딘 서재에서의 일들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글을 써야겠다는 그러지 않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아래 두 분의 글을 읽고 이게 내 마음 같아서 굳이, 나까지 보텔 필요가 없겠다 싶어졌다. 좀 비겁한 거 같지만 내 맘을 나보다 잘 드러내준 두 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여기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곧 일년이 되어가는데 그때까지도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그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울마당 님의 접습니다 
딸기 님의
알라딘 불매운동에 대해
 


내가 밥벌이 하는 직장에서 신년 특별기획으로 현장 인권활동가들이 권하는 한 권의 책에 대한 추천사를 실었다. 이미 읽어본 책도 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본 책도 있다. 교정을 보고 편집을 하며 나 또한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 책은 현장 인권활동가들이 뽑은 책들이고 그 밑의 글은 내가 잡지에 끄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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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책읽기

새해를 책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말 인권재단 사람의 계열사(?)쯤 되는 도서출판 사람생각에서 『쫄지 마, 형사절차!』란 책을 냈는데 예상보다 잘 나갑니다. 형사소송법이 많이 바뀐다고 하여 쉬운 해설서 하나 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실제 기획에 들어가고 이렇게 뚝딱 형사절차 매뉴얼로 나오게 된 데는 2008년 촛불집회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이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물론 이 책의 탄생에도 이 정부의 기여한 바가 큽니다.  

금서목록이 그렇듯 베스트셀러 목록도 그 시대를 어림하게 해줍니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한 달에 10만부씩 12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1만부를 목표로 ‘대박’을 염원하는 저희랑 차원이 다르지요. 불황에는 소설이 장사가 된다는 게 출판계 통설이라지만 베스트셀러 2위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계약을 하면서 미리 인세를 10억 원이나 주었다고 하니 이 동네의 양극화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이는 현재 팔리는 책의 80%를 10여 개 출판사가 내고 있는데 향후 5년 내에 그 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문제들이 출판계에서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죠. 

소설이 지난해 유독 잘 팔렸다면 경제·경영 분야로 분류되는 자기계발도서들은 여전히 잘 팔렸습니다. 그 중 베스트셀러 9위를 차지한 『넛지』란 책이 있습니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는 자유주의적인 개입, 부드러운 간섭이라고 합니다. 이를 행동경제학의 선택 설계이론이라고 하는데 책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암스테르담 화장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디서나 남자 화장실 소변기는 골칫거리인가 본데 암스테르담의 한 화장실에서 소변기 주변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고(CCTV 설치)나 캠페인(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 또는 어떤 인센티브도 통하지 않았지만 소변기 안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는 것만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가리켜 넛지라 한답니다. 이 책의 흥행요인 중에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에 대한 반성이 작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즐겨 읽었고 이 책의 필자 중 한 명은 오바마 정부에 스카우트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인권운동에서도 오랜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권운동은 기업처럼 인센티브를 줄 수도, 정부처럼 경고나 금지를 할 수도 없으니 말이죠. 그런 점에서 『넛지』는 인권활동가들도 한번 고민해봄직한 주제가 아닐까요?

요즘 책이란 무엇이고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문해봅니다. 한 후배가 선물한 노무현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읽으며 든 생각이기도 하고(그는 왜 대통령을 그만두고 나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까지도 책을 쓰고자 했을까요?), 한 온라인 서점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자 불로거들이 이에 항의하며 벌이는 불매운동을 지켜보며 든 고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독일의 과거청산 문제를 다룬 『더 리더(The Reader)-책 읽어주는 남자』란 소설입니다.

우리 나이로 열일곱 살에 서른여섯 살 한나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 주인공 미하엘은 데이트를 할 때면 그녀의 요구로 책을 읽어줍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한나를 법대생이 된 미하엘은 나치 전범재판에서 보게 됩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미하엘은 피의자인 그녀가 문맹임을, 그리하여 나치의 명령문을 읽지 못해 최소한 실정법에서는 무죄임을 알게 되지만 한나는 자신의 문맹이 밝혀지는 것이 꺼려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미하엘 또한 고심 끝에 한나의 침묵에 동조합니다. 감옥에 갇힌 한나와 그녀에게 책을 읽어 그 녹음테이프를 보내주는 미하엘. 한나는 가석방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미하엘은 그녀의 유품을 받기 위해 교도소에 갔다가 그녀가 글을 깨치고 가장 먼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증언을 담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같은 이름의 영화에서는 목매달기 위해 한나는 다름 아닌 이 책들을 딛고 올라섭니다). 

옛 어르신들은 “모든 걱정근심이 글로부터 나온다”고 한탄하면서도 손주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릴 적 “소설을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더랬지요. 둘 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글이 가진 성찰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글이란 태생적으로 권력 지향적이고, 어쩌면 권력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과 블로그의 등장으로 넓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도, 책을 내는 사람도, 그것을 분배하고 유통하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적인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판적 사유, 글의 민주주의는 저의 오랜 고민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생활에서 인권을 만나고 인권을 통해 일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기는 쉽지만 정작 거기에 주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올 한 해 『사람』은 여기에 좀 더 힘을 기울이려 합니다. 2009년은 인권과 관련된 책들이 참 많이 나왔던 해였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입문서와 고전은 무엇인지, 활동가들이 권하는 한 권의 책을 보고 올해 독서계획을 잡아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읽고 나눠야 할 책은 서점과 도서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도 있음을 1600일을 넘게 싸우고 있는 기륭 해고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삶과 투쟁에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할지, 해피엔딩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댔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넛지』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천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탐독한 뒤 참모들에게 선물했다고 하여 유명세를 탔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그 여름휴가 무렵은 쌍용자동차 공장 위로 최루액 봉지가 투하되고,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경찰특공대가 파업 노동자들을 ‘사냥’하던 때였습니다. 새해에는 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섣부른 믿음을 더욱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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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10-01-0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떤 잡지에 쓰신 글인가요?

나무처럼 2010-01-09 17:05   좋아요 0 | URL
허락도 없이 먼댓글을 달아서 실례가 아니었는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란 격월간지예요. 소규모 인디 잡지라고들 하지요^^

딸기 2010-01-1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 친하게 지내요~~ (멋대로 엉겨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