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둘째를 가졌다!
빨라도 올해 말 쯤이나 했는데,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고 아내의 논문도 끝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놀아보려고 했는데 말이다.
작년 9월부터 이제 곧 있으면 첫째가 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최소한 20개월을 넘겨 의사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한 때 어린이집에 보내자는 아내의 생각 때문이었고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가 100일이 지난 뒤부터 아내는 일을 시작했고 일주일에 이틀을 내가 얘를 봐야했다. 당연히 몇 년 전부터 동결되어버린 월급을 좀 올려달라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는데 앞으로 한 2년은 또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슬쩍 “오빠가 100만원만 더 벌어서 내가 일 년 동안 애만 키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문제는 100만원 더 벌 길이 영 안 보인다는 거다. 100만원 더 줄게 오라는 곳도 없다(있어도 옮기기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요즘은 대리운전도 월 100이 쉽지 않다고들 한다. 토일 편의점 알바를 알아봤더니 꼴랑 50만원 될까 한다(그 덕분에 올해 최저임금이 시급 4110원이란 것도 알았다. 너무 저렴하다). 그나마 토일 일하는 것 중에는 찜질방 같은 곳에서의 일자리가 있는데 이것도 70만원 수준. 사실 주5일 하던 일하고 토일을 다른 일을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눈이 돌아가는 게 사교육 시장 쪽인데 그건 나에게 있어서 막장인 셈이다.
내 아버지는 학원강사로 사회에 나와 30년 넘게 학원에 있다가 학원강사로 은퇴를 했고 나는 재수에 삼수까지 했고 학교를 졸업하고 잠깐 사교육 시장에 몸담았으니 그쪽은 어쩌면 내 친정 같은 곳일 테다. 그래서 사교육이 공교육에 병폐에 기생하는 병균이라는 시각,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학벌주의, 연고주의, 부동산 문제와 양극화 등등에 얽혀있는 절대악이라는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공교육과 사회공공성, 공동체가 무너진 이 사회에서 사교육 시장에 맡고 있는 숨통 같은 약간의 긍정성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예전에 아버지가 해주신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파는 일이다. 그런데 지식은 팔아도 없어지지 않는다(오히려 더 늘어난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그러니 떳떳한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씀이 기억난다. 가르치는 지식은 늘 새롭지 않지만 그래도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늘 새로우니 기쁨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기질이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게으른 놈들이 대부분 그렇듯 눈치가 빤하고 잔머리가 빨라 연봉 몇 천이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그저 주구장창 축나지 않는 지식을 팔며 굴러먹게 되리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거나, 혹은 그럴까봐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쪽으로는 제발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 아니 눈길도 주고 싶지 않다. 아니다. 어쩌면 그 쪽에서도 이미 시장가치가 떨어져 월 100은커녕 6, 70짜리 일자리도 쉽지 않을 텐데 나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다. 예정일이 9월 중순이라고 하니 한 6개월뒤부터 머리 싸매고 어떻게 이 시대가 보통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시민권(?), 투잡족,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고민하면 되지 하면서 발로 저만치 밀어놔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