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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이 전하는 사랑의 선물
제임스 헤리엇 지음, 레슬리 홈스 그림, 공경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수의사 헤리엇이 전하는 사랑의 선물>책 날개에는 지은이 헤리엇에 대하여 "전 세계 수천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수의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독서력이 얕은 무식쟁이인 저는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이름도 낯설었다고 미리 고백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허겁지겁 헤리엇의 다른 책자들을 검색했습니다. 헤리엇의 열 편의 단편을 읽는 동안 그만 헤리엇의 세계에 푹 빠져 버려서 한 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수의사 헤리엇의 동물친구들>시리즈와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등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얼른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습니다.
(뜬금없이,)여러 개의 사과가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걸 먼저 드시겠습니까? 어릴 적에 저는 제일 맛있고 탐스러운 사과는 제쳐두고 그 가운데 가장 볼품없고 찌그러진 걸 순서대로 골라먹었습니다. 맛있고 좋은 순서대로 골라 먹으면 한 상자 다 먹을 동안 제일 맛있는 사과만 먹는다고들 하지만, 저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가장 예쁘고 탐스러운 걸 먼저 먹어치우면 얼마나 아까울까요. 당장은 좀 맛없는 걸 먹으면 어떤가요, 저는 가장 예쁜 사과를 끝까지 아끼는 편이 더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웬 사과먹는 이야기냐구요? 그러게요. 호호. 저는 이 책의 리뷰를 쓸 때 꼭 그렇게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주변부 이야기만 슬슬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대목은 아끼고 싶습니다.
그럼, 제일 맛없는 사과부터 하나 집어볼까요?( 아 아, 제일 맛없는 사과라고 해서 시시하게 생각하면 안 되어요. 제일 맛없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싱그럽고 단 물이 가득한 "사과"인걸요. 제수없으면 땡감이나 개살구같은 것도 씹을 수 있는데, 적어도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과란 말입니다.히힛)
책의 외양도 맘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손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을만한 자그만 크기의 양장본이며, 책갈피가 필요없는 반가운 초록색 책갈피줄이 있었습니다. 책 만들 때 이런 사소한 부분을 챙겨서 만들어 주면 독자들은 좋아하는데 요즘은 보기 드물잖아요. 수채화 배경이 수의사 헤리엇의 정겨운 글과 잘 어우러지는 시골풍경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일단은 책의 외양부터 예뻐서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불쑥했었답니다.
역자에 대한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네요. 평소에 "공경희"님의 번역문을 좋아하지만 이번에도 참 좋았습니다. 가끔 번역문들을 보노라면, 분명 한국말인데도 어색한 영어투의 번역문들을 종종 봅니다. 번역가들은 외국어보다 한국어에 더 능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동번역기보다 겨우 나은 수준이 아닌, 우리글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문법으로도 손색이 없어야 원작의 감동을 제대로 살리겠지요. 어쩌면 헤리엇이 직접 한국어를 구사했다는 느낌이 들만큼 외국식의 지명이나 인명(동물이름)만 빼곤 자연스러운 문장이었어요. 군더더기 없이 맛깔스러운 문투가 헤리엇이 전하는 내용을 잔잔하게 그려주었습니다.
영국의 요크셔 지방의 시골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보랏빛 히스꽃이 군데군데 피어난 황무지와 농가가 어우러진 이국의 목가적인 농촌풍경 묘사에 따라 저도 흙을 밟으며 수의사 헤리엇을 따라다니는 상상은 책을 읽는 내내 행복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농부다운 모습을 가졌나 봅니다. 깊이 패인 주름과 세월을 견딘 맑은 눈을 가진 온화한 늙은 농부의 모습은 무척 낯익은 모습입니다. 그들이 자연에 묻혀서 씨를 뿌리고 가축을 키우고 애완동물과 함께 세월을 견디는 모습은 성화된 모습의 수도자같이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원숙한 농부보다 훨씬 빛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주인공 젊은 수의사 헤리엇입니다. 그는 농부들의 가축 - 난산으로 고통스러운 양과 염소, 소들과 애완견을 치료하였습니다. 당시의 농촌 수의사란 그다지 인기직종도 아니고 흰가운을 입은 위엄스런(?) 존재도 아니었던 걸로 짐작됩니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밤낮없이 왕진을 나가고, 차가운 엄동설한을 견디며 동물우리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서 숨을 몰아쉬는 가여운 동물들을 처치하는 고된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건 동물이건 위경에 처한 생명을 치료하는 건 숭고합니다. 그가 무도회장에서 호출되어 난산으로 죽어가는 암캐의 새끼를 받아내는 작업을 지켜보던 연인 '헬렌'처럼 저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단박에 반해 버릴 청년이었습니다.
평온함, 따스함, 감동. 이런 것들은 미사여구가 화려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상적인 문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지요.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로 자신의 일과 생명가진 것들을 사랑하는 헤리엇의 거울같이 맑은 심경을 들여다 보며 생긴 것이기에 책을 덮어도 오랫동안 제 가슴이 훈훈합니다. 제일 큼직하고 탐스러운 사과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좋은 것을 누리면서 일한 댓가를 받는 것이 이상하다"고 혼잣말을 하는 그를 직접 만나보세요. 가장 맛있는 사과의 맛을 흠뻑 느껴 보세요.
050715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