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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넘어서야 아버지가 위대한 줄 알았다"… '그림 속의 그 아들' 52년만에 訪韓
이중섭 父子 '성묘 상봉'
처음보는 아버지 油畵
日서 '영화 이중섭' 제작
입력 : 2004.12.03 18:11 14'
▲ 삼성미술관 리움에 걸린 이중섭의 유화‘해변의 가족’(1950) 옆에 선 태성씨. “아버지의 유화를 원화로는 처음 본다”는 그는“실제로 보니 그림이 아름답고 박력있다”고 말했다. 김창종기자 (블로그)cj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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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이 죽음같은 고독을 견디며 그려냈던 단란한 가족 그림 속 아들 태성(泰成·야스나리·55)씨가 52년 만에 처음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왔다.
3일 아침 그는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찾아 성묘했다. 야마모토 태성. 어머니 마사코(한국명 남덕·83)의 성을 따른 그는 아버지 나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제주도 서귀포로 피란갔던 이중섭은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일본인 아내와 아들 둘을 일본의 처가로 보냈다. “그때 배 타고 흔들리던 기억밖에 없다”는 아들은 가족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침묵 속에 만났다.
대향 이중섭(李仲燮·1916~ 1956)은 그 누구보다 가족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낸 화가로 유명하다. 복숭아 나무에 오르는 아이들, 게와 얽힌 아이들, 그가 그린 아이들은 바로 그리운 두 아들이었다. 가족과 생이별한 이중섭은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그대들을 생각하고… 태현, 태성, 남덕, 대향, 네 가족의 생활…융화된 기쁨의 장면을 그린다오”라고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가족과 헤어진 지 4년 만에 이중섭은 적십자 병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흥분되고 긴장해서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도쿄에도 따로 아버지의 유골 절반을 모시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성묘를 하고보니 정말 기쁩니다.” 이날 태성씨는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찾아 아버지의 유화를 처음 직접 봤다. 태성씨가 제일 먼저 다가간 것은 50년 전 자신의 가족을 꼭 닮은 작품 ‘해변의 가족’(1950)이었다. “50년 전, 무슨 사정이 있어서 아버지의 유화를 일본으로 한 점도 가져오지 못했나 봅니다. 대신 200여장에 달하는 그림 엽서와 은지화가 있었습니다. 편지도 많았고요.”
“아버지가 위대한 화가라는 것은 스무 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어려서는 한국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차별과 설움도 겪었지요.” 이중섭 그림에 나오는 가족 중 화가만 빼고 모두 생존해 있다. 형 태현(57)씨는 인테리어 사업가이며 태성씨는 액자 제작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평소 아버지에 대해 별 말씀은 없지만, 이제 적극 나서서 아버지의 일생을 제대로 알리려고 합니다.”
태성씨의 첫 한국행은 사실 일본 속 ‘한류’의 영향도 있다. 지난 5월 일본 TV를 통해 이중섭이 일본에 처음, 본격적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본 한 영화사가 이중섭 가족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