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다.
그것도 깊은 밤이다.
1시 30분, 이 시각은 어떤 이들에겐 '깊은'이라는 수식어가 엄살이겠지만 나같이 초저녁잠 많은 사람한테는 심연의 밤이다. 오늘은 많이 피곤하기도 하고 또 휴일이라 마음을 풀어서인지 나는 기어이 초저녁잠을 이기지 못하였다. '온 가족'이래봐야 네 명인데도 그 넷도 다 모이기도 쉽지 않다. 이런 날 온 가족이 함께 티비도 보고 수박도 잘라 먹고 놀면 좀 좋을까.
저마다 편한 자세로 뒹굴거리는 휴일의 초저녁, 나는 그만 꿀송이보다 더 달디 단 잠에 빠져들었다. 간간이 아이가 '엄마가 좋아하는 코너 해요!'하며 어깨를 흔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개콘 600회라고 엄청 재미있다고 애가 미리 예고도 했었다. 제발 잠 자지 말고 같이 보고 웃자는 거다. 내일이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었는지를 이야기 해 줄 것이다. 원망도 한 줌 섞어서. 그러게, 같이 와그작 웃고 놀면 얼마나 재미지고 행복할지 풍경이 선한데 말이다......
기말고사 이틀 치루고, 이제 남은 이틀을 더 버텨야 하는 작은 녀석 잠자는 머리맡에 책이 한 무더기다. 놀고 싶고 자고 싶어도 차마 시험의 중압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책은 붙잡고 있었나 보다. 프린터물과 문제집 따위와 씨름한 티를 내며 곤히 잠들었다.
고3이라는 큰 녀석, 참, 엄마가, 할 말이 없다.......늘 엄마가 먼저 잠들어서 염치가 없다. 얼마나 노곤한지 온 몸을 휴지조각처럼 이리저리 구기며 널브러졌다. 예민하고 잠귀가 밝아 키울 땐 애먹었는데 오늘은 등에 깔린 이불을 살그머니 빼 바로 덮어 줘도 세상 모르고 잔다. 업어가도 모를 고3인게다.
남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쓸쓸하다. 잠든 옆얼굴이 낯설기조차하다. 얕게 코를 골다가 큰 숨을 내쉬기도 하면서 일정한 리듬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오늘밤을 지새울지라도 잠에서 그를 불러내진 못한다. 심심해 죽겠다고 떼를 쓰면 꾸벅꾸벅 졸면서 놀아주던 신혼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나도 조금이나마 철든 마누라가 되어서 그렇게 하지도 않겠지만 깨운다고 호락호락 불려 나오지도 않을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시간은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수고로운 하루를 위해 베풀어주신 안식의 시간이니까. 우리는 각자 오늘 하루도 힘에 부치도록 수고하였다. 잠든 남편의 턱에는 수염이 주인 모르게 자라고 있다. 까칠해 보이는 남편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꿈 속에선 아내나 가족, 일 등 현실에서 소중한 것들이 제외 되어도 좋겠다 싶다. 돌아가신 어머님을 유년기로 돌아가 품에 안겨 맞아도 좋고, 아니면 고향의 푸른 동산에서 마구 뛰놀아도 좋겠다. 온 몸 가득 푸른 기운 충전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면 좋겠다. 잠든 그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나요?
잠 자는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은 깨어 있을 때와는 달리 연민이 스민다. 어루만지고 토닥여 주고 싶지만 행여나 잠이라도 깰까봐 참고 일어서 나는 창문을 열고 깨스 중간 밸브를 잠그고 욕실 수도꼭지를 확인하며 환영처럼 소리없이 다녔다. 초저녁잠 달게 자고 일어나니 잠은 도망가버렸다. 그러나 나는 이제 불 끄고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계속 잠이 안 오면 어떡하나, 걱정은 된다. 20110704ㅇ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