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질없는 시

시로서 무엇을 사랑할 수 있고
시로서 무엇을 슬퍼할 수 있으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시로서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혹은 세울 수 있고
허물어뜨릴 수 있으랴
죽음으로 죽음을 사랑할 수 없고
삶으로 삶을 사랑할 수 없고
슬픔으로 슬픔을 슬퍼 못하고
시로 시를 사랑 못한다면
시로서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랴

보아라 깊은 밤에 내린 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무 발자국도 없다

아 저 혼자 고요하고 맑고
저 혼자 아름답다

詩 : 정현종



밤새도록 시만 읽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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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3-1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것은...

마태우스 2005-03-1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현종 씨 참 시 잘쓰는 분이죠? 제가 시에는 문외한이지만 이분의 명성은 알아요. 왠지 시의 역할을 부정하는 듯한 이 시, 참 마음에 드네요^^

2005-03-18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3-18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노래 좀 불러주세요, 복순이언니님 ^^ 저두 무척 좋아하는 노래에요.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
마태우스님, 저는 이제서야 그분의 시를 읽는답니다.
 

민들레 압정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詩 : 이문재



* 위 사진은 하도 많이 올려서 민망하기까지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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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3-1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눈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렇게 작은 것에서 우주보다 큰 진리를 잡아내는 걸 볼때마다 마냥 부럽습니다. 퍼갈께요.^^

파란여우 2005-03-1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들레를 노래하는 시인의 정서와 개망초꽃의 사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플레져 2005-03-1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때 마다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새벽별님.
저두 감탄을 했다지요. 시인의 눈을 파는 가게는 없겠지요? 잉크냄새님.
파란여우님의 댓글도 이 시와 잘 어울립니다.

icaru 2005-03-1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좋지만 사진 좋으네요^^
이문재 시인하면... 김형경이 생각나요... (제가 너무 가십에만 강한 걸까요~ )
제가 갖고 있는 민들레 올려요~ 저도 민들레 얘기 나올 때마다 꺼내보는 사진인데.. 민망할까요^^;;



플레져 2005-03-1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코 민망하지 않아요. 고마워요, 복순이언니님...^^ 가끔 저두 써먹을래요~

icaru 2005-03-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도 이 시에 어울리죠오~ ??

플레져 2005-03-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입니다!!! ㅎㅎㅎ
 






      관계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번째 회신 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 거다 천기를 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詩 : 고정희 美 : Wallpapers 術 : 플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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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1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예쁘다. 추천!

비연 2005-03-1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정희님의 시..좋아합니다. 넘 이쁘게 꾸미셨네요..^^ ㅊㅊ 과 퍼감니다..~~

플레져 2005-03-1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를 읽으면 무언가 좀 끄적여 보고 싶어져요. 추천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비연님 ^^

릴케 현상 2005-03-1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일단 고정희 시는 추천해야 할 듯
 

시인 문태준, 문인들이 뽑은 작년 가장 좋은 시에

"詩 '가재미'는 암으로 세상 등진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
글=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사진=이기원기자 kiwiyi@chosun.com
입력 : 2005.03.09 17:55 07' / 수정 : 2005.03.10 01:03 02'


 


▲ 시인 문태준씨
문인들은 문태준(文泰俊·35) 시인의 ‘가재미’를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시 중 가장 좋은 시로 뽑았다.

선정작업은 도서출판 작가(대표 손정순)가 이시영 문정희 최동호 정일근 안도현 등 시인·평론가 120명을 대상으로 했다. 문 시인은 지난해에도 시 ‘맨발’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선정작업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가슴에 다가오는 절절한 체험을 주위 사물과 결합시켜 재현해 아름답고 진한 서정을 길어 올렸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재미’는 말기암 환자에 대한 기억 속 장면들이 언어의 표면으로 서서히 인화되는 순간을 채록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 두 눈이 한쪽에 몰려 붙어 있는 가자미(‘가재미’는 경상도 사투리)는 목전에 다가온 죽음만을 응시하는 환자를 상징하고 있다.

문 시인은 이 시가 “어렸을 적부터 고향(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마을에서 같이 살다가 작년에 돌아가신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1994년 등단해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을 냈으며, 동서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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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3-1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저민 시네요. 문태준님은 플레져님을 통해 처음 알았네요. 예전에 올리신 < 맨발 > 말이죠.

릴케 현상 2005-03-1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서정성이 강한 시들이 계속 부각되나 봐요

플레져 2005-03-1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자명한 산책님, 저 시 너무 좋지 않나요? 가슴이 저려요...

릴케 현상 2005-03-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네요 약간 복잡해지는데요-_-

플레져 2005-03-1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출처 : urblue > 젊음 - 파블로 네루다

 

         젊음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냄새,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性的 과일,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
          집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 설레는 방들,
          지난날 속에 잠자고 있는 요들,
          높은 데서, 숨겨진 창에서 바라본
          야생 초록의 골짜기 :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는 한창 때.

                                    ─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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