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짧은 정적을 깨뜨린 것은 처절한 여자의 비명 소리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들고 있던 상자를 내던지고 양팔을 벌린 채 미친 듯 길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상자 속에서 새빨간 핏방울 같은 것들이 와르르 쏟아져 사방으로 가득히 흩어졌다. 딸기알이었다. 아이는 대여섯 걸음이나 멀리 튕겨져나와 아스팔트 바닥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아이의 아버지가 달려왔다. 당신은 그제서야 도어를 열고 황급히 뛰어나갔다.
<임철우, 어둠, 187쪽, 문학과 지성사> <이미지 : 플레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