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들어진 신 - 카우프만, 신성의 재발명을 제안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22
스튜어트 앨런 카우프만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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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원주의에 반하다.

- 기존의 생각과 다르게 생물학은 물리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단순한 원자들의 합과 구성일지라도 생물은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발`적인 존재이다. 이는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으나, 그것이 곧 모든 것을 설명해내지는 못 한다.


2. 인식,존재의 창발성

- 심장,경제현상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은 생성원리와 기능들에 있어서 환원주의만으로 설명되지 못 한다. 각 부분들은 처음부터 그 목적이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며, 시뮬레이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존재하며 기존에는 몰랐으나, 미래에 꾸준히 영향을 미친다.


3. 생물에서의 창발성

- 자발+비자발 행위 : 행위자로써의 생물. 목적적 행위 `의도`를 가지고 자발적 + 비자발적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리학에서의 한 사이클을 스스로 수행해낼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생물은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환원주의를 벗어난 행위로써 당구대의 당구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위와 같다. 즉, 행위의 목적이 존재하며, 이를 수행하며 추구하는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4. 자기 자생적 질서

- 생명체의 세포생성의 정보를 지닌 DNA. 이들은 RNA로 전사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가짓 수를 가진다. 그럼에도 이들의 정보는 일정한 순환과정과 정해진 틀을 가지도록 진화하는데 이것은 환원주의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 스스로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다시말하자면 스스로 주어진 법칙의 가정들을 만드는 것이다.


5. 물리법칙안에서의 진화. 비에드고르적 우주.

- 생명은 물리학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자발성을 지니고 있다. 물리학은 가정안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자생적으로 질서를 만드는 생물의 행위를 설명할 수 없고 부분적 속성들이 모여 새로운 것을 이루거나 전혀 다르게 진화하는 `전적응`을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못 한다. 알고리듬적 영역으로 연역적 법칙을 추론하지도 확률,귀납적인 표본공간도 제약,파악 할 수 없다. 미래는 진화,생명이 적응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우리가 이성을 넘어서는 `신성`이라고 보았다.


6. 사회,경제에서의 창발성

- 사회는 전적응한다. 이에 따른 경제적 상품들도 진화,변화한다. 이것은 합리적 기대, 일반균형 , 게임이론이 지극히 단기적인 예정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경제는 스스로 새로운 상품이 발명되고, `창조적`으로 파괴된다.


7. 마음과 뇌

- 인간의 마음과 뇌는 알고리듬을 벗어나는 의식적 주체이다. 알고리듬만으로 현재의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 처음 탄생부터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 채로 태어났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은 창의성을 지니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적응,자연선택되는 존재이다. 미래는 생명이 접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8. 두 문화는 없다.

- 지금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분화는 없다. 뉴턴 이후, 인만학,시학,미학은 1류 지식처럼만 여겨졌다. 이제는 분화된 두 지식을 합치어야 한다. 오로지 생명만이 가지는 적응성과 미.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혜가 인문학 속에 있다. `사람은 누구인가?` 그 누구도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컴퓨터처럼 알고리듬만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9. 부러진 뼈와 지구윤리

- 전 지구적 문명의 도래했다. 인간은 과거와 다른 세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권력을 추구하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원시적 본성은 변함이 없다. 유전자 단위로 이기적인 인간에게 도덕이란 무엇일까? 생물학 속에 그 답이 있다. 진화의 결과로 생겨난 `집단선택`은 인간이 스스로 도덕성을 추구하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도덕에 대한 수 많은 논리에 하벼서 지구적 윤리를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생명에 대한 신성을 느끼는 `전 지구적 윤리`를 제안한다. 흄의 말처럼 존재가 당위를 규정하지는 못 한다. 그러나, 타인에 연민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인간은 지구적 윤리가 있다면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0. 신성의 재 발명

- 인간의 신에 대한 경외는 본성인 것처럼 보인다. 신성이 미개함으로 대체되고, 우리의 신성도 바뀌고 시대에 따라서 진화되어 왔다. 이젠 인격신과 유일신이 아닌, 자연적인 범신론적인 생명에 대한 경외로써의 신의 재발명이 필요하고 인류 전체가 이러한 공통된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은 존재하고 창발하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주체 그 자신이다. 그러나, 존재가 당위를 규정하지는 못 하기에 저자는 이에 초대한다고 말하였다.



내용이 심오하며, 간결하기 어렵다. 막상 정리하고 나니까 무슨 내용인지는 파악되나, 처음 읽을 때에는 많이 헷갈렸었다. 내용 자체가 생소한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읽으면서 지금의 자동화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컴퓨터를 통한 거의 모든 것의 `자동화`를 맞이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먼 미래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2007년도에 나온 도서이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 저자는 생물과 비생물의 차이를 창발하며 진취적인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뉴턴이후 우리를 지배해 온 환원주의와 물리법칙 알고리듬으로 설명되지 못 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컴퓨터가 아무리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어도 새로운 공식을 만들지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는 못 한다. 그저, 주어진 정보를 명령대로 처리해낼 뿐.. 저자는 이것에서 놀라움과 경외를 느낀다고 하였다. 또한, 이를 `신성`이라고 표현하였다. 


로봇과 자동화가 대중화 됨에 따라서 우리가 지금 추구해나가는 방향인 `창조경제` 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창조성,진취성,사고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의 수가 계산가능한 체스에서 컴퓨터가 인간이 이겼다고 하여서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실속에서 컴퓨터는 인간을 보조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은 놀라우며 찬탄해마지 않는 존재이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62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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