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앞서 말했듯이 플랫폼 전쟁은 동종업계에서 점유율 싸움을 벌이는 제조업과 달리 승자가 열매를 독식하는 구도가 될 것이다. 이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은 더 늦기 전에 미디어 플랫폼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 이 전쟁에서 패배하면 우리는 종속변수로 전락하고 용병으로 남고 말 것이다


2.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998년에 넷플릭스가 등장해 산업의 모멘텀을 꺾는 데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산업은 성장세가 한번 꺾이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3.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대체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 것일까? 사란도스는 “우리는 TV와 경쟁하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서 경쟁 대상을 ‘메가트렌드’라고 지목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현 상황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타석에 들어서야겠죠. 엄청난 스윙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케이블채널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트렌드와 승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포켓몬GO, 올림픽, 대통령 선거 같은 ‘메가트렌드’와 경쟁해야 합니다.” 넷플릭스도 포켓몬GO와 같은 메가트렌드 때문에 시청자의 시청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외부에서 노이즈를 일으키는 미디어 이슈와 승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진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넷플릭스는 메가트렌드와 싸우고, 190개국의 로컬마켓에서 기존 미디어 플랫폼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4. 플랫폼 시장에서 승부는 어떻게 나뉠까? 구독자를 많이 유치한 플랫폼 사업자가 승리자일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플랫폼 사업자는 최상위 플랫폼 사업자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가입할 때 웹을 이용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가입하면 30% 비용을 더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결국은 애플이 승리한다. 미디어 플랫폼 운영이 지금 같은 방식으로 계속된다면 말이다. 최상위 플랫폼과 앱스토어, 결제 시스템을 가진 애플이 승리자다. 물론 이러한 구도에서는 구글도 빠져나갈 수 없다. 애플을 구글로 이름만 바꿔도 같은 내용이 된다. 앞으로 미디어를 이야기할 때 애플과 구글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혹시나 중국이 아직도 불법으로 콘텐츠를 복제하고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중국 대중은 미국만큼 월별로 이용료를 내며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으며, 광고 스킵 기능이 없는 강력한 광고 기반 동영상 서비스로 많은 사업자들이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강력한 스크린 쿼터 제도와 중국광전총국SAPPRFT, State Administration of Press, Publication, Radio, Film and Televis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의 비호 아래, 자국 콘텐츠를 육성하고 있으며 외국의 콘텐츠도 공동투자가 아닐 경우 배급조차 어려운 환경으로 가고 있다.


6.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지금까지 비교적 잘해왔다는 착각에 빠져 자국 시장 상황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콘텐츠도 마케팅이다. 왜 미국이 중국 배우를 써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사실 답은 우리 주변에 있다. 중국은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이 들어와 있지 않은 나라다. 애플의 아이튠즈 비디오 서비스도 들어와 있지 않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유튜브가 없어도, 넷플릭스가 없어도 살 수가 있다. 바로 아이치이와 텐센트 비디오가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1억 명이 사용하는 유료 서비스다. 물론 유튜브는 전 세계 사용자가 10억 명이 넘는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 5억 명이 넘게 사용하는 비디오 서비스가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유튜브를 몰라도 살 수 있게 된 아이치이이며, 또 하나는 90년대 생을 위한 종합 비디오 플랫폼이 된 텐센트 비디오다


7. 위에서 예를 든 유튜브는 더 이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아닌,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이 되었다. 우리는 페이스북의 동영상도 위협적인 상대로 이야기할 수 있으나 페이스북 이전에 마이스페이스MySpace라는 서비스의 흥망성쇠를 보았다


8. 전 세계 소셜 서비스는 영원하지 않다.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보다 혁신적이거나, 스냅챗이 페이스북보다 뛰어난 서비스라서 인기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부모 세대와 같은 소셜 서비스를 쓰고 싶지 않은 이유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냅챗은 부모가 쓰기 어려운 플랫폼이라 성공했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다. 한편 카카오의 카카오 스토리도 소위 젊은 엄마들의 소셜 플랫폼이 되면서 다른 세대들이 순식간에 빠지기도 했다. 부모 세대의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은 중앙아시아 이외 지역에서는 성장 속도가 정체되었다. 다행히 중앙아시아에서는 스냅챗이 인기가 없다.


9. 텐센트는 이 책의 핵심인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고 배급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관련하여 우리가 꼭 고민해보고 도전해봐야 할 기업이다. 하지만 사드의 영향이 사라진 뒤 한중 관계가 회복되어 처음으로 한국 콘텐츠를 중국에 팔고 싶은 사업자라면, 텐센트나 아이치이와 맞붙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그들은 이미 한류가 아닌 자신들만의 투자 로드맵이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10. 참고로 네트워크 전용 드라마의 시청자 수 중 88%가 80~9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스Millennials이며 그중 70%가 여성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국 드라마는 젊은 여성 위주의 콘텐츠가 아니면 향후 길이 다시 열리더라도 수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한류는 다양한 세대에게 두루 인정받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의 내용보다도 배우의 역할이나 외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한령 이후의 한류 방향은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한국 배우를 활용하는 쪽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11. 한류를 수출하는 영화·드라마 제작사는 IP를 가지고 있는가? IP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더 투자하는 데 인색하지는 않은가? 콘텐츠라고 하면 아직까지 영상물만 기억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와 같은 스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가 맡았던 유시진 대위의 캐릭터를 키워서 다음 시즌이나 관련 상품 등을 더 개발했어야 했다. 그러면 중국만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한류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신 조자룡> 시즌2는 나오는데 왜 우리에겐 <태양의 후예> 시즌2가 없는가? 왜 브랜드가 작가, 제작사, 배우에만 있는가? 온라인 비디오 시대에는 작품 그 자체에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12. 저장위성의 부스에서 본 콘텐츠들은 한국 시장과 경쟁할 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마케팅 전략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지만, 콘텐츠는 그렇지 않았다. 콘텐츠만 좋으면 시장에서는 언제든지 통하게 마련이다. 한국이 중국 시장을 위해 수출했던 콘텐츠와 PD, 작가 및 그 외 스태프들이 지금 중국 TV 콘텐츠의 밑거름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나온 콘텐츠는 한국 포맷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투자해서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들이었다. 이제 중국은 그것들을 가지고 냉정한 시험대에 오르려고 하고 있다.


13. 즉, 중국에의 수출이 막힌 것보다도 사실 중국 콘텐츠의 세계 시장 진출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당장 지금, 우리가 시청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 중에서도 중국에서 제작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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