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나 금융 시장만 놓고 보면 접근 가능한 정보가 늘어났음에도 투자자들은 안심하기는커녕 전보다 더 불안에 떨면서 판단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보 증가가 투자결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 행동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과거 세대보다 더더욱 좋은 스토리텔링에 이끌리는 모습을 보인다.
2. 통계학에서는 추정할 때 표준오차'로 추정의 잠재적 오차를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실생활에서, 특히 비즈니스와 투자 세계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무시하고 추정치를 마치 사실인 양 다루다가 재앙이나 다름없는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3. 정교한 측정 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숫자가 상식을 몰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가올 위험에 적절 히 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계 곳곳의 은행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20년 전부터 은행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사업 손실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해서 예상하는 이른바 'VaR (Value at Risk) (일정한 조건하에서 위험이 발생할 경우 잃을 수 있는 최대 손실 예상치를 추정한 금액)’이라는 위험 측정 도구를 사용했다. 그 20년 동안 위험관리 전문가들과 학계는 VaR의 효과를 목적으로 더 강력하고 복잡한 도구가 되도록 가다듬었다.
4. 그리고 “이 사건이 평균에서 벗어나는 표준편차는 3이므로 이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
라는 식의 확률적 설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 세계의 현상들은 정규분포 확률로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사업과 금융 데이터는 정규분포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런데도 분석가와 리서처들은 정규분포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모델을 구축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번번이 놀란다.
5. 평가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업들이 있기는 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과도기의 회사보다는 안정적인 회사가, 그리고 소규모의 비상장기업 보다는 주식이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상장기업이 평가하고 이해하기가 훨 씬 쉽다. 그렇기는 해도 분석하기 수월한 기업보다는 어려운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했을 때 거두는 보상이 더 크다.
6. 크리스텐슨의 주장 중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업종은 파괴하기가 매우 힘들다. 기존의 안정된 회사들은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파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객들도 쉽게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사업 운영 방식이 나쁘고, 시장 참여자들의 기존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 니즈를 전혀 충족해주지 못하며, 수익성도 대단히 낮다면 모든 것을 파괴할 거대 폭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버의 경우 파괴의 스토리가 훨씬 위력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택시 사업은 과도한 규제에 실적도 좋지 않고, 운영 상태도 엉망이어서 어느 누구(택시운전사, 고객, 감독기관)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7.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는 단순하고 믿을 수 있으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를 말하려면 사업과 그 사업이 속한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과 시장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고, 5장에 나온 여러 넘버크런칭 도구를 사용해 데이터를 정보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데이터는 스토리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스토리텔 러라면 어쨌거나 판단을 피해서는 안 되지만, 아무리 데이터와 정보를 토대로 삼는다고 해도 판단은 판단일 뿐이다.
8. 가격결정 게임보다 가치에 관심이 더 많은 투자자라면 트레이더와 아주 다른 시각에서 실적 보고를 보게 될 것이다. 가치투자자는 주당 순이익 보고가 기대치에 부합하는지 웃도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실적 보고서가 기업과 가치에 대한 내러티브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는지에 좀 더 주목하게 된다.
짐작하겠지만 실적 보고서를 이런 식으로 평가한다면 가치투자자가 보이는 반응은 어닝서프라이즈에 좀 더 집중하는 트레이더와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보고된 순이익이 예상 주당순이익보다 높으면 가격결정에는 호재가 되지만, 내러티브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 주가가 올라가는 만큼 그 회사의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실적 보고가 예상 주당순이익에 훨씬 못 미친다면 스토리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번 역시 주가와 가치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수 있다.
9. 예측 가능성
내가 경험하기로 주로 거시경제 예측을 기반으로 하는 투자 전략만큼 실적이 나쁜 전략도 찾기 어렵다. 원자재부터 말하자면, 지난 50년 동안 가격이 반전할 것이라고(즉 떨어지고 있던 원자재 가격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오른다거나, 오르고 있던 원자재 가격이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고) 분석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원자재는 단 하나도 찾아내기가 힘들다. 경기순환에대한 기록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실제로 경제를 금리, 인플레이션, 경제 성장률로 쪼개서 관찰하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예측은 순수한 역사적 데이터에 근거한 예측과 거의 다르지 않다.
10. 이런 초라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나 기관투자자도 거시경제를 전망해 투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아마도 예측이 맞을 경우 막대한 수익이 나는 데다, 올해의 거시경제 예측 우승자로 선정된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의 구루로 인정받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만 봐도 일부 분석가들과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유가의 지속적 하락을 예측한 덕분에 시장을 가뿐히 이겼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일지 몰라도 내가 보 기에 그들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거시경제 예측 능력을 자만하다 큰코다치는 날이 올 것이다.
11. 투자자들에게 전하는 말
투자자로서 주식 시장에서 승리할 종목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마법의 총알이나 공식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시장의 승리 종목을 찾아준다고 주장하는 엄격한 규칙들은 일부 성숙 기업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투자의 미래는 투자자의 생각이 얼마나 유연한지 그리고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어렵지 않게 옮겨갈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