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확히 말하면, 이 시기에 화폐 찍어내기는 통화 약세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통화 약세가 화폐 찍어내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통화를 팔아 국외로 빠져나가려는 자본 이탈이 통화 약세를 이끌면서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 이것이 전형적인 인플레이션 불황이 일어나는 방식이다. 

통화/채권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중앙은행은 유동성과 신용시장에 긴축이 가해지는 것을 용인하거나, 화폐를 찍어내어 자본 공백을 메우는 방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자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화폐를 찍어내는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통화 가치 하락을 초래한다. 통화 가치의 평가절하는 수입업자와 외국 통화로 빚을 진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만, 경제와 자산시장을 부양하는 효과뿐 아니라 경기 침체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평가절하되던 국제 시장에서 제품을 더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어 수출과 이윤이 늘어난다. 반면 수입 제품은 비싸지므로 국내 산업ㅇ르 지원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통화가치의 평가절하는 국내 통화 기준으로 자산 가치를 상승시키며, 외국 통화 기준으로는 해당 국가의 금융자산이 저렴해지므로 외국 자본을 끌어 모은다. 


2. 특히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국가에서 가장 흔히 나타난다.

• 준비 통화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들의 통화와 부채를 부의 저장 수단으로 보유하려는 수요가 없다.

• 외환보유고가 적다. 자본 유출을 막을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

• 외화 부채가 많다. 금리가 인상되거나 갚아야 할 채권의 통화 가치가 상승할 때, 해당 통화로 표시된 신용을 이용할 수 없게 될 때 부채 비용이 늘어날 위험이 있다.

•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점점 늘어난다. 적자를 메우려면 돈을 빌리거나 찍어내야 한다.

•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이다. 통화와 부채를 보유한 채권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 높은 인플레이션과 마이너스 통화 수익률을 기록한 이력이 있다. 통화 채권의 가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 경제는 위 모든 조건을 충족한 상태였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했으니 전후 시대에 마르 크화는 준비 통화의 지위에 오르지 못할 게 뻔했다. 


3. 기업 이윤은 전후(戰後) 최고점을, 실업률은 최저점을 기록했으며, 실질임금은 20% 이상 상승했다. 버블 이전인 1923년부터 1926년까지는 부채가 오롯이 생산성 향상에 투입되어 빠르게 소득이 증가했으며, 그에 걸맞은 수준에서 적정한 부채 증가세를 유지했다. 동시에 주가는 별다른 변동성 없이 높이 치솟았다. 1922년 초와 1927년 말 사이 미국의 주식투자자들이 거둔 수익률은 150%를 넘을 정도였다. 특히 당시 가장 잘나갔던 기술주이자, 증권 업계에서 흔히 라디오'라 불리던 라이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 Radio Corporation of America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가 주도주 역할을 했다. 그러는 사이 버블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사례와 마찬가지로, 버블의 근본 원인은 생산성 향상 과 기술 발전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사람들이 레버리지에 의존한 베팅을 멈추지 않은 데 있었다. 한 기고가는 미국 경제가 새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새 시대가 열렸다.... 영원한 번영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호황과 불황이 되풀이되던 과거는 끝났다. 미국인들의 부와 저축은 꾸준히 늘어나고, 주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4. 은행들은 1920~1921년 경기 침체 이전보다 외형적으로는 훨씬 더 건전성이 높았다.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자본 비율도 높아졌으며(14.9%에서 17.2%), 정기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23.3%에서 35.7%) 은행 입장에서는 부채를 당장 상환해야 할 필요성이 낮아졌다. 애널리스트들은 1929년에 있었던 일련의 대형 은행 합병 사례들로 인해 은행의 강세가 더 지속될 것 으로 내다봤다. 일반적으로 호경기에 은행의 수익과 재무 상태는 건실하게 보인다. 자산 가치가 높게 형성되어 있고, 이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예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뱅크런으로 예금액이 소진되고 은행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시점이 되면 문제가 불거진다.

5.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이사들은 주식 투기를 부채질하는 단기적 성격의 대출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지만 단기 금리를 선뜻 인상할 수 없었다. 아직 경기가 과열 상태는 아니고 인플레이션도 억제되어 있어서 고금리가 투기꾼만 아니라 모든 채권자에게도 해를 끼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부채 버블은 인플레이션 상승 때문이 아니라 부채 증가로 인한 자산 가격의 상승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전형적이다. 중앙은행은 부채의 성장을 용인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에만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부채의 위기를 자초한 책임이 있는 중앙은행은 정작 부채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6. 은행은 부채(예: 단기 예금)와 자산(예: 비유동성 대출) 간의 유동성 불일치 때문에 구조적으로 뱅크런에 취약하다. 때문에 부채를 제때 상환할 만큼 자산을 충분히 빨리 매각할 수 없다면 아무리 건전한 은행이라도 도산할수 있다. 금본위제하에서 연방준비제도는 화폐를 찍어내는 데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유동성 문제에 직면한 은행에 최종 대부자로서 자금을 대여해주는 데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법적으로도 제약을 받았다.예를 들어 당시 연방준비제도는 회원 은행에만 직접 자금을 대여할 수 있었지만, 회원 은행은 전체 상업은행의 35% 뿐이었다.  따라서 은행들은 도산을 면하기 위해 민간 부문에서 돈을 차입하고 보유자산을 투매로 팔아치워야 했다.


7. 이 시기에 연방준비제도는 시험적으로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위기가 다가오면서 연방준비제도는 금이나 특정 어음을 담보로만 대출해주었다. 금과 어음 둘다 품귀한 상황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긴축을 강화할 것인지, 금 대비 달러 가치의 하락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이해득실을 따져보았다. 2월 27일 후버 대통령이 서명한 1932년 은행법 The 1932 Banking Act은 금본위제를 유지하면서도 연방준비제도의 화폐를 찍어내는 권한을 확대해 유동성 압박을 완화시키는 취지였으나, 연방준비제도는 결국 국채를 매입했다 (75년 후 여기에 양적 완화라는 명칭이 붙게 된다). 이 움직임은 금본위제의 기본 원칙을 훼손했기 때문에 논란

의 여지가 많았지만, 어찌나 급했던지 토론도 없이 법안이 졸속 통과되었다. 후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적 방어의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8. 다시 말해,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시장에 더 공격적으로 베팅하기 위해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레버리지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가격이 높으면 생산이 늘어나는 것처럼, 주택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자 주택 공급량도 동시에 증가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 반대의 길을 갔어야 했다.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고 베팅하는 투자자라면 해당 자산을 매각하거나 레버리지 비율을 낮추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투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기관이라면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버블의 시대에는 이런 터무니없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이다.


9. 이에 더해, 많은 소비용 자금이 모기지나 다른 형태의 부채를 통해 조달되었다. 투자가 아니라 소비를 위해 사용되는 자금을 부채로 조달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은 위험 신호이다. 왜냐하면 투자는 소득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지만, 소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10. 이러 혁신은 가계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신용시장에 얼씬하기도 힘들었던 고리스크의 채무자들에게도 신용 공급원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폭발적 증가는 이러한 새로운 신용 공급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투자은행에 넘기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모기지 대출기관은 모기지를 승인할 때 리스크에 대해 묻고 따질 필요가 없었다. 투자은행들은 모기지를 패키지화해 투자자에게 팔기 바빴다. 투자자들은 동일 신용등급의 다른 자산에 비해 5 베이시스 포인트의 추가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출 기준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리하여 약간의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투자은행은 대출 인수를 거부하고 모기지 대출기관은 손실을 봐야 했다.

.....서브프라임 대출기관을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은 초기 채무불이행'이다. 대출을 인수한 투자은행과의 계약에는 채무자가 초기에 채무를 불이행하면 대출기관이 해당 대출을 투자은행으로부터 되사오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사기가 아니라면,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2006년 당시 업계 2위를 달리던 뉴센추리는 12월에 초기에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는 비율이 전체 대출의 2.5%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투자은행들과 투자자들이 대출을 되사가라고 요구했지만, 뉴센추리는 자금이 없었다. 뉴센추리의 규모가 가장 크긴 했지만, 이외에도 수십 개의 소형 서브프라임 대출기관들도 이런 식으로 지난 몇 달 사이에 파산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11. 동시에 단기 금리가 상승하여 수익률 곡선이 완만해지거나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유동성이 떨어진다. 현금처럼 보유 기간이 짧은 자산은 수익이 증가 함에 따라 보유 수익률이 증가한다. 보유 기간이 긴 자산(예: 채권, 주식, 부동산)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자산은 보유 기간이 짧은 자산과의 스프레드가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자금이 금융시장에서 빠져나가고 그 결과 자산 가치가 하락한다.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음(마이너스)의 자산효과를 만들어내고, 소득과 지출을 더 감소시켜 다시 경제에 되먹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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