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시 늘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련한 증권회사 영업자는 이렇게 말한다. 광고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불러들일 수는 있지만, 이 고객을 계속 붙잡기 위해서는 사심 없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월 스트리트에서 정말로 성공한 사람들이 사실 놀라울 정도로 말수가 적다는 사실을 몇 차례나 직접 목격했다.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수다스럽게 떠들어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반면 성공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결점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이들이 성격적으로 말수가 많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습관적으로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생각은 너무 적게 한다.


2. 찰리는 공격적인 광고와 판촉 활동을 통해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고른 보통주 포트폴리오에 투자한다면 배당금 수입의 증가와 주가 상승을 감안할 경우 추가적인 리스크 부담 없이 평균 이상의 수익률이 보장된다는 점을 널리 알렸다. 체계적인 주식투자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고수할 경우 개인투자자도 상당한 금융자산을 축적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경제적인 생활수준을 몇 단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게 찰리의 믿음이었다. 찰리는 한마디로 도시는 농촌이든 미국의 모든 중산 층 가정이 구입해서 굴릴 수 있는 믿음직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헨리 포드의 철학을 좇아 미국의 수백만 보통사람들에게 건전한 투자 원칙 을 가르치고, 또 이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경제 적인 지위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서비스 조직을 꿈꿨던 것이다.


3. 금융서비스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이미 찰리는 수십 년 뒤 에나 널리 알려질 수많은 원칙과 개념을 주장했다. 처음부터 그는 메릴린치에서 일하는 모든 브로커들에게 확실하지 않은 루머나 귀에 솔깃한 비밀정보, 단기에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고객을 현혹 시키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고객들이 스스로 설정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게 브로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확신 했다. 따라서 거래량 늘리기(브로커들이 단지 거래수수료를 확보할 목적 으로 고객들에게 교체매매를 권하는 관행)는 비난의 대상이었고, 내부 규정을 준수하지 못한 브로커들은 사직을 권고 받았다. 찰리는 특정 종목의 매수를 권유하기에 앞서 브로커는 반드시 특정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의 투자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이자나 배당금 수입만으로 살아가는 은퇴한 고객들에게는 절대로 투기적인 종목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장 잠재력이 높고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최대한 노력하라고 찰리는 요구했다. 찰리는 소액 투자자는 거액을 투자하는 큰손이든 모든 고객들에 게 적절한 정보를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사하라, 그리 고 투자하라. (Investigate, then invest.)” 이 말은 그가 1911년 이후 계속해 서 강조한 슬로건이었다.


4. 브로커들도 고객들에게 메릴린치와 거래할 경우 유리한 점이 무엇인지, 또 뛰어난 조사부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와 투자의견 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게 됐다. 브라운에 따르면 이 같은 파격적인 보상체계는 메릴린치의 브로커들이야말로 “고객들의 경제적 이익에 진정으로 부합해야만 유가증권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한다”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려는 것으로, 메릴린치의 마케팅 전략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 수수료 수입을 얻기 위해 브로커가 억지로 거래량을 늘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차원 높은 보 상 및 마케팅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메릴린치는 다른 증권회사에 비해 결정적인 경쟁적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5. 먼 훗날 찰리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돌이켜보니 잘못된 원칙을 지지했었다는 것이다. 진실과 정직이라는 원칙의 준수가 영원한 우정이라는 이상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다. 카이사이 회원을 징계하려던 버즈아이를 비롯한 강경파들의 행동에는 악의적 이거나 부적절한 점이 없었다. 찰리는 진실성을 중시하지 않는 증권업에 종사하면서 크든 작든 모든 문제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게 중 요하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았던 것이다. 

6. 우리 영업사원이 고객과 나누는 전화통화를 들어보니 특정한 거래에서 고객이 얻게 될 이익과, 특정 종목에 투자하는 이점에 관해 얘기할 때 여전히 나쁜 관행이 남아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절반만이 진실인데도 엄청나게 과장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거짓말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월 스트리트에서 많은 사람들은 메릴린치가 왜 이리 잘하는지 궁금해하지만, 막상 린치 씨와 나의 고객들이 우리 두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챈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점은 우리 회사의 성실성과 정직함에 대해 고객의 신뢰를 얻는 순간 추가 주문은 따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전한 투자는 일부 투기성 있는 거래는 모든 종목을 거래하는데 반대하지 않지만 우리의 허락을 받지 않고 투자를 투기로 바꿔놓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둡니다. 여러분이 실행하는 한 나하나의 거래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올린 가장 소중한 무형의 자산을 늘릴 수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7. 1928년 초 찰리는 주가가 정점에 도달했고 건전한 투자자라면 이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해 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증시 전문가나 경제전문가들 가운데 주식시장 대폭락의 가능성을 예견 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디까지 올라 갈 지 의구심을 품은 사람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우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기업 이익이 늘어나면서 주가는 계속해서 올라가기만 했다. 주식시장의 급격한 조정이 곧 닥칠 것이라고 확신한 찰리는 곧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1928년 3월 31일 메릴린치 고객들에게 보낸 친필 서한에서 그는 비상벨을 울렸다. 주가 대폭락을 18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8. 44세의 나이에 금융업을 포기하고 식료품 체인점 산업으로 전공을 바꾼 찰리의 극적인 결정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부정적인 이유로는 1928년과 29년에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파트너들이 시간을 너무 질질 끄는 바람에 다른 파트너들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것이다. 불확실한 시기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게 그의 모토였던 반면 다른 파트너들은 욕심과 절세를 앞세웠다. 린치조차도 그의 말을 안 들었다. 결국 찰리가 이기긴 했지만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의 인내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두 번 다시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그는 말을 안 듣는 파트너들이 없는,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회사를 원했다.

9. 거래위원회(SEC)나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도 재무제표 공개를 권유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증권업에서든 투자 은행업 분야에서든 파트너십 회사나 개인회사가 이와 비슷한 보고서 조차 공개한 적이 없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그랬다. 
찰리는 자발적으로 이 같은 조치를 취할 경우 100년 이상 월 스트리 트에 온존해 온 비밀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이처럼 과감하게 행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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