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역사의 물줄기는 한껏 갈라졌다가도 다시 합해진다. 삼가분진 즉 세 가문이 진리를 빛으로 분열시킨 역사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기본 소양과 리더십의 조건이 무엇인지 짐작 할 수 있다. 즉 리더십이란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 스스로 겸손하고 신중하게 나랏일을 처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지도자를 기꺼이 따르게 하고 자발적으로 일하게끔 만드는 능력이다. 또 우수한 인재란 그 누구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함도 더불어 알 수 있다. 맡은 일이 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 혹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지도자의 위치에 서야 할 인물이라면 더더욱 철저한 원칙을 가지고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 노력한다고 세상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단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상황에 맞게 변화 하지 않으면 이내 난관에 부닥치고 만다. 따라서 확고하지만 그 길을 살피며 타당하고 적절하게 걸어가는 일도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큰일을 이를 사람이 마땅히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1. 사실 팔자가 좋지 않고 운이 없었다는 것은 실패자들이 문제를 회피 할 때 자주 들이대는 핑계이다. 유방은 나서는 전쟁마다 패배했지만 그럴수록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싸움터에 나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항우는 한 번 패했다고 해서 주저앉아 자살을 선택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평가했다. "인간사의 성패는 하늘과 관계가 없는데도 항우는 자신의 문제를 하늘 탓으로 돌렸으니 이 어찌 황당무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광도 "어찌 하늘의 일을 따질쏘냐?”라고 평함으로써 초한전쟁의 결과와 항우의 운명이 하늘과는 관계없는 일임을 알렸다. 사마천과 사마광 모두 항우의 실패가 의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패왕이 된 뒤 선현들의 경험을 본받지 않고 생소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정치적인 혜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 "일이 코앞에 놓였으니 선생은 사양 마시오." 그러자 이극은 위문후에게 인재를 택하는 기준 다섯 가지를 알려 주었다. 물고기를 직접 잡아 주기보다 잡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사람을 쓸 때는 그가 평소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보고, 부유할 때 누구에게 베풀었는지 살피며, 높은 지리에 올랐을 때 어떤 이를 등용 하는지 보고, 궁할 때 하지 않는 바를 살피며, 가난할 때 취하지 않는 바가 무엇인지 보면 됩니다. 그 사람의 행동과 사람됨을 관찰하시면 충분히 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위문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선생은 이제 가서 쉬시오,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소.”


3. 이처럼 성공 인사, 또는 전도유망한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에게 겸손 이란 성공적인 인생을 담보하는 통행증이나 다름없는 반면, 일반 서민 들에게 겸손은 평판 형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품성이다. 전자방도 위격으로 하여금 이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고자 일부러 그를 무례하게 대했던 것이다.

전자방이 위문후에게 군주는 악관을 살피는 데 밝아야지 소리에 밝을 필요는 없다'라고 한 것이나 위격에게 부귀한 자와 가난한 자 가운 데 누가 더 오만하다고 질책당하겠느냐' 라고 한 것은 모두 한 차원 높은 경지에서 군주가 갖춰야 할 소양을 깨닫게 한 것이지, 구체적인 측 면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알려 준 것이 아니다. 이 점이 바로 이극이 ‘위성이 적황보다 안목이 높다' 라고 말한 이유다.


4. 탁월한 감각으로 일의 전반을 꿰뚫어 보다.

알려진 바로 장량은 길에서 만난 한 노파에게서 병서를 받은 뒤 병법에 '정진해 훗날 유방의 최고 참모가 됐다고 한다. 그 역시 수백 명의 군사 를 이끌던 지도자였지만 결국 유방을 섬기기로 결정했던 것은 남에게 없는 힘을 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방은 전략을 논할 때도 남들과 달리 탁월한 감각으로 일의 전반을 꿰뚫어 보았고 이 때문에 장량은 "패공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장량이 유방을 돕고자 했던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장량 같은 귀족 출신이 출신 성분이나 교양, 지식이 변변찮은 유방에게서 지도자로서의 매력을 느껴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면, 이는 분명 유방에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인간적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5. 제도적인 틀과 문화적인 힘으로 사람을 다루다.

유방이 한신을 중용했다는 사실보다는 잘 다룰 줄 알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사람을 다루는 일은 두 가지 수단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제도적인 틀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힘이다. 제도적인 틀은 인간의 행의 를 제도라는 수단으로 성형하지만 문화적인 힘은 상대의 사상을 움직인다. 이를테면 현장법사가 천방지축 손오공을 꼼짝 못하게 했던 긴고주라는 주문은 일종의 제도적인 틀이다. 반면 제갈량이 주군인 유비가 죽은 뒤에도 끝까지 충성을 다쳤던 것은 우리가 그에게 미쳤던 문화적인 영향력 때문이지 결코 제도적 의무 때문에 강요된 행동이 아니었다.


6. 자존, 즉 자아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다. 그러나 진나라의 통치자들은 인간에게 먹고 마시며 안전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삶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상앙은 이를 '농사'와 '전쟁'으로 봤다. 이미 나라가 안정된 이상 밭을 갈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 그 어떤 문화적인 요소도 불필요하다고 여겼는데,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경시한 막무가내식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7. 한신은 이좌거의 건의 ‘즉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치지 않고 강한 것 으로 약한 것을 친다' 라는 전략을 받아들였다. 이좌거의 추측대로 과연 연나라는 바람에 쓰러지는 풀대처럼 투항할 의사를 밝혔다. 연나라다음의 목표는 제나라였다.


8. 다시 말해 군주란 음악을 담당하는 악관이 제 소임을 다하는지를 살 피야지 악관이 해야 할 구체적인 업무까지 간섭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는 말이다. 위문후가 소리에 밝았던 것처럼 악관에 대해서도 밝은 분별 력을 가지지 못할까 염려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는 무슨 뜻일까? 군주가 해야 할 일은 인재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즉 인재에게 맡겨진 일이 적절한지 제대로 시행되는지 살피면 될 뿐 일의 경과에 간섭해 기계적으로 이러쿵저러 쿵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런 일은 심사하는 부서가 감당하면 그만이다. 지도자가 업무에 간섭한다면, 권력을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첫째 결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없고, 둘째 지도자의 집행력이 크게 손상되고 만다. 전자방은 자공의 이름난 제자답계 탁상공론만 일삼는 책벌레와는 달리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9. 환경을 살피지 못하면서 어찌 주변을 설득하겠는가?

오기가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환경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공과 업적을 쌓아 성공하려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살피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는 도덕을 숭상함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곳일진대 그런 곳에서 단순히 출세만을 위해 도덕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으니 어찌 오래 버틸 수 있었겠는가?


10. 오기는 노나라에서 위나라, 초나라로 옮겨 다니는 와중에도 어디서 든지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디서도 끝까지 버티지 못 한 채 배척당하다가 종국에는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오기의 운명을 돌아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11.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영웅을 질투하는 배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겁쟁이나 몹쓸 악당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숙좌만 하더라도 훗날 위혜왕! 校處上에게 위앙, 즉 상앙을 천거하는 혜안을 보이는데 그런 것만 보더라도 그 말이 이해된다. 범수 또한 진소왕鬪을 보좌해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데 먼 나라와 친교하고 근방의 나라를 공격하는 '원교근공 成文 외교정책도 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당신을 질투하고 배척한다고 해서 단순히 그를 '나쁜 사람'으로 도식화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오기의 문제는 단순히 성격적인 부분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 시대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겨난 것이다. 환경을 우리 자신에 맞춰 바꿀 수는 없으므로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12. 그러던 중 공사가 시작된 지 수 년이 지나고 나서야 정국의 진짜 정체와 계략, 즉 관개공사를 명분삼아 진나라의 국력을 쇠하게 하고 동진 및 육국 정벌 계획을 저지하려 했던 계책이 드러났던 것이다. 간첩 한 명 때문에 진나라 전역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어쩌면 그 무렵 불거져 나온 간첩 사건이 우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왜일까? 당시 진나라는 이미 뭇 나라의 관심과 질투가 집중돼 간첩이 침투할 만큼 무척 강력한 나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13. 여불위는 상앙이나 오기처럼 위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위나라 복양 陽오늘날 허난성 푸양시) 출신으로 보통은 한나라 양적(오늘날 허난성 위저 우시)에서 장사를 했다.

한번은 조나라에서 장사할 때였다. 그는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던 진나라 왕족인 이인이라는 공자를 알게 된다. 그를 만나는 순간 여불위는 이 실의에 찬 왕자 이인을 잘만 이용하면 훗날 자신도 한몫 차 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귀한 물건은 미리 사 놓으면 장 차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라는 뜻의 '기화가거居' 라는 고사성어도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14. 항우는 어릴 적부터 글공부를 했지만 진전이 없어 때려치있고도 어느 정도 배우면 역시나 진전이 없어 그만두곤 했다. 조카의 이 같은 태도에 숙부 항량이 화가 치밀어 꾸짖기도 했지만 항우는 도리어 이 렇게 말하곤 했다.

"글이란 자기 이름 석자만 쓸 줄 알면 족하고 검술이란 한 명의 적과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소자는 만인의 적을 상대해서 이 길 수 있는 병법을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항량은 병법을 전수하려 했지만 역시나 항우는 깊이 들어가기도 전에 때려치우고 말았다. 한마디로 인내심이 없었던 것이다.


15. 과연 항우는 그 뒤의 전쟁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을까? 적의 군사가 투항했는데도 오히려 파묻어 몰살시켰으니 다음번 싸움에서 그 누가 항복하겠는가? 어차피 투항해도 죽는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 아닌가? 이 때문인지 항우는 이후 전투에서 매번 힘든 싸움을 이어 나가야 '했다. 반면 유방은 수월하고 순조롭게 서진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항우 가 유방보다 늦게 함양에 도착했던 것도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도 모른다.


16. 일찍이 유방과 항우는 순행에 나섰던 진시황의 행차를 보고 둘 다 부러워 마지않아 하는 말을 내뱉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유방은 "사내로 태어났으면 저 정도쯤은 되어야지" 라고 한 반면 항우는 "언젠가 저 놈을 쓰러뜨리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해야겠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유방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신중했지만 항 우는 충동적인 편이었다. 마음속의 포부를 표현하는 이 같은 차이는 둘의 성격과 운명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17. 유방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간혹 상대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가끔 상대를 존중한다고 볼 수 없는 과장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포가 큰 결심 끝에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의 진영 을 찾아갔지만 유방은 버선발로 나가 환대하기는커녕 한쪽 구석에 앉아 발이나 씻고 있었으니 상대가 화를 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식 이었다. 이처럼 그는 겉치레나 체면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영포가 살 집과 가재 도구 등 물질적인 것을 융숭히 제공했는데 그 수준이 유방 자신의 것을 넘어설 정도였다. 체면치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속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만 모여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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