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 서양과 나머지 세계
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김정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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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근 500년 동안 서양의 문명은 동양을 포함한 전 세계를 지배해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 공용어로 배우는 언어부터 문화 전반에 익숙하게 퍼져있는 것은 모두 서양의 문명입니다. ’금융의 지배‘등 빅히스토리 도서들로 유명한 니얼퍼거슨 교수는 여섯가지 측면에서 서양이 동양을 앞서갈 수 있었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자유무역과 경쟁을 장려하는 제도

서양이 동양보다 앞설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자유무역과 경쟁을 장려하는 제도를 꼽았습니다. 중국처럼 일권화된 지배체제를 성립하지 못 한 서양은 자유로운 무역과 경쟁을 장려하기에 적당한 환경이었습니다. 

자유무역과 경쟁은 상업적 측면에서 생산량의 급격한 확대를 가져왔습니다. 산출물이 부족했던 초기 자본주의시대에 공급은 곧 바로 수요로 이어졌습니다. 자유무역은 생산을 해서 물건을 팔 수 있는 지역의 확대를 의미했고, 또 경쟁상대의 증가도 의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량생산체제가 구축되고 생산의 효율이 증가하는 효율성 확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중국을 포함한 동양은 중앙집권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경쟁이 장려되기도 했지만, 현재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경쟁의 목표였지요. 더 나은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판매하는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경쟁이었지요.  


2, 과학발전과 이를 뒷받침할 정치적인 후원

과학의 발전은 서양문명의 동양 지배를 급속화 시킨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우수한 과학기술은 곧 바로 뛰어난 무기의 생산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제도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이슬람권은 종교적, 정치적인 반발로 과학제도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뒤에 두었습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글을 쓰지않고도 대량의 인쇄물 생산이 가능한 시대에도 이슬람문명은 필사를 종교적으로 숭배하여 인쇄물 생산을 방해했지요. 

이는 앞서 말했던 중앙집권체제로 자유무역과 경쟁제도를 장려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판단됩니다. 통치체제의 유지에 기존의 가르침 이외의 것이 중요시되는 과학교육 등은 지배층 입장에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반면, 서양은 무언가 좋은 것이 생겨나더라도 중앙적 차원에서 제지를 가할 힘이 부족했습니다. 통일된 왕국의 형태가 아니었으니까요.


3.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법치제도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법치제도는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 요인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쌓은 부가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 한다면, 부를 축적할 유인이 없어질 테니까요. 이런 법적인 제도의 완비와 미비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사례입니다. 북아메리카는 헌법이 엄격하게 지켜진 반면, 남아메리카는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수준이었으니까요. 


4. 의학

의학기술 역시 서양의 지배를 가능케 해준 힘이었습니다. 서양에서 발전한 공중 보건의 개념은 유아 사망률의 하락, 기대수명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발달한 의학은 잘 모르는 환경에서도 사람의 인체가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 역시 증가시켜왔습니다. 인류가 종말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질병에 의한 멸종이라고 하죠. 의학의 발전 역시 서양의 동양 지배를 가능케 해준 배경으로 꼽혔습니다. 


5. 소비사회 

소비사회 역시 서양의 지배를 가능케 한 요인이었습니다. 소비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의류소비입니다. 의류는 한 개인의 개성을 나타낸다는 점과 또, 단가의 하락을 위해 대량생산을 시작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ㅏㅏ사람의 흥미를 끄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나 자신과 관련된 일’입니다. 소비사회로의 이행은 서양의 지배가 가능하게 된 요인이었습니다. 알려진대로, 소비사회는 공산주의 역시 무너뜨렸습니다. 


6. 직업윤리와 언어윤리 그리고 종교

종교 역시 중요한 역할을 끼쳤습니다. 그 중에서 근면, 성실 그리고 저축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은 초기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직업윤리 위에 자본이 축적되면서 대량 생산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과잉 공급의 시대가 되기까지 했으니까요. 


종교는 중요하다. 이미 앞에서 유교의 '안정화 윤리' 때문에 서유럽에서 혁신을 몰고 온 경쟁적인 제도상의 뼈대가 중국에서 발달 하지 못했다고 한 바 있다. 설사 중국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이은 『유교와 도교』(1915)에서 묘사된 것처럼 정체되고 늘 똑같은 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앞에서 이슬람 지도자 이맘과 물라의 권력이 어떻게 이슬람 세계에서 과학 혁명의 불씨를 꺼뜨렸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남아메리카의 경제 발전을 저해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서양 문명 역사에 종교가 가져다준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신교가 서양 사람들을 일하고 저축하고 글을 읽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산업혁명은 분명 기술적 혁신과 소비의 산물이었다. 또 노동의 강도, 시간의 증가와 함께 저축과 투자를 통한 자본 축적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적 자본의 축적에 의존했다. 신교가 장려했던 교육은 이 모두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다시 생각 해보니 신교의 직업윤리뿐 아니라 '언어'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서양 혹은 적어도 그중 상당 부분은 종교와 함께 윤리마저 잃어버렸는가?

- 본문 중 -


시빌라이제이션을 읽고

두꺼운 책의 두께에 비해 정말 재미있게 읽은 도서였습니다. 서양은 어떻게 해서 동양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을까요? 앞으로도 서양의 지배는 이어질까요? 이 책을 관통하는 대 주제입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차이가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관련된 도서들을 더 읽어보고 싶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 개화론’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독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도서문구] 시빌라이제이션 기억에 남는 문구

역사에 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과거는 하나다. 그리고 비록 과거는 지난 일이지만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경험과 내일,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첫째, 현재 세계 인구는 지금껏 지구에 살다간 인구 전체의 약 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의 수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를 약14대 1로 압도하는데도 우리는 감히 그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과거는 우리 앞에 놓인 찰나의 현재와 수많은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연구가 아니다. 시간 그 자체의 연구다.

론 경쟁은 매우 치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를 향한 욕구나 혁신을 장려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중국 문명의 핵심이었던 문자는 보수적 엘리트 집단을 생산하고 일반 대중이 그런 계층에 진입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포르 투갈어, 영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같은 유럽의 언어들은 엘리트 집단의 문학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단계별 교육만 으로 많은 사람이 비교적 간단하고 쉽게 배워 쓸 수 있었으니 그 차 이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범인(凡人)은 비범한 것을 보고 의문을 품지만 현자는 평범한 일에서 의문을 찾는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명나라 통치 방식에는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 너무 많았고 새로운 것은 너무 적었다

서양인과 최초로 충돌한 것은 1904년 만주를 두고 벌인 러일전쟁이었다. 일본이 바다와 육지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는 곧 세계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다. 서양 패권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아니라는 사 실이었다. 제대로 된 제도와 기술만 있으면(제대로 된 옷은 말할 것도 ) 아시아제국도 유럽제국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1910년에 경제예측가가 있었다면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정말 그랬다. 198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사상 최초로 영국을 넘어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10년에서 1980년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면서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뉜 것 역시 불변의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적 반대파를 억누르는 데는 능한 반면 서구의 소비 사회에 저항하는 능력은 약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동독인들이 서독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서구 패션의 영향은 막아낼 길이 없었다 (서독의 라디오 방송은 진작부터 들을 수 있었다), 앤 카트린 헨델 (Ann Katrin Hendel) 같은 디자이너들은 곧 자신만의 서구 스타일 옷을 만들어 차에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그 녀는 청바지도 만들어 팔았다.
우리는 방수천, 침대 시트 등 데님이 아닌 것으로 청바지를 만들 려고 했다. 옷감에 물을 들이려 했지만 염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 우리가 만든 옷은 인기가 매우 좋아 내놓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슬람의 복종이라는 문명은 여전히 코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책은 무엇인가? 자유로운 개인의 거의 무한하고 강력한 힘을 신봉하는 우리의 신념은 어디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가? 그리고 형식적 지식과 기계적 학습을 기피하는 우리의 교육 이론가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러한 것을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가? 어쩌면 진정한 위험은 중국의 부상도, 이슬람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아니라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우리 문명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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