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 출간기념50주년 제4판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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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생각하면 결국 과학의 발전은 직선적인 것이라고 말하기가 힘들어진다.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은 덜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의 변화이다. 과학의 발전은 세상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향해서 누적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단절적인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는다는 것이 쿤의 주장이다. 이는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진화론과 유비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가 미리설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가 아니듯이, 과학의 발전도 궁극적이고 유일한 진리를 항해 나아가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계의 고전 - 패러다임의 변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말할 필요 없는 과학계의 고전입니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기존과학계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온전히 뒤바꾸었기 때문이죠. '패더라임의 변화'라는 용어가 있기 전까지 과학은 기존의 이론이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기존 이론에서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어야만 좋은 이론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지식은 누적적으로 쌓여온다고 생각했으며, 기존의 이론이 설명 못하는 부분은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었지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서 보아야할 것으로 인식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토머스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이란 용어는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하나의 틀을 말합니다. 마치 뉴턴의 고전 물리학처럼 기초적인 가정들로 체계지어진 세상이 있는 하나의 틀입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못 한지라 이 틀은 어떤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항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패러다임이 한계가 있을 때, 기초적인 가정부터 바꿔서 봐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서 제시했던 것이지요. 


영원한 변화 

도서에도 언급되어있듯이,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서 세상을 영원히 변화시켰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하는 어떤 부분이 있을 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할 수 있겠다는 인식을 이제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돈 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처럼 말이지요. 물론, 인간에게는 아직 권위의식이라는 것이 남아있어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것이 확확 쉽게쉽게 나타나지는 못 하겠지만 말이지요.


처음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기 전에는 토머스 쿤이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하나하나 설명해놓는 방식의 도서인 줄 알았습니다. 그 보다는 과학사에서 어떻게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도서랍니다. ^^ 또, 생각보다 내용이 짧아 읽기에 부담도 적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독서 되세요 :)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결국 과학의 발전은 직선적인 것이라고 말하기가 힘들어진다.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은 덜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의 변화이다. 과학의 발전은 세상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향해서 누적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단절적인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는다는 것이 쿤의 주장이다. 이는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진화론과 유비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가 미리설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가 아니듯이, 과학의 발전도 궁극적이고 유일한 진리를 항해 나아가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론은 정상과학의 기존활동을 지배하던 규칙에서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미 성공적으로 완결되었던 과학 업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것이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응용 범위가 얼마나 전문적이든 간에, 새로운 이론이 이미 알려진 것을 단순히 누적적으로 보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거나 혹은 전혀 없다. 새로운 이론이 동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이론의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가 필요한데, 이는 본연적으로 혁명적인 과정이며, 한 사람에 의해서나 하룻밤사이에 완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과학사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이들에게 이 과정을 한순간의 독립된 사건으로 다루도록 종용하지만, 실제로 과학사학자들이 이 광범위한 과정의 정확한 시점을 확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이 여타 경쟁 상대들보다 더 좋아 보여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직면할 수 있는 모든 사실을 다 설명해야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결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프랑크는 그의 『과학적 자서전(Scientific Autobiography)』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서글프게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새로운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과 그 비슷한 여러 사실들은 너무 널리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재평가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결국 과학의 발전은 직선적인 것이라고 말하기가 힘들어진다.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은 덜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의 변화이다. 과학의 발전은 세상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향해서 누적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단절적인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는다는 것이 쿤의 주장이다. 이는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진화론과 유비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가 미리설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가 아니듯이, 과학의 발전도 궁극적이고 유일한 진리를 항해 나아가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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