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이지 않은 역사 기록과 통계 해석이 근대성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것들은 평화로웠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망상 중의 망상임을 보여 준다. 요즘 어린이 책들은 원주민의 삶을 낭만화하여 그리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들의 전쟁 사망률이 현대 세계 대전의 사망률보다 높았음을 안다. 중세 유럽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정교하게 세공된 고문 도구들을 간과하고, 살해 위험이 오늘날의 30배였다는 사실에 무지하다. 많은 사람이 향수를 느끼는 그 시절에 간통자의 무고한 아내는 코가 잘렸고, 일곱 살 소녀는 속치마를 훔쳤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했고, 죄수의 가족은 족쇄를 느슨하게 해 주는대가로 돈을 냈고, 마녀는 톱으로 몸이 반으로 갈렸고, 선원은 곤죽이되도록 채찍질을 당했다. 노예, 전쟁, 고문을 나쁘게 보는 우리의 도덕적상식은 옛날 사람들에게 달콤한 감상주의로 보였을 것이다. 보편 인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역사에 집단 살해와 전쟁 범죄의 기록이 부족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의 두 세계 대전과 많은 집단 살해로부터 70년쯤 흐른 현재에 돌아보면, 그것은 더 끔찍한 격변의 등장을 알리는 조짐도 아니었고 세계가 적응해야 할 새로운 표준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국지적 최고점이었고, 이후에는 조금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줄곧 내리막이었다. 그런 사건을 낳았던 이데올로기들이 현대성에 침투하여 영원히남는 일도 없었다. 그런 이데올로기들은 과거의 유물이 되살아난 것뿐이었고, 결국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그러나 우리의 행성이 고정된 중력 법칙에 따라 우주를 돌고 또 도는동안, 우리 종은 그 수를 줄이는 방법을 계속 찾아냈다. 그리하여 우리중에서 점점 더 많은 수가 평화롭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감소는 분명 우리가 음미할업적이다.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든 문명과 계몽의 힘들을, 우리는 마땅히소중히 여겨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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