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맑은 눈을 가진 그녀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어제 강의가 끝난 후의 일이다.


그녀는 약간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최근에 한국국적이 나왔어요. 

이름은 한국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는데 자꾸만 걱정이 되네요.

학교에 갔을 때 혹시라도 내 이름 때문에 우리 아이가 놀림을 당하진 않을지..."


그녀의 아이는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데도 벌써부터 학교에 갔을 때 걱정을 한다.


아닌게 아니라 많은 이주여성들이 고민을 한다.

1998년 이전에 결혼을 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조건 한국국적이 주어졌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한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이름을 바꾸지 않았던 이들은 이름 때문에 온갖 설움을 당하다 결국 한국이름으로 바꿔버렸다.

백화점에서 카드를 만들 때도 한국식 이름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후 이름을 바꾼 여성도 있다.


최근에는 학교에 아이를 보낸 선배들 얘기에 고민이 깊어진다.

어떤 여성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학부모 회의에 갔더니 참석한 어머니들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이 불리자 사람들이 모두 뒤돌아보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Thi 가 이름 중간에 들어가는 내 이름.

누가 들어도 한국이름으로 들리지 않은 내 이름 때문에.


그리고 어제 내게 다가와 이름을 바꿔야할지 묻던 여성은 사실은 이미 바꿀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이름 바꾸는 거 어렵지 않으니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내 제안에

이름을 바꾸는 게 낫겠다고 스스로 대답하고 있더라는.

그리고 옆에 앉은 친구조차 꼭 바꾸라고 한다.

아이가 혹시나 엄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면 어쩌냐고.


엄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할 거라는 걱정이 아니라면 그녀들은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과 이름에 담긴 추억을 버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결국 그들도 아이 걱정에 이름을 바꿀 결심을 한다.


결국 그녀들의 이름을 바꾸도록 만드는 것은 한국사회다.

다름을 요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옹졸한 사회.

그런 한국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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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6-1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주 전에 봤던 인간 극장에서 외국인인데 국내로 시집온 여자분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이, 집안 윗사람이 그분의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지어주는 것을 보고
쓴 웃음이 좀 들었습니다. 이름이란 것을, 누군가가 함부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나라에 시집왔으니 당연히 한국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좀 위화감이 들었구요.
특히 이름 지어주신 윗사람이 배우신 분이란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네, 다름을 요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옹졸한 사회란 점에서, 저도 공감하고 안타깝습니다.

rosa 2012-06-20 10:34   좋아요 0 | URL
당사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당연히 이름을 바꾸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문제는 나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외부에서 바꾸라고 강요하는 경우와 자녀가 차별받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꾸게 되는 경우겠지요.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한국사람들은 너나없이 너무 간섭이 심하다고. 버스타고 다니기 어렵고 불편해서 택시타면 그렇게 해서 언제 돈 모으겠냐고 나무란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