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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의 시인 로니
재클린 우드슨 지음, 김율희 옮김, 조경현 그림 / 다른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작고 아담한 책을 읽으면서, 울고 웃었다. 열한살 로니의 시각으로 쓰여진 60편의 시들은 한 소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는 "성장시"이다. 시의 형식을 빌어 한 아이의 삶과 생각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구나,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로니는 화재로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따로 떨어져 에드나 아줌마 집에 와서 살고 있다. 그는 어렸을적 다정했던 부모를 기억하고, 화재의 악몽과 부모의 죽음을 기억하며, 현재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로니의 상황 자체는 더할나위 없이 불행해보인다. 따라서 로니의 시는 나이보다 성숙하고, 상당히 어둡고 침울하기까지 하다. 시대적 배경은 전쟁에 참전한 아줌마의 큰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1950년대 이전으로 생각된다.
로니는 아직 어린 아이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 생활하고, 백혈병을 앓는 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눈을 가끔씩 피해 엉뚱한 짓도 한다. 그런 시들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전학온 아이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로니 만의 경험에서 나온다. 자신을 돌봐주는 에드나 아줌마의 평소 답지 않은 행동을 보고, 혹시 미친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대목도 로니 답다.
행복
오늘 오후 집에 오니 에드나 아줌마가
빗자루를 들고 춤을 추고 있었어요.
마루 위를 쓱쓱 지나가는 빗자루. 아줌마는
파란 빗자루 손잡이를 꼭 쥐고 라디오를 따라
노래를 불렀죠. 뭐랄까
불쌍한 빗자루를 부엌바닥 앞뒤로
흔들며 부드럽게 구두라고 신기는 것 같았어요.
정신이 좀 나간 듯. 그 생각이 들자 난 기도했죠.
주님 제발,
아줌마가 미치지 않게 해주세요.
이제 막 여기 사는 거 적응하려는 참이거든요.
주님 제발,
아줌마와 제가 평생 사는 일은 없게 해주세요.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 저에게는 아줌마뿐이잖아요.
아줌마가 나에게 몸을 돌렸을 때 난 정말 환한 웃음이
오랫동안 아줌마의 얼굴에 머물러 있는 걸 보았어요.
우리 로드니가 부활절을 보내러 올 거란다.
우리 로드니가 정말 집에 오는 거야.
아줌마가 쓱싹쓱싹 하는 동안
난 가만히 거기 서서
내 마음이 안도감으로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아줌마의 부엌에 돌아오는 걸 느꼈지요.
(*로드니는 아줌마의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이다)
소설에서처럼 뚜렷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로니의 시들을 읽어가다보면 로니의 일상과 생각들을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해피엔딩이나 불행한 결말로 끝맺고 있지는 않지만, 다소 안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자신을 동생이라 불러 준 로드니와의 만남, 여동생과 자주 만날 수 있게 된 사연 등은 로니의 삶이 점점 따뜻해져 갈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 책의 원제는 "Locomotion", 로니의 이름이다. "내 이름"이라는 시를 보고 가슴을 울림을 느꼈다. 나도 "로코모션"이라는 흥겨운 팝송을 안다. 엄마가 그 이름의 춤을 좋아하여 아이에게 그 이름을 주었다... 한동안 그 팝송이 기억나고 입가를 맴돌아 혼났다.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남에게 불릴 때마다 엄마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로니...
시는 무척 쉽고 편안하게 읽힌다. 아이가 쓴 것 처럼 묘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가의 특별한 詩作 기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시가 아니라 외국 시의 번역이라 운율이나 시어의 조화 이런 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에 와닿고 가슴을 울리는 시라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