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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달걀 ㅣ 샘터어린이문고 6
벼릿줄 지음, 안은진.노석미.이주윤.정지윤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평점 :
"하지만 하늘나라에선 여러분과 같은 얼굴로 살고 싶어요"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검은 얼굴에 뽀글뽀글한 머리카락의 흑인 혼혈인 아빠가 까만 달걀을 가지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왔다. 달걀이 까맣든 하얗든 노랗든 그 속은 모두 똑같다. 마찬가지로 피부색은 검지만 아빠도 아들도 똑같은 한국인이다. 그렇지만 하늘나라에서는... 똑같은 피부와 얼굴을 가지고 싶다는 것. 흑인 혼혈의 부자가 이 땅에서 살면서 받아왔던 설움이 그대로 드러나서 가슴이 시리도록 아팠다.
이 책에는 다양한 혼혈인을 소재로 한 동화 다섯편이 실려 있다. 필리핀 엄마와 태국인 엄마를 둔 코시안.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 때문에 화가 나고, 엄마만 나타났다 하면 혼혈임을 알아보는 아이들 때문에 엄마가 학교에 출현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다. 그러나 엄마가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듯이 냉장고와 세탁기에 낱말카드를 붙여 엄마를 가르쳐주려 하고, 자신은 '튀기'가 아니라 '유경민'이라고 말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 따이한의 이야기는 외면할 수 없는 한국인의 잘못을 다시 들추어 낸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버린 비정한 한국인이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 왔다는 사실을...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는 일본에서는 조센징으로, 한국에서는 쪽바리로 불린다. 어느 땅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이 아이의 상황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어느 나라도 진정한 조국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매우 특이한 존재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혼혈인들은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을까. 가수나 운동선수 같이 성공한 혼혈인도 있지만 그들만이 혼혈인 모두의 역할모델일 수는 없다는 머릿말 지적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도 평범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인데 그러한 권리는 지금까지 사치였던 것이다.
농촌 지역에는 코시안 아동이 초등학생의 많은 비율을 점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의혹의 눈으로 쳐다 보기도 했던 서양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의 결혼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들과 이들의 자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차이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그것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분명 작은 보탬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