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 그해  봄내내 서울과 경기도를 전전했다.

3월초인가.. 아침햇살이 좋은 어느날 면접보러 가다 면접펑크내고 무작정 들어간 종로의 한 극장(현재의 서울극장 인듯)에서 조조로 본 영화  클래식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며 심신이 지쳐있을 때였는데 영화도 좋았고 사운드 트랙도 너무 좋았다.  

영화 ost중에서 한성민의 <사랑하면 할수록>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그만 눈물을 찔끔..

<사랑하면 할수록>외에도 자탄풍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도 눈물샘 자극하는 명곡들.. 

 

<사랑하면 할수록>,한성민

감상은 요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9iMU4cqrl5E

 

노을 지는 언덕너머 그대 날 바라보고 있죠 차마 말하지 못한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나요 왠지 모르게 우리는 우연처럼 지내왔지만 무지개 문 지나 천국에 가도 나의 마음 변함없죠 사랑하면 할수록 그대그리워 가슴아파도 이것만을 믿어요 끝이 아니란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

https://www.youtube.com/watch?v=5ysdHjaeGGU

 

너에게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 시간을
환하게 비춰 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너에게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초록의 슬픈 노래로
내 작은 가슴속에 이렇게 남아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에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너에게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너에게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풋풋한 사랑의 추억들로

가득찬 너무나 아름다운 명작영화-클래식

 

<영화 클래식 명대사>

 준하가 주희에게

 

 창밖을 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니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귀를 기울여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니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눈을 감아 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니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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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때 늘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동기가

있었다. 무슨 노래를 듣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내 귀에

다가 이어폰 한쪽을 넘겨받고 들은 노래가 바로

 

메탈리카the unforgiven

 

이날 우리는 수업을 째고 508번을 타고 동부정류장으로

가서 포항행 버스에 올랐고 칠포해수욕장으로 가는 내내

이 노래를 들었다. 바닷가에서 둘은 대화도 없이

소주를 나눠 마셨다. 바람이 미친듯이 부는 5월말이었다.

 

노래 초반에 기타사운드 리듬과 드럼연주는 환상적이다.

메탈리카 노래중에 그나마 듣기가 수월한 곡.

 

감상은 요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Ckom3gf57Yw

 

The Unforgiven

New blood joins this earth
And quikly he's subdued
Through constant pain disgrace
The young boy learns their rules

With time the child draws in
This whipping boy done wrong
Deprived of all his thoughts
The young man struggles on and on he's known
a vow unto his own
That never from this day
His will they'll take away

What I've felt
What I've known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
Never be
Never see
Won't see what might have been

What I've felt
What I've known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
Never free
Never me
So I dub thee unforgiven

They dedicate their lives
To running all of his
He tries to please them all
This bitter man he is
Throughout his life the same
He's battled constantly
This fight he cannot win
a tired man they see no longer cares
The old man then prepares
To die regretfully
That old man here is me

What I've felt
What I've known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
Never be
Never see
Won't see what might have been

What I've felt
What I've known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
Never free
Never me
So I dub the unforgiven

You labeled me
I'll label you
So I dub the unforgi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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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8번은 제가 졸업한 대학교로 가는 버스였어요. 학교 수업 일찍 마치면 저는 508번 버스를 타고 동성로나 광장코아에 내려서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았습니다. ㅎㅎㅎ

파트라슈 2015-06-18 11:08   좋아요 0 | URL
요즘도 508번은 여전히 그 노선으로 다니고 있던데요. 가끔 지나가는 버스보면 옛날 생각 나죠. 508번 노선 종점이 성서계대하고 대구대.. 아무튼 같은 버스 타고 다니신 분 보니 반갑습니다. 아마 과거 어느날 cyrus님하고 저하고 같은 버스 안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을 겁니다ㅎㅎ
 
탐독 - 유목적 사유의 탄생
이정우 지음 / 아고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 이정우가 쓴 자신의 지적 순례와 독서인생 에세이.


 철학자 이정우 이력은 좀 특이하다. 대학 학부에서는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철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이런 대담한 선택은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사유의 ‘가로지르기’ 혹은 ‘유목적 사유’ 라는 맥락에서만 이해 할 수 있을 듯 하다. 한 인간은 직업, 전공, 계층을 비롯해 자신이 속해 있는 장(場)의 영향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場과 場 사이에는 거의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간극이 패여 있고, 한 인간의 삶도 옮겨 다니는 장들에 따라 뚝뚝 끊어지기도 한다. 이정우는 가로 지르기식 독서와 사유의 실천을 통해 이런 간극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본격적인 유목적 사유는 문학을 시발점으로 하여 기하학, 물리학, 양자역학, 열역학, 생물학으로 확장된다. 그의 과학적 가로지르기는 흥미롭다. 특히 저자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수학적 공식과 실재세계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과학은 세계를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한다. 수학적 공식은 실재에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 된다. 실재들, 즉 미시세계의 현상들을 확인해서 그것들을 기호화한 것이 수학이 아니라 기호로 제시된 수학적 방정식과 공식들의 풀이 결과가 실재세계의 어떤 특정 측면들에 상응 한다”

 

 이정우가 말하는 수학적 공식과 실재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개념정리는 명확하다. 나는 평소에 천체물리,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그런 책에서 언급되는 온갖 수학공식은 과연 실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힘든 독서를 이어가고 있는 터에 이정우가 말한 수학과 실재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엿보고 나니 과학의 언어인 수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물리학과 양자역학을 거쳐 열역학에 이르는 유목을 이어간다. 열역학에 잠시 안착한 그는 엔트로피 개념을 가지고 우주론적 고뇌에 빠진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이 세계의 에너지는 사용가능한 상태에서 사용 불가능한 상태로의 변화밖에 없으니 우리에게 남은 건 결국 완전히 망하는 것 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결론에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정우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겪은 충격은 금세 잊혀졌지만 저자는 엔트로피 법칙이 일으키는 이러한 우주론적 고뇌를 ‘현실적 맥락에서 볼 때 눈앞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삶의 문제들이 널려 있는데 그 먼 미래의 일 때문에 고민하면서 전전긍긍하는 것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라고 하면서 엔트로피가 유발하는 기우를 손쉽게 떨쳐버리는 대목은 후련하고 통쾌하다. 이제 더 이상 엔트로피 법칙이 유발하는 이 세상의 끝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살면 된다. 

 
 열역학을 거쳐 생물학에 이른 저자는 생명현상을 ‘음의 엔트로피를 만들고 시간 속에서 차이들을 보듬어 나가며 그로써 더 복잡한 동일성을 만들어 나가는 화학적 회로를 가진 존재’ 로 인식한다. 생명현상에 대한 이정우의 인식은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그의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는 인문적이고 철학적이며 또 과학적이다. 그래서 생명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생물학을 떠난 저자의 유목은 경제학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막시즘 경제학을 소개하면서 주류경제학과 막시즘 경제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데,주류경제학이 ‘완전 경쟁 시장’ 이라는 모델을 전제로 하고 자연과학의 사고방식을 가지고서 경제현상을 수치화하고 함수화하는데 몰두하여 주류경제학이 경제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결국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을 잉태하여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음을 지적하는 부분은 정확하고 타당해 보인다.

 주류 경제학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소흘하고 오로지 경제적 측면에만 고립적으로 주목하는데 반하여, 막시즘 경제학은 경제학 자체로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 윤리학, 정치학 등과 결합해서 막시즘 철학이라는 거대한 사유체계의 한 고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정우가 말하는 막시즘 경제학을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경제학’이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경제학으로 이해해야 하고 주류경제학은 자본가와 기업가의 관점에서 성립된 것이며 막시즘 경제학은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성립된 경제학이라는 이정우의 주장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정우는 주류 경제학과 막시즘 경제학의 차이를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준다.
 
 저자는 경제학을 거쳐 근대성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잠시 정차하여  사유를 진정시키는데 이 대목에서 조셉 니담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왜 중국은 근대과학을 탄생시키지 못했는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혁명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근대 과학이 탄생한 것에는 과학적 원인들은 있을지 몰라도 형이상학적인 이유는 없다. 즉 우발적인 것이다. 달리 말해 ‘중국에서 왜 근대과학이 탄생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이 우문(愚問)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적 맥락에서 보면 도대체 ‘근대 과학이 꼭 탄생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문화에서 별 필요가 없었던 것을 두고서 ‘왜 탄생하지 않았을까?’라고 묻는 것은 우문일 것이다.”

 

  나는 평소에 중국과 동양에서 과학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의 탐구를 화두처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정우의 답변을 접하고 나서 그러한 의문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지각하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중국, 아니 동양에서 근대과학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저자의 지적 유목은 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역사학을 거쳐 소은 박홍규 선생을 만나 철학에 정착하게 된다. 저자는 소은과의 만남을 통해서 본격적인 사유를 시작하게 되고 비로소 철학적 개안을 경험하게 됐다고 고백하는데 그가 소은에게서 배운 것은 철학이란 구체와 추상의 오르내림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유목적 사유의 고갱이는 서구 존재론사의 대가인 박홍규선생이 말하는 베르그송과 미셸 푸코인 셈이다.

 

 문학책들을 읽으면서 인간과 인생을 깊숙이 반추하고 과학책들을 읽으면서 물질, 생명, 문화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고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지식을 창조적으로 종합하는 사유능력을 배웠다는 이정우.

 

 그의 유목적 사유는 인간과 인생을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근원적인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이 비록 한 철학자의 공부와 독서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고백이라 해도 이 책이 던지는 영감과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바로 진정한 공부와 독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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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회에 남아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너무 깊어서 그런지 주류 자유주의자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소개할 때 문제점만 보려고 합니다.

파트라슈 2015-06-14 00:37   좋아요 0 | URL
마르크시즘이 결국 몰락하였지만 노동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마르크스경제학이고 인간의 노동없이 창출될 수 있는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매끈하고 화려한 자본가들의 경제학에서 노동은 보이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노동의 경제학이 재조명을 받을 날이 오겠죠. 다만, 마르크스가 위대하긴 하지만 인간의 배고픔을 해결한 건 마르크시즘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한겨레신문 편집기자로 일 해온 임종업씨가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없어져 가는 ‘책에 미친 사람들’을 기록했다. 부제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그대로 숨어있는 책 고수 28인의 비범한 독서편력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책 구입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내 책장엔 항상 열람대기중인 도서가 5~6권 정도는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 집에 아직 읽지도 못한 책들을 쟁여두고 공공도서관 서가를 얼씬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쟁이들’ 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대체 이 책쟁이들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보고 얼마나 수집하는지, 또 그들의 서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이 책에 소개된 책쟁이들의 장서는 기본이 일만 권부터이다. (일만권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아 내 방 책꽂이에 꽃여 있는 책들(수험서, 실용서적들을 빼고)을 대충 세어보니 한 600권 정도 된다. 내가 가진 책의 대략 16배 정도 되는 양인데 이 정도 양이면 일반 가정집에서 책을 수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일만권이면 작은 도서관을 하나 차려도 될 양이다. 내가 읽은 책만 소장한다는 원칙을 계속 고수하는 한 남은 여생동안 부지런히 읽고 모아도 이 책의 고수들처럼 되긴 힘들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이 책에 소개된 책 고수들은 정치인도 연예인도 국회의원도 유명작가도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회사원, 우체국장, 한의사, 목재상, 교사, 논술 강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책과 글로 밥을 빌어먹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책읽기와 책의 수집을 눈앞의 이익과 연결하지 않는다. 과연 임종업씨가 찾아낸 우리 주변의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편력은 어떨까?


 가장 인상적인 책 고수중의 한명은 컴퓨터 관련 주변 부품을 개발 판매하는 회사인 이메이션 코리아 대표이사 이장우 씨. 직원 25명의 아담한 회사이지만 연매출이 208억원이고 순이익은 무려 12억 원. 이처럼 작지만 단단한 기업의 선두에는 대표이사 이장우 씨가 있다. 이장우 씨는 본인이 독서광일 뿐만 아니라 그의 회사를 독서경영으로 이끌어 매출증대를 이룩했다. 이메이션 코리아는 직원들에게 무료로 책을 나누어줄 뿐만 아니라 아예 책값을 회사에서 대준다. 업무에 필요한 사고의 폭,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책을 산 뒤 결제를 올리면 한 달 단위로 전액 회사에서 책값이 지급된다.

 

 주제나 금액에 제한이 없고 보고서나 독후감 등 부담도 없다. 한 해 2,500만 원 정도가 책값으로 나가고 직원 한 사람당 평균 100만 원어치의 책을 사서 읽는 셈이라고 한다. 월급은 따로 받고 책값까지 대주는 회사가 있었다니... 그저 부럽기만 하다. 독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신의 직장’이 있을까? 

 

 이장우 대표는 현재 독서 경영 등 창의적인 운영으로 한국시장을 크게 성장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이메이션 본사로 발탁돼 글로벌브랜드 총괄대표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서 경영은 경영이라기보다는 문화다. 사실 한국법인 대표로 근무할 때도 이메이션 코리아는 독서경영이 아니라 독서문화로 진행한 것인데, 많은 언론에서 부르기 쉽게 독서경영으로 소개한 것이다. 독서문화는 변하지 않는다.” 

 

 그의 독서경영은 자신이 독서광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독서를 회사와 직원들에게 확장시켜 독서문화정착 뿐만 아니라 회사의 매출증대까지 이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독서란 그저 단순히 개인의 사적인 지적만족만을 위한 도구가 아닌 공공의 이익과 부합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도서관을 운영하여 공익을 도모하지 않는가..  


 책 속 부록으로 책에 맛이 간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에 맛이 간 사람들, 젠틀 매드니스’ 라는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밥티스트 보다 데몰랭은 어느 날 마지막 남은 푼돈을 가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다락방을 나섰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어느 서점 창문을 통해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음식이냐, 책이냐, 주저 않고 책을 사서 다락방으로 돌아오는 그는 너무도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그는 다락방에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젠틀 매드니스다운 죽음이다. 이보다 더한 압권은 책을 훔치며 책 절도철학을 확립한 미국의 책 도둑 스티븐 캐리 블룸버그. 그는 약 2만 3,600권의 책을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에서 훔쳐내 자신만의 장물 컬렉션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책 살돈은 부족한데 책을 좋아해서 한두 번 정도 책을 훔쳐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책 도둑 중에 한명이었다. 고등학교 때가지 수중에 돈만 들어오면 모조리 책으로 바꾸었는데 나중엔 그것도 모잘라서 결국 책을 훔쳤다. 이제 수십년이 흘러 나의 절도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므로 부끄럽게 고백한다. 그 당시 나의 단골 서점주인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임종업 씨가 소개한 책 고수들 중에는 아쉽게도 여성이 1명밖에 없고 20~30대의 젊은이가 많지 않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책의 고수 중에서 여성을 찾기가 어렵다. 결혼한 주부들은 아무래도 가사와 육아 부담 때문에 책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20~30대 젊은 층에서도 제대로 독서와 수집을 즐기는 책 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조상들은 지나치게 책에 집착하는 것을 書淫이라 하여 경계하라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책 안 읽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일단 우리사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졸업하여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고 퇴직할때까지 교과서 외의 책을 읽지 않아야 성공하는 사회다. 대학입학 논술을 위한 책들은 교재로 따로 나와 있다. 이런 책들은 책이 아니라 그냥 교재다. 교과서와 같은 것이다. 교과서 외의 책들을 탐하는 순간 남들이 말하는 성공과는 일단 거리가 멀어진다.

 

 예전 TV뉴스기사를 보니 한국인들 중 35퍼센트는 1년에 책을 단 한권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수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1년에 책을 단 한권도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1년에 단 한 권도 안보는 사람에게 2년, 3년이 지나서 책을 가까이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책 안보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세계 7위의 출판대국이라는 사실은 기이할뿐이다. 옛날부터 文을 숭상해 온 전통때문일까.. 수많은 영세한 출판사들이 돈도 되지 않는 인문과학, 자연과학 서적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게 정말 다행이다.


 책읽기에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는 너무 바빠 독서할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하고 책값이 너무 비싸 책을 구입할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드라마 챙겨볼 시간은 있듯이 책이란 것도 시간을 일부러 내고 만들어야 볼 수 있다. 남아도는 시간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바쁜 세상에서 말이다. 

 

 조선시대 문장가 홍길주의 명언 한마디..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을 만한 여유를 기다렸다가 책을 펼친다면 평생 독서할 수 있는 날을 찾지 못할 것이다. 시간에 쫓기더라도 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틈이 나면 반드시 한 글자라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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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8
천상병 지음 / 미래사 / 1991년 10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된다. 당시 시인 천상병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귀천’을 보고 이 순수한 무욕의 시인을 알게 되었다. 아마 1994년쯤이었던 같다. 천상병 시인의 역할은 지금은 원로배우인 정진씨가 열연했고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 역할은 김자옥씨가 맡았다. 그 드라마에서 천상병 역할을 한 정 진 씨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고 가난과 질병조차 그의 시심을 꺽지 못한 감동적인 인생을 보고   나서 바로 서점으로 뛰어가서 시인의 시집 3권을 구입했다.
시인의 시집을 펼쳐보니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감동적인 시가 몰려왔다. 당시 시를 많이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천상병의 시를 읽고서는 시가 이처럼 쉽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명한 시인의 대표작 ‘귀천’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과 카타르시스는 잊을 수 없고 지금도 여전하다.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을 이해하는데 어렵고 복잡한 문학이론은 필요치 않다. 누구나 가진 순수한 직관과 감성만으로도 이 시를 감상하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난해한 현대시와는 다르다. 그만큼 그의 시는 직관적이다. 그러나 이 ‘귀천’ 은 단순히 하늘로 돌아가려는 속세의 인간이 바라는 영원과 구원에 대한 절실한 바람으로만 읽혀지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요즘 이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시인의 현실에 대한 한없는 긍정과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흔히 천상병의 시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의 시를 읽다가 매번 느끼는 것은 그는 결코 초월적 신과 영생불멸의 천국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귀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의 온갖 유한한 것들(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진 이슬, 저녁 찰나의 노을빛)과 손을 잡고 놀다가 기슭의 구름이 손짓 하면은 비로소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하늘로 돌아오라는 전령인 구름조차 유한한 이 세상의 자연사물에 불과하다.

 

 시인은 혼자서 영원의 하늘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온갖 유한한 것들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려는 곳은 이 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는 다짐만 언급하고 있다. 시인은 그 하늘의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저 가서 아름다웠더라는 다짐만이 시인의 유일한 관심사인 것이다. ‘귀천’ 이라는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귀천이라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아름다운 이 세상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 시에서는 우리가 좌충우돌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와 예찬이 부드러운 시적 운율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인들이 말과 글의 有爲를 추구하는데 비해 천상병은 말과 글로써 무언가를 애써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천상병의 시를 읽고 있으면 노장(老壯)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의 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저절로 시가 된다.  실제로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유되어 가옥한 옥고를 치르고 난 뒤 출소하여 자신이 詩聖임을 다음과 같이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문디 자식들, 난 서정주하고 같은 급이야, 시인이 아니고 詩聖이야. 나는 시를 짓지 않는다. 입을 열면 그대로 시가 흘러나오고 내가 원고지에 적는 것은 모두가 시야, 알겠나! 문디 자식들!”

 

 정말 그의 시들을 읽어보면 그의 시에는 시를 애써 지으려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일기를 적 듯 시적 운율과 시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들의 나열일 뿐임에도 그것은 분명 시로 보인다. 자신이 詩聖임을 떠벌리고 다닌 것이 허튼 과대망상은 분명히 아님을 그의 시들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값싼 막걸리의 얼근한 취기만이 그의 고단하고 가난한 삶의 위안이었을까? 천상병의 생전 삶은 하루 막걸리 두 되와 담배 몇 개비로 족했다. 천상병은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찻집을 경영하여 벌어오는 수입으로 막걸리와 담배를 사고 하루를 만족하며 시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새처럼 하늘로 돌아갔다. 가난과 질병조차 자유롭고 자족한 시인의 삶을 훼방하지 못했다. 많은 시인들이 가난의 미덕을 노래했지만 그는 가난의 미덕을 찬양하지 않는다. 가난은 그의 삶 그 자체였으며 그 가난의 미덕을 노래함으로써 행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애써 가난을 미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시를 지은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에 통달했기 때문에 그의 입과 손에서 나온 것은 저절로 시가 된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전략~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후략~

                                                                           <나의 가난은> 부분


  하나님조차 자신의 행복에 대한 든든한 빽에 불과하고 햇빛에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은 그 흔한 예금통장하나 가지지 않은 순수 무욕의 삶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의 시를 읽다보면 오로지 부자의 미덕에 익숙해져 있는 내 자신의 끈끈한 욕망과 작고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행복 불감증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이른 봄, 나는 한 친구와 천상병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는 서울 인사동의 카페 귀천을 찾았다. 여기서 파는 차는 유자차와 모과차가 전부. 커피는 팔지 않는다. 소문대로 카페 귀천은 매우 좁았다. 한 2평정도 될까? 이런 작은 공간이 찻집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고 놀라웠다. 찻집에 들어서니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는 찻집 입구의 카운터에 작은 새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작은 찻집에 어울리는 작은 분이었다. 아니, 목순옥 여사는 처음부터 카페 귀천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우리는 유자차를 주문했다. 마주앉은 다른 손님들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비좁았기 때문에 다른 손님과의 친밀한 거리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무릎이 맞닿고 어깨가 맞닿을 거리에 앉아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카페 귀천에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이 자주 오신다고 들어서 혹시 유명 문인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갔는데 찾집이 너무 좁아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민폐일 것 같아 아직 식지도 않은 뜨거운 유자차를 훅훅 불어 급하게 마시고서 목순옥 여사의 자서전<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를 한부 구입해서 목 여사의 싸인을 받고서 황급히 카페 귀천을 떠났다. 그날 급하게 마신 유자차 때문에 입천장이 모두 데어 몹시도 쓰라렸다.

 

 이런 추억이 담긴 카페 귀천도  목순옥 여사가 별세를 하고서 운영할 사람을 찾지 못해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목여사님의 조카분이 다시 운영을 한다고 한다. 인사동에 갈 기회가 생기면 옛 추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가고 싶다. 이제 시인도 가고 그의 아내도 더불어 갔다. 남은 건 시인과 아내가 생전에 남긴 아름다운 말과 글, 그리고 숱한 이야기. 사람은 갔지만 그들이 생전에 가졌던 아름다운 생각들은 여전히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시와 문학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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