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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하나의 주문(呪文)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

                                     .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

                                     .

                                    

그 사람은 내가 기다리는 거기에서, 내가 이미 그를 만들어 낸 바로 거기에서 온다.

그리하여 그가 오지 않으면, 나는 그를 환각한다. 기다림은 정신 착란이다.

                                              .

                                     .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

                                     .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p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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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을 읽으면서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생각났습니다.

파트라슈 2016-07-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를 기다리는 동안> 몰랐던 시인데 찾아보니 정말 롤랑바르트의 문장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이 구절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가 정말 가슴 애립니다.ㅎㅎ
오지 않을 사람, 올 이유도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만큼 허망한 일도 없지만
사랑의 시작도 끝도 일종의 권력관계인가 봅니다. 둘 중의 누구 하나는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되고 또 하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니까요ㅜㅜ
그래서 사랑의 종말은 일방통행로가 되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 사람을 만날 길이 없는 곳이요..
 

 

 

 

 

 

 

 

 

 

 

 

 

 

 패트리샤 처칠랜드의 <신경 건드려보기>를 읽고 있는데 원저자의 문체 탓인지

번역이 영 매끄럽지 않다. 구글 번역기로 돌린 듯한 어색한 문장이 가독성을 떨어

뜨리는 탓에 책읽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번역이 정말 신경 건드린다.

 

 이 책의 저자인 패트리샤 처칠랜드의 남편 P.M 처칠랜드의<물질과 의식>

은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이 부부는 신경철학을 연구하는데 뇌과학과 심리철학

을 접목해서 신경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이 부부가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을  '제거주의(eliminativism)'라고 하는데 이름도

무시무시한 제거주의가 주장하는 바는 한마디로 "의식현상을 설명할 때 일체의 비

물질적 요소를 배제한다" 는 것이다. 다시말해,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뇌(또는 신체)

와 동일하다는 심신동일론을 주장한다. 이러한 철학적 입장은 다르게 말해서 뇌물리주의

라고도 하는데 가장 강력한 환원주의의 일종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은 알파고와 같은 인공 지능이 가능함을 뒷받침 하는 이론인데 이런

철학적 입장에 태클을 거는 비환원주의자들도 많다. 호주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는

의식을 단순히 뇌의 부수현상이 아닌 이 우주의 기본적 구성요소로 보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이 세계(전 우주의 구성요소가 아닌,, 우리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우주의

90퍼센트는 암흑물질이고 나머지 10퍼센트 정도가 수소나 헬륨 같은 물질이다)의 구성요소는

 물리적 원소, 물리적 힘(전자기력, 핵력, 강력, 중력) 등인데 여기에 의식도 추가해야 한다는 것..

 

사실 나는 알파고는 인공지능도 아니고 알고리즘에 기반한 강력한 전자계산기일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얼마전에 언론에서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대결할 때 워낙 인공지능이 어쩌고

저쩌고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지도 모른다고 겁주는 보도를 해댔었다.

덩달아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도 인공지능 연구는 인류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었는데 내가 보기엔 스티븐 호킹이 좀 오버하지 않았나 싶다.

 

 알파고는 계산기일뿐이며 의식은 커녕 인공지능도 없다.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현상학에서

이야기하는 지향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지향성이 없는 것은 의식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알파고는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알파고는 바둑을 둔 것이 아니라 계산을 한 것 뿐이다.

전자 계산기를 보고 지능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진짜 의식을 가진 존재라야 인간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개나 고양이가 지능은 있지만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일뿐임..

 

 이야기가 좀 다른길로 새버렸는데 아무튼 처칠랜드 부부의 제거주의 신경철학 분야는

앞으로도 꾸준히 찾아 읽을 생각이다. 남편인 p.m 처칠랜드도 <플라톤의 카메라>라는

책을 새로 냈는데 이 책은 가격도 만만치 않고 어려울 것 같아 구입 망설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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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더워지고 도서관가기는 귀찮아지고 해서 정말 오랜만에 책 구입

 

1. 한자경교수의<일심의 철학>: 한자경교수는 독일에서 칸트철학으로 박사학위, 다시

   귀국해서 동국대에서 불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하신 분.. 무엇보다 이분의 글은 쉽고

    재미있고 간절해서 좋다. 나는 한자경교수님 저서 팬이다. 이분이 쓰신 <불교철학의 전개>

    는 불교입문서로 너무 좋다.

 

 2. 서동욱 교수의 <철학연습>과 <일상의 모험>

    <철학연습>은 서양현대철학소개서이고 <일상의 모험>은 <태어나 먹고 자고 말하고

     연애하며, 죽는 것들의 구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철학에세이집같다. 요런책은

     한꺼번에 주욱 다 읽어나가는 것보다 하루에 한 챕터씩 읽는게 좋을 것 같다.

     <철학연습>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내용이 좋아 소장용으로 구입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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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2015-07-0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깔끔한 책상...연필이 이뻐요 ^^

파트라슈 2015-07-05 22: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문장이 너무 좋은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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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오 카쿠의 신작이다.

 마음과 의식을 다뤘다고 해서 주저없이 구입했다.

 목차를 대충 훑어보니 의식과 마음에 대한 관점이

 물리주의에 충실한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미치오

 카쿠는 물리학자가 아닌가..

 미치오 카쿠도 역시 레이 커즈와일 처럼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 할 수 있다는

 가정에 추호의 의심도 없고 그런 작업에 대한

 기술적 기반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말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

 할 수 있을까? 최근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도 인공지능이 등장

 하는데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공포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의식을 시간의 산물이라고 본다.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듯이 인공지능이나

의식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인간이 의식을 갖기 위해 보낸 수십억년의 세월을 생각해보라.

그 억겁의 세월은 의식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의식을 다운로드 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전혀 없을까..

철학계에서는 복제오류라는 사고실험이 있다.

관련 책을 다시 한번 들춰볼 생각이지만 한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

할 수 있다면 컴퓨터 한 대가 아닌 여러 대, 아니 수십, 수백대의 컴퓨터에도

다운로드 가능할 것이라는 개연성이나 가능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그렇다면 그렇게 복제된 수십 개의 의식에 대한 정체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의식이 수십, 수백개 있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까?

 

어찌됐든간에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간이 지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다운로드 할 수 있다면 냉각팬이 윙윙 돌아가는 후덥지근한

cpu와 메모리 안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나라면 컴퓨터안에 들어가 살고 싶지는 않다.

 

<마음의 미래>를 마저 읽고 나면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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