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8
천상병 지음 / 미래사 / 1991년 10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된다. 당시 시인 천상병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귀천’을 보고 이 순수한 무욕의 시인을 알게 되었다. 아마 1994년쯤이었던 같다. 천상병 시인의 역할은 지금은 원로배우인 정진씨가 열연했고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 역할은 김자옥씨가 맡았다. 그 드라마에서 천상병 역할을 한 정 진 씨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고 가난과 질병조차 그의 시심을 꺽지 못한 감동적인 인생을 보고   나서 바로 서점으로 뛰어가서 시인의 시집 3권을 구입했다.
시인의 시집을 펼쳐보니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감동적인 시가 몰려왔다. 당시 시를 많이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천상병의 시를 읽고서는 시가 이처럼 쉽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명한 시인의 대표작 ‘귀천’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과 카타르시스는 잊을 수 없고 지금도 여전하다.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을 이해하는데 어렵고 복잡한 문학이론은 필요치 않다. 누구나 가진 순수한 직관과 감성만으로도 이 시를 감상하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난해한 현대시와는 다르다. 그만큼 그의 시는 직관적이다. 그러나 이 ‘귀천’ 은 단순히 하늘로 돌아가려는 속세의 인간이 바라는 영원과 구원에 대한 절실한 바람으로만 읽혀지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요즘 이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시인의 현실에 대한 한없는 긍정과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흔히 천상병의 시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의 시를 읽다가 매번 느끼는 것은 그는 결코 초월적 신과 영생불멸의 천국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귀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의 온갖 유한한 것들(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진 이슬, 저녁 찰나의 노을빛)과 손을 잡고 놀다가 기슭의 구름이 손짓 하면은 비로소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하늘로 돌아오라는 전령인 구름조차 유한한 이 세상의 자연사물에 불과하다.

 

 시인은 혼자서 영원의 하늘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온갖 유한한 것들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려는 곳은 이 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는 다짐만 언급하고 있다. 시인은 그 하늘의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저 가서 아름다웠더라는 다짐만이 시인의 유일한 관심사인 것이다. ‘귀천’ 이라는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귀천이라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아름다운 이 세상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 시에서는 우리가 좌충우돌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와 예찬이 부드러운 시적 운율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인들이 말과 글의 有爲를 추구하는데 비해 천상병은 말과 글로써 무언가를 애써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천상병의 시를 읽고 있으면 노장(老壯)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의 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저절로 시가 된다.  실제로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유되어 가옥한 옥고를 치르고 난 뒤 출소하여 자신이 詩聖임을 다음과 같이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문디 자식들, 난 서정주하고 같은 급이야, 시인이 아니고 詩聖이야. 나는 시를 짓지 않는다. 입을 열면 그대로 시가 흘러나오고 내가 원고지에 적는 것은 모두가 시야, 알겠나! 문디 자식들!”

 

 정말 그의 시들을 읽어보면 그의 시에는 시를 애써 지으려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일기를 적 듯 시적 운율과 시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들의 나열일 뿐임에도 그것은 분명 시로 보인다. 자신이 詩聖임을 떠벌리고 다닌 것이 허튼 과대망상은 분명히 아님을 그의 시들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값싼 막걸리의 얼근한 취기만이 그의 고단하고 가난한 삶의 위안이었을까? 천상병의 생전 삶은 하루 막걸리 두 되와 담배 몇 개비로 족했다. 천상병은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찻집을 경영하여 벌어오는 수입으로 막걸리와 담배를 사고 하루를 만족하며 시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새처럼 하늘로 돌아갔다. 가난과 질병조차 자유롭고 자족한 시인의 삶을 훼방하지 못했다. 많은 시인들이 가난의 미덕을 노래했지만 그는 가난의 미덕을 찬양하지 않는다. 가난은 그의 삶 그 자체였으며 그 가난의 미덕을 노래함으로써 행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애써 가난을 미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시를 지은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에 통달했기 때문에 그의 입과 손에서 나온 것은 저절로 시가 된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전략~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후략~

                                                                           <나의 가난은> 부분


  하나님조차 자신의 행복에 대한 든든한 빽에 불과하고 햇빛에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은 그 흔한 예금통장하나 가지지 않은 순수 무욕의 삶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의 시를 읽다보면 오로지 부자의 미덕에 익숙해져 있는 내 자신의 끈끈한 욕망과 작고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행복 불감증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이른 봄, 나는 한 친구와 천상병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는 서울 인사동의 카페 귀천을 찾았다. 여기서 파는 차는 유자차와 모과차가 전부. 커피는 팔지 않는다. 소문대로 카페 귀천은 매우 좁았다. 한 2평정도 될까? 이런 작은 공간이 찻집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고 놀라웠다. 찻집에 들어서니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는 찻집 입구의 카운터에 작은 새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작은 찻집에 어울리는 작은 분이었다. 아니, 목순옥 여사는 처음부터 카페 귀천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우리는 유자차를 주문했다. 마주앉은 다른 손님들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비좁았기 때문에 다른 손님과의 친밀한 거리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무릎이 맞닿고 어깨가 맞닿을 거리에 앉아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카페 귀천에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이 자주 오신다고 들어서 혹시 유명 문인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갔는데 찾집이 너무 좁아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민폐일 것 같아 아직 식지도 않은 뜨거운 유자차를 훅훅 불어 급하게 마시고서 목순옥 여사의 자서전<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를 한부 구입해서 목 여사의 싸인을 받고서 황급히 카페 귀천을 떠났다. 그날 급하게 마신 유자차 때문에 입천장이 모두 데어 몹시도 쓰라렸다.

 

 이런 추억이 담긴 카페 귀천도  목순옥 여사가 별세를 하고서 운영할 사람을 찾지 못해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목여사님의 조카분이 다시 운영을 한다고 한다. 인사동에 갈 기회가 생기면 옛 추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가고 싶다. 이제 시인도 가고 그의 아내도 더불어 갔다. 남은 건 시인과 아내가 생전에 남긴 아름다운 말과 글, 그리고 숱한 이야기. 사람은 갔지만 그들이 생전에 가졌던 아름다운 생각들은 여전히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시와 문학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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