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혜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9
크누트 함순 지음, 안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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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년즈음, 북유럽, 노르웨이의 황무지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다.

경상도 사나이처럼 무뚝뚝하고 억센 남자 이사크. 이사크는 아무도 없는 공유지에 들어가 혼자 황무지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나무와 풀을 베고 감자를 심고 염소를 기르고 오두막을 짓는다. 이사크는 힘이 좋고 부지런하여 순식간에 황무지는 각종 농작물로 가득차고 풍성해진다. 이사크는 집도 땅도 가축도 있었지만 일을 도와줄 하녀는 없었다. 친절하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았고 목소리는 거칠어서 짐승 같았다. 그래서 혼자 살 수 밖에 없었다. 외롭고 고생스런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날 이사크를 도와줄 사람이 우연히 찾아왔다. 키가 크고 피부가 그을린 여자였고 큰 체격에 손이 단단한 서른에 가까운 여자였다.


이사크와 잉에르의 첫 만남을 묘사한 대목은 이 소설의 백미다. 투박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두 사람의 만남을 그려내는 대목부터 나는 이 소설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잉에르랍니다"

"그쪽은요?"

"이사크요"

"이사크라, 여기 사시나요?"

"그렇지요,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삽니다"

"괜찮네요"

그녀가 칭찬하며 말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와서는 자신이 갖고 온 음식을 좀 먹고 그가 내놓은 암소젖을 마셨다. 그러더니 따뜻하게 싸 온 커피를 데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고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 자리에 누운 그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녀는 그에게로 왔다.


아침이 되어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고, 낮이 되어도 머물렀다.


여자의 이름은 잉에르였고 남자의 이름은 이사크였다.


 외로운 남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여자에게서 흠잡을 것이라면 발음이 또렷하지 않고 언청이라서 늘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것뿐이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입술이 아니라면 그녀는 그에게 오지도 않았을테니, 그녀의 토순은 그에게에는 행운이었다. 그 자신은 어떤가. 그에게는 흠잡을데가 없던가? 수염은 뻣뻣했고 체구는 땅딸막했으며, 생김새는 울퉁불퉁한 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흉측했다. 그는 언제라도 날강도로 변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잉에르가 도망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가 나갔다가 돌아오면 잉에르는 오두막에 있었다. 둘, 오두막과 그녀는 하나가 되었다.

                                                                                                                                   -p16-



 잉에르는 이사크와 같이 농장을 일구어 나간다. 둘은 어느새 서로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가 된다. 잉에르는 언청이였다. 그런 잉에르를 이사크는 땅처럼 사랑한다. 잉에르는 마을에 가서 자신이 키우던 소 금뿔이를 데려온다. 금뿔이는 송아지 은뿔이를 낳고 잉에르도 아이를 여럿 낳아 땅의 혜택으로 키워간다. 이사크 부부는 늙어 마침내 대농장의 영주가 된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묘사되는 것은 이사크와 잉에르 가족의 노동이다. 그들은 황무지에서 풀을 베 건초를 만들고 돌을 걷어내고 나무를 자르고 염소젖을 짜 치즈를 만들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고 오두막과 가축우리를 만든다. 일상의 노동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노동은 수고롭고 고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기찻길의 침목처럼 소설을 지탱하는 힘이자 고갱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고단했던 한국 시골 농부들이나 화전민의 삶이 그려지기도 하고 산업화 시대에 땅을 지키려 했던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한다. 묵묵히 땅을 지키는 이사크 가족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감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지만 흥미롭게도 함순은 소설 곳곳에 불안감을 일으키는 복선을 깔아 놓았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작품을 읽는 내내 이사크와 잉에르에게 불행한 일이 터질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져서 페이지 넘김을 서두르게 된다. 


 이사크가 터전을 잡은 곳은 공유지였고 국가소유의 땅이었다. 이사크의 농장이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잘 되고 있을 때 지방행정관 게이슬레르가 나타난다. 게이슬레르는 이사크가 현재 무단으로 농사짓고 있는 국가소유의 땅에 대해 소유권 이전을 제안한다. 이 대목에서 혹시 이사크가 게이슬레르에게 사기를 당해 농장을 전부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결국 게이슬레르라는 인물도 땅의 혜택을 믿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이사크의 농장에서 구리광산이 발견되면서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이사크가 종사하고 있는 전통적인 농업의 대척점에 있는 광산업과 상업의 물결이 이곳에도 휩쓸려 오기 때문이다. 돈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사크는 농장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사크의 아내 잉에르, 그녀는 대단히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인물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제일 매력을 느꼈던 인물이 그녀였다. 그녀는 순수해 보이면서 가슴 가득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다. 언청이라는 결점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던 탓일까? 그녀는 자신의 딸을 죽인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언청이 수술을 받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출소한다. 이사크도 몰라보게 예뻐지면서 그녀는 이사크 몰래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잉에르에게 교도소 경험은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라 새로운 날개였던 셈이다. 그러나 잉에르는 결코 농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잉에르가 농장을 떠났던 것은 단 한번, 감옥에 갔을 때 뿐이었다.


 잉에르가 교도소에서 풀려나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이사크의 설렘, 잉에르가 교도소에서 낳은 딸과 셋이서 그들의 농장 셀란로를 향해 가는 여행길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잉에르가 농장 셀란로와 이사크를 끝내 떠나지 않는 이유는 언청이였던 자신을 받아준 이사크를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시골을 그린 작품이다. 멀고 생소한 북유럽의 노르웨이의 시골이지만 과거 산업화시절 우리의 시골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소설에서 이사크의 농장은 셀란로라는 이름이 붙고 이웃 악셀 스트룀의 농장은 모네란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려진다. 농장마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우리 전통 농촌에서 집집마다 택호를 붙이던 관습과 비슷하다. 집주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그의 집과 농사짓는 땅 전체를 아우르는 별도 이름(택호)를 붙이는 관습이 그 먼나라 노르웨이의 옛 시골에도 있다니 인간의 삶의 양식에는 확실히 보편성이 있다.


 80년대 방영하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디지털 문명에 지친 내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땅과 자연에 대한 동경이 더 커졌다. 실제로 함순이 이 소설을 발표한 시기는 1920년.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으니 전쟁에 대한 환멸과 공포에 극도로 시달리던 때. 그때와 지금도 여전한 게 있다면 또 다른 경제전쟁이 끝도 없이 사람들을 피곤하고 소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변하는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고단하지만 소박하고 작은 세계에 만족하는 소설 땅의 혜택이 가지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모든 것을 소유해야하고 일과 쉼이 구분되지 않아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처방은 작고 소박한 이사크의 농장이면 충분할 듯 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는 곳.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소득도 있었다. 북유럽의 먼나라 노르웨이의 시골모습을 마음껏 상상하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아는 세계가 훨씬 더 넓어진 풍성하고 경험을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황무지를 일구며 이사크와 잉에르가 노르웨이의 깊은 산골에 실제로 살고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북유럽을 여행할 수 있다면 노르웨이를 맨 먼저 가보려고 한다. 다만, 함순은 이사크의 농장이 위치한 곳의 구체적인 지명을 소설에서 설정하지 않았던 점은 아쉽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곳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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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 김동인 단편전집 1 - 배따라기, 태형, 광염 소나타, 배회, 약한 자의 슬픔 외 36편 한국문학을 권하다 3
김동인 지음, 구병모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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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자의 슬픔> 김동인 처녀작

1919년 2월 3일 김동인 자신이 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에 발표한 소설이 소설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데 2025년인 지금부터 무려 106년 전에 쓰여진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 없었다는 점이다그리고 무엇보다 무척 재밌게 쓰여진 소설이었다김동인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처녀작치고는 너무나 완성도가 높지 않은가게다가 김동인이 1900년 생이므로 이 소설은 김동인이 불과 약관의 나이에 쓴 첫소설.


 이 소설이 발표된 1919년 2월 3일이면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불과 한달전당시 조선 전국토가 일본제국주의 군화에 짓밟히고 신음하던 시대였다고 역사 교과서는 말하고 있고 당시 모든 조선인들은 오로지 식민지 독립만을 열망하고 있었을 거라고 여겼으니 문학이니 낭만이니 이런건 사치에 불과하지 않았던 시대였지 않았나하는 내 편견을 말끔히 때려부순 작품국어 교과서 지문에서나 부분 부분 조금씩 접할 수 있었던 근대 한국문학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김동인의 이 처녀작 하나만을 읽었을 뿐인데 당시 한국문학 수준이 이 정도로 높고 성숙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온몬에 전율이 일었다당시 문학가들의 문학적 성취란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요즘 한국 문학작품 읽을거리가 없었던 터라 우리 근대문학이라는 새로운 읽을거리 발견에 즐겁기도 했다김동인하면 <감자>,<배따라기>가 너무나 유명하지만 내가 지금 내가 읽는있는 김동인 전집은 그의 작품을 발표순으로 편집해서 처녀작<약한자의 슬픔>을 맨먼저 읽게 되었다이 소설에 대해 내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설의 주인공 강 엘리자베트.

권력과 재력이 있는 가문에서 방과후 선생 노릇을 하면서 숙식을 제공받아 학당에 다니는 스므살 여자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출신인 듯한데 당시 여자나이 20살까지 교육을 받고 있었다는 설정은 엘리자베트가 당시 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신여성임을 짐작케한다.
이 소설은 처음에 평범한 로맨스 소설같아 보였는데 읽어나갈수록 꽤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양반집 주인 남작이 엘리자베트의 방을 찾아오면서 모든 비극과 갈등이 시작된다남작과 육체적 관계를 맺어가는 대목이 무척 흥미로운데 적극적으로 남작을 거부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고 부끄러워 하면서도 어느새 그녀는 남작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간다는 묘사그럴만하다비록 신교육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근대의 악습과 관행이 힘을 쓰던 시대였고 여자가 독립적으로 살기엔 어려웠을 것이니 가난한 시골출신의 엘리자베트에게는 남작의 부정행위가 신분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에서 엘리자베트는 똑똑한 신여성으로 묘사되지만 그녀 역시 세속적 인간이고 원초적 욕망을 가진 인간임을 김동인은 놓치지 않았다남작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은 제법 에로틱하다남작의 욕정을 채우는 비극적 순간에 난데없이 에로틱한 느낌이란 또 무엇인가그런데 그 비극적 상황에서 스며나오는 정념에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들지않는 점도 신기하다근대문학사 책들을 보면 김동인은 극단적인 문학지상주의자탐미주의자라고 평가하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직접적인 묘사없이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만으로도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기법에 능해서 읽는 내내 김동인이라는 작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탐미주의자 김동인이 작품 주인공 엘리자베트 불과 20살의 여인이었고 남작의 아이를 지우려 병원에 가는 동안 전차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기도 하고 병원 의사가 진찰하면서 자신을 만지는 동안 의사의 손길에서도 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는 묘사들.. 당시 억압된 성에 서 눈을 떠가는 신여성들의 모습이었던가하지만 김동인은 진취적인 신여성들을 혐오했다고 하는데 소설속 엘리자베트의 이런 이중적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는 단편소설이라는 분량의 한계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엘리자베트는 남작의 아이를 지우는데 실패하는데 병원 의사가 가짜약을 줬기 때문이다가짜약이라니.. 여기서 소설적 재미와 긴장감이 배가된다아이를 지우는 약이 당시 있었을까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만일 정상적으로 아이를 지웠다면 소설의 행방과 결말은 어찌되었을까엘리자베트는 아이를 지우고 못하고 결국 남작의 집을 떠나게 된다그녀는 시골로 가서 남작에게 정조유린에 대한 배상서생아의 승인신문상 사죄광고 게재 청구소송을 걸게 되지만 재판부는 엘리자베트의 주장에 신빙성도 없고 증거도 없다며 재판자체를 기각해버린다재판에 패소하여 그 충격으로 앓아눕게 된 엘리자베트신열을 앓다가 결국 아이를 사산하게 된다사산한 핏덩이를 손에 쥐고 그녀는 약한 자의 슬픔을 생각한다자기의 설움열패자의 설움좀 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피력하지 못했던 약함그 약함을 엘리자베트는 표본생활 20년이라고 했다자신의 20년 인생이 약한 자의 슬픔의 전형적인 표본이라고 한 것이다그녀는 유산후 더욱 날카로워진 이성을 가동하여 뜬금없이 인류애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다나도 시방은 강한자이다자기의 약한 것을 자각할 그때에는 나도 한 강한 자이다강한 자가 아니고야 어찌 자기의 약점을 볼 수가 있으리요어찌 알 수 있으리요?(그의 입에는 이김의 웃음이 떠올랐다)

-중략-

만약 참 강한 자가 되려면은사랑 안에서 살아야 한다우주에 널려있는 사랑자연에 퍼져있는 사랑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사랑그렇다 내 앞길의 기초는 이 사랑그는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그의 앞에는 끝없는 넓은 세계가 벌여 있었다누리에 눌리어 살던 그는 지금은 그 위에 올라섰다그의 입에는 온 우주를 쳐 누른 기쁨의 웃음이 떠 올랐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엘리자베트가 실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뜬금없이 거대한 사랑 담론이 펼쳐지긴 하지만 엘리자베트가 몰락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에 나도 즐겁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엘리자베트를 은근히 응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동인은 1900년 태어나 1951년에 사망했다지금의 내 나이에 죽은 것이다그의 말년은 행복하지 않은듯하다약물중독(아마 마약인듯)과 지병에 시달렸는데 6.25 한국전쟁때 그는 몸이 아파 한강을 건너 피난을 가지 못했다몸져누운 상태서 북한군에게 심문을 당했고 그 다음해 사망했다고 한다불과 50년 남짓 생존했던 김동인생전에 장편 15편 이상과 단편 75편을 발표한 다작 작가였다그의 짧은 삶에서 아쉬운 것은 그가 너무 일찍 타계하여 말년에 집필중이던 장편역사소설<을지문덕>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그의 단편전집은 애플북스라는 출판사에서 <김동인단편전집1>, <김동인단편전집2> 총 2권 출판되어 있다내가 지금보고 있는 김동인 전집이다. 김동인 단편전집에는 얼마전 영화화된<파과>로 유명한 구병모 작가가 쓴 김동인 소개글 '바랜 붉은 빛'이라는 글도 정말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다. 김동인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구병모의 추천글을 읽어봤으면 한다. 김동인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질 것이다. 


 김동인이 말년에 약간의 친일행적을 보인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친일행적이 그의 문학적 성취에 드리운 그림자는 그리 짙어 보이지는 않는다동시대 활동했던 춘원 이광수의 계몽주의 문학이 이광수의 친일행적으로 인해 무색해진 것에 비해 김동인의 작품에 계몽주의 이념이 크게 녹아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의 친일행적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이것은 물론 내 개인적 느낌일 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그의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나가면서 확인해 볼 숙제로 남겨둔다그의 친일이 말년에 약물중독과 망가진 신체에서 정신이 무너져 내린 결과의 과오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 그의 친일에 대한 공과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니다역사가와 문학평론가들이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연구나 논평을 해왔을 것이므로..

 

오늘은 2025년 8월 15일 광복 80주년이다당시 식민지 시대를 견뎌낸 우리 선조들의 고단했던 몸과 정신을 생각해본다그들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은가..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삶에 매진했던 선조들에게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약한자의 슬픔>줄거리

주인공 강 엘리자베트. 시골출신, 약관의 나이, 경성에서 학당을 다니며 양반집 자제 방과후를 돌봐주면서 그 집에서 기숙한다. 엘리자베트는 매일 등굣길에서 마주치는 청년 이환을 편연(짝사랑)하지만 감히 고백을 하지 못하고 애태우기만 한다. 한편 자신이 기숙하는 양반집 주인 남작은 엘리자베트를 밤마다 찾아와 육체적으로 유린한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급기야 남작의 아이까지 임신하고 만다. 남작의 후처가 될 수도 없고 정조를 잃은 상태로 짝사랑하던 청년 이환도 포기하고 학업조차 그만두고 파멸하게 되고 경성을 떠나 시골로 내려가서 남작에게 손해배상의 재판을 청구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녀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결내리고 패소한 그녀는 신열을 앓다가 뱃속의 아이를 유산한다. 유산되어 쏟아진 자신의 아이, 그 핏덩이를 안고 약한자의 슬픔을 오열하다가 마침내 강한자가 되기로 한다. 하기싶은 일을 자유로이 하는 자가 비로소 강한자가 될 것이고 거기서 사랑과 진리를 발견하게 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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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 시리즈 1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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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에게 줄 책 선물로 고양이를 다룬 책을 찾아보다가 이용한 시인이 쓴 고양이 3부작 포토에세이집이 눈에 띄었다. 이용한 시인 약력을 살펴보니 시인이었고 고양이 작가로도 유명한 분이셨다. 3부작중 첫번째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품절이라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내친김에 3부작 전체를 알라딘중고에서 구입했다^^

출판순서로 보면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명랑하라 고양이>,<나쁜 고양이는 없다> 이렇게 되겠다. 세 권 모두 공히 이용한 작가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책과는 거리가 멀고 스마트폰 게임(배틀그라운드를 열심히 하는데 세상에, 여자 아이가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다니..)에 너무 빠져 있는 현실을 타개할 묘책이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딸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기에 그렇다면 고양이를 주제로 한 책을 선물해 준다면 글을 좀 읽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점에서 이용한 작가의 고양이3부작 포토에세이가 제격이었다. 일단 내가 3권을 속도으로 훑어봤는데 상당히 좋은 책이다. 작가는 동네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의 생노병사, 희로애락을 정갈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그려 보인다. 길고양이에 대한 한없이 따뜻한 시선과 사랑이 느껴지고 페이지마다 가득찬 이쁘고 귀여운 길고양이들 사진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저자의 세밀하고 집중력 있는 관찰력 덕분에 길고양이들은 저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새로 태어난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수십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모두 이름을 달아주었다.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은 분명한데 혹시나 딸이 고양이 사진만 대충 후루룩 훑어보고 책을 탁 덮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길고양이들 사진뿐만 아니라 작가가 담담하게 따스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를 읽히는게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어쨋든 딸아이가 한동안 스마트폰 대신 이 책들을 좀 열심히 뒤적여주면 좋겠다.

 

 

 고양이 3부작 중 가장 안타깝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2권 <명랑하라 고양이>에서 길고양이 바람이가 기생충 감염으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부분이었다. 이용한 필자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만난 녀석이었고 먹이주기 3개월만에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정말 바람같은 녀석이다. 먹이를 먹으로 올때도 먹이를 먹고 갈 때도 늘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필자는 그래서 녀석 이름을 바람이로 지었다고 한다. 필자가 각별한 애정을 쏟은 녀석인데 어느날 바람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채로 나타난다. 눈에서 고름이 흐르는 바람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해보니 기생충 감염이었다. 야생에서 감염된 기생충이 뇌를 파고들어 전신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이었다. 치료할 약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바람이는 온몸이 마비되어 죽어갔다. 길고양이 바람이는 이름 그대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갔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처럼.. 바람이는 평소 자주 다니던 꽃다지 방죽에 묻혔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바람이가 끝내 애석하고 섭섭해서 이용한작가는 바람이의 무덤에 민들레 한 포기를 심어준다.

                늠름했던 왕초 고양이 바람이

 

 

 바람이가 묻힌 꽃다지 방죽에 민들레 한 포기가 피어있다.

 

 길고양이들이 삶은 쉽지 않다. 차에 치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수많은 길고양이들뿐만아니라 고양이를 혐오한 동네 어른이 놓아둔 쥐약을 먹고 길고양이 온가족이 급사하고 자동차에서 흘러나온 부동액을 먹은 녀석들도 허무하게 삶을 마감한다. 이용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길고양이 평균 수명은 대략 3년정도. 집에서 키우는 집고양이 수명 15년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은 삶이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길고양들중에서 3년 이상을 사는 녀석이 드물어 보인다. 작년에 봤었던 길고양이를 해를 넘겨 다시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녀석들의 삶은 조건은 가혹하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도 생존의 조건이 녹록치 않겠지만 유독 길고양이들의 삶이 힘들어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생존 공간과 인간들의 생활 공간이 가장 밀접하게 중첩되기 때문일 것이다. 먹이를 얻을 가능성이 많은 곳은 바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기에 길고양이들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개체수가 훨씬 많다. 다른 종과 상생할 줄 아는 법을 아직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인간들 세상에서 공생을 시도해야 하는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위험은 적은 바로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길고양이들이 사람들이 챙겨주는 사료나 음식같은 먹이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은 정말 안타깝다. 그들은 애초에 자연과 야생에서 인간의 조력없이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었으나 이제 그들이 마음놓고 사냥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신, 사람들의 공간에서 불규칙적으로 공급되는 한정된 먹이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내 차 트렁크에는 늘 고양이 사료 한봉지가 있다. 어느 곳을 가든 고양이들이 눈에 띄고 그 중에서 배고픈 녀석들한테 사료를 놓아두고 간다. 녀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지만 한끼라도 든든히 먹고 힘내서 생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도 여전히 명랑하라 고양이들아!. 좌절과 실패는 분별심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언어일뿐 고양이들은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 것이다.

 

 

ps. 내가 만난 길고양이 이야기

 

 동네 편의점 앞에 출몰하던 누렁이.

길고양인데도 사람들한테 거부감이 없었다. 편의점 앞 의자를 아예 전세내고 누워있던 놈인데 재작년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전에 사라졌다. 그 후로 1년이 지나 현재까지 다시 볼 수 없었다.  

 

 우리 시골 어머니집에 출몰하는 욕심쟁이와 겁쟁이.  

아래 검은털과 갈색털 조합이 욕심쟁이 암컷, 누워서 노는 노랑이가 겁쟁이 수컷이다. 둘은 모자사이인데 욕심쟁이가 겁쟁이 어미다. 욕심쟁이는 먹이를 혼자 독차지하는 못된 습관을 가진 덕에 딸아이가 붙여준 이름이고 겁쟁이는 먹이를 줘도 경계심이 너무 강해 사람한테 접근하지 않는 성격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고양이의 외모가 아닌 성격으로 이름을 붙여준 딸이 참 재밌다.

어미 욕심쟁이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 대략 7년 이상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먹이에 욕심이 많아서 자기 자식인 겁쟁이가 사료를 같이 먹으려고 접근하면 앞발로 냅다 후려패버린다. 하긴 아들인 겁쟁이는 이미 젖을 뗀지 1년이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어미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겁쟁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겁쟁이가 성묘가 되자 욕심쟁이는 앞발로 후려치는 짓을 그만두고 모자가 나란히 겸상을 해서 다행이었다.

 

겁쟁이가 성묘가 되자 비로소 겸상을 하는 어미 욕심쟁이.

수컷인 겁쟁이가 어미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욕심쟁이는 일년에 3~4차례 정도 새끼를 놓는다. 거의 매달 임신상태인 셈인데 그래서 촌에 갈때마다 사료와 간식을 듬뿍 주고 온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어머니는 고양이를 굉장히 싫어하셔서 늘 녀석들이 나타나면 "저놈에 꼬내이들 다 잡아야 된데이" 하시면서 고양이 밥그릇도 치워버리는 분이라서 "제발 우리들이 없는 사이 고양이 사료 좀 주세요" 라고 부탁하기 곤란한 형편이다. 두 녀석은 사는 곳이 일정치 않다. 욕심쟁이는 원래 이웃집 할아버지댁 집고양이였는데 지금은 길고양이가 되어 버렸다. 동네 어귀에서도 보이고 들판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면 집고양이 정체성은 이미 오래전에 버린 듯하다.

 

욕심쟁이, 겁쟁이, 그리고 점박이.

겁쟁이와 점박이 둘다 욕심쟁이 자식이다. 우리가 시골집에 갔다가 떠나올 때면 녀석들은 어김없이 저런 일령횡대 집합 자세로 우두커니 바라본다.

사람들아! 사료랑 먹이 좀 자주 가져오란 말이다! 이렇게 시위하듯이 쳐다보는 것 같아 괜히 짠하다. 내일부터 또 다시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안녕 고양이들아, 추위 잘 견디고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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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29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속의 고양이 이야기보다 실제 길고양이를 만난 후기가 더 재미있고,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

파트라슈 2021-01-29 21:38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깨달음과 역사 - 개정증보판
현응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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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조계종 교육원장이셨고 현재는 해인사 주지로 계시는 현응스님의

불교에세이.. 감히 한국 최고의 불교에세이라 말하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큰 감동을 받은 책..

 

이 책은 미국에서 철학교수 하시는 홍창성교수님의 책

<미네소타 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홍창성 교수님의 책도 엄청났지만 <깨달음과 역사>에 수록된 주요 글들이

씌어진 시기는 현응스님이 불과 40세 전후의 나이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책에는 불교계에서 "깨달음 논쟁"을 촉발시킨 유명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깨달음 논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불교평론에서 검색하여 읽어볼 수 있다.

현응스님의 깨달음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다른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의

반박글들이 있는데 불교철학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흥미로울 것이다.

나는 당연히 현응스님의 생각에 깊이 동의한다.

 

불교나 불교철학에 관심있는 분들은<깨달음과 역사>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이 책은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 째 읽는 중인데 내 책꽃이에 늘 눈에 띄는 곳에

꽃아둔 책이다.

다시 완독하고 나서 리뷰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아! 홍창성 교수를 검색하다가 홍교수의 새 책이 나왔구나!

정말 반갑고 기분좋다. 홍교수의 <미네소타 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이후

홍교수의 새 책을 기다려 왔는데 바로 주문넣는다.

 

홍교수의 신작은 <연기와 공 그리고 무상과 무아>이다.

제목만 봐도 불교철학의 핵심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깨달음과 역사> 리뷰는 홍교수의 새책까지 완독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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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슈 2020-11-25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나는 불교철학,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불교가 아닌 붓다(고타마 싯다르타)가 생전에 남긴 철학과 붓다 사후에 펼쳐진 불교철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종교가 없고 앞으로도 종교를 가질 생각이 현재로선 없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나 전생도 전혀 믿지 않는다. 불교철학에서 내가 관심있는 것은 불교의 기본 철학인 연기와 공 그리고 무아이다.

고양이라디오 2021-01-19 11:39   좋아요 0 | URL
저도 파트라슈님과 같습니다^^ 불교에 관심 많은데 이렇게 강추하시니 꼭 보고 싶네요. 장바구니 담아갑니다^^b

파트라슈 2021-01-1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교에 관심이 많으시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파트라슈 2026-01-16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해인사 주지를 맡고 있던 현응스님이 몇 년 전 모 비구니 스님과 모텔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모양이다. 성추문이 있었던 것이다. 해인사는 현응을 산문출송했다고 하는데 조계종 공식징계는 아니라고 한다. 어쨋든 현응이 다시 승려로 활동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한국 불교철학에 축복할 만한 책의 빛이 바래졌다. 비구계를 받는 다는 것은 평생 계율을 지키는 자기자신과의 약속이다. 현응은 저 카르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별의 계승자 별의 계승자 1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 / 아작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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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대서사시..

오랜만에 엄청난 소설을 읽었다. 완독하는데 3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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