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글은 안 써지는 작가의 초조한 마음이 이런 것일까? 에징어 첫 게임 마감 시한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는데 슬슬 부담감이 오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살짝 받는 상황이지만 약간 기분 좋은 스트레스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인지력과 집중력을 더 강화시킨다고 한다. 중요한 시험 직전에 보통 집중력과 몰입도는 최고로 강력해지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라서 글쓰기에 최적이다.

 

​ 첫 게임 참가 글인데 어떤 주제가 좋을까? 글쓰기에 관한 글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의문이다. 그런데 질문이 좀 거창해 보인다. 잘 팔리는 유명 작가가 자신의 책 서문에 써 붙일만한 주제 아닌가?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만한 글재주나 능력도 없다. 그저 최근 들어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일 뿐인데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런 거대한 질문 나한테 가당치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작년 연말부터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게 몇 가지 있어 그것에 대해 약간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임경선이 최근에 낸 책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에서 글 쓰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글을 쓰는 일은 달리 말하면 곱게 미쳐있는 상태인 것 같다

 

​ 완전히 공감한다. 정말 멋진 말이다. 곱게 미쳐 있는 상태, 그 상태는 아마도 글쓰기 모드로 들어간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경험하고 있는 곱게 미쳐 있는 상태는 분명히 평상시나 회사에서 업무처리 할 때의 심리와는 다르다. ,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집중력이나 몰입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상태? 세상과 어떤 사건과 자신과 그 관계들에 대한 하염없이 깊은 관조적 상태, 주시, 바라보기,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또 다른 상위적 자아, 즉 메타인지가 최대로 활성화된 상태? 지적 엑스터시나 작은 깨달음의 연속들. 모든 존재와 시간을 여실히 생생하고 선명하게 느껴보는 것,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들과 진실에 대한 호기심, 또는 이성과 감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섞어내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모드? 라고 하면 어떨까? 시인이라면 감성이 최대한 작동하거나 판사라면 판결문 쓸 때 이성과 논리력를 극한으로 운용하는 상태? 그렇지만 그 어느쪽이든 완전히 미쳐 피안으로 가버리지 않고 이 세계를 긍정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감성과 이성의 극한은 평행의 대척점이 아니라 사다리꼴 모양으로 수렴되어 나에게 돌아와 행복을 주는 그런 고운 미침.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내가 더 이상 정확하게 묘사할 만한 언어나 표현이 나에겐 없어 당혹스럽다.

 

​ 그러니 글쓰기에 집중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정도에서 내가 하려는 말의 뜻을 알아서 잘 이해하시리라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약간 미치지 않고서는 글이 안 써진다는 것을 말이다.

 

​ 글쓰기에 곱게 미쳐있는 상태는 더불어 즐거운 고통을 수반한다. 아니 고통스런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 경험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글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무척 고된 일이다. 지금도 문장 하나하나 겨우 더듬더듬 써내고 있다.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쓰기처럼 숙련되기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라고 한탄한다. 임작가는 저술업으로 20년째 먹고 살고 있는데 그런 전문작가조차 힘들어하고 버거워 하는게 글쓰기란 것. 글이 술술 잘 써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럼 나는 어렵고 힘든 이걸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글쓰기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한 편의 글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써냈을 때의 그 성취감이 너무 좋고 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유의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른다. 한마디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생각한 뒤에 그 글이 일단 대충이라도 완성됐을 때의 그 희열은 정말 짜릿하다. 또 내가 한 건 해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 물론 대충 완성된 글이라 고쳐 써야 할 또 다른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글을 고치는 시간은 이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순간이다. 지복의 과정인 셈이다. 글의 내적 정합성을 살펴보기도 하고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문맥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는지 따져보고 표현이나 어휘가 적절한지 매끄러운지 검토해 본다. 위선이나 가식이 없이 솔직하고 진솔했는지에 대한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나는 정말 내 글을 고치는 과정이 너무 재밌다. 이 글도 내가 재밌게 고치고 주무른 결과물이리라.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개념은 사실상 고치고 또 고친다 라는 의미라고 했다. 동의할 수 밖에 없다.

 

​ 초고를 완성하고 여러 날 묵히면서 그 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고치면서 내면이 순수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온다. 막혀있던 문장이 다시 물 흐르듯 이어지고 어지럽고 정리되지 못해 꼬였던 마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후련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하지도 못한 영감이 떠 오르거나 소소한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겠다. 이런 과정이 바로 내가 빠져든 글쓰기의 매력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만두기 어려워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제법 강한 중독성이 있다. 다시 한번 임경선의 말을 옮기자면,

 

진실하고 진정한 글쓰기는 스스로를 갱신하고 초월하는 경험을 돌려준다. 한번 이러한 사랑, 혹은 글쓰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결코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갈 수 없다

 

​ 여기서 원래의 장소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고 내 마음의 상태라고 해야 정확할 듯 하다. 글쓰기에 빠져든 사람의 마음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허투루 보지 못한다. 일상이 모두 글감이 되고 삶 자체가 글 쓰는 과정이 된다. 나는 이런 마음 상태가 바로 서두에서 말한 곱게 미쳐있는 상태바로 그것이라고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에서 깨어나면 글은 더 이상 잘 써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감도가 무디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한테 걸리는 3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내 글 구려병, 내 글 뻔해병, 내 글 싫어병.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가 지적한 병이다. 웃기지만 정확하고 슬픈 지적이다. 나도 내가 쓴 글이 구리고 뻔하고 보기 싫고 마음에 안든다. 밤새 쓴 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뭐 이딴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워 노트북을 재빨리 덮어버리지만 글을 삭제하지는 못한다. 내 정신의 흔적이기도 하고 고민하면서 집중한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니 지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쓴다 해도 그 형편없는 글보다 더 잘 쓸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을 두고 묵혀서 다시 보면 그래도 좀 봐 줄 만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 그 부분을 붙들고 다시 쓰기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보기 싫었던 글이 그래도 조금 흡족한 순간이 온다. 그렇게 미완성된 글들이 노트북에 항상 여러 편 굴러 다닌다. 단박에, 한 번에 글이 나오지 않는다. 완성된 글을 블로그에 옮겨도 내 글 구려병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 글 구려병이 완전히 불치병은 아니다. 결국엔 나도 내가 쓴 글을 인정하게 되고 애정을 가진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가 쓴 글 아닌가?

 

​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게 글쓰기는 세월 속에 나를 방치하지 않고 나와 불화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것. 내 자신과의 연애라고 해야겠다. 뻔하고 진부한 결론 같지만 글쓰기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일이다. 그 일은 때때로 내 글 구려병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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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 청소년기를 회상해보면 나는 책을 많이 읽었고 그 경험은 무척 행복했다. 한글을 깨우친 시절부터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인쇄된 것은 무엇이든 읽었다. 읽기는 내 유일한 오락거리였고 즐거움이었다. 지독한 활자 중독자였고 독서광이었다. 읽지 못하는 글이 있으면 너무 아쉬웠다. 집에 복숭아 봉지 씌우기용 종이봉투가 널려 있었는데 외국에서 수입해 온 종이인지 온통 알파벳으로 인쇄되어 읽을 수가 없음에 크게 한탄했다. 글 읽기는 나에게 일종의 정언명령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책을 읽지만 그 시절의 독서 경험 만큼 즐겁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다면 내 어린 시절은 책이 귀한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읽을 책 한 권 생기면 그게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다. 행복은 희소성과 정비례하지 않겠지만 내 어린 시절, 책은 흔하지 않았기에 그때의 책 한 권은 지금 수십, 수 백권의 책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도서관도 없었고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집에 읽을 책이 없다는 건 무척 슬픈 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재미가 시들해졌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이면 내복만 입은 채 종일 방에 틀어박혀 누나들이 보던 소설책을 읽어 치웠다. 그 때 읽었던 책은 <마도의 향불>, <국보와 괴도>, <붉은 전갈의 공포>같은 그로테스크한 성인 추리 소설들이었지만 그것까지 정말 맛있게 읽어 버렸고 마침내 집에 읽을 책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날 나는 크게 절망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읽을 책이 없어 불안하게 방바닥을 뒹굴다가 문득 어떻게 해서든 읽을 책을 구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구해 올까? 책을 구해 올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중학교 도서실이었다. 당시 학교 도서실은 건물 복도 맨 끝 북쪽 구석에 있었고 도서실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생물표본이 포르말린 용액으로 가득찬 병안에 괴기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아 춥고 어둡고 무서운 곳이어서 학교 아이들은 도서실에 출입하는 걸 꺼려했고 거기에 있는 책들을 학생들이 읽거나 대출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거기서 과학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책장마다 유리로 된 문이 주먹 만한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고 책을 대출해주는 직원도 없었고 그 누구도 그 책들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나 같은 책벌레한테 아무도 읽지 않는 그 책들이 눈에 밟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무서운 그 도서실에 혼자 출입하는 용기를 내기도 어려워서 아쉽게 입맛만 다시면서 결국 그 책들을 포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읽을 책을 구해 오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서자 학교 도서실에 포기한 책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내가 좀 옮겨와서 읽는 게 뭐 그리 나쁠 것이냐 하는 합리화로 마음을 다잡았다. 쌀 창고에 있던 40킬로짜리 정부미 쌀포대기 하나를 챙기고 밤 12시를 넘겨 집을 몰래 나섰다. 책을 훔치러 가는 길, 12월 말 동지가 지나고 시리고 시린 겨울밤이었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고 철길로 올라섰다. 혹시나 누군가 눈에 띌 것 같아 일반 국도로 걸어가지 않고 철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학교까지는 십리가 넘는 길이었다. 그 야심한 밤에 철길을 걸어가는 남학생 한 명의 모습 누가 보더라도 이상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내 발걸음은 거침 없었다. 책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학교에 도착하고 건물 밖에서 2층 도서실로 올라가는 캐노피로 올라섰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도서실 창문은 쉽게 열렸고 내부로 들어가서 자물쇠로 잠긴 책장 문도 약간 힘을 줘서 들어올리니 쉽게 개방되었다. 쌀자루에 책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에 읽고 싶던 책 위치를 봐두었던 덕에 망설임 없이 책을 골라냈다. 혼자서 들고 옮길 정도의 양만 담고 다시 10리 철길을 걸어왔다. 훔친 책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새벽의 철길을 걸어오던 그 때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만이 내 절도행각을 무심히 내려다보는 듯했다. 외롭고 지독히 추웠지만 곧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10리길도 즐거웠다. 다행이 그날 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점심때까지 늦잠을 즐기고 훔쳐 온 책들을 즉시 읽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업어온 책들 대부분은 중국고전들과 문고본책이었다. 논어, 맹자, 서경, 사기열전, 한비자. 묵자, 순자, 채근담, 법구경등등.. 방학내내 그 책들을 읽어나갔다. 법구경을 읽을 때는 붓다의 그 서늘한 가르침에 몸서리쳤다. 책을 그것도 공공재인 학교의 책을 훔친 내 도둑질에 대해서 붓다와 공자, 한비는 인쇄된 활자로 무섭게 나를 책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죄책감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즐겁게 읽을 책이 넘치도록 생겼으니까 말이다


 방학 내내 그 책들은 읽고 있으니 개학날은 금방 다가왔다. 개학이 되고 학교에 갔더니 누군가 학교 도서실을 털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책이 없어진 사실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을 그래도 사람들은 믿는 시절이었던 것일까? 책 절도 사건은 조용히 잊혀져 갔다. 대신 도서실 책장에는 지난번보다 더 견고한 자물쇠가 달렸고 창문과 출입문 잠금장치가 더 강력해졌다.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는 도서실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벌써 4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낭만적 말이 통용되는 시절이었지만 엄연히 절도 행위였고 주거침입이었으니 부끄럽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책을 한 자루 짊어지고 겨울밤 가슴 설레며 달려왔던 소년은 이제 50살이 지나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에 입학해서 제대로 된 도서관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늘 책에 굶주려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끊임없이 책을 찾았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배웠고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인가? 나에게 책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나에게 책이란 뭔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처럼 책을 어떻게든 구해와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어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책 읽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사회적 성공(, 높은 지위, 좋은 직업, 훌륭한 인품등)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저 책 속에서 살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년 시절 내 불안하고 외롭고 슬픈 마음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위로 해주고 말을 걸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책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책은 그냥 내 삶이었다. 내 인생에서 책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나는 행복했다.


 책이 너무 좋아 한순간 저지른 실수였지만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매월 일정 금액 이상을 책 구입에 지출했다. 책 모으기 강박적 불안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것이지 싶다. 집에 책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증이라고 해야겠다. 한겨울 밤 책을 훔치러 철길 20리를 걸었던 그 시절의 나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 시절 나는 책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훔친 책들을 읽으며 기쁘고 행복했지만 살아오는 동안 늘 모교에 내가 갚아야 할 빚은 오래된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비록 내가 훔친 책들이 자물쇠에 굳게 잠겨서 아무도 읽지 못할 책이라지만 나 혼자가 아닌 학교 급우들과 후배들이 그 책들을 읽을 잠재력이나 기회는 여전히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 그 자체뿐만 아니라 책이 가진 그 기회까지 뺏어온 것이다. 그 부분은 정말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변에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진 책들을 주저 없이 내 주었다.

 

 내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학교 도서실의 큰 도움을 얻었지만 어떻게든 학교에 진 빚을 다시갚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모은 책들을 정리한다면 모교에 기증을 하면 어떨까? 어느날 고향에 갔는데 모교 앞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폐교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35년 전 새벽에 걸었던 그 철길은 레일이 모두 걷어지고 더는 열차가 다니지 않았다. 책이 있던 2층 도서실은 그대로였지만 학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책을 읽을 아이들이 이제는 없구나.


 이제 책은 너무나 흔한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들어서 있고 조금만 움직이면 큰 도서관이 있어 책은 전혀 귀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책을 훔쳐 읽던 그때의 나처럼 여전히 책에 목마른 아이들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 나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밀린 숙제를 마치려고 모교 관할 지자체에 지정기탁 신청을 했다. 좀 어려운 학생들에게 책값을 보태고 싶다고 적었다. 이왕이면 학교독서대회에서 입상한 아이들이면 좋겠다고.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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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하는 행태를 보자면 이 국가가 과연 세계를 선도하는 초일류국가가 맞는지 모르겠다.수십년 세계경제 체제였던 신자유주의보다 더 독한 오물에 세계는 날벼락을 맞고 있는 중이다. 국가(불량국가이긴 하지만)의 수반을 잡아가고 동맹국들에게 관세협박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뜯어내며 엄연한 주권국가의 영토를 합병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UN에서도 탈퇴한다고 한다. 미운 나라 미국이다. 뭐 미국이 그간에 손해본 사정이야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군사력으로 실력행사까지 하면서 법과 질서를 싸그리 무시한다면 미국 거대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AI기술 파라다이스가 도래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싶다. 따뜻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상생을 말하는 국가와 기술과 철학적 비젼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괴물들이 으르렁 대는 세상같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중국도 마찬가지. 그래서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보살이라고 해서 억겁의 세월동안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신화가 탄생했나보다.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구원되지 않을 것임을 2,600년 붓다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미국 유명 코믹스가 원작인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명언이다. 지금 미국을 보면 이 명언만큼 허망한 진리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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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 7회에는 극중 장회장(신구)이 불멍예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회장은 누가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장작을 태운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대사가 이어진다.


장회장 曰 : 네덜란드인가? 노르웨이인가? TV 프로그램 중에 하루 종일 모닥불이 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있는데 근데 그게 시청률이 나온대. 나 같아도 볼 거 같아. 마음이 쉬고 싶은 거지.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이 생각 저 생각 계속 생각이 떠오르는데 불을 보고 있으면 희한하게 생각이 없어져.


 장회장의 말처럼 사람은 이 생각, 저 생각 끊임없는 생각을 한다. 생각을 멈추어 본적이 있는가? 생각은 내 마음대로 멈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각이나, 의식에는 항상 어떤 대상이 있다. 무엇무엇에 대한 의식이나 생각이다. 현상학이라는 서양철학 분파는 이것을 자신들의 근본 철학용어로 “의식의 지향성”이라고 했다. 생각, 의식이 독자적으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 이고 의식은 늘 내용이나 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으니 내 시각 의식에는 화면이라는 대상이 있고 이번에 매수한 주식이 오를 건지 아닌지 걱정이 떠 올랐다가 어제 회사에서 동료에게 했던 말이 적절했나 하는 후회도 떠 올랐다가 오늘 점심은 또 무엇을 먹을지 오후에 미용실에 헤어컷을 하러 갈지 말지. 이처럼 의식은 끊임없이 어떤 대상이나 개념, 관념, 이미지, 상상등을 떠 올린다. 아무런 대상이 없는 무엇도 떠 오르지 않는 그런 순수의식이나 순수한 생각을 우리는 단 1분도 의식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생각은 늘 생각거리를 찾는다. 가만있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장회장처럼 큰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생각거리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스케일이 훨씬 커지겠지. 눈을 감고 자려고 해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무거워진다.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은 쉽사리 쉬지 못한다. 생각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 그런데 생각의 무게, 의식하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쉬게 해주는 매체로서 불만한 것이 없다. 불 앞에 앉으면 장회장의 말처럼 희한하게 생각이 없어진다. 불은 자신의 연료를 태울 뿐만 아니라 불 앞에 앉은 사람의 생각거리도 다 태워 없애버리는 효능이 있다. 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의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 그저 불이라는 연소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불을 바라볼 때 불을 떠 올리는 나 자신이 없어진다. 불과 나의 분열이 사라진다. 자아가 없어지면 미쳐 날뛰던 생각은 소멸한다. 우리는 왜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렇게 편안해질까?


 장작불을 바라볼 때와 같은 멍한 상태의 의식은 자아에 의한 의식의 중앙집권화를 잠시나마 해제하고 일종의 원형질 의식 혹은 무의식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 아닐까? 아득한 과거 인류가 아직 문명사회에 진입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밤이면 동굴이나 움막에서 화톳불을 피워놓고 불을 바라보면서 생존의 고단함과 피로를 잊으며 견뎠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멍의 습관이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의 원형질로 우리 뇌 속에 새겨져서 무의식 혹은 기저의식으로 루틴화 되었을 것이다. 뇌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초기화하는 어떠한 의식 상태의 긍정적 효과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또 그런 긍정적 효과를 자주 느끼고 체험한 사람은 피로감을 쉽게 이기고 더 활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 생존 경쟁이나 자손 번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불을 단순히 생존 도구가 아닌 안식과 치유의 도구로 잘 이용할 수 있었던 개체들의 유전자는 자연이 선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자의식의 탄생과 더불어 그 자의식을 잊어버리는 특정한 의식상태도 병행하여 진화적으로 자연선택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뇌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초기화하는 어떠한 의식 상태의 긍정적 효과 또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수없이 다양한 현실의 정보들을 종합해서 하나로 꿰고 통합해서 자의식의 탄생은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과 번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대신 일종의 반대급부로 자의식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그 고통은 바로 실존적 고통이다. 자아를 중심으로 미래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되자 그저 자연적 소멸에 불과한 죽음 같은 현상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는데 바로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게 되는 실존적 문제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자아+미래=죽음이라는 필연적 진리를 타인들의 죽음을 관찰하면서 얻게 되자 그저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죽음을 문제시 삼는 존재는 인간만이 유일하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예로 들어 설명 했지만 이외에도 인간은 자의식을 중심으로 집단, 사회적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다양한 피로감과 고단함,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것인데 그러한 스트레스 해소방식의 방법도 아마 다양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릴 정도로 즐겁게 놀 때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일 중에 하나가 불멍이다. 또 생각이 없어지거나 줄어들 때도 마찬가지로 평온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심지어 시간이 흐름도 의식하지 못한다. 내 의식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눈앞에 불만 아른거리는 상황은 자아의식이라는 주인의 입장에서 해방되어 구경꾼이 되는 상황이다. 구경꾼은 걱정이 없다.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부담 없이 구경만 하면 된다. 온갖 잡다한 걱정과 근심은 주인의 몫이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까지나 피곤한 주인 노릇만 하라는 법이 있을까? 가끔은 구경꾼, 손님이 되어 주인한테 다 맡겨버리고 나면 현실감각도 더욱 선명해진다. 불멍을 하고 나면 내 삶은 새로워지고 기운이 솟는다. 충분히 잘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을 바라보는 시간은 안식과 치유의 시간이다. 불을 바라볼 때 심각함과 복잡함을 내려놓고 자아가 해체되어 생각이 잡아당기는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각은 자의식이 성성하게 살아있을 때 가장 무겁다. 자아라는 핵이 해체되면 생각의 중력은 사라진다. 불을 바라보는 시간은 온갖 상상력과 창조적 영감이 샘솟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시에 살고 있으니 불멍 할 곳이 없다. 엄마 혼자 계신 본가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장작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것이다. 기름보일러 방이라 불을 피워 난방할 곳도 없고 불로 음식 조리를 할 것도 아니지만 일단 불을 피워놓고 나무 타는 냄새가 나고 장작불이 타닥타닥 터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해서 좋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장만해 놓은 장작은 너무 오래돼서 삭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해놓은 이 장작만은 절대로 쓰지 않았다. 땔감이 필요하면 동네 복숭아밭을 갈아엎은 곳에 가서 복숭아나무 줄기를 주워 와서 쓴다. 엄마는 그 장작들이 삭아서 벌레들이 파먹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애쓴 흔적이라서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난 그 장작들 한 팔 가득 들고 와서 아궁이에 넣어 가스토치로 불을 붙인다. 오랫동안 말라서 잘 타는 장작들 바라보고 있으면 엄마가 와서 보고 “왜 쓸데없이 불피우노. 나무 아깝게.” 소리친다. 아무래도 엄마는 불멍을 즐거움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장작들을 쓸데없이 불붙여 태워 없앤다는 잔소리 듣기 싫어서 나중에는 마트에 가서 캠핑용 참나무 장작 몇 자루를 사서 불을 피웠다. 내가 사온 장작으로 불을 피우니까 더 이상 엄마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음에 불 피울 때는 엄마도 불곁에 모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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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슈 2026-01-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멍에 관한 진화심리적 분석은 나의 뇌피셜이다.
 

부산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부산지리는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정말 힘들다. 차를 아예 가져 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봤다. 감천벽화마을에서 광안리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 60대 초중반정도의 아저씨였는데 인상이 선하고 좋았다. 내가 먼저 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택시 하신지 오래 되셨습니까?

 

, 몇 년 되었습니다. 공사에서 정년 퇴직하고 그냥 놀 수 없어 택시를 하게 됐어요.수십 년간 돈벌던 습관이 어디 가겠습니까? 하하, 택시 일이 재밌고 좋습니다.

, 잘 되셨네요


그래도 여행도 다니고 좀 쉬시고 하시지..


 저는 일 하는게 쉬는 겁니다. 택시 해서 월급 받으면 며느리한테 월 백만원씩 용돈을 주는데 정말 재밌어요. 내가 벌어서 누군가에게 용돈 주는 재미요. 며느리가 참 좋아합디다. 저희 며느리가 저한테 참 잘해요. 매일 전화해서 안부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는데 저는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자주 찾아오기도 하고요. 며느리가 아니라 친딸 같아요. 그런 며느리한테 해줄건 별루 없고 저는 돈 쓸일도 거의 없고 아무래도 젋은 사람들이 돈 쓸일이 나보단 훨씬 많지 않겠어요. 자식도 키워야 되고 집값도 값아야 되고.. 건강이 허락할 때 까지 계속 택시일을 할 겁니다. 며느리 용돈도 계속 줄 수 있고.

 

 기사님 며느리 정말 좋은 시아버지를 두셨네.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원이라니. 웬만한 알바 월급 아닌가. , 이분 며느리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었기에.. 기사님은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전에 저희 집사람이 대장암수술을 했어요. 근데 집사람 암수술 사실을 아들내외한테 알리지 않았어요. 걱정할까봐. 근데 잘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직장다니고 바쁘고 그럴텐데 괜히 알려서 신경쓰고 불편해할까봐요. 둘다 맞벌이 하는데 회사에 휴가내고 병원 왔다갔다 하는거 회사 눈치도 보이고 여간일이 아닐 겁니다. 집사람 수술 잘 됐고 잘 낫고 있습니다. 나중에 집사람이 완전히 나으면 그때 알려주려고요. 그 때 이야기해도 하나도 안 늦겠죠. 이해해 주겠죠. 담에 제가 아파도 또 그렇게 하자고 집사람하고 얘기도 다 해놨습니다. 하하.

 

 라디오 양희은의 여성시대에 소개될 법한 사연이었다. 아들과 며느리한테 알리지 않고 암수술을 해낸 기사님 부부. 그리고 기사님 본인이 아파도 역시 또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에 놀랐다. 세상에 이런 부모들도 있구나. 이분들은 진짜 부모였다. 그런데 나중에 부모님(시어머니)의 암수술 이야기를 듣게 될 아들 내외는 어떤 기분일까? 아들 내외는 어쩌면 굉장히 난처해 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며느리 입장이 더 난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왜 그런 중대한 일을 말씀도 없이 상의도 안하고 숨기고 그러셨나고. 나는 그 기사님이 아들 내외에게 수술을 알려준 다음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지만 그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참 잘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해줬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이란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어릴 때는 아무 조건 없는 내리사랑. 자식이 컷을 때는 자식에게 본인들 걱정을 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들고 심신이 쇠약해지면 부지불식간에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 택시기사님 부부가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했다. 광안리는 봄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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