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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한겨레신문 편집기자로 일 해온 임종업씨가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없어져 가는 ‘책에 미친 사람들’을 기록했다. 부제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그대로 숨어있는 책 고수 28인의 비범한 독서편력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책 구입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내 책장엔 항상 열람대기중인 도서가 5~6권 정도는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 집에 아직 읽지도 못한 책들을 쟁여두고 공공도서관 서가를 얼씬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쟁이들’ 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대체 이 책쟁이들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보고 얼마나 수집하는지, 또 그들의 서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이 책에 소개된 책쟁이들의 장서는 기본이 일만 권부터이다. (일만권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아 내 방 책꽂이에 꽃여 있는 책들(수험서, 실용서적들을 빼고)을 대충 세어보니 한 600권 정도 된다. 내가 가진 책의 대략 16배 정도 되는 양인데 이 정도 양이면 일반 가정집에서 책을 수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일만권이면 작은 도서관을 하나 차려도 될 양이다. 내가 읽은 책만 소장한다는 원칙을 계속 고수하는 한 남은 여생동안 부지런히 읽고 모아도 이 책의 고수들처럼 되긴 힘들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이 책에 소개된 책 고수들은 정치인도 연예인도 국회의원도 유명작가도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회사원, 우체국장, 한의사, 목재상, 교사, 논술 강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책과 글로 밥을 빌어먹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책읽기와 책의 수집을 눈앞의 이익과 연결하지 않는다. 과연 임종업씨가 찾아낸 우리 주변의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편력은 어떨까?
가장 인상적인 책 고수중의 한명은 컴퓨터 관련 주변 부품을 개발 판매하는 회사인 이메이션 코리아 대표이사 이장우 씨. 직원 25명의 아담한 회사이지만 연매출이 208억원이고 순이익은 무려 12억 원. 이처럼 작지만 단단한 기업의 선두에는 대표이사 이장우 씨가 있다. 이장우 씨는 본인이 독서광일 뿐만 아니라 그의 회사를 독서경영으로 이끌어 매출증대를 이룩했다. 이메이션 코리아는 직원들에게 무료로 책을 나누어줄 뿐만 아니라 아예 책값을 회사에서 대준다. 업무에 필요한 사고의 폭,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책을 산 뒤 결제를 올리면 한 달 단위로 전액 회사에서 책값이 지급된다.
주제나 금액에 제한이 없고 보고서나 독후감 등 부담도 없다. 한 해 2,500만 원 정도가 책값으로 나가고 직원 한 사람당 평균 100만 원어치의 책을 사서 읽는 셈이라고 한다. 월급은 따로 받고 책값까지 대주는 회사가 있었다니... 그저 부럽기만 하다. 독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신의 직장’이 있을까?
이장우 대표는 현재 독서 경영 등 창의적인 운영으로 한국시장을 크게 성장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이메이션 본사로 발탁돼 글로벌브랜드 총괄대표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서 경영은 경영이라기보다는 문화다. 사실 한국법인 대표로 근무할 때도 이메이션 코리아는 독서경영이 아니라 독서문화로 진행한 것인데, 많은 언론에서 부르기 쉽게 독서경영으로 소개한 것이다. 독서문화는 변하지 않는다.”
그의 독서경영은 자신이 독서광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독서를 회사와 직원들에게 확장시켜 독서문화정착 뿐만 아니라 회사의 매출증대까지 이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독서란 그저 단순히 개인의 사적인 지적만족만을 위한 도구가 아닌 공공의 이익과 부합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도서관을 운영하여 공익을 도모하지 않는가..
책 속 부록으로 책에 맛이 간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에 맛이 간 사람들, 젠틀 매드니스’ 라는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밥티스트 보다 데몰랭은 어느 날 마지막 남은 푼돈을 가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다락방을 나섰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어느 서점 창문을 통해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음식이냐, 책이냐, 주저 않고 책을 사서 다락방으로 돌아오는 그는 너무도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그는 다락방에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젠틀 매드니스다운 죽음이다. 이보다 더한 압권은 책을 훔치며 책 절도철학을 확립한 미국의 책 도둑 스티븐 캐리 블룸버그. 그는 약 2만 3,600권의 책을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에서 훔쳐내 자신만의 장물 컬렉션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책 살돈은 부족한데 책을 좋아해서 한두 번 정도 책을 훔쳐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책 도둑 중에 한명이었다. 고등학교 때가지 수중에 돈만 들어오면 모조리 책으로 바꾸었는데 나중엔 그것도 모잘라서 결국 책을 훔쳤다. 이제 수십년이 흘러 나의 절도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므로 부끄럽게 고백한다. 그 당시 나의 단골 서점주인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임종업 씨가 소개한 책 고수들 중에는 아쉽게도 여성이 1명밖에 없고 20~30대의 젊은이가 많지 않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책의 고수 중에서 여성을 찾기가 어렵다. 결혼한 주부들은 아무래도 가사와 육아 부담 때문에 책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20~30대 젊은 층에서도 제대로 독서와 수집을 즐기는 책 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조상들은 지나치게 책에 집착하는 것을 書淫이라 하여 경계하라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책 안 읽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일단 우리사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졸업하여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고 퇴직할때까지 교과서 외의 책을 읽지 않아야 성공하는 사회다. 대학입학 논술을 위한 책들은 교재로 따로 나와 있다. 이런 책들은 책이 아니라 그냥 교재다. 교과서와 같은 것이다. 교과서 외의 책들을 탐하는 순간 남들이 말하는 성공과는 일단 거리가 멀어진다.
예전 TV뉴스기사를 보니 한국인들 중 35퍼센트는 1년에 책을 단 한권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수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1년에 책을 단 한권도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1년에 단 한 권도 안보는 사람에게 2년, 3년이 지나서 책을 가까이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책 안보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세계 7위의 출판대국이라는 사실은 기이할뿐이다. 옛날부터 文을 숭상해 온 전통때문일까.. 수많은 영세한 출판사들이 돈도 되지 않는 인문과학, 자연과학 서적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게 정말 다행이다.
책읽기에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는 너무 바빠 독서할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하고 책값이 너무 비싸 책을 구입할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드라마 챙겨볼 시간은 있듯이 책이란 것도 시간을 일부러 내고 만들어야 볼 수 있다. 남아도는 시간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바쁜 세상에서 말이다.
조선시대 문장가 홍길주의 명언 한마디..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을 만한 여유를 기다렸다가 책을 펼친다면 평생 독서할 수 있는 날을 찾지 못할 것이다. 시간에 쫓기더라도 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틈이 나면 반드시 한 글자라도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