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그 집을 좋아했지만, 크리스토퍼 렌의 수많은 모방자들 가운데
하나가 근대적인 추세에 따라 그 집을 개조하고 개축한 모양이다.
지금은 방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근대적인 창틀에 끼워진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굴뚝은 연기가 잘 빠지고,
외풍은 최소한으로 억제되고 있다.
유럽 대륙의 상류층 사람들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거라면 뭐든지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이런 태도는 참으로 꼴사납다.
이런 균형미에는 솔직하지 못한 데가 있다.
과거에 신사의 집은 그 가문의 역사이다.
집의 겉모양만 보아도 그 가문이 언제 번성했고 언제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 지
알 수 있었다.
뒤틀린 굴뚝, 차례로 덧붙여진 복도와 처마들은 무질서했지만
그 무질서가 오히려 유쾌하고 편안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크롬웰이 군대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획일성을 강요한 이후
사람들은 무질서가 주는 위안 따위는 이제 더 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그렇듯이 시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낡은 집들이 하나씩 헐리고, 그 자리에는 겉모양만 그럴싸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 건물은 그것을 지은 탐욕스럽고 교만한 신흥 명문들과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 집들은 너무나 급조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그만큼 빨리 없애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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