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Fithele > 영국 여행후기 #13. 쥐덫 (The Mousetrap)


팜플렛 & 공연 표지. 팜플렛 하나에 3파운드(대략 6천원)씩이나 받는다.

쥐덫에 얽힌 추억 - 세인트 마틴 극장 - 코벤트 가든과 그 주변 - 예기치 않은 경험 - 배우의 한마디

* 이미지는 1024*768에 맞춰져 있으며 클릭하시면 원래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극은 바로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보았던 연극이었다. 그게 고교 때니 얼마나 관람 생활에 담을 쌓고 살았는지 말 다했지 ㅡ.ㅡㅋ 대학교 1,2학년 때 시쳇말로 공연에 '버닝'했던 이유도 아마 뭔가 관람한다는 거에 한이 맺혀서였던 것 같다.

어쨌든, 쥐덫(The Mousetrap)은 고교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던 축제 때 동기들이 조직하여 딱 하루 공연했는데 보고 완전히 뻑갔다. 프로 연출가까지 섭외해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매일 보던 애들이 그렇게 변하다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 경험을 잊지 못해서였을까, 크리스 역과 보일 부인 역을 맡았던 동기 둘은 대학 가서도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아주 좋은 활동을 했다.

그런 추억의 극이자 세계 최장기 상연작인 쥐덫의 원조 공연을 안 보고 놓칠 수가 없다, 맥도날드에서 1.89파운드 어치 버거로 끼니를 잇는 한이 있어도 꼭 보리라 생각했기에 미리 표를 ticketmaster.co.uk를 통해 한국에서 예매해 가서 드디어 8월 2일, 제 21538번째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날 셜록 홈즈 박물관, 대영 박물관을 돌아보고 남은 짬에 피카딜리 광장과 포트넘&매이슨, 로알 아카데미 오브 아츠(RA)를 둘러본 후에도 시간이 여전히 남았기에 세인트 마틴 극장을 먼저 찾으러 갔다.


세인트 마틴 극장 입구

티켓을 찾고 배가 고파 밥을 먹을 데를 찾으러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레스터 스퀘어. -_-;; 부근에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중국 부페를 먹었는데, 주인 아가씨가 날 중국인으로 생각한 건지 엄청 잘해 주었긴 한데 둘다 안되는 영어로 말해서 고생 ;;; 어쨌든 쟈스민 차(1.5파운드나 한다)랑 오랜만에 간장과 chopstick을 써서 밥을 먹으니 대략 만족.


지나가다 발견한, 테네시 윌리암즈의 "어느 여름 갑자기"를 상영하던 극장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남아서 코벤트 가든을 보러 갔다.


코벤트 가든. 그냥 돗대기 시장 같다


그 앞에서 탈출쑈하던 아저씨 (왼쪽) & 코벤트가든의 뒤편


교통박물관 & 극장 박물관


로얄 오페라 하우스. 클래식 비수기(?)라서 발레를 하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되었는지 온갖 고급 차랑 드레시한 남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지도에도 설명이 안 나와 있는 건물이라 고개를 갸우뚱

일찌감치 들어가서 팜플렛을 읽으며 기다렸다. 당연히 극장도 작고,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았다. 줄거리도 대충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하니 그렇다고 할까. 팜플렛에서 배역 소개를 보니 옛날에 케이스웰 양 역을 하던 사람이 보일 부인을 지금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과연 오래된 극이구나...


오리지널(1952년) 공연과 현재 공연(2004년)의 비교 - 팜플렛 스캔

이윽고 극이 시작했는데, 처음에 예기치 않게도 어두워지자마자 2층 발코니에서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 바로 오른쪽 옆에서 갑자기 뭐가 툭 튀어나와 내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 났소?!"하고 외치는 경관. 심장마비 일으키는 줄 알았다. 내 자리가 F18번에 있었기에 얻은 행운이었다 (좌석표 참조) 


좌석배치표

대본을 이미 옥스포드에서 체류할 때 읽고 와서 특별히 대화를 못알아듣거나 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인기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표준적이고 쉬운 영어 스타일 - 극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코믹하고 덜 극적이었다. 


보일 부인의 목을 조르는 크리스(위) 몰리-자일스 부부에게 말하는 파라비치니(아래)

특히 크리스 역을 맡은 사람의 코믹 연기가 재미있었다. 여기 팜플렛에 있는 사진은 좀 골때리지만 가장 사랑스런 캐릭터가 얘가 아닐까 싶다. 허나 가장 눈을 끌었던 것은 보이쉬한 미스 케이스웰. 30년대 유행 의상을 완벽하고 우아하게 소화한 그 배우는 등장할 때마다 정말 멋있었다. 언니 싸랑해요! 앞서 예기치 못한 이벤트에 놀랐던 덕택인지, 또다른 살인이 일어날 때 무대가 어두워지며 들린 비명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트로터랑 미스 케이스웰, 한데 모인 배역들 - 팜플렛 스캔

중간에 특기할 만한 것은 직원이 가판대 (찹쌀떡 사려~ 할때 그 메고 다니는 것 있죠?)를 들고 문간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판다. 으흐흐... 근데 안에 에어콘을 틀어 너무 추워서 안 사먹었다. 1.5파운드인가 하는 것 같던데, 직원 복장이 꼭 쥐덫 시대에 나오는 웨이터 복장이라 시대를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 대본에 없는 부분은, 마지막에 몰리가 파이 타는 냄새를 맡고 어쩔줄 모르고 있을 때 크리스가 그 태운 파이를 들고 나와서 "제 생각엔 요리가 다 된 것 같네요" 라고 말하는 장면.

마지막 짧은 커튼콜. 모든 배역이 손에 손을 잡고 등장한 가운데, 트로터 경사 역을 맡았던 사람이  짤막한 코멘트를 한다. "부디 이 연극이 오래오래 상연될 수 있도록, 범인에 대한 정보를 여러분의 가슴에만 담아 두어 주시고 누설하지 않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씀에 나도 모르게 미소지으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쥐덫' 공연을 본 경험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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