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우리 중 단 한순간이라도 노빠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었냐고 하더군요. 

 최소한 저는 노빠였습니다. 

노사모는 가입한 적 없지만  

그분의 유세를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분을 찍고 그 날 6시 발표를 두 손 모으고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저는 노빠였습니다. 

 많이 섭섭하기도 하고,  

그래도 믿으려고 했습니다. 

정치란 최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차선을 찾는 거라고 저는 믿으니까요. 

그리고 그분이 고향으로 돌아가셨을 때  

좋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유쾌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그렇게 유머러스한 어른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어른이셔서 손 잡기도 어려운 할아버지,  

조카랑 손 한번도 안 잡아주시는 어려운 어른들 

그리고 정말 밥만 먹고,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하다가 언성을 높이시는 그런 어른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 그분이 텔레비젼에 한번 비칠때, 

그분의 사진이 인터넷에 한번 나올 때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정치인 노무현보다 사람 노무현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 정치인이었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분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전 그 정도가 뭐 어때서였습니다.  

대통령되기도 전에 1000억씩 받은 사람도 있고, 

대통령이 아니라 가족들이 수백억 받은 사람도 많은데 뭐.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잘못된 사고를 가졌을 수도 있지만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진정으로 깨끗한 정치는 아직 안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쪽은 원래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고  

다른 쪽은 1/10의 잘못이라도 죽일 듯이 매도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오십보 백보가 분명히 틀리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치란 현실은 차선도 못 찾으면 차악이라도 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대통령이 된 순간에 그분은 최악을 피한 결과였고, 

대통령이 되신 분에도 최악의 선택은 안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비판해아하는 것은 맞지만 노무현이니까 안된다는 말은 정말  끔찍한 언어였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자살이냐 서거냐 하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아 김동길 교수님 아직 살아계셨구나 반갑기도 했습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분의 수업을 선배들에게 들었고, 

94년에 쌀개방 반대에서 뵌게 마지막이어서 솔직히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나름 반갑더군요.  

그리고 시민광장이 막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지고 가던 영정이 뺐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의 굴욕을 봅니다.  

한주동안 끊임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봅니다.  

이건 그나마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있었던 지난 5년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저기서 우는 저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찬성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지금 이 현실에 대한 눈물이겠지요. 

상식을 지킨다는 것이 영웅이 되고 순교자가 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슬픔이겠지요. 

 

흔히들 죽인 사람들은 말합니다.  

시체를 가지고 정치하지 마라, 

그 분은 이런 결과를 분열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마저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 지금  

저는 7일장이 끝났는데도, 추모 배너를 없앨 수 없습니다.  

그냥 이제는 그분이 가신 것이 슬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가 슬픕니다.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할 수 있었고,  

그걸 신문으로 봤던 그 나날들이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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