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으며 하루를 연다. 이어폰을 낀 채로 볼륨을 최대로 높인 뒤 방구석에 쪼그려 앉는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하다. 하지만 이명(耳 鳴)의 고통에 비하면 이런 음악 소리가 낫다. 내가 사는 반 지하 방은 하늘이 무슨 색깔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어두운 방구석에 혼자 이어폰을 끼고 앉은 ‘황홀한 외로운 심사’는 매번 색다른 쾌감을 준다.
집 밖을 나가 본지 1년 가까이 된 듯하다. 예전에 읽은 신문에선 나 같은 사람을 ‘히키코모리’라 했다. 은둔형 외톨이란 말인데 나는 그들과 확연히 다르다. 할 일도 많고 볼 사람도 많지만 이명 때문에 속세와 거리를 둘 뿐이다. 귓병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잊었던 살의가 번뜩인다.
1년 전 쯤 이다. 신입 사원인 나를 유달리 괴롭히는 상사가 있었다. 워낙 할 말을 못하고 사는 소심한 자아인지라 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 변기에 대고 그 상사 욕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무슨 욕을 할지 고민하던 때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누구 험담을 하는 듯 했다. 내용인 즉, 어느 바보 같은 인간이 화장실 변기에 대고 고함을 지른 다는 것 이였다. 그 인간이 괴성을 지르는 사실은 그 인간 빼고 다 안다고 했다. 얼굴이 시뻘개 진다. 진짜 바보가 된 기분이였다.
그 후로, 바보라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내 귓가에 울렸고 나는 회사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은둔해 있다 보면 그들의 악행을 깨닫고 나에게 참회를 하러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확고한 믿음이 현실화될 때까진 기약기 없기에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칩거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머리가 울린다. 다시금 볼륨을 높인다.
배가 고프다.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야겠다. 옷을 주섬주섬 챙긴 뒤 슈퍼에 간다. 이것저것 산 뒤 아저씨에게 얼마인지 묻는다. 재밌는 사실은, 1여 년 만에 말을 하려니 입만 벙긋거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헌데 아저씨는 괴성을 들을 듯이 이맛살을 찌푸린 후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저씨 혼자 옹알이 비슷하게 입을 벙긋 거리다가 알아서 계산을 해버린다. 치매가 걸릴 나이는 아닌 듯한 데 뭔가 이상해 보이긴 하다. 찜찜함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선다.
특이한 건 아까부터 합창 교향곡이 귓가에 울린다는 거다. 이어폰도 없는데 신기한 일이다. 재빨리 방으로 달려간다. 간만에 밖에 나갔다 와서 그런지 방이 더 어두워진 듯해 불을 켜려 하지만 전기가 나간 듯하다. 실제 전기 계량기를 보니 몇 달 째 전기가 끊긴 듯하다. 그럼 내가 들었던 음악은 뭐지. 무슨 생각에선지 이어폰을 끼고 전축의 볼륨을 높인다. 음악이 다시금 크게 들린다.
그 순간 이명 현상이 심해져 내가 귀머거리가 된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귓가에 계속 들리는 교향곡 소리는.... 아! 귀머거리였던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전수해 주기 위해 내 귀를 멀게 하였나 보다. 이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 전기가 나가 켜있지도 않은 전축의 볼륨을 더 높인다.
‘내가 악성(樂 聖 )이 되다니.’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