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차이콥스키 : 피아노 협주곡 1, 2번 / 프로코피예프 : 피아노 협주곡 5번 / 바르톡 : 피아노 협주곡 2번 [2CD] - Gemini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Lorin Mazz / Warner Classics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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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차이코프스키는 언제나 슬픈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가을이 브람스의 계절이라면 우울한 선율의 천재인 차이코프스키는 겨울에 어울린다. 겨울 바람 속에 낯선 설원 위를 해질녘까지 헤매는 고독한 사람이 차이코프스키 같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쿵쾅 거리며 시작하기에 겨울의 이미지와 겹치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잘 들어 보라. 2악장의 부서질 듯한 감성과 끝없이 질주하는 선율이 내포한 무한한 강박장애. 무엇으로 부터 도망가고 싶었는지 몰라도 차이코프스키는 끝없이 피아노를 몰아 세우고 오케스트라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음악을 통해 세상과 결별한다. 결국 겨울의 이미지로 되돌아 온 것이다.

 무뚝뚝한 이미지의 에밀 길레스. 그의 뭉툭한 손이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한다. 피아노 현이 끊어지듯 강한 타건. 강철 타건이라 불렸던 길레스 이기에 이 곡이 내포한 강박성을 가장 냉철하게 드러낸다. 로린 마젤의 반주도 만만치 않다. 힘의 비등점을 향해 팽팽히 나가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신경쇠약이 걸린듯한 이미지다. 피아노 협주곡 2번 또한 만만치 않게 좋다. 얼마전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에서는 2번 2악장의 아름다움을 잔잔한 설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했다. 선율의 천재다운 아름다운 울림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리흐테르의 연주도 실려있다. 프로코피예프와 바르토크. 두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은 멜로디 보단 구조적 긴밀성에 신경을 쓴 듯하다. 자꾸 들어도 귀에 걸리지 않는 건 그래서일테다.

 겨울이 멀지 않은 시절. 상처 받고 그리워 하며 녹아 내린 우리네 심장에 고드름 하나 달아 줄 얼음손 같은 연주. 심장 그까이꺼 더 부서지면 뭐 어떤가. 가만히 있어도 봄이 오듯 언젠간 심장에 새순 하나 돋아날 터인데. 아프다고 움츠리지 말고 설원을 향해 나아가자. 차이코프스키의 우울증도 라흐마니노프의 신경쇠약도 푸른 설원위에 작렬하는 태양을 마주한다면 눈녹듯 다 사그라들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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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1-1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계절이 있기에 (그 사계절 속에 무한한 또 다른 날들이 있겠지만요..) 음악감상의 재미가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밤입니다.

적어도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만큼은 베토벤 못지 않은 당당함이 묻어나는 곡이 아닐까요..

바밤바 2008-11-13 21:05   좋아요 0 | URL
전 당당함보단 가슴이 항상 저려오는 뭔가가 있더라구요.
이것도 어제 들었네요. 이 앨범 말고 루빈스타인 연주로.. 루빈스타인 연주가 차분해서 좋은 듯^^
 
[수입] 말러 : 교향곡 1번
D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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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달 전 교양과목을 신청할 때였다. '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이 눈에 띄였다.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과목이였는데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수강 신청을 했다. 수업도 나름 재미있고 평소에 잘 아는 것들을 다루어 수월하게 느꼈는데 학점은 잘 안나오고 있다. 즐기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듯. 음악이 공부가 돼버리자 내 귀 또한 어지러워진 듯하다. 음악을 공부한다라..

 이러한 낮은 학점을 메울 수 있는 기회가 최근에 생겼다. 담당 교수가 듣기 평가를 한다며 30곡의 목록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곡을 듣고 어느 곡인지 제목을 쓰는 것인데 몇 곡을 제외하곤 귀에 익은 곡들 이였다. 말러 교향곡 1번도 그 목록에 있었다. 이게 왠 호재냐 싶었다. 하지만 교수가 인터넷에 올린 음악 파일은 조악한 음색 때문에 청취에 대한 열망을 저해하는 듯했다. 학생들은 그 수업 때문에 말러를 싫어하지 않을까. 고전음악 문외한에게 가뜩이나 고역인 말러를 저렴한 음질로 듣게 하다니.

 말러는 접근하기 어려운 작곡가다. 한곡 한곡의 연주시간이 너무 길고 특정 멜로디가 입가에 맴돌지도 않는 편이다. 음악을 다 듣고 무한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브루크너는 차라리 나은 편이지 말러의 몰아치고 때리고 달래주는 음악은 청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말러를 들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다들 자신이 즐기는 것에 익숙해 지고 마음이 열리려면 어느 정도 심정적 노동을 하지 않았던가. 음악 듣기에도 조금의 정신 노동을 투입해 보시라. 그러면 말러도 들린다. 황홀하거나 무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그냥 얘가 좀 힘들구나.. 내지는 생각보다 괜찮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이러한 말러 교향곡 중 '거인'이라는 부제를 지닌 1번 교향곡은 참으로 말러스럽지 않다.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3악장의 그 소박한 축제의 느낌은 별다는 감정의 이입 없이도 이 작곡가를 좋아하게 만든다. 1번 교향곡 중 최고의 연주로 꼽히는 것이 이 아바도의 연주다. 말러 교향곡 연주 앨범이 워낙 비싸다 보니 번스타인과 로린 마젤의 연주 외에는 다른 연주를 들어 본적이 없어 비교 청취를 하기는 좀 뭐하다. 다만 좀 명쾌한 듯한 말러. 싱긋 웃는 아바도와 관록의 베를린 필. 실황의 근사한 울림. 이 정도면 여간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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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운 그이 목소리 들으면
미워라 미워라 하던 좁은 마음이
당신 냄새 주워 섬기며 반색한다.

 
"어.. 안녕."

 
아픔에 받혀 생각에 묻혀
나를 해하던 모진 언어들이
근본도 없는 종자마냥
입꼬리 끝으로 사그라든다.

 
고맙다.

 
묵힌 기억 하나로 살아가는
질기지 못한 마음에
낯 뜨거운 레몬즙, 그대 목소리
언제나 목마른, 그대 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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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 관현악 모음곡 전곡집
DG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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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문화적 습속)에 대하여 이야기 한적이 있다. 문화적으로 세습되는 권력으로 이해해도 될 법 한데,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부자집 아이일수록 미술에 대한 심미안이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감식안이 높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릴적 부터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이러한 고급문화에 자주 노출되게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구별짓기'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문화적 습속을 통한 사회적 지위의 세습은 가진자들에게 필요한 법이다.

 클래식 음악이야말로 이러한 아비투스를 통한 계층적 소외 현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작곡가의 성향이나 작곡 배경 등을 알 필요가 있고, 특히 어릴때 부터 듣지 않는다면 이런 지루한 음악이 귀에 친숙해질리 없기 때문이다. 바흐의 음악도 예외일 순 없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지닌 이 엄격한 작곡가의 음악 또한 진입장벽이 높아 접근성이 떨어진다. 수학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한 바흐의 정교한 음악적 구성은 수식의 나열로 보아도 좋을만큼 견고함을 지닌다. 

 하지만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귓가에 쉽게 안착하는 친숙한 매력이 있다. 트레버 피녹이 연주한 이 원전음악의 향연은 딱히 아비투스가 부여한 진입장벽에 질식하지 않을 만큼의 대중성을 지닌다. 함께 수록된 관현악 모음곡 또한 가슴을 안정시켜주는 따스함을 지닌다. 부르크가 독일어로 도시란 뜻이니 브란덴시 협주곡이라 부르면 어감에서도 조금 더 친밀해 질지 모른다. 자주 가는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에선 이 음악을 듣고 감정이 정화되고 귀가 황송할 지경이란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다 과도한 레토릭(수사학)일 뿐이다. 다만 속도를 좇으며 사람을 내모는 광포한 자본의 시대에 삶의 여백같은 여유를 주는 음악 정도로 보면 될 터이다. 표지의 그림 또한 잠시 쉬어가라는 손짓을 하는 듯하다. 사회적으로 공고히 형성된 문화적 장벽을 반드시 넘을 필요는 없지만, 혹여나 넘고 싶다면 이 음반으로 시작해도 좋을 듯. 바흐는 서양 음악의 태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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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0-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재생산. 이 단어를 꾸준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이어져야 하는데 최근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클래식 음악.. 계층적 소외현상을 드러내주는 좋은 예라는 점에 적잖이 동감하는데요. 우리나라도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프로그램을 수용하여 좋은 방향으로 적용시키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바밤바 2008-10-14 23:2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산적한 문제가 많죠. ㅎ 문화적 습속을 극복하기 위한 것에 까지 투자하기엔 국가적으로 여유가 없을 듯 하네요. 계층 이동이 꽤 자주 일어나는 듯이 보도하는 언론이나 계층화 현상으로 잉여 이익을 얻는 자본가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 하네요.ㅎ

jinkim8866 2022-05-1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음악이지 무슨 계층이 나오고 잉여이익이 나와야 하는지 잉여이익을 얻는 자본가가 부럽다면 누가 하지 말라고 말린 사람이라도 있는지 조그만 방에서 FM으로 음악에 빠져든 나같은 사람은 뭐 어찌 된건지
 

오늘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으며 하루를 연다. 이어폰을 낀 채로 볼륨을 최대로 높인 뒤 방구석에 쪼그려 앉는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하다. 하지만 이명(耳 鳴)의 고통에 비하면 이런 음악 소리가 낫다. 내가 사는 반 지하 방은 하늘이 무슨 색깔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어두운 방구석에 혼자 이어폰을 끼고 앉은 ‘황홀한 외로운 심사’는 매번 색다른 쾌감을 준다.

집 밖을 나가 본지 1년 가까이 된 듯하다. 예전에 읽은 신문에선 나 같은 사람을 ‘히키코모리’라 했다. 은둔형 외톨이란 말인데 나는 그들과 확연히 다르다. 할 일도 많고 볼 사람도 많지만 이명 때문에 속세와 거리를 둘 뿐이다. 귓병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잊었던 살의가 번뜩인다.

1년 전 쯤 이다. 신입 사원인 나를 유달리 괴롭히는 상사가 있었다. 워낙 할 말을 못하고 사는 소심한 자아인지라 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 변기에 대고 그 상사 욕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무슨 욕을 할지 고민하던 때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누구 험담을 하는 듯 했다. 내용인 즉, 어느 바보 같은 인간이 화장실 변기에 대고 고함을 지른 다는 것 이였다. 그 인간이 괴성을 지르는 사실은 그 인간 빼고 다 안다고 했다. 얼굴이 시뻘개 진다. 진짜 바보가 된 기분이였다.

그 후로, 바보라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내 귓가에 울렸고 나는 회사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은둔해 있다 보면 그들의 악행을 깨닫고 나에게 참회를 하러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확고한 믿음이 현실화될 때까진 기약기 없기에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칩거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머리가 울린다. 다시금 볼륨을 높인다.

배가 고프다.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야겠다. 옷을 주섬주섬 챙긴 뒤 슈퍼에 간다. 이것저것 산 뒤 아저씨에게 얼마인지 묻는다. 재밌는 사실은, 1여 년 만에 말을 하려니 입만 벙긋거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헌데 아저씨는 괴성을 들을 듯이 이맛살을 찌푸린 후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저씨 혼자 옹알이 비슷하게 입을 벙긋 거리다가 알아서 계산을 해버린다. 치매가 걸릴 나이는 아닌 듯한 데 뭔가 이상해 보이긴 하다. 찜찜함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선다.

특이한 건 아까부터 합창 교향곡이 귓가에 울린다는 거다. 이어폰도 없는데 신기한 일이다. 재빨리 방으로 달려간다. 간만에 밖에 나갔다 와서 그런지 방이 더 어두워진 듯해 불을 켜려 하지만 전기가 나간 듯하다. 실제 전기 계량기를 보니 몇 달 째 전기가 끊긴 듯하다. 그럼 내가 들었던 음악은 뭐지. 무슨 생각에선지 이어폰을 끼고 전축의 볼륨을 높인다. 음악이 다시금 크게 들린다.

그 순간 이명 현상이 심해져 내가 귀머거리가 된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귓가에 계속 들리는 교향곡 소리는.... 아! 귀머거리였던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전수해 주기 위해 내 귀를 멀게 하였나 보다. 이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 전기가 나가 켜있지도 않은 전축의 볼륨을 더 높인다.

‘내가 악성(樂 聖 )이 되다니.’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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