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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차이콥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 DG Originals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작곡, 아바도 (Claudio / DG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쉬이 귀에 걸린다. 멜로디가 친숙하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듣기 좋다. 다만 평론가들은 이 곡의 출간 당시 '싸구려 보드카 냄새가 난다'며 혹평했다. 베토벤에 비해 품격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은 음의 향연에 평론가들이 왜 생트집을 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싸구려 보드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음악은 러시아적 정서가 강하다. 러시아 설원이 연상되는 슬라브 특유의 향취가 풍긴다.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에서 이야기 하듯 허황된 레토릭이 아닌 진정 슬라브적인 힘이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도 연상시킨다. 또한 '싸구려'라는 말은 이 곡의 강점인 익숙한 멜로디에 대한 방증이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또한 당시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안톤 루빈스타인에게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라며 비난 받은 적이 있다. 대중성을 싸구려라 말하는 음악인 특유의 '구별짓기' 행위 때문에 발생한 에피소드들 인듯하다. 시대를 앞서 간 음악가를 알아보지 못한 평론가의 우둔함은 오히려 곡의 위대함을 뒷받침 해줄 좋은 사례가 되어버렸다.
밀스타인이 연주했다. 아바도가 반주했다. 밀스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당당함을 살려내지 못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천재 작곡가가 뭐 그리 당당할 일이 있겠느냐 만은 음악에서만큼은 언제나 당당한 차이코프스키였다. 특히 본격적인 주제음이 나오는 부분에서 차이코프스키는 베토벤과는 결이 다른 당당함을 뽐낸다. 밀스타인은 여린 선율을 들려주며 차이코프스키의 외향성보단 내향성에 몰두한 연주를 들려준다. 물론 오밀조밀한 맛은 있다. 지금은 거장이 된 아바도의 반주도 나쁘지 않다. 다만 1972년 당시의 아바도는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 못한 듯하다. 음이 다소 거칠고 오케스트라를 살릴지 바이올린 솔로를 살릴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어 보인다. 배려의 음악을 보여주는 밀스타인과의 협연이기에 아바도의 색깔이 다소 무뎌진 느낌이다.
커플링 된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멘델스존의 최고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이 음악은 단조 곡 특유의 멜랑꼴리함을 잘 드러낸다. 제 2의 모차르트가 될 거란 기대를 받았던 이 천재는 결국 음악사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소박한 음악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멘델스존이란 이름을 그나마 회자되게 하는 건 이 바이올린 협주곡과 셰익스피어 희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 '한여름밤의 꿈' 때문인 듯하다. 한여름밤의 꿈이 유명한 건 결혼식마다 항상 연주되는 결혼 행진곡 덕분이다. 그래도 멘델스존은 부유한 환경에서 비교적 행복한 인생을 보냈기에 본인 스스로는 아쉬울 게 없을 듯하다.
밀스타인은 다시금 부드러운 연주를 보여준다. 아바도의 반주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때 보다 못한 듯하다. 정경화의 불꽃 튀는 연주나 하이페츠의 살이 베일 듯한 날카로움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저 밋밋할 연주다. 하지만 거장으로서 또 언제나 2인자로서 자신만의 온유한 바이올린을 들려주는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기교를 뛰어넘는 품격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급하게 살라고 종용하는 요즘 자신만의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기 어렵 듯, 모두가 화려한 기교를 뽐내기 바쁠 때 자신만의 부드러운 연주를 추구하긴 힘든 법이다. 다소 모자라 보일 수도 나이브해 보일지도 모를 이러한 선택을 이 거장은 했다. 자신만의 바이올린으로. 그러기에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계보에서 꽤나 높은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멘델스존 차지하는 그 정도의 위치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