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 미디어 디스토피아에서 미디어 유토피아를 상상하다
정여울 지음 / 강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정여울의 책은 사소설의 느낌이 강하다. 신변잡담이 주를 이루진 않되 결을 이루고 있다. 고갱이는 일상에서 느낀 철학이다. 배경지식이 없거나 인문학적 소양이 미진하다면 이해하기 힘든 언어의 성찬이다. 표피를 이루고 있는 건 장식성 강한 언어다. 아포리즘이란 단어가 과잉 사용되며 레테르, 노마드 같은 단어도 일상용어 마냥 나와 있다. 불친절하다. 그러기에 유익했고 수사학은 지나치게 여울져 가독력을 떨어뜨리지만 나름의 재미를 주었다. 지식은 압축적으로 기술돼 있고 사변은 중간과정 없이 결론만 덩그러니 보여준다. 나와 소통을 하기 위해선 이정도의 지적 편람은 갖추시게.. 하는 나르시시즘도 보인다. 30여 년 동안 쌓은 공력을 340여 페이지에 다 드러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압축의 미학이 아닐까 한다. 레토릭 과잉을 제외하곤 좋은 책이다. 이 사람. 실제로 만나고 싶다. 아래는 이 책에서 발췌한 아포르즘이다. ㅎ 

 니체의 말처럼 사물의 가치는 우리가 그 사물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성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의 가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현대인들에게 있어, 특히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가장 곤란한 것은 이 일상의 다반사를 견뎌내는 일입니다. 체험을 추구하는 노력도 이러한 의미의 허약함으로부터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허약함이란 결국 시대의 숙명을 똑바로 응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발 없는 새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에는 발 없는 새가 있대.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한번 쉰대. 평생 단 한번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엄정화가 홍반장에게 빠지는 건 “그녀가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은 아닐까. 

 질투는 나의 힘의 하숙집 딸에 대해 소설가 권여선은 “아무리 모욕해도 결코 자살할 것 같지 않은 여자” “그 하찮음이 우주의 무게와 맞먹는 여자”라 분석한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내용이 아니라 소통에 임하는 형식 혹은 태도가 아닐까. 

 입체파 이후 화가들의 공간 인식은 나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배경속의 정물이라는 기존의 전제를 파괴시킨다. 나라는 실체가 변화시킬 수 있는, 혹은 영향 받을 수 있는 시공간 전체가 바로 나를 구성하는 실질적 힘인 것이다.

 타인의 충고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소통이나 명령의 언어가 아니라 고백의 언어여야 한다고. 아니 충고를 연출하는 그 발화자야말로 충고를 듣는 사람보다 훨씬 처절하게 방황하가 머뭇거리고 더듬거려야 한다고. 

 김기덕에 대한 집단적 혐오감의 이면에는 우리가 결코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폭력의 뇌관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위선에 위악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불운한 칼이다. 그에게 계급의 문제는 도덕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지배적인 모든 것은 악이다. 이 급진성은 미추의 문제를 선악의 문제로 치환하는 지배의 문법, 즉 미학을 껴안고 있는 정치의 심장부를 건드리기 위함이다. 나는 이 점이 현재 김기덕이 갖고 있는 고유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느 누구도 서기 꺼리는 위치에 운명적으로 서 있다.”    

 진통제는 건강 증진 혹은 진리 탐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환자의 행복에 기여함으로써 신음과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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