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기자의 블로그를 다녀왔다. 한때는 나도 필력있는 그 누군가처럼 글 쓰게 되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 그들이 읽은 책을 따라 읽으려 하고 그들이 가진 관점을 내 것인 것마냥 읊조린 적도 있었다. 이동진 기자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생각과 비슷하다며 애써 권위자와 스스로를 동일시 하려던 어린 모습, 나와 다른 생각을 보면 나의 부족함을 우선 책망하는 자신감이 결여 된 모습. 내 생각이란 숫제 교열 받을 준비가 된 발로 쓴 교과서 같은 것이고 그 분의 생각이야 말로 사표로 삼을 국정 교과서라는 생각. 조금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내 목소리를 내거나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불현듯 아쉬움이 든다. 영화 '과속 스캔들'에 대한 이동진 기자의 평점에 동의하는 댓글은 예전에 느꼈던 아쉬움을 현재로 치환시킨다. '기자님과 저는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요'라는 글은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을 기자와 맞췄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지적 허영의 표출이다. 이동진은 문화권력 이니까. 아님 말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남들보다 유식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부족함을 아는 소크라테스이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모른 채 젠체하기 바쁜 그리스인들보다 유식하다고 본 것이다. 자신이 부족한 지 모른 채 타인의 사상을 좇으며 그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것인냥 여기는 헛똑똑이들. 그러한 점을 지적이라도 할라 손 치면 십중팔구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 내 생각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며 등기부 설정이라도 해 놓은 듯한 그 결연한 확신으로 애써 지적해 준 사람을 무안케 한다. 넘사벽을 절감케 하는 순간이다. 그냥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아직 배우는 단계라 잠시 타인의 의견을 임차했을 뿐이니 너무 지적마시게나'하면 본인의 생각을 갈고 닦고 타인과 소통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될 터인데. 안타깝다. 다들 자기계발이다 뭐다 하며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가. 발전을 하려면 스스로를 객관화 해야 한다. 그러려면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내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거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듯 내 생각이라는 것 또한 이런저런 생각의 집합체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자기화된 생각만큼은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과속스캔들은 좋은 영화다. 이동진이 말한 '재치의 부스러기'나 '공장느낌이 나는 코미디'는 좀 과하다. 내게 이 영화는 이음새가 매끈하고 매력이 넘치며 적당히 영리한 영화로 다가온다. 리얼리티에 신경을 쓰고 봤다면 영화를 잘못본 것이다.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직전에 넘어가는 유연한 극적 흐름을 보라. 장르적 클리셰로 빠질만한 부분도 잘 벗어났다. 과하지 않은 웃음을 주고 시나리오에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렇게 허술하면서도 쉽게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도 아니다. 왜 평론가 사이에나 통할 예술적 잣대를 들이대는가. 아마츄어 같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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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 2008-12-3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무슨말인지 알 것 같아요.
예전에 책을 취미로 많이 읽었을때 저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샌가
제 생각이라 믿고, 제 표현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그들의 것임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고는 오싹하기도 했네요.

그리고는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활자화된 그들의 생각은 의외로 공신력이 있어보여
어쩌면 옳지 않은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분별하게 수긍하고 있을 수 있겠다고 말에요.

그때부터였나봐요
무작정 책을 읽기 보다는
그 책을 읽는 나를 더 돌아보게 된게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바밤바 2008-12-31 12:03   좋아요 0 | URL
첨 뵙네요. 개콘 많이 보세요. 개콘은 따라해도 무방하거든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

CQ 2008-12-3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바밤바님. 영화 커뮤니티 씨네마틱 편집부입니다.

바밤바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평점 유감> 게시물을 씨네마틱 칼럼란에 게재하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허락 여부 답변 부탁드립니다. 만약 게재가 가능하다면, 글의 우측 하단에 게재될 본명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ww.cinematiq.co.kr

바밤바 2008-12-31 20:51   좋아요 0 | URL
이건 영화리뷰라고 하긴 좀 그런데.. 물론 게재하셔도 되구요. 본명은 어떻게 알려드리면 되나요? 전번이라도 남기시면 문자로 가르쳐 드리면 되는데..

CQ 2009-01-01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능하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