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창원에 내려왔다. 서울과는 달리 벚꽃이 피었다. 공기는 찬데 꽃이 핀다. 분홍의 봄 색깔이 동네를 뒤덮는다. 옆동네 진해는 군항제를 한다고 그런다. 친구는 군항제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소소한 불평을 늘어 놓았다. 벚꽃이 핀 길에 이도저도 못하고 서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기실 그리 급한 일도 없는 친구이지만 벚꽃에 마음이 달떴는지는 의문이다.
서울에 있는 내 자취방엔 물이 샌다. 하수도 이음새가 헐거워져 물이 새는 듯 하다. 벽지에 물로 그린 꽃이 버짐같이 피었다. 벽과 벽사이의 좁은 틈이 갑갑하여 벽지를 뚫고 나온 저 물의 생명력.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빨리 주인 아줌마가 고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리 내버려 두면 곰팡이가 슬테다. 지금도 방안은 미세한 곰팡이균 때문인지 반지하에 살던 옛 기억을 되살려 준다. 처음엔 색이 조금 짙어질 뿐이었던 벽지가 지금은 철지난 참외처럼 노랗다. 아줌마가 물은 안새게 해줄 테지만 벽지도 새로 칠해줄지는 의문이다.
일주일 뒤면 예비군 훈련을 간다. 대학생으로 가는 마지막 예비군 훈련이다. 군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볼 때 마다 어색하다. 바람직한 군인이 되기에 난 많이 모자르다. 우선 성품이 문제다. 친구들은 내게 초식동물 같다고 한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편한 인간. 눈매도 쳐졌으니 군인들이 쏘아내는 안광같은게 있을리 없다. 혹자는 내게 상근이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며 내게서 나른함을 읽고 가곤 했다. 무엇보다 난 단체생활을 싫어한다. 온순하고 무던해 보이지만 난 매우 예민한 편인 듯하다. 그래서 누가 옆에서 코를 골거나 하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다행이 대학생 예비군 훈련은 하루만 참석해주면 된다. 그래도 가기 싫다.
내 자랑같은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하여 널럴한 일상을 며칠 바쁘게 산 뒤 온 창원. 창원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간다. 기쁨과 아픔이 함께 있는 곳. 이제는 다들 어디론가 가버려 홀로 반추할 추억만 가득한 곳. 늘어진 시간 사이에 그래도 다들 잘살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궁금함과 잘살길 바라는 소박함이 어우러진다. 좀 더 재밌는 사람을 만나고픈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