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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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불현 듯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나 또한 김연수 소설의 ‘그’처럼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어느새 코끼리가 다가온다. 누군가 바쁘다 하면 어찌할까 하는 소심함이 코끼리처럼 내 마음을 누른다. 그리고선 서평을 쓴다.

   김연수의 소설은 다소 난해하다. 평론가의 글을 읽고 한 번 더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선 내 마음에 숨어있는 코끼리를 발견한다. 언젠가부터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감을 동물로 희화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책이 떠오른다. 소설가 김연수는 이 책의 제목에서 소설 속 코끼리를 무형의 고통으로 표현했는지 모른다. 

 이 소설 외에 다른 글도 나쁘지 않다. 공선옥의 단편이 특히 좋다. 어물어물 설탕물 들이키듯 쉬이 목구멍에 넘어간다. 박민규의 글은 번잡하다. 이게 그의 매력일 테다. 재기발랄함이 좋다. 글이 말을 대신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말은 사치다. 조금 더 아팠으면 좋겠다. 언젠간 목적 없이 써내려 간 글이 정교해질 때가 있을 테다. 소설을 읽으며 그런 경지를 바라마지 않는다. 날이 스나브로 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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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창원에 내려왔다. 서울과는 달리 벚꽃이 피었다. 공기는 찬데 꽃이 핀다. 분홍의 봄 색깔이 동네를 뒤덮는다. 옆동네 진해는 군항제를 한다고 그런다. 친구는 군항제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소소한 불평을 늘어 놓았다. 벚꽃이 핀 길에 이도저도 못하고 서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기실 그리 급한 일도 없는 친구이지만 벚꽃에 마음이 달떴는지는 의문이다.  

 서울에 있는 내 자취방엔 물이 샌다. 하수도 이음새가 헐거워져 물이 새는 듯 하다. 벽지에 물로 그린 꽃이 버짐같이 피었다. 벽과 벽사이의 좁은 틈이 갑갑하여 벽지를 뚫고 나온 저 물의 생명력.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빨리 주인 아줌마가 고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리 내버려 두면 곰팡이가 슬테다. 지금도 방안은 미세한 곰팡이균 때문인지 반지하에 살던 옛 기억을 되살려 준다. 처음엔 색이 조금 짙어질 뿐이었던 벽지가 지금은 철지난 참외처럼 노랗다. 아줌마가 물은 안새게 해줄 테지만 벽지도 새로 칠해줄지는 의문이다.  

 일주일 뒤면 예비군 훈련을 간다. 대학생으로 가는 마지막 예비군 훈련이다. 군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볼 때 마다 어색하다. 바람직한 군인이 되기에 난 많이 모자르다. 우선 성품이 문제다. 친구들은 내게 초식동물 같다고 한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편한 인간. 눈매도 쳐졌으니 군인들이 쏘아내는 안광같은게 있을리 없다. 혹자는 내게 상근이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며 내게서 나른함을 읽고 가곤 했다. 무엇보다 난 단체생활을 싫어한다. 온순하고 무던해 보이지만 난 매우 예민한 편인 듯하다. 그래서 누가 옆에서 코를 골거나 하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다행이 대학생 예비군 훈련은 하루만 참석해주면 된다. 그래도 가기 싫다. 

 내 자랑같은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하여 널럴한 일상을 며칠 바쁘게 산 뒤 온 창원. 창원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간다. 기쁨과 아픔이 함께 있는 곳. 이제는 다들 어디론가 가버려 홀로 반추할 추억만 가득한 곳. 늘어진 시간 사이에 그래도 다들 잘살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궁금함과 잘살길 바라는 소박함이 어우러진다. 좀 더 재밌는 사람을 만나고픈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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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시사상식 136집 - 2009 2009 최신시사상식 시리즈
박문각 편집부 엮음 / 박문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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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엔 나만의 자리가 하나 있다. 언론시험준비반에 있는 자리인데 딱히 언론사를 지망하기 보단 고정된 자리가 하나 필요해서 임차해 쓰고 있는 곳이다. 오늘 내 자리 위에 이 책이 놓여져 있었다. 언론반 도서부장이 구매해 놓은 듯하다.  

 표지가 바뀐게 눈에 띈다. 전표지가 더 좋았었는데 조금은 산만한 듯하다. 구입자 폭을 늘리기 위해서인지 대학입시에도 좋다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띈다. 고등학생이 이런 지식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책은 언제나 그렇듯 좋을 테다. 최근 김훈과 김연수의 글모음집에 빠져있는 지라 오늘 받은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다.  

 봄이라 풀색을 표지에 쓴 듯하다. 연두색이라 해도 될 듯.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시절. 밤은 노래하고 비는 훌쩍인다. 밤비 내리는 자정 넘은 시간대는 언제나 감상적이다. 현실의 무게감이 녹록지 않은 시절에 봄빛 가득한 이 책은 부담을 덜어줄지 더해줄지 모를 일이다. 참고로 카라얀 앨범 리뷰를 다시 썼다. 글이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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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카라얀 교향곡 에디션(38CD, 한정반)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외 작곡, 카라얀 (Herbert Von Ka / DG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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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반을 어제 다시 들었다. 38장이나 되는 앨범이다 보니 한곡 한곡을 열심히 청취하려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 나는 대로 하나씩 들으며 익숙지 않은 곡은 배운다는 마음으로, 익숙한 곡은 즐긴다는 마음으로 들으면 될 터이다. 


 장 당 16000원에 팔렸던 시디가 1600원 정도에 나온 건 가격 면에서 축복이다. 높은 가격 때문에 접하기 힘들던 음반을 저렴해진 덕에 쉬이 접할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비물질적 가치까지 숫자화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낮은 가격은 음반에 대한 관심마저 저렴하게 하기 십상이다. 마치 아껴 놨던 용돈으로 사먹던 떡볶이가 나이 들어선 그시절 마냥 맛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입맛이 변한 이유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떡볶이에 대한 간절함이 덜해서 일테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렴해진 시디는 소싯적 새음반 포장지를 벗겼을 때의 설렘을 주지 못한다. 싼게 비지떡이 아니라 싼게 덜 소중하다는 인식이 자본주의 체제 속 사람이라면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기에 그럴테다. 이번 카라얀 앨범을 구입한 클래식 문외한이 애호가가 되기엔 낮은 가격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앨범이 기획될 수 있었던 배경을 본다면 클래식 분야에 신규 진입한 신참자에겐 불리한 요소가 더 많다. 염가반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클래식 시장에 대한 신규 수요자가 감소하는 추세와 엠피스리 활성화로 인한 음반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즉 클래식을 듣는다 하여도 본인의 감상을 공감해 줄 지인을 찾기는 커녕 외로운 취미로 남을 공산이 높다. 엠피스리와 같은 '포터블'한 도구를 통한 음악 감상 또한 몇몇 익숙한 멜로디만 귓가에 남긴 채 클래식에 대한 공포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클래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성의 어려움도 문제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대중음악이 넘치는 요즘 주위 환경의 도움이나 가정교육 없이는 친해지기 어려운 장르가 클래식이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선 대위법이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내재한 아비투스를 극복할 준비가 돼 있다면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알랭드 보통은 ‘불안’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대인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신분이 안정돼 있는 계급사회완 달리 신분 상승이 가능해진 현대사회 속에서 사회적 위치의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단순히 어느 정도 부를 가졌냐는 척도로 계급을 나누던 20세기를 지나 문화나 권력을 통한 ‘구별짓기’ 또한 계급의 척도가 된 요즘, 클래식에 대한 수요는 상류층일수록 높아질 테다. 이뿐만 아니라 클래식 소식을 종종 전달하는 일간지나 베토벤 바이러스를 등을 통한 클래식의 대중화는 클래식의 수명을 늘려준다. 결국 외로움을 극복하고 호기심 이상의 관심만 있다면 클래식 듣기를 취미로 삼는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비투스를 극복하고 문화적 자본을 성취하기 위해선 이 음반 외의 음반도 듣고 관련 서적을 읽는 등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 듣기를 위한 취미 활동을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다. 자본주의의 열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계발이 만성화 돼 있는 요즘이다. 자신의 취미 내지는 문화적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성장의 강박에 매몰돼 있는 정신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 테다. 알랭드 보통이 이야기한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문화적 자본은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이번 카라얀의 음반은 맺음이 아닌 새로운 앎을 위한 시작이 되기엔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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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교향곡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곡들인데다가 해당 곡에서 모두 참조할 만한 카라얀의 레코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곧 교향악 축제 시즌인데, 이 박스에서 미리 들어볼 만한 곡들이 많아 보입니다. 언제 한 번 각각의 교향곡들을 다른 지휘자& 악단의 음반들과 비교해 보고 싶네요~

바밤바 2009-03-22 00:19   좋아요 0 | URL
하이든 빼곤 다들 익숙한 곡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하이든 곡이 제일 익숙하게 들리더군요. ㅎㅎ 브루크너 곡이 가장 좋은거 같아요. 카라얀은 참 세련된 사람인듯.

무해한모리군 2009-03-2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흠 산다해도 다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바밤바 2009-03-25 15:49   좋아요 0 | URL
그냥 쟁여 놓고 있다보면 언젠간 다 듣겠죠. 휘모리님 반가워요. 헤헤~^^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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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많은 시절. 남 보다 더 큰소리 내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시절. 돈의 진정성이 어느때 보다 절실한 '상실의 시절'. 비루한 세상에 말은 헛되고 글은 어지럽다. 김훈의 글은 모진 세상에 말 하나 덧된  글모음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의 글은 말 하나로 우뚝 선 허약한 늠름함이다. 이순신의 이야기는 김훈의 속마음이다. 아프고 쓰린 인생을 살다 보니 마음에 새겨진 문장 만으로 하나의 책이 완성 되었다. 리듬이 살아있고 말은 팍팍하다. 수사가 별로 없기에 문장이 참되다. 죽음을 이야기할 때도 삶을 이야기 할 때도, 아우를 수 없는 세계를 제 글로써 담담히 바라볼 뿐이다.  

 칼은 노래 하지 않는다. 칼은 휘둘림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 피와 맞닿았을 때 그 울림이 더 커질 뿐이다. 김훈의 글이 그러하다. 그의 글은 사람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삶과 맞닿고 사람과 마주했을 때야 김훈의 독백이 들린다. 김훈의 비관적 세계관은 이래서 진실이다. 몸이 바스라지고 마음이 시뻘개져 보았기에 김훈의 글은 쓰인게 아니고 몸에서 밀려 나왔다. 관념보다 더 난해한 삶의 비루함, 그 생짜의 언어가 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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