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카라얀 교향곡 에디션(38CD, 한정반)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외 작곡, 카라얀 (Herbert Von Ka / DG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음반을 어제 다시 들었다. 38장이나 되는 앨범이다 보니 한곡 한곡을 열심히 청취하려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 나는 대로 하나씩 들으며 익숙지 않은 곡은 배운다는 마음으로, 익숙한 곡은 즐긴다는 마음으로 들으면 될 터이다. 


 장 당 16000원에 팔렸던 시디가 1600원 정도에 나온 건 가격 면에서 축복이다. 높은 가격 때문에 접하기 힘들던 음반을 저렴해진 덕에 쉬이 접할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비물질적 가치까지 숫자화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낮은 가격은 음반에 대한 관심마저 저렴하게 하기 십상이다. 마치 아껴 놨던 용돈으로 사먹던 떡볶이가 나이 들어선 그시절 마냥 맛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입맛이 변한 이유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떡볶이에 대한 간절함이 덜해서 일테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렴해진 시디는 소싯적 새음반 포장지를 벗겼을 때의 설렘을 주지 못한다. 싼게 비지떡이 아니라 싼게 덜 소중하다는 인식이 자본주의 체제 속 사람이라면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기에 그럴테다. 이번 카라얀 앨범을 구입한 클래식 문외한이 애호가가 되기엔 낮은 가격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앨범이 기획될 수 있었던 배경을 본다면 클래식 분야에 신규 진입한 신참자에겐 불리한 요소가 더 많다. 염가반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클래식 시장에 대한 신규 수요자가 감소하는 추세와 엠피스리 활성화로 인한 음반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즉 클래식을 듣는다 하여도 본인의 감상을 공감해 줄 지인을 찾기는 커녕 외로운 취미로 남을 공산이 높다. 엠피스리와 같은 '포터블'한 도구를 통한 음악 감상 또한 몇몇 익숙한 멜로디만 귓가에 남긴 채 클래식에 대한 공포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클래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성의 어려움도 문제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대중음악이 넘치는 요즘 주위 환경의 도움이나 가정교육 없이는 친해지기 어려운 장르가 클래식이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선 대위법이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내재한 아비투스를 극복할 준비가 돼 있다면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알랭드 보통은 ‘불안’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대인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신분이 안정돼 있는 계급사회완 달리 신분 상승이 가능해진 현대사회 속에서 사회적 위치의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단순히 어느 정도 부를 가졌냐는 척도로 계급을 나누던 20세기를 지나 문화나 권력을 통한 ‘구별짓기’ 또한 계급의 척도가 된 요즘, 클래식에 대한 수요는 상류층일수록 높아질 테다. 이뿐만 아니라 클래식 소식을 종종 전달하는 일간지나 베토벤 바이러스를 등을 통한 클래식의 대중화는 클래식의 수명을 늘려준다. 결국 외로움을 극복하고 호기심 이상의 관심만 있다면 클래식 듣기를 취미로 삼는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비투스를 극복하고 문화적 자본을 성취하기 위해선 이 음반 외의 음반도 듣고 관련 서적을 읽는 등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 듣기를 위한 취미 활동을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다. 자본주의의 열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계발이 만성화 돼 있는 요즘이다. 자신의 취미 내지는 문화적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성장의 강박에 매몰돼 있는 정신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 테다. 알랭드 보통이 이야기한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문화적 자본은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이번 카라얀의 음반은 맺음이 아닌 새로운 앎을 위한 시작이 되기엔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면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3-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교향곡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곡들인데다가 해당 곡에서 모두 참조할 만한 카라얀의 레코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곧 교향악 축제 시즌인데, 이 박스에서 미리 들어볼 만한 곡들이 많아 보입니다. 언제 한 번 각각의 교향곡들을 다른 지휘자& 악단의 음반들과 비교해 보고 싶네요~

바밤바 2009-03-22 00:19   좋아요 0 | URL
하이든 빼곤 다들 익숙한 곡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하이든 곡이 제일 익숙하게 들리더군요. ㅎㅎ 브루크너 곡이 가장 좋은거 같아요. 카라얀은 참 세련된 사람인듯.

무해한모리군 2009-03-2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흠 산다해도 다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바밤바 2009-03-25 15:49   좋아요 0 | URL
그냥 쟁여 놓고 있다보면 언젠간 다 듣겠죠. 휘모리님 반가워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