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끝나간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의 끝은 다 부질없더라도 생각한 시간만은 값졌다. 여물어진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말을 꾸미려 하지 말고 실팍한 사람이 돼야겠단 생각도 했다. 뒤늦은 깨우침이다.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기자다. 프레시안이란 인터넷 언론사다. 기자협회에 가입이 안 돼 있는 회사라고 한다. 기실 친구가 나를 만난 건 취재를 위해서였다.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이 20대 백수 생활에 대한 썰을 풀었다. 최근 유행하는 ‘롤러코스터’라는 CJ넷의 프로그램에서 착안한 기사라 했다. 헌데 여인네들이 인터뷰를 거부하여 내 주위 친구들만 인터뷰를 했다. 다 남자였다.
이야기의 내용은 각각이었다. PD를 준비하는 친구는 10시에 일어나 야구를 보고 인터넷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 과일을 먹고선 고향에서 어머니가 부쳐 주신 반찬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하였다. 다른 후배는 40분 만에 기업 원서를 하나 쓰는 데 거의 매일 원서를 쓴다고 했다. 서류 통과 율은 20프로를 약간 넘는다고 했다.
내 일상은 그 친구도 잘 알아서인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싸이월드에 일기를 자주 쓰는 걸 하나의 ‘야마’로 잡고 기사를 쓴다고 했다. 싸이에 일기를 안 쓴지 좀 되었지만 그냥 그러라고 했다. 물론 내 실명은 기사에 나가지 않는다 하였다. 취재원 보호 차원이란다.
연봉이 2000도 안 되는 그 친구에게 치킨 두 마리를 뜯어 먹고선 각자 흩어졌다. 나와 내 친군 좀 더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우석훈과 진중권의 이야기를 하며 나와 생각을 나눴다. 우석훈은 질문에 대한 엉뚱한 대답을 자주하며 진중권은 글로 낚시질을 잘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친구가 기자다 보니 내 질문이 더 많았다. 친구는 프레시안 기자가 20명 정도라 분위기가 화목하다고 했다. 자신은 마음 편하게 글만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또한 회사의 수익구조는 독지가들의 지원과 네이버 뉴스캐스트 수익이 대부분이라 했다. 올해 기자가 되었기에 더 자세한건 모른다 말했다. 그리고선 자기 회사 사장이 중앙일보 출신이란 얘기와 기형도에 관한 이야기, 또한 강준만과 변희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피디를 지망하는 친구가 대화에 끼였다. 그는 올해 MBC 서류가 되지 않아 꽤나 상심이 큰 상태였다. 기업원서를 쓰는 자신에게서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으며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좌파이자 아나키스트인 그 친구의 결정에 나는 ‘지행합일’의 본보기라며 추어올렸고 친구는 상긋 웃으며 말을 아꼈다.
우리는 말을 하다 왜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느냐는 주제에 닿았다. 기자인 친구는 그런 불편함이 그 방송의 특징이고 그것 정도는 감내해야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말을 했다. 나는 좀 더 상큼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소기의 목적을 위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송이 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였다. 피디를 지망하는 친구는 자신이 항상 해왔던 고민이라며 소설이나 영화가 위대한 점 중 하나는 거대담론을 자연스레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대한 찬사를 서로 나눴다.
대화 도중 진보신당 진성당원인 ‘빨갱이’형이 대화에 참여했다. 그는 빨갱이지만 순둥이이고 여리며 귀엽다.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 여튼 그는 대안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강화도에 자신이 아는 지인들이 대안학교를 꾸리고 있다며 친구에게 추천해 주었다. 우리는 ‘월미도’ 북파 공작원마냥 작업 기술 가르쳐주는 데 아니냐며 농을 던졌고 그 형은 푼푼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기자를 준비하는 그 형은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다며 ‘쌍용차 사태’와 같은 사안을 취재하고 싶다고 말을 하다 전화가 와서 대화가 끊겼다. 그리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삶은 구접스러운 데 우리의 이야기는 밝았으며 가슴은 허한데 대화는 알찼다. 말은 내가 제일 많이 한 듯한 데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내 얘긴 별로 없다. 말이 가벼워 대화가 넘치다 보니 남은 말이 없나 보다. 다만 찬바람을 많이 쐬었더니 몸이 으슬으슬 하다. 몸을 보살펴야겠다. 신종 플루가 내 또래의 사람도 죽였다 하더이다.